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 아파트를 포기하고 글을 팔기로 했습니다

파혼하고 인스타 글팔이 피플이 됐습니다

2026.03.06 | 조회 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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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구매를 위한 본격 글팔이의 자기 고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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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넷에 파혼이 나에게 정확하게 알려준 것이 두 가지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크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것이다. 1년이 훌쩍 지나 그때를 되짚어 보니, 당시 결혼을 어떻게든 하려고 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노처녀가 되기 싫다는 조급함, 그리고 그 남자의 반포의 집이 앞으로 안정된 미래를 보장할 거란 착각 때문이었다.

 

연애하면서 파혼의 기운은 다분했다. 반포집이고 뭐고 결혼하면 인생 망할 수도 있겠다는 신호가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내 글이었다. 전 연인과의 주기적인 싸움의 주제는 나의 글이었다. 나의 이전 연애에 관한 글을 좀처럼 참지 못했고, “너 이거 우리 엄마가 보면 어떡할 거야?”, “배려가 있는 거야?”라면서 꼬투리를 잡았다. 말로는 너의 글쓰기를 응원한다고 했지만, 글을 읽고 Pass/ Fail 느낌으로 감상평을 전했기에 검사받는 것 같았고, 소재나 표현에도 허용의 범위가 있는 것만 같았다. 글은 항상 나에게 자유로운 세계였는데, 무언가 눈치를 보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슬퍼졌지만, 반포동 집 때문에 꾹 참았다. 미래를 이야기할 때마다 그 집이 재개발을 하고, 아크로 리버팍으로 이사 가는 미래를 이야기하면 하면 기분이 좀 나아졌기 때문이다.

 

파혼하고 정말 많이 울었다. 반포동 집에서 못살아서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반포집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근데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자다 일어나서 엉엉 울었다. 헤어짐을 고하고 엉엉 3시간을 내리 울다가 허겁지겁 책상으로 가 글을 썼다. 얼마 만에 자유롭게 쓰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글을 쓰는 거였는지, 이때의 기분은 수능을 마치고 고사장을 나올 때의 해방감보다 더 자유롭고 속이 시원했다. 이별의 슬픔이 자유로운 글쓰기의 대가라면 충분히 치러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게 막막했다. 남자는 떠나도 꿈은 그대로 남았기에, 서울 부촌에 내 이름 석자로 등기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신혼집을 보러 다니면서 반포동 보다 더 살고 싶은 동네가 이촌동이었다. 주변에 혼자서도 잘 사는 돈 많은 언니들이 있었기에 대놓고 물어봤다. 돈 어떻게 벌었냐고. 솔직하게 말해줬고, 그들이 돈을 불린 방법은 수익 파이프 다각화, 장기투자, 재테크, 해외투자 등  다양했지만, 애초에 사업으로 버는 돈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사업을 해야 부자가 되는구나 싶었다.

 

"배추야, 너도 인스타 공구나 뭐라도 팔아봐 넌 할 수 있을 거 같아, 팔로워도 많고 일단 글을 잘 쓰잖아"

 

마케터이자 세일즈 담당자로였기 때문에 인플루언서가 공구 세계를 꽤 알고 있다. 진짜 다이어트 보조제, 효소, 마스크팩 등을 공구해볼까 싶었다. 근데 자신이 없었다. 그게 정말 좋은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세일즈 마케팅을 하면서 깨달은 매출 대박의 핵심은 '파는 사람이 진짜로 이 제품을 좋다고 생각해야 소비자도 믿고 산다는 것'이다. 월 매출 1억 메가 인플루언서와 일하면서 느낀 건, 남들이 팔이 피플이니 사기꾼이라고 하든, 이들은 적어도 자기 자신은 판매 제품을 좋다고 생각하고, 팬들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는 거였다. 근데 난 원래 물건 소비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내 이름 걸고 팔고 싶은 물건이 없었다.

 

팔 만한 게 하나도 없는 현실이 싫었다. 8년 동안 제품과 브랜드의 상세페이지를 쓰고, 광고 전단지를 만들면서 글만 써온 경력이 무쓸모라 한탄스러웠다. 그러다, 글은 왜 못 팔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오랫동안 글쟁이로 살아오면서 '글은 안돼'라는 가스라이팅을 회사생활의 기본 BGM처럼 듣고 살았다. 기자일 때는 '신문을 아무도 읽지 않아'라는 자조, 마케터일 때는 '누가 글을 읽어, 요즘은 영상의 시대'라는 무시, 취미로 책 읽고 쓸 때 마저 '점점 사람들이 책을 지 않아'라는 출판사 친구의 절규를 들었다. 사실이었다. 별 내용 없는 릴스 10초짜리는 1분 만에 2만 명이 보지만, 하루 종일 열심히 쓴 글은 1시간 동안 스무 명만 읽는다. 회사 블로그나 UX writing이 매출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수치로 증명하려고 했지만, 마케팅은 세일즈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고정관념을 깨긴 어려웠고 어느 정도 나도 수긍을 해버렸다.

 

근데 그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건,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역으로 증명해 줬다. 사람들은 여전히 글 때문에 사고, 글을 읽으며, 영상과 다른 매력을 느낀다. 나아가 글만이 팔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지난 11월 친구와 한 러닝 크루에서 비몽사몽 거리고 있는데 누가 쫓아와서 "배추도사님 아니세요?"라며, "저 덕분에 생리하는데도 포기 안 하고 풀마라톤 완주했어요"라고 말했다. 벌써 수십 명째다. 글이 '용기'나 '도전'을 팔 수 있구나. 난 효소나 두유 같은 건 잘 팔 자신이 없다. 그런데 멍청해도 나를 지키는 방법,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할 때 그래도 나는 해볼래 라면서 해보는 바보같은 용기, 못하는 주제에 그래도 재밌게 내 방식대로 성실하게 제멋대로 계속 하는 것. 이런 나의 주특기는 잘 팔 수 있다. 그걸 담은 글은 유일하게 내 이름 걸고 자신 있게 팔 수 있는 하나이자 전부이니깐. 그래서 팔이 피플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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