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되는 경험, 계산되는 사랑의 시대

당신은 진짜 경험하고 있나요? <경험의 멸종>

2025.06.18 | 조회 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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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으로 시대를 읽어내는 문화 큐레이션 뉴스레터, 매주 당신의 새로운 시선을 깨웁니다 💌

(출처: unsplash)
(출처: unsplash)

들어가며: 경험의 멸종, 기술이 삶을 대체하는 시대


우리는 요즘 어떤 경험을 하고 있을까요? 아니, 좀 더 정확히 묻자면 우리는 정말 경험을 하고 있는 걸까요?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유튜브를 통해 세계 곳곳의 풍경을 압니다. 먹방을 보며 무언가를 먹지 않아도 맛을 상상할 수 있고,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 사랑에 빠지지 않아도 사랑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건 ‘내가’ 겪은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영상을 통해 체험한 감각입니다. 익숙하고 편리하지만, 어쩐지 이상하게 공허하다는 생각. 요즘 들어 자주 떠오르지 않으신가요?

“이게 정말 내 삶이 맞을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오늘의 책 📕 <경험의 멸종>


(출처: 어크로스)
(출처: 어크로스)

 

내 경험은 어디로 갔을까: 직접 경험의 소멸


대화 대신 메신저를, 걷는 대신 자동차를, 사고 대신 AI를 사용하는 우리들
대화 대신 메신저를, 걷는 대신 자동차를, 사고 대신 AI를 사용하는 우리들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능력을 확장해왔습니다. 대화 대신 메신저를, 걷는 대신 자동차를, 사고 대신 AI를 사용하면서요. 그런데 기술이 경험 자체를 대체하기 시작한 순간, 상황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내가 경험한 세계’를 통해 판단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이 경험한 세계를 흡수하고 소비합니다.

‘현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의지하고 가상의 영역에서 배운 것으로 현실 세계를 재구성 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p.14


SNS는 타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공간을 넘어서, 그들의 감정, 생각, 선택까지 내 삶의 일부처럼 흡수하게 만듭니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되묻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내 생각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생각을 흉내 내고 있는 걸까?”

(출처: 태어난김에 세계일주 4, https://program.imbc.com/AdventurebyAccident4)
(출처: 태어난김에 세계일주 4, https://program.imbc.com/AdventurebyAccident4)

요즘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유튜브를 통해 미리 ‘경험’합니다. 이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점점 더 많은 이들이‘직접 가는 것’보다 ‘누군가 다녀온 걸 보는 일’에 만족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실에서 하는 여행을 통해 우리는 여행을 일상 생활과 비슷하게 만든다. 여행을 스크린으로 하는 것이다. 

p. 238


대표적인 예가 여행 유튜버 콘텐츠입니다. 그들의 영상은 전 세계를 누비며 생생한 문화를 전달하고, 지금은 <지구마불 세계여행>,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같은 방송과 OTT 프로그램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조차 ‘소비’로 바뀐 시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연애프로그램 '환승연애2' 최종회 단관 이벤트

정말 인기가 많았던 <환승연애 2> 연애 프로그램은 영화관을 대관하여 마지막화를 다 같이 관람하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의아하지 않으세요? 실제로 연애하는 사람은 줄어든다고 하는데, 연애 프로그램 대관을 하여 다같이 관람 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직접 연애를 하기보다는, 연애 프로그램에 감정을 이입하며 ‘관람’만 하게 되는 걸까요? 

 

우리는 이제 많은 시간을 우리의 직접 경험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경험을 소비하는 데 쓴다. 인기 유튜브 장르인 리액션 영상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준다. 

p.30

경험은 점점 관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감정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별 브이로그, 퇴사 브이로그 등 이런 콘텐츠는 정보 전달을 넘어서 타인의 감정을 대리 체험하는 창구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말합니다. “한 번쯤 그런 감정, 나도 겪어보고 싶어.” 하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이유는, 감정이란 것은 누가 보여줘서 아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장르로는 게임 영상, 먹방, 언박싱 영상이 있다. 우리가 이런 동영상을 좋아하는 것은 그 영상들이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주기 때문이다. 진짜 경험을 짧은 시간에 엿보는 것 말이다. 한 평론가는 “리액션 영상을 보는 것은 직접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리액션 영상은 경험 표절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그 영상을 보면서 화면 속의 사람들과 함께 그 순간에 거기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p.30

 

기다릴 줄 모르는 시대: '느림'의 멸종


(최근 온라인에서 올라오고 있는 1990년대의 ‘기다림’, 현재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현대인과 비교되는 사진입니다) 
(최근 온라인에서 올라오고 있는 1990년대의 ‘기다림’, 현재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현대인과 비교되는 사진입니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도 낭만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서 광고를 보며 설레고, 친구를 기다리며 카페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삶의 일부였죠. 하지만 지금은 기다림이 에러(error)처럼 여겨집니다. 답장은 바로 와야 하고, 음식은 곧 도착해야 하며, 버스가 도착 예정 시간보다 2분이라도 늦어지면 우리는 짜증을 냅니다.

기술은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도구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게 한다. 줄서기, 손 글씨, 원격 학습, 길 찾기, 권태 등을 말이다. 

p.17


기다림은 이제 ‘정상적인 인간 경험’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로 취급됩니다.
기술은 분명 우리에게 시간을 돌려주었지만, 그 시간 속에 숨어 있던 감정들은 함께 사라졌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피어나는 감정. 생각의 여백. 이 모든 것은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랑조차 계산될 수 있을까: 데이터 시대의 사랑법


소개팅에 나온 남녀의 만남 유효기간은 12시간이다. (출처: 넷플릭스 <블랙미러> ‘Hang the DJ'(시스템의 연인) 에피소드)
소개팅에 나온 남녀의 만남 유효기간은 12시간이다.
(출처: 넷플릭스 <블랙미러> ‘Hang the DJ'(시스템의 연인) 에피소드)

나의 과거 데이터를 통해, 미래의 연인과의 만남 기간이 예측된다면 어떨까요? 넷플릭스 <블랙미러>의 에피소드 'Hang the DJ'(시스템의 연인)는 이런 상상을 담은 미래를 보여줍니다. 모든 연인 관계가 시스템에 의해 결정되고, 만날 기간까지 정확히 계산되는 세상. 시스템은 99.8%의 정확도로 '완벽한 짝'을 찾아준다고 약속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게 됩니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시스템이 그렇게 설정한 걸까?" 이 이야기가 무서운 이유는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팅 앱 틴더는 알고리즘으로 이상형을 찾아주고, 인스타그램은 '좋아요' 수로 매력을 수치화합니다. 연애 상담 앱은 대화 패턴을 분석해 상대방의 호감도를 퍼센트로 알려주죠.

 (출처: 넷플릭스 <블랙미러> ‘Hang the DJ'(시스템의 연인) 에피소드)
 (출처: 넷플릭스 <블랙미러> ‘Hang the DJ'(시스템의 연인) 에피소드)

우리는 언제부터 사랑을 데이터로 이해하려 했을까요? "호감도 75%", "매칭률 89%" 같은 숫자들이 감정을 설명한다고 믿게 되었을까요? 가장 인간적인 경험인 사랑마저 최적화의 대상이 되어버린 시대. 우리는 설렘보다 안전을, 우연보다 확률을 택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은 변수로 가득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본질은 계산할 수 없는 것들에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의 떨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끌림, 논리적이지 않은 선택들. 시스템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경험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것도 '과거 시대의 사랑법'을 주장하는 옛날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은 청년이 되었을 때 "우리 부모님 세대는 과거에 ‘우연하게 만나서’ 연애하는 시절도 있었데.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사주나 타로같은 것도 봤다더라" 라며,

"그러면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 사귀었단 말인가요?"라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나가며: 당신은 오늘, 어떤 경험을 직접 하고 계신가요?


(출처: unsplash)
(출처: unsplash)

기술은 인간을 도와주는 도구여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기술에 삶의 방식까지 넘겨주고 있습니다. 느림을 견디지 못하고, 관계를 책임지지 않으며, 경험 대신 관람을 선택합니다. 감정조차 분석하고 최적화하려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다움은 조용히 멸종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답장을 천천히 해도 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영상이 아니라 직접 만나서 들어도 되고, 추천 대신 직감으로 책 한 권을 골라도 됩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 기술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삶을 살아주는 건 결국 우리 자신입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경험을 직접 하고 계신가요? 

 

이번 주 <경험의 멸종> 책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직접 경험'의 소중함을, 우리의 잃어버린 감각들을 발견해 보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 작성자: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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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질문

  • 우리는 왜 직접 연애를 하기보다는, 연애 프로그램에 감정을 이입하며 ‘관람’만 하게 되는 걸까요? 실제로 연애하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연애 프로그램은 점점 더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요즘은 왜 직접 겪기보단, 남의 경험을 보는 걸로 만족하게 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에, 마지막으로 천천히 무언가를 해본 건 언제셨나요? 그 시간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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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준리의 프로필 이미지

    준리

    0
    6 months 전

    글을 읽고 든 생각은 '노력'과 '감정소모'가 필요한 일들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연애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가만히 있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 저는 다 직접 해보는게 더 좋아서 관련 프로그램들을 안보는데 요새 인기있는 프로그램의 종류가 또 바뀌는 추세인가봅니다. 책 읽는것은 직접 경험이지만 오드리해에서 추천받은 책이나 레터를 읽는것은 간접경험인건가?? 이렇게 쓰는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네요ㅋㅋ 이번주도 좋은 책 추천 및 레터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 금채의 프로필 이미지

    금채

    0
    6 months 전

    직접 연애를 하기보다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 것, 어떤 프로그램을 직접 보기보다 리액션 영상을 보는 것과 같은 행동은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담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연애를 하는 과정 혹은 연애까지 가는 과정에서 혹시나 완주를 하지 못하여 사랑에 실패할까 봐, 프로그램이 재미 없을까 봐 하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반면, 여행을 직접 가는 대신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대리만족이 아닐까 합니다. 먼 곳으로 떠나기에 시간이나 여력이 부족하기에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조금의 만족감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현상 모두 우리 사회에 '기다림'의 시간이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패하는 것을 기다려준다거나 잠시 일상을 벗어나 먼 곳으로 오래 여행을 떠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아요. 사회가 어떤 시간이든 좀 더 기다려주는 여유가 생긴다면 멸종된 경험들이 다시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ㄴ 답글 (1)
  • T.drgn의 프로필 이미지

    T.drgn

    0
    6 months 전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에라는 말에서 저는 시간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게 느껴지는 사람이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빠른 결정과 효율을 원하면서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 기다림 속에서 사람들과 나누는 말들과 감정을 음미할 줄 아는 태도 등, 제 사례를 들자면 승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생긴 불안과 설렘, 교통체증이나 예기치 않은 상황(끼어들기)에서도 화를 내기보단 상대방의 입장을 상상하며 이해하려는 마음(엄청 급한일이 있겠거니라고 생각) 즉, 저는 결론적으로는 기술이 분명 시간을 돌려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간이 모두에게 동일한 의미는 아니며, 누군가는 그 시간을 조급함으로 채우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더 많은 감정과 관계를 키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술이 시간을 어떻게 바꾸었는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것은, 그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제 첫 댓글인데 먼가 제가 글을 읽고 생각나는걸 두서없이 떠든거 같네요 항상 생각에 빠질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뉴스레터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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