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사는 동네가 드라마 혹은 영화 화면에 나온 적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현주입니다.
구독자 님, 영화 호프 보셨나요? 원래라면 저는 안 봤을 거 같은 영화인데요. 민음사의 김민경 편집자님이 내면의 광기가 있는 사람은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에 저의 광기를 확인하고 싶어서 보고 왔습니다. 저의 광기는 모르겠지만(감독의 광기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름 재미있게 보고 왔습니다.
영화 호프의 배경은 휴전선 비무장지대 인근의 호포항이라는 항구 마을입니다. 실제로 전남 해남의 마을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작은 마을에서 생기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장면들이 인상적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 초반부의 총격 장면입니다.

영화 초반부 총격 장면은 호포항 마을에서 일어나는데요. 배경이 정말... 정말 시골이거든요? 영화 속에서 지금 저 총 쏘고 있는 황정민만 없으면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집의 풍경과 다를 것 없는 장면인데, 이게 영화 속 배경이라는 것이 저에겐 너무 짜릿했습니다.

경남 진주시 진성면의 어느 시골 동네 풍경입니다. 저에게 매우 익숙한 이런 시골 풍경 속에서 영화 주인공이 뛰어다니고 있는 장면이 영화 스크린에서 펼쳐지는데, 그게 정말 신기하고 짜릿했어요.
왜 그렇게 짜릿했나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린 시절엔 세상이 본인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이 TV방송이라고 다를 건 없었죠. 경상도 진주에 살던 어린이의 지도엔 경상남도 수목원과 부산아쿠아리움만이 존재했었습니다. 드라마를 좋아하고, 드라마 배경 유심히 보던 어린이에게 드라마에 나오는 수목원은 집 근처 경상남도수목원이었고, 아쿠아리움은 부산의 아쿠아리움이었어요.
그런데! 세상이 그렇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던 수목원은 경기도 가평의 수목원이었고, 서울의 아쿠아리움이었던 것이었죠. 드라마에 나오는 지역의 모습은 사극의 멋진 풍경 정도로만 종종 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늘 보고, 놀러 가는 공간이 방송 화면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뜻입니다. 제가 애정하는 지역의 모습을 TV 드라마나 영화 화면에서 쉽게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영화 최대 제작비라는 500억 대작의 배경이 너무나 한국 시골이라는 것이 제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이었어요. 서울도, 부산도 아닌 해남군이라는 것이요.
아래 기사에서 해남 촬영 현장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기사) 황정민이 총 쏘던 그 골목…영화 ‘호프’ 촬영지 해남 남창리 가보니

사실 이런 마음은 누구나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2017년에 할리우드의 마블 영화 블랙팬서가 부산에서 촬영했을 때, 이런 합성사진이 있을 정도로 마블 영화 촬영 소식에 신기해했던 당시 분위기가 생각납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한국에서 촬영하다니! 너무 신기해! 마블 영화에 부산 자갈치시장이 나오다니!
그런 마음이 이번 호프를 보면서 있었달까요.
이렇게 세트장이 아닌 야외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 걸 '로케이션'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로케이션과 관련하여 늘 등장하는 곳이 있습니다.
미디어에 나타나는 지역의 모습과 방식
지역이 영화와 드라마 같은 미디어에 나온다는 건 단순히 ‘우리 동네가 나왔다!’는 반가움에서 끝나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가보지 않은 지역을 종종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먼저 만나기도 하니까요. 어떤 지역이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지가 그곳에 대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줍니다.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장면이 부산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로맨스 영화를 보고 영화의 배경인 군산 초원사진관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지역이 화면에 나타나는가’만큼 ‘어떻게 묘사되는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호프>가 특히 재미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익숙한 시골 풍경을 익숙한 방식으로 보여주지 않았거든요. 정겨운 고향이나 한적한 여행지로서의 시골이 아니라, 크리처물의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늘 보던 산과 들, 작은 마을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순간 그 풍경을 바라보는 감각도 조금 달라집니다.
어쩌면 지역에서 영화가 촬영된다는 것의 재미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장소를 화면에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장소에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입히는 것.
지역에서 촬영된 다양한 영화, 드라마 등의 영상물을 기다리며, 다음에는 어떤 익숙한 풍경이 얼마나 낯선 세계가 되어 돌아올지 기대해봅니다.
오늘의 로컬 TMI
9.21(월)~22(화) 2일간 코엑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사회적가치페스타에 로컬데이즈가 참가합니다.
협력존 부스애서 소피님과 제가 있을 예정입니다.
지역에서의 삶이 궁금한 분, 지역의 이야기가 궁금한 분, 어떤 이유로든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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