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부자들의 배경에 숨겨진 종교적 윤리
지난 뉴스레터에서 우리는 ‘극단적 부의 축적’이 가져온 사회적 문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시간당 수입 29억 원, 온리팬즈 크리에이터의 월 수입 270억 원. 이런 극단적인 숫자들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빈부 격차를 넘어,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완전히 뒤틀렸다는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뉴스레터 보러가기👉)
주식, 부동산, 코인…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돈💰’이라는 화두로 가득합니다. 평범한 직장인조차 ‘슈퍼 개미’나 ‘부동산, 코인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시대가 되었죠. 직업은 이제 ‘꿈’이나 ‘소명’이 아닌,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더 나아가 많은 청년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뭐하나”라는 허무주의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부자들의 성장 배경을 들여다보면 종교적 흔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트럼프는 장로교 집안 출신이고,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역시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랐습니다. 마크 저커버그는 유대교 전통 속에서 태어났죠. 지금은 무신론자나 세속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그들의 성장 과정과 가치관에는 종교적 윤리가 깊이 배어 있습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 돈과 신앙은 왜 늘 함께 움직였을까?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100년도 더 된 책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놀라운 답을 제시합니다. 투기와 사익 추구에 매몰된 오늘날의 ‘천민 자본주의’와 그가 말한 ‘진정한 자본주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오늘은 그 답을 함께 찾아가 보려 합니다.
오늘의 책 📕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마르크스 『자본론』과 함께 자본주의 논쟁의 양대 산맥
이 책을 빼놓고 자본주의를 말할 수 없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 자본주의의 정신적 기초
먼저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는 16세기 종교 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를 말하는데, 특히 칼뱅주의자들은 독특한 직업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직업은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닌 '신의 소명(Beruf)'이었죠. (*여기서 프로테스탄트 = 개신교 라고 쉽게 보시면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프로테스탄트들의 세 가지 핵심 가치입니다:
- 노동을 통한 부의 축적은 '신의 영광'을 위한 것
- 검소한 생활을 통한 절제와 금욕의 정신
-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경영 방식
“하느님이 각 개인을 부르신 자리인 개개인의 직업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부지런히 성실하게 행하는 것이야 말로 자기가 택함 받은 자들에 속해 있다는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권면해 주는 것이었다. 직업적인 노동에 매진할 때에만, 구원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고, 자신이 구원받은 자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p. 197
이러한 가치관은 어떻게 근대적 자본주의의 토대가 되었을까요?
프로테스탄트들은 열심히 일해 부를 축적하되, 그것을 개인적 향락이 아닌 재투자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부의 축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버가 말하는 '금욕주의와 자본주의 정신'의 근간입니다. 즉, 돈은 벌지만 그것을 쓸데없는 사치에 쓰지 않고 금욕주의로 돈을 모아 재투자하는 것이죠.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계시된 하느님의 뜻에 의하면, 향락을 누리며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부지런히 일하고 활동하는 것만이 하느님의 영광을 더 높일 수 있다.”
p. 307
“금욕주의는 특히 한 가지에 맞서 싸우는 데 온 힘을 집중했는데, 그것은 현세의 삶 및 그 삶이 주는 온갖 즐거움들을 ‘절제 없이’ 향유하는 것과 싸우는 것이었다."
p. 338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얼마를 벌든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비합리적으로 벌면 안되는 것이었죠. 이때 부의 상한선은 제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반면 일반적인 자본주의는 단순히 이윤 추구를 위한 경제 활동에 불과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존재해 온 상인과 고리대금업자들의 활동이 이에 해당하죠. 그들은 부를 축적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개인의 향락을 위한 것이었고 체계적인 경영 방식도, 윤리적 토대도 없었습니다.
왜 지금 이 이야기가 중요할까요?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성과만 추구하면서 그 정신적 기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노동의 가치를 돈으로만 환산하며, 공동체에 대한 책임은 외면한 채 개인의 이익만을 좇고 있죠. 이것이 바로 베버가 우려했던 '혼이 없는 전문가들, 심장이 없이 향락을 추구하는 자들'의 시대입니다.
“개신교의 세속적인 금욕주의는 한편으로는 재산을 절제함이 없이 사용해서 향락을 누리는 것에 대항해 싸웠고 재화의 소비를 억제했으며 특히 사치스러운 소비를 금지했다.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이윤 추구를 합법화하고, 더 나아가 이윤 추구 활동을 하느님의 뜻으로 규정함으로써, 영리를 추구하고 재화를 획득하는 것에 장애가 되었던 전통주의적인 경제 윤리의 속박들을 분쇄하는 심리적 효과를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p. 352
자본주의의 두 얼굴
베버는 자본주의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비롯된 '근대적 자본주의'와 투기와 약탈에 기반한 '천민 자본주의'입니다.
근대적 자본주의의 핵심은 '소명으로서의 직업'입니다. 이는 단순한 돈벌이가 아닌,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으로서 직업을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근면, 절제, 합리적 경영을 통한 이윤 추구,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그 특징이죠.
반면 '천민 자본주의'는 어떨까요? 현대 사회의 두 가지 상징적인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온리팬즈(OnlyFans) 현상입니다. 2024년 기준 63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이 플랫폼에서는 크리에이터들이 한 달에 수백억 원의 수입을 올립니다. 심지어 미국의 한 대학 총장은 아내와 함께 음란물을 제작해 교수직 박탈 위기에 처했죠.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전통적 직업윤리를 완전히 붕괴시킨 단적인 예입니다.
둘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는 세계입니다. 456억 원이라는 상금을 위해 목숨을 거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자화상이 아닐까요? '돈이면 생명도 거래할 수 있다'는 극단적 상황 설정이 전 세계적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이 역설적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이런 천민 자본주의의 모습이 발견됩니다. 청년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주식과 코인에 뛰어드는 현상, '직장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인식의 확산,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채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행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가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자본주의'의 회복
베버가 100년 전에 경고했던 ‘정신 없는 전문가, 가슴 없는 향락가’들의 시대. 그가 우려했던 대로 현대인들은 ‘쇠우리(iron cage)’, 즉 자본주의 체제가 만든 보이지 않는 철창 안에 갇혀 물질적 가치만을 좇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효율·돈·계산만을 강요받는 구조 속에 사는 것이죠.
진정한 자본주의의 회복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을 단순한 돈벌이가 아닌 소명으로 바라보는 시각, 단기적 이익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자세,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 사이의 균형, 윤리적 소비와 투자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요.
'돈'이라는 단일 가치가 지배하는 시대, 우리는 다시 한번 자본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자본주의를 살아가고 계신가요?
✍️ 작성자: 에이미
📮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떠셨나요?
아래 댓글에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 오늘의 질문
-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직업'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 우리 사회에서 대표되는 '천민 자본주의'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Naru
개신교라서 이 곳에서 이런 글을 읽으니 또 느낌이 새롭네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직업을 매우 원해서 가지진 않았지만, 이 직장을 다니는 이유를 돈 말고도 여러가지 의미를 두며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고자 해요. 개신교로서의 제 생각을 적어보자면, 직업적 소명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할 수 있는 건강과 능력, 소득과 여러 관계들 모두 자신의 노력보다는 하나님에게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점인 것이죠. 그래서 저는 '좋은 직업'은 본인이 좋으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사실 잃어가는 것도 많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써,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해서는 본인의 삶의 경제적 기준도, 행복의 기준도 남의 인정을 받기보다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금채
천민 자본주의를 나타내는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전세사기꾼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동산을 소소하게 투자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개인이 수십 수백채를 소유하면서 약자인 임차인의 보증금을 가지고 돈놀음을 합니다. 개인이 수백채가 넘는 집을 소유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뿐만 아니라 일확천금을 꿈꾸며 주식이나 코인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결국 그 일확천금한 돈으로 부동산을 사서 임대업을 하고자 합니다. 과연 개인이 자신이 살 집 외에 여러 채를 소유하며 거기서 소득을 얻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런 현산들이 의미라고는 생각지 않고 오로지 돈과 이윤만 좇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식을 하는 똑같은 행위일지라도 일확천금의 수단으로서 보는 게 아니라 정말 기업들의 가치와 비전을 분석하고 투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본주의의 모습이 아닐까요? 일확천금의 수단으로서 주식을 하는 모습은 그저 도박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사회와 미래를 분석하고 앞으로 필요할 산업, 가치 있는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을 공부해서 진짜 투자가 필요하다면 그런 곳에 투자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신의 소명, 절제와 금욕, 건강한 소비와 투자라는 건전한 목표에서 출발한 자본주의가 돈만 바라보는 '천민 자본주의'로 변질되어 버린 이 시점에 어떻게 하면 본래 자본주의의 의미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따라옵니다. 과연 우리는 진정한 자본주의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