"내가 꿈꾸는 ‘도시’는 실재하는가?"

천국과 지옥 사이, 우리가 진정 찾아야 하는 것

2025.06.11 | 조회 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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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당신이 꿈꾸는 완벽한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요?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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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러분이 새로운 도시를 설계할 수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만들고 싶나요? 범죄가 없는 도시, 모든 사람이 부유하고 행복한 도시, 자연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도시...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이상적인 도시를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도시가 정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바로 이런 질문들로 가득한 책입니다. 여행자 마르코 폴로는 황혼기에 접어든 타타르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55개의 도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과거의 행복한 기억이 담긴 도시부터, 허공에 걸린 밧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도시, 죽은 자를 볼 수 있는 도시, 바라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도시까지. 그런데 이 도시들은 모두 환상적인 가상의 도시들입니다. 인간이 꿈꿀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도시를 펼쳐놓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과연, 우리가 꿈꾸는 도시는 정말 완벽할까요?

 

오늘의 책 📘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탈로 칼비노


출처: 민음사
출처: 민음사

 

기억과 시간의 모순: 조라와 필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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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더 많이 기억하려고 할수록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곤 합니다. 기억의 도시 ‘조라’는 벌집처럼 육각형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칸 안에 기억하고자 하는 것들을 배열해 놓습니다. 사람들은 더 잘 기억하기 위해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고, 도시 전체가 꼼짝 않고 똑같은 모습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변화를 거부한 조라는 서서히 붕괴되었고, 결국 세상은 조라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마르코 폴로의 고향인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의 출발점이자, 다른 도시와의 차이를 설명해가기 위한 기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마르코 폴로의 고향인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의 출발점이자, 다른 도시와의 차이를 설명해가기 위한 기준점이라고 볼 수 있다.

기억의 모순을 보여주는 또 다른 도시는 ‘필리데’입니다. 이곳은 다양한 모양의 운하와 다리들, 창문과 도로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그저 지나가며 볼 때는 즐거운 광경을 선사하지만, 여기서 평생을 살게 되면 그 즐거운 빛을 잃어버립니다. 마치 여행지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실제 그곳에서 살아보면 다르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 두 도시는 기억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모순된 욕망을 보여줍니다. 조라처럼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보존하려 하면 그것은 박제가 되어 생명력을 잃습니다. 필리데처럼 항상 새롭고 변화하는 것들은 아름답지만 잠깐의 감탄을 영원히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끝없는 경쟁의 도시: 제노비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입니다. 높이 828m, 총 163층으로 '세계 최고층 빌딩'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각 도시마다 더 높은 랜드마크를 세우려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제노비아’는 이런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도시입니다. 이 도시의 집들은 서로 경쟁하듯 제각기 높이 솟은 말뚝들 위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더 높이, 더 위로 올라가려는 끝없는 욕망이 만들어낸 도시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제노비아 사람들 자신도 어떤 욕망으로 이런 도시를 만들었는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행복한 삶을 묘사해 달라고 하면 제노비아 같은 도시를 그려냅니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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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하듯 솟아오르는 고층 빌딩들, 더 높은 층에 살기 위한 사람들의 욕망,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도시들. 더 높은 곳에 올라가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제노비아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왜 이렇게 위로만 올라가려 하는지 모르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칼비노는 묻습니다. '우리는 욕망을 우리 형태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욕망에 의해 지워지고 있는가?'

 

이분법의 허상: 베르사베아, 레오니아


출처: ImageF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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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구조'를 가진 도시들은 철학적인 통찰을 던집니다. ‘베르사베아’는 ‘천상의 베르사베아’와 ‘지옥의 베르사베아’로 나뉩니다. 하늘에는 고귀한 것들만 있는 천상의 베르사베아가, 땅 속에는 경멸받는 것들이 모인 베르사베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쓰레기를 지하로 버리는데, 알고 보니 지하 도시는 최고 권위의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가장 비싼 자재로 건설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천상의 베르사베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쓰레기들입니다.

‘레오니아’는 매일 아침 쓰레기차가 모든 쓰레기를 수거해가서 항상 깨끗한 모습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레오니아에서 버린 쓰레기들은 도시 주변에 요새처럼 쌓여가며, 결국 그 쓰레기가 도시를 침범하기 시작합니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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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들이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흔히 믿는 이분법들의 허상입니다. 삶과 죽음, 고귀함과 천함, 깨끗함과 더러움. 이런 대립들은 실제로는 서로 의존하고 순환하는 관계입니다. 현대 도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유한 동네와 가난한 동네, 중심가와 변두리, 개발 지역과 낙후 지역. 이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더럽고 경멸하는 것들을 원래 없었던 것처럼 의식에서 지워버린다고 해서 그것들이 없는 게 되지 않습니다. 결국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나가며: 꿈꾸는 ‘유토피아’의 역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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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가 처음 들려준 도시 ‘디오미라’는 아름다운 금속들로 장식된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과거 어느 때인가 행복했던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행복은 환영에 불과하고 어쩌면 과거에도 경험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tvN <알쓸별잡: 지중해> 6화 중

13세기 실제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서 묘사된 아시아의 도시들은 중세 유럽인들에게 ‘환상의 땅’이었습니다. 비록 과장되고 때로는 상상 속 이야기에 가까워 보였지만, 그들은 그 낯선 '동방'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혔습니다. 어딘가에는 분명 자신들이 본 적 없는 모습을 한 곳이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디오미라의 사람들처럼, 또 중세의 유럽인들처럼 우리도 늘 '저기 어딘가'에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더 좋은 동네, 더 발전된 도시, 더 완벽한 사회. 하지만 정말 그런 곳에 가면 행복해질까요? 아니면 그곳에서도 또 다른 ‘어딘가’를 그리워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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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도시, 이상적인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칼비노가 55개의 도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런 깨달음입니다. 소설 속 마르코 폴로가 마지막에 말했듯이 우리는 이미 지옥에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절망의 메시지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옥 속에서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지속시키고 공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완벽하지 않더라도 행복의 조각들을 발견하고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완벽한 유토피아를 찾는 대신, 지금 이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만의 작은 천국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 작성자: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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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꾸는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만약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설계할 수 있다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 일상에서 '지옥이 아닌 것들'을 찾고 그것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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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탈의 프로필 이미지

    크리스탈

    0
    9 days 전

    요즘은 각자의 정의와 유토피아가 제각기 다른 시대인 것 같습니다. 나만 옳고,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으로 여기는 풍경이 일상이 되었죠. 참 피곤한 시대이죠. 사람은 본능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품곤 합니다. 거기에 ‘만약에’라는 상상까지 얹히면, 지금의 삶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가 하는 의심 속에서 자기 삶까지 부정하게 되죠. 요즘 온라인 댓글만 봐도 그런 불안이 드러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결혼’에 대한 이야기예요. 어떤 사람은 아이 없이 둘이서 살아가는 딩크족을 선택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이와 함께하는 가정을 꾸립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딩크족은 아이를 낳은 사람들에게 ‘왜 낳았냐’고 묻지 않지만, 반대로 아이가 있는 쪽에서는 ‘왜 안 낳냐’며 딩크족을 비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아이 안 낳을 거면 결혼은 왜 하냐’는 말이 따라붙죠. 하지만 이런 비난은 단순히 ‘다르다’는 이유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저로선 이것이 결국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갈망’, 혹은 ‘내 선택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은근한 질투에서 비롯된 반응으로 보입니다. 국가처럼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조직에서는 어느 정도의 통일된 의견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한목소리만 강요되면, 반대 의견이 묵살되고 중요한 다양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선 서로 다른 선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나만의 유토피아를 실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크고 막연한 욕심이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한 발짝 물러나면, 삶은 훨씬 더 풍족해질 수 있어요.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나오는 다양한 도시들을 통해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를 되돌아보고, 결국 완벽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주말에 꼭 읽어볼게요!

    ㄴ 답글 (1)
  • Naru의 프로필 이미지

    Naru

    0
    9 days 전

    유토피아라는 것이 모두의 불만족이 없는 공간이라면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불만족이 없다는 요소도 불만족할 수 없음을 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것이 또한 불만족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고, 비효율적인 선택을 할 권리도 사람에겐 있으니까요. 하지만 유토피아란 개념도 시간으로 정의한다면 존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현재의 시간 가운데요. 삶을 살아가다보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쁜 일도 생기고 불편한 점도 생기니까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유토피아들을 내가 늘려 갔을 때 지금의 서울도 제법 살만한 좋은 도시일 수 있지 않을까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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