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턴가 연습 게임에서는 계속 이기는데, 본게임에서는 계속 지는 거 같았다. 마라톤을 7번 완주했고 건강한 삼십 대를 보내는데도 말이다. 마라톤의 재미는 나이키나 아디다스의 광고 모델인 조코비치나 마이클 조던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마라토너는 적어도 100일 전부터 마라톤 당일 피니시 라인에 다다를 때까지 성장과 자극, 한계를 뛰어넘는 드라마 한 편을 쓴다. 'just do it', impossible is nothing'은 이제 마케팅 문구가 아닌 내 이야기다. 거리를 가득 채운 시민들이 외치는 'you got this(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을 5시간 내내 듣고 나면 우린 다른 사람이 된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도 그저 하면 뭐든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생각은 20시간도 되지 않아 식는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 어제 주로에서 찍힌 사진을 보니 마음이 끓어오른다. 그리고 곧장 현실로 돌아온다. 어제의 나는 한계를 뛰어넘고, 불가능에 도전하고, 또 거리 모르는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응원을 받으며 인류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하지만 오늘 책상 앞에 나는, 늘 하던 만큼만, 하던 대로만 하기 위해 도전은 피한다. 맡은 업무양은 케파(Capacity)를 넘었다. 그래도 나는 마라토너니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겠다가 아니라, 졸라 욕을 해댔다. 이 일이 적성에 안 맞다며, 지긋지긋해서 못해먹겠다고, 그래서 커리어 방향을 바꿔보려고 했고, 더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해외 MBA도 준비했으나 돈과 시간만 날렸다. 뭐 딱히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럼 조건이라도 낮춰서 해보고 싶은 일에 부딪혀 보던가. 근데 연봉은 깎기 싫고, 체면도 중요하고, 아 어쩌란 말이냐. 인생은 마라톤이라는데 아닌 거 같아도 그냥 하는 걸 비유한 걸까. 고작 20시간 전, 한계에 도전하고, 자신을 믿고, 고통 끌어안으며 나아가는 사람은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 텅 빈 눈깔로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직장인, 힘들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던 마라토너,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그래서 마라톤 완주도 회차를 더할수록 감동이 적어졌다.
나는 마라토너이기 이전에 일하는 사람이다. 내 꿈은 운동 인플루언서이거나, 마라토너가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여전히 내 꿈은 커리어우먼이다. 영어로 멋지게 의사소통하면서 섹시한 기획을 만들고, 어마어마한 매출을 만들어내는 일. 그래서 내일에 자부심을 갖는 사람. 주말에는 인터뷰나 소설을 쓰는 작가. 근데 이뤄내기 어려웠다. 시도한다고,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러닝을 했다. 처음에는 운동으로 쌓인 체력이 업무에 시너지를 냈다. 야근에 끄떡없는 체력, 강한 정신력, 빠른 회복탄력성. 하지만 언제부턴가 주객이 전도 됐다. 대리를 넘어 시니어 레벨로 가면서 더 큰 숲을 보며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일,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은 어려웠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러닝과 달리, 프로젝트는 열심히 해도 제자리걸음이거나, 나 때문에 일이 엉키는 거 같을 때가 종종 있었다. 러닝은 다 뛰면 건강한 느낌과 성취감이 즉각적으로 느껴졌지만 프로젝트는 끝나면 그냥 늙어있었다. 잘하라고 응원받거나 열심히했다고 칭찬받는 건 사원 때나 있는 일이었다. 러닝처럼 도약하고, 앞을 나아가고 싶은데, 가고 싶은 회사는 떨어지고, 사업하긴 무섭고 제자리걸음만 몇 년째 하는 직장인 자아를 마주 하기 싫었다. 그래서 러닝으로 도피했다.
첫 달리기 대회에서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장면은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뛰는 모습이었다. 앞이 안 보이는데 뛴다니. 달리기란 앞을 보며 두발을 내딛는 거 아닌가. 앞을 못 보는데 점자 보도블록도 없는 주로에서 어떻게 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갇힌 생각을 비웃듯 그들은 아주 잘 뛴다. 내가 아는 러닝의 정의가 러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뛰고자 하는 인간은 그 어떤 한계가 있어도 달린다는 것. 첫 대회에서 러닝이 알려준 이 가르침에 매료돼 그렇게 수십 번의 대회, 수백 번 한강을 뛰고 어엿한 마라토너가 됐다. 하지만 긴 시간, 불안하고 헤매는 직장인이었고, 점차 마라톤에도 심드렁 해졌다. 친구들은 서브 3을 하겠다며 한 달에 300km를 뛰고 훈련 세션을 등록하며 바쁜데 나는 좀처럼 내키지가 않았다. 본능적으로 러닝에 매몰비용을 쏟는 건 그만하고, 일상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던가, 일이 싫으면 커리어를 바꾸던가 말이다. 승부를 볼 수 있는 젊은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고 몰아세웠다. 그렇게 러닝도 좀 설렁설렁했다.
그래서 결국 잘 살았냐고? 영어공부를 하고, 새로운 업무를 배워서 도전해 봤냐고? 못했지. 관성은 참 무섭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제품 상세페이지를 쓰고, 여전히 알쏭달쏭한 업무 요청에 어기적 어기적 맞춰 일했다. 매일 트루먼쇼의 짐캐리처럼 살았다. 다시 관성적으로 뛰고 시드니 마라톤도 나갔다. 뛰는 내내 정말 이런저런 핑계로 본게임은 계속 미뤄두고, 이제는 해외에서 러닝에 돈과 시간을 허비하는 걸로 확장하는구나 싶어 한심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뛰는 데 25km 지점, 저 멀리서 응원단과 선수들 모두가 큰 응원함성을 외치는 게 들렸다. 그 응원은 다리가 하나밖에 없어 목발을 짚으면서 뛰는 한 러너를 향했다. 응원단은 물론이고 수많은 러너들이 "졸라 멋있어", "네가 우리 모두의 영감이다"를 외쳤다.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여름, 달리기를 미루고 투덜거리면서 뛰었는데, 저 사람은 어떤 여름을 보냈을까. 도대체 달린다는 건 뭘까. 시력을 잃고도 다리를 하나 잃고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달리다'는 단어의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나는 이 숭고한 행위에 핑계와 나태, 권태의 뜻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카카오페이, 신용카드로 간편결제를 지원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른수
콘텐츠를 열람하신 후 읽을 수 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지은
콘텐츠를 열람하신 후 읽을 수 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