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Meet The Artist #1 - 모스크바서핑클럽

모스크바서핑클럽을 만나다.

2023.03.12 | 조회 1.8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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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EH

음악/공연 문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는 BOKEH입니다.

Meet The Artist #1 - 모스크바서핑클럽

<Meet The Artist>는 BOKEH의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작자들을 만나, 작품에 대한 생각과 함께 창작에 대한 깊고 넓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서핑클럽을 만나기 전에.

'정교한 수공예품 같은 음악'

인터뷰를 준비하는 BOKEH의 회의록에 누군가 남긴 모스크바서핑클럽에 대한 감상이었다. 이 표현처럼,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음악에는 수많은 디테일들이 숨어 있다. 서울시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모스크바서핑클럽을 만나, 밴드의 섬세한 공예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속에 담긴 고민들, 그리고 밴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글/인터뷰: 상욱

좌측부터 김규리(키보드), 정기훈(보컬/기타), 명진우(베이스), 정현진(드럼).
좌측부터 김규리(키보드), 정기훈(보컬/기타), 명진우(베이스), 정현진(드럼).

-2022년 11월, 밴드들의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EBS 헬로루키에서의 여정을 마무리 지었다. 올해의 헬로루키에 선정되며 결선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이뤄내었는데, 치열한 경연을 거쳐온 밴드의 소감,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변화가 궁금하다.

기훈: 제일 많이 신경 썼던 것은 클럽 공연이 아니다 보니 ‘마이크를 타고 수음이 돼서 객석으로 전해질 때, 어떻게 해야 그것이 괜찮은 소리로 전달 될 것인가’ 였다. 

진우: 원래 합주 녹음을 잘 안하는 편인데, 자기의 플레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합주를 녹음하고 같이 들어보고 피드백을 하는 과정을 많이 거쳤다.

-헬로루키는 주목을 많이 받는 방송 무대인 만큼 부담이 컸을 것 같다.

현진: 헬로루키는 '우리의 무대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굉장히 열심히 했다.

규리: 단계를 하나하나 올라 갈 때마다 팬 분들이 많이 보러 와 주셔서, 우리가 되게 큰 응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헬로루키를 통해 알게 되었다. 밴드 내부에서도 이제까지 만들어진 곡들도 다시 편곡한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다시 틀을 잡고 손을 보며 실력이 크게 성장했다고 느꼈다.

진우: 헬로루키나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등 여러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점점 관심을 받고 있구나라는 걸 새삼 느꼈다. 의외의 곳에서 알아 봐주시는 분들도 계시기도 해서, 앞으로 밴드를 하는 자세를 고치고 사람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기훈: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어졌다?

진우: 그렇지.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음악에서는 정교한 디테일들이 드러나는 순간이 많다. 특히 곡의 타악 리듬이 전개되는 방식과 기타의 왼손 플레이에서 그런 부분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제프 벡, 스티비 레이 본처럼 고전적이고 정교한 음악이 연상되는 세밀한 구성들이 많이 느껴진다. 이런 ‘의도’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현진 : 리듬 파트 같은 부분은, 처음에는 ‘다채롭게 스케치를 하면 좋겠다'는 방향으로 접근을 했다가 최근에는 다른 파트에 어떻게 하면 더 잘 융화가 될지 고민했다. 다른 악기들의 선율에 포인트가 되는 요소들을 넣을 수 있을지 생각을 많이 했다.

진우: 곡을 잼으로 만들다 보니, 한 파트와 다른 파트 사이에 중간 다리가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그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니 세밀한 디테일들이 추가 된 것 같다. 이 과정에서 화성학적인 면은 기훈이 많이 담당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잘 풀리지 않는 부분들은 리듬으로 해결해야 할 때도 있어서 디테일들이 여러 번 추가되었다. 특히 헬로루키는 경연의 특성 상 곡의 길이가 정해져 있는데, 모스크바서핑클럽에는 긴 곡들이 많다. 그 곡들을 길이에 맞게 줄이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빼고 어떤 부분을 붙여야 말이 될지 고민하며 더 많은 디테일들이 붙었다.

규리: 아무래도 멤버들이 원래 해오던 음악들이 있어 컨셉을 확실히 정하고 음악을 만든다기 보다는 대부분 본인들의 취향을 음악에 많이 녹여내고 있다. 질문에서 언급된 디테일들 같은 경우에도 각 멤버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한 곡에 여러 색채를 넣다 보니 다양한 레퍼런스들이 느껴지는 듯 하다.

진우: 절대 미니멀리스트는 못 되는 밴드(웃음).

기훈: 그렇다. 그래서 좀 미니멀 해져야 하지 않나라는 고민을 요새 하고 있다.

2-3년 전의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그때는 흔히 ‘스파이시' 하다고 말하는 화성 진행들을 좋아했다. 좀 맵게 들리는 것들. 여기서 '맵다'라는 것은 귀에 편안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뭔가 귀에 걸리는데 이게 왜 말이 되지? 하는 포인트들을 되게 좋아한다. 화성학적으로 똑같은 메이저 코드를 사용하더라도 아이오니안(이오니안) 스케일처럼 들리게 할 건지, 리디안 스케일처럼 들리게 할 건지, 혹은 이게 첫 번째 메이저 코드인지 네 번째 메이저 코드인지, 알고 보니 둘 다 아니라 5도였던지. 이렇게 귀를 헷갈리게 하는 연출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 계산들을 거쳐 곡의 다음 전개를 특별하게 들리게 만들 수 있다.

내가 기타를 칠 때 많이 들었던 남미 음악의 영향도 크다. 영미권 음악은 확실히 메이저, 마이너, 3도 중심의 음악인데 남미 음악에는 9도와 6도가 늘 들어있다. 이렇게 되면 스케일에 연연하지 않게 연주해도 코드 진행이 다 예쁘게 들린다. 또 나인(nine) 코드가 플레이에 들어가면 연주자의 자유도가 올라가기도 하고. 그러나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멤버들과 같이 의논하고, 악보로 다듬고, 이런 다양한 과정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직 조금 긴가민가한 마음이다. 더 맥시멀 하게 가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니멀 해지고 싶기도 하고. 맥시멀하게 늘어놓는 음악에서의 자유도와 미니멀하게 정리한 음악에서의 완성도가 있을 때 그 두 개의 비율을 섞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런 계산들을 거쳐 곡의 다음 전개를 특별하게 들리게 만들 수 있다"

-곡을 만들때 특별히 주도하는 사람이 있는지, 토론을 거친다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밴드 내부의 과정이 궁금하다.

기훈: 곡의 모티브를 가져오는 사람은 매번 다르다. 그런데 이 모티브를 누가 던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전부 주도를 하는 건 아니다. 기타 혼자 칠 때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는데, 베이스가 들어오자 괜찮아져 “그거 다시 해봐” 이럴 때도 있고, 뭔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아무것도 약속 안하고 진행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연주가 끝나고 나서 “너 방금 코드 뭐로 생각하고 쳤어?”라고 물어보며 접근을 한다. 그러다 보면 서로 배우는 게 많다. 다듬는 작업은 그 다음에 이뤄지는 것 같다. 완전 프리재즈 연주자들처럼 즉흥 연주를 하려면 일단 본인이 활용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야 하고, 뭘 듣는 순간 ‘저건 어떤 요소니까 내가 이런 부분을 붙여야지.’ 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채야 한다. 그러기에는 아직 수련이 부족한 느낌이라서, 작곡에서 좀 다듬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규리: 조금 덧붙이자면, 리더인 만큼 기훈이 주도적으로 음악적 아이디어나 코드 해석을 수합해가며 진행한다. 그렇다고 혼자서 다 짜서 이것대로 해! 이렇게 명령을 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이런 걸 치면 이제 너는 이런 것을 몇 마디씩 치고 이렇게 넘어가자, 여기서 누구한테 파트를 좀 더 주자, 좀 서로의 의견들을 적절히 잘 배치를 해서 어떻게 하면 한 곡처럼 들리고 좋게 들릴 수 있는지를 고려한다.

-밴드로서는 흔치 않게 민주적인 방식이다(웃음).

진우: 4명 중 3명이 다 완성이 됐다고 생각한 곡들도 마지막에 가서 한 명이 안 된다, 한 번 엎자, 라고 주장해 거의 구성부터 다 바꾼 적도 몇 번 있고...나름 모두의 의견이 잘 반영되는 것 같다.

기훈: 그런데 녹음을 거치며 밴드의 성질이 요즘 좀 바뀌고 있다. 합주실에서 생기는 자유도와 스튜디오에서 생기는 자유도의 성격이 다르다. 1집 '저공비행'을 녹음할 때는 아까 언급했던 멤버들의 다양한 디테일들이 확실히 많이 드러났는데, 그 뒤에 나온 <월야열차>, <안나 오>, 또 다음 달(1월)에 나올 신곡 같은 경우에서는 합주 때 나온 어지러운 요소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곡이 완성되지 않는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이전과 다르게 곡의 구조만 확실히 하고, 아쉬운 부분들은 스튜디오에서 사운드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오히려 다양한 연출을 하려면 좀 덜어내야 하는 부분도 생기더라. 구성을 깨끗하게 잡는 게 낫다던가 디테일이 너무 많으면 안 되는 상황도 있고. 그러다 보니 직접 프로듀싱까지 하는 입장에서는 그 밸런스를 어떻게 잡을지가 근래 제일 큰 고민이다. 1집 같은 작업을 할지, 아니면 좀 더 싱글스러운 작업으로 '완성도'를 높일지.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디테일하고 정교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종종 커버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런데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음악은 앞서 말한 피드백들을 거쳐 나와서 그런지, 한 가지 악기만 커버한다고 곡의 느낌을 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완전히 '밴드 음악'이다.

기훈: 사실 누가 우리 음악을 커버해줬으면 하는 욕심은 전혀 없었다. 근데 한 분이 하시더라. 서강대 밴드부 분들이 <Magarine>을 커버해주셨는데, 기분이 좋긴 했다(웃음).

진우: 사실 상상도 못해봤다.

기훈: '누군가 우리의 음악을 듣고 있다' 까지는 그래도 종종 상상을 했었는데, 커버를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일단 내게 그런 영향력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안 했었고, 커버를 하기 좋게, 캐치하게 만들려고 했을 때 버려야 되는 것들이 조금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지미 헨드릭스, 존 프루시안테, 크림 시절의 에릭 클랩튼, 믹 론슨처럼 더 혼탁한 연주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음악을 누가 커버한다는 생각을 못해본 것 같다. 에릭 클랩튼은 카피해도 크림을 카피하는 일은 드물지 않나(웃음).

-작곡 과정의 이야기들을 들어봤으니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믹싱의 과정도 들어보고 싶다. 모스크바서핑클럽이 가진 정교한 연주와 곡의 구성이 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해지는데 있어 보컬을 비롯한 모든 악기가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밴드의 의도가 뚜렷한 믹싱도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직접 믹싱을 하는 밴드로서, 자체적으로 세운 믹싱의 원칙, 혹은 철학이 알고 싶다.

기훈: 솔직히 1집 믹싱을 할 때는 그냥 돈이 없었다. 돈은 없는데, 주변에 프로듀서인 친구들이 있고, 그냥 컴퓨터에 사둔 로직도 깔려 있고, 플러그인은 몇 개 있고, 그래서 그냥 직접 했다. 그런 상황인지라 그때는 철학까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그냥 유튜브로 있는 대로 배워서 다 써먹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근데 무의식 중에 그런 감은 좀 있었다. 반주가 저 뒤에 있고, 보컬이 이만큼 앞에 있는, 어딘가에서 우리가 썼던 비유인데 ‘코가 너무 큰’ 믹싱은 안하려고 했다. 믹싱을 통해 전체적인 합이 더 드러나게 의도했던 것 같다.

한편, 믹싱을 할 때 프로듀서 여러명에게 맡기기도 했는데 너무 안전한 믹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나치게 안정적인 믹싱이고 군더더기가 없다. 근데 나는 여기서는 좀 찌르고, 어디서 좀 불편하고, 이런 것을 하고 싶었다.

<아무 날의 도시>를 믹싱할 때, 신디사이저 소리가 좌우로 왔다갔다하게 돌리고 싶은데 멤버 중 한 명이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라고 묻길래 "그냥 해"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좌우 밸런스, RMS 맞추고, 이런 것에 대해서 별 생각을 안 했다. 그랬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작업이었던 것 같다. 2집을 어떻게 할 지는 아직 고민중이다.

"좀 찌르고, 어디서 좀 불편하고, 이런 걸 하고 싶었다"

규리: 보통 기훈이 기본적인 믹싱은 하고 우리에게 들려주면서 의견을 묻는다. 다들 듣기에 괜찮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고, 여기가 너무 크다, 너무 작다, 마음에 안 든다 하면 다시 수정하고, 피드백하고, 이런 과정이 있었다. 나는 합주할 때 내가 생각한 그 소리대로 나왔으면 했던 것 같다. 내가 합주할 때 떠올린 그 음악이 맞는지 생각하면서 피드백을 했다.

진우: 나는 믹싱을 잘 몰라서(웃음), 청자의 입장에서 피드백을 하고 있다.

기훈: 내가 잘났다, 이런 말은 아니지만(웃음), 믹싱이나 화성학처럼 머리를 쓰는 작업은 거의 내가 하고 있다. 나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프로듀서들이 작업 과정에서 제일 많이 빠지는 함정이 ‘내가 이렇게까지 했어, 내가 이 플러그인을 이렇게 써봤어.’ 인 것 같다. 문제는 그게 사실 음악적으로 내용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는 음악은 청자들이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멤버들에게 들려주고 난 뒤 수정을 하며 다시 고민에 빠진다. "피드백 한 부분은 알겠는데, 그걸 어떻게 구현하지?" 하면서. 지금처럼 서로 피드백 하는 시스템은 괜찮은 것 같다. 그리고 이게 우리의 제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지불하면 더 좋은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피드백을 무한히 할 수가 없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우리는 나만 착취 당하면 되니까(웃음) 무한대로 피드백을 받는다.

-믹싱 과정에서 선택하는 주된 레퍼런스가 궁금하다.

진우: 언니네 이발관,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기훈: 언니네 이발관 이야기 많이 했지.

규리: 정확히는 '언니네 이발관'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기 보다는, 기훈의 집에서 믹싱을 주로 했는데 거기 있는 CD들 중에 참고 해볼 만 하다 싶은 음반을 꺼내 들으며 우리와 결이 비슷한 음악들을 찾게 되었다. .

기훈: 그 당시에 작업 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안 좋았는데, 스피커도 별로고, 방음도 안 됐다. 하지만 CD플레이어가 있었고, 그게 꽤 큰 장점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좋은 스피커로 작업을 하고 있지만, CD로는 들리던 소리가 MP3의 음질로는 안 들리는 일이 너무 많았다. 또, MP3를 레퍼런스로 잡고 믹싱을 하니까 막상 결과물이 나왔을 때 원하는 방향이 아닐 때도 많았고. 작업실에 CD 플레이어가 지금은 없는데, 하루 빨리 다시 구매해야 할 것 같다(웃음).

제일 큰 문제는 RMS였다. 볼륨이 디지털 피크와 아날로그 피크가 다르다. 옛날 녹음실에서는 디지털 피크에 걸리는 것을 감안을 하고 볼륨을 잡았고, 어느정도 헤드룸이 확보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헤드룸을 확보하지 않고 볼륨을 크게 키워, 무작위로 재생 되었을 때 사람들의 귀에 박히고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한 방식이 트렌드가 되어 있다. 그걸 db 전쟁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 트렌드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믹싱이 새소년의 믹싱이였다. 새소년의 믹싱은 정말 많이 눌려 있고, 그런 동시에 터지는 사운드가 들리고. 이어폰으로 들었을 때 귀에서 때리는 것 같은 소리가 하나의 쾌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듣고 자란, 익숙한 90년대 음악의 방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옛날의 기준에만 맞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집 <저공비행>을 믹싱 할 때, 그 두 가지 방식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래서 아마 굉장히 타이트하게 믹싱하는 다른 팀들에 비하면 모스크바서핑클럽의 볼륨이 좀 작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1집은 그렇게 나와야만 했던 작업이라고 생각을 한다. 헤드룸이 없었다면 1집에서 지금같은 다이나믹을 구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1집은 그렇게 나와야만 했던 작업이라고 생각을 한다"

-에어팟 시대 속 아날로그 인간의 고충처럼 들린다.

기훈: 실제로 프로들이 마지막 모니터 기준을 에어팟으로 잡는다. 그러다 보니까 스피커로 들었을 때는 이게 뭐지 싶은 작업도 있고. 중요도를 어디 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영화 <이반의 어린시절>에서 따 온 샘플링, 안나 오처럼 곡의 모티브가 된 인물까지, 음악을 구성하는 다양한 외부적 요소들이 눈에 띈다. 그런 부분들은 청자로 하여금 독특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음악을 만든 멤버들이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음악을 만들거나 들으며, 혹은 연주하며 느끼는 심상이 궁금하다.

기훈: 최근에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의 음악을 비주얼라이징 하는 작업에 대해서 요즘 고민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선뜻 뭔가 할 말이 없더라. 요약하기가 너무 어렵다. 요즘에는 규리가 이 문제에 대해 애를 많이 쓰고 있다. 글쎄, 1집 위주로 말하자면 다 타고난 잿더미 속에서 반짝 보이는 불씨를 보는 기분이 드는 것 같다.

- 실제로 1집 <저공비행>이 '소련'스러운 분위기가 있다. 춥고 황량하지만, 구시대의 가치와 낭만이 남아있는.

기훈: 그렇다. 그 음반에는 시니컬하고 내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세상을 믿어보려고 애쓰는, 그러니까 정말 고슴도치 같은 감수성이 있다.

규리: 1집에서 곡을 배치할 때 순서를 고민하면서 '시간'을 떠올렸다. <저공비행>에서 전체적으로 가출한 소년, 소녀가 세상을 경험하고 마지막에는 허무하지만 뭔가 다시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을 암시하면서 끝나는 느낌을 떠올렸다. 그래서 오후부터 시작해서 쭉 이어지다가 <Magarine>에서 한 번 뒤틀리고, <모든 밤은 사라지고>부터 새벽으로 이어지는 느낌으로. <Period>에서는 다시 해가 떠오르고, <여백>에서는 오전 9시, 10시를 표현하는 식으로. 나는 시간의 흐름이라고 생각을 하고 배치를 하자는 의견을 냈다. 나는 성장영화를 좋아한다. 엄청 낭만적이지는 않은 그런 청춘영화들. 예를 들면, <보이후드>나 <졸업> 같은 작품들. 그래서 그런 느낌으로 어떠한 인물이 밤을 새우면서 느끼는 배경 변화나 심경변화, 이런 것을 생각을 했다.

진우: 이미지를 가장 강하게 가지고 있는 곡들이 몇 개 있다. 일단 <Magarine>. 우리가 <Magarine>이라는 제목을 정할때 촉감을 생각했다. 뭔가 좀 느끼하면서도 어딘가 상해 있고, 끈적거리고. 그래서 그런 이미지를 여러가지 연상하던 중 마가린이 떠올랐다. <Through her>에 대한 이미지도 강하게 가지고 있는데, 이 곡은 파트별로 느낌이 확 달라지는 곡이다. 처음에는 평화로운 해변가 같은 느낌이다가 갑자기 서늘해지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밴드가 요즘 밀고 있는 캐치 프레이즈인 '바다 수영을 마친 후 바다에서 나올 때 느껴지는 서늘함'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 아닌가 싶다.

-1집 이후로 공연과 방송 출연도 많았지만, 싱글도 꾸준히 발표했다. 곡에 많은 공을 들이는 만큼 긴 시간을 만드는 앨범과 한 곡으로 승부를 보는 싱글에는 기획과 제작 과정에서 차이가 있을 듯 한데, 그 차이를 듣고 싶다.

기훈: 아직 앨범을 한 번 밖에 안 내봐서 경험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웃음), 1집 앨범중에 이게 싱글이였으면 세상에 나왔을까 싶은 곡들이 좀 있다. 싱글로 발매할지, 앨범으로 묶어서 낼지 얘기를 많이 해봤는데, 그때 내가 이건 앨범으로 내야 된다라고 우겼다. 멤버들에게 반복적으로 얘기했던 것이 “40-50분짜리 좋은 시간을 만드는게 우리 목표야” 라는 말이었다. 어떤 곡들은 다소 지루할 수도 있지만, 긴 구성일수록 오히려 지루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 앨범 단위는 그런 곡을 수록하는 점에서 자유도도 높고 책임감도 커야 되는 것 같다. 나의 편견인지 모르겠는데, 싱글은 사람들이 자꾸 클릭을 해서 들어보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한 앨범을 칭찬할 때 '이 앨범은 10곡 다 싱글로 채워져 있다'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규리: 사실은 1집을 정규로 시작하게 된 것도 곡이 많이 쌓여있던 게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곡은 많은데, 이것들을 싱글로 내면서 전략적으로 먼저 관심을 끌고, 정규로 내고, 이러한 생각을 잘 안했다. 쌓여있는 곡이 많으면 앨범으로 내고, 하나씩 나오면 싱글로 내고. 이런 식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진우: 2집에 있어 고민이 되는 점이, 이미 쌓여 있는 곡들도 많고 반쯤 작업한 곡들도 많다. 이것들을 스토리를 잘 짜서 잘 기획된 하나의 앨범으로 만들지, 쌓여있는 것들을 하나씩 싱글로 발매할지 고민중이다. 다 아끼는 곡들이라 어떻게든 전부 내보내고 싶기는 한데, 아직 어떠한 방향으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다.

-Period’에서 <그리움은 미처 다하지 못한 일에 대한 부채야> 같은 극적 표현, ‘Magarine’에서 곡의 구성과 전개가 마치 영화의 테마곡처럼 느껴졌다. 모스크바서핑클럽이 직접 영화를 찍고, 정규 앨범인 <저공비행>이 그 사운드트랙이라면, 어떤 장르의 영화가 가장 음악의 향취를 강하게 전달 할 수 있을지, 멤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기훈: <Period>의 가사를 쓸 때 극적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다. 대학교 전공이 문학이기도 하고, 내 인생에서 음악만큼 비중을 차지하는게 문학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언어의 힘을 믿고, 그게 전달이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또 너무 비틀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언어 중에서도 용감한 언어가 있고, 비겁하게 자꾸 숨는 언어가 있다. "네가 싫어!" 라고 한 마디 하면 될 것은 서너 줄 긴 문장으로 빙빙 돌려 말하는 것 같은 언어. <Period>의 가사는 후자에 가까운 언어였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시적으로 쓰려고 했다는 점과 세상에 지리멸렬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또 삐딱한 유쾌함이 있다는 점에서 짐 자무쉬(Jim Jarmusch)영화에 붙으면 어떨까 싶긴 하다.

규리: 우리가 다들 좀 옛날 속에 살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현 세대의 청춘이 엄청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나이대에서 올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그로부터 비롯된 자연스러운 가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래도 아까 언급한 <보이후드> 같은 성장 영화들이 떠오르는 것 같다.

진우: 우리 앨범의 시니컬한 부분을 블랙 코미디에 비유하자면, 굉장히 좋아하는 감독인 마틴 맥도나(Martin Mcdonagh)의 영화가 떠오른다. <모든 밤은 사라지고>에서 기타 솔로가 나올 때 주인공이 허무하게 카메라를 쳐다본다거나. 그런 극적인 장면에서 오히려 정적인 화면을 연출하는 그런 요소들이 연상된다. 그리고 좀 아이러니함도 갖추고 있는 영화면 우리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기훈: 중요한 단어가 나온 것 같다. 장르를 불문하고, 내게 예술은 아이러니가 제일 중요하다. 목적이 너무 선명하다거나, 빨리 소비되거나, 한 손에 확 잡히는 것은 재미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렇기 때문에 아이러니를 가져가려는 게 제일 큰 것 같다. 특히 형식과 내용의 밸런스를 맞출 때 그런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규리: 영화 중에서도 치밀하게 구조가 짜여 있어서 관객들을 놀라게 하고 이러한 영화들이 있지 않나. 그런데 우리가 생각했을 때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음악은 어떻게 보면 좀 변태 같은, 그런 영화는 아닌 것 같다. 내겐 아까 말한 <보이후드>처럼 한 사람의 인생에서 무분별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이 모인 성장 영화처럼 느껴진다. 한 가지에 대해서 깊게 들여다보지만 거기에 항상 맥락이 통일 되지는 않는, 하지만 희미하게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맥락이 통일 되지는 않는, 하지만 희미하게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느낌"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차후 계획과 목표, 그리고 밴드를 이루는 멤버들의 개인적인 계획과 목표가 궁금하다.

기훈: 일단 음악적으로는 좋은 2집을 내는 게 가장 큰 목표다. 근데 좋은 2집이라는 말에 내포된 것이 너무 많다. 믹싱도 더 잘하고 싶고, 작곡도 더 잘하고 싶고, 리듬과 베이스에 대한 이해도 더 깊게 하고 싶고, 노래도 잘하고 싶고, 가사도 더 잘 쓰고 싶다. 이러한 것들이 다 포함된 내용이다 보니까 사실 좀 무겁게 다가온다. 내게 2022년은 보컬리스트 정기훈을 발견한 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음악에 본인이 만족해하며 노래 불러줄 보컬을 구할 수 없어서 그냥 내가 해버리자고 마음을 먹고 시작한 게 내 보컬이다. 그래서 보컬리스트로서의 에고가 없었다. 그냥 지미 헨드릭스처럼 툭툭 던지듯이, 그 정도만 부르면 만족한다고 생각 했었는데, 다양한 매체를 통해 라이브가 업로드 되면서 목소리가 나왔을 때 너무 수치스럽더라(웃음). 그래서 그 계단을 넘는 것을 헬로루키에서의 숙제로 삼았다. 나름대로 성과를 좀 느끼기도 했고, 이것을 2023년에는 더 잘 다듬어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규리: 헬로루키에서 상을 타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가장 성과라고 생각되는 건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밴드에서 보컬이 노래를 꼭 잘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하지만, 그래도 잘하면 좀 더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2023년에는 아까 기훈이 말했듯이 좋은 음반을 내고 싶고, 올해는 공연이랑 퍼포먼스에 더 집중을 했다면 내년에는 음원이랑 음반에 집중을 하고 싶다. 그리고 첫 단독 공연을 하지 않을까?

밴드 내부적으로는, 밴드들이 가장 많이 해체하는 시기가 3년차라고 들었다. 우리도 지금까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가 최근에 싸울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모스크바서핑클럽이 성장하고 기회가 찾아올 수록 그걸 통해 얻고 싶은 바가 때론 우리 안에서도 다르다는 걸 확인했다. 그런 목적들이 조금 갈리는 시기인 것 같다. 새해에는 멤버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통일된 목표를 가지면 좋겠다. 그간 비주얼 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못 썼는데 이러한 부분들도 신경 쓰고 싶다. 다른 장르랑도 협업을 할 기회도 있다면 좋겠다. 비주얼적인 부분 일 수도 있고, 영상일 수도 있고. 좀 더 전문적인 느낌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 싶다.

진우: 2023년에는 꼭 페스티벌 무대에 한 번 쯤은 서보고 싶다. 여러 관계자분들, 인터뷰를 보고 계시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웃음).

-마지막으로, 음악과 별개로 개인적인 바람이나 목표가 있다면?

규리: 이것도 약간 음악이랑 관련된 이야기지만, 사실 이제까지는 이 밴드를 같이 하는 멤버들이고 같이 만들어 나가는 일원이라는 생각은 있어도 한 번도 스스로가 아티스트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물론 이런 생각들이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전문적으로 나아갈 수록 예술가적인 자아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해에 이런 것들에 집중 하면서 개인 작업실도 제대로 만들고 싶고, 연습도 좀 더 잘 하고 싶다. 개인적인 것으로는 복학을 해야 하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밴드를 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계획적으로 시간을 잘 써보고 싶은 마음이다.

진우: 내년에 촬영을 많이 할 것 같아서 살을 좀 빼려 한다(웃음). 학업과 밴드의 밸런스를 잘 찾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둘 다 잘 해내고 싶다.

기훈: 음악은 음악만 듣고 만들어지진 않는다. 원래 책 보는 것도 좋아하고, 영화보는 것도 좋아하고, 인간관계에서 드는 여러 감정들도 좋아하고, 수준 높은 디제이가 있는 곳에서 클러빙 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동안 삶에 다양한 레이어가 있었는데, 2021년부턴 낮에는 일하고 퇴근하면 음악을 만드느라 매일 새벽에 자는데도 늘 시간이 모자라더라. 그런 삶을 1년 반 정도 살다 보니 인생에 내용이 없어진 느낌이다. 삶에 다양한 레이어가 있어야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도 그런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 핑크 플로이드는 미술학도였다든지, 지미 페이지는 지질학자가 꿈이었던지. 풍부한 삶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내년에 퇴직을 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제 삶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기를(웃음)

현진: 첫 번째로는,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마음의 양식을 다뤄보는 일들을 많이 해야하지 않나 싶다. 음악 생활을 하면서 고민이나 역경 같은 것이 있을 때 혼자 이겨내보려고 노력하곤 했다. 혼자서 하늘에 기도를 할 만큼. 이것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정량적인 부분에서는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삶에 다양한 레이어가 있어야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 같다"

 

BOKEH가 추천하는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음악:

상욱: Through Her(저공비행, 2021)

슬: 모든 밤은 사라지고(저공비행, 2021)

야키: 꿈이라면 좋을까(꿈이라면 좋을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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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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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계

    1
    about 1 year 전

    좋은 질문과 알찬 답변 잘 읽었습니다! 멤버분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알게돼서 좋았어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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