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EH's Playlist #2
잔인한 4월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 곳곳에서 꽃이 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때, BOKEH는 이번 주의 플레이리스트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상처와 상실을 선택했다. 수없이 많은 상처와 상실을 겪고, 삼키고, 흘려보내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마음을 담아 두 에디터가 선정한 곡들을 소개한다.
글: 슬, 상욱
슬 에디터의 플레이리스트
Dawn chorus - Thom Yorke(2019)
1985년 결성된 얼터너티브 락 밴드 Radiohead의 보컬 톰 요크의 개인 프로젝트 <Anima>에 수록된 곡이다.
잔잔한 트랙 위에 ‘Back up the cul-de-sac’ 이라는 문장을 읊으며 시작되는 이 곡은 가사 전반에 걸쳐 답답한 현실과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의 다짐에 대해 이야기 한다.
누구에게나 막다른 길이 있다. 불안과 막연함에 지쳐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립된 것만 같을때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곡이다.
라원의 상실 - 다브다
2010년의 결성된 ‘파스텔 사이키델릭’ 밴드.
무소속 프로젝트 2017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라원의 상실>은 ‘한 번 이라도 내가 울지 않으려면 얼마나 많은 이유가 필요한가요’ 라는 문장을 기점으로 서서히 쌓이다가 슬픔을 토해내듯 몰아친다.
가사에도 나와 있듯이, 의미 없이 웃어버리면 나아지는 순간들이 있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을 숨기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곡이다.
연애 - 버둥(2021)
2018년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2021년에 나온 첫 번째 정규 앨범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에 수록된 타이틀 <연애>는 제목 그대로 연애의 이면에 대해 말한다.
사랑은 때로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록 후회만 남을지라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말자.
상욱 에디터의 플레이리스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 김일두(2013)
곱고 맑은 영혼을 캐치프레이즈로 활동하고 있는 부산의 싱어송라이터 김일두. 2018년에 해산한 펑크 밴드 지니어스의 리더로 활동하기도 했다.
'내 마음'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정말로 '내' 마음대로 되는 '내 마음'이 몇 이나 있는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더더욱 그러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나의 몫이 아니었다고 깨닫는 이 곡에서 말하듯이, 붙잡는다고 붙잡아지지 않는 마음을 품는 건 '눈물과 눈물 다시 눈물 뿐인' 일이다.
いきのこり ぼくら (살아남은 우리들) - 아오바 이치코
2023년 3월 5번째 주의 음악들.
2010년 <剃刀乙女(면도날 소녀)> 로 데뷔한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16년도에 이어 작년 12월, 두 번째 내한 공연이 성사되었다.
어떤 종류의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길 기다리고 견뎌내는 방법 밖에 선택지가 없다. 특히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고통이 그러한 성질을 띈다.
삶은 불행과 행복이 중첩되어 관찰되는 상태로 지겹도록 이어진다.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때때로 찾아오는 슬픔이 괴롭겠지만, 그 격통 같은 마음에 찔리고 또 찔리다 보면 점차 날이 무뎌지며 익숙해진다. 살아남은 이들이 정말 '살아남을' 방법은 그 뿐이다. 아오바 이치코의 음악처럼 맑고 투명한 동시에 슬픈 방법이다.
Disco 2000 - Pulp
Pulp는 90년대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이며, '전지전능한 신처럼 구는게 싫다'는 이유로 마이클 잭슨의 무대에서 난동을 피운 보컬 자비스 코커가 있는 밴드다.
<Disco 2000>은 개인적이고, 구질구질하고, 안쓰럽고, 어처구니 없을 만큼 구차하다. 그래도 솔직하다. 어떤 상처는 솔직함을 통해 치유된다.
물론 수많은 음악들이 장르와 주제를 막론하고 솔직함을 표방하며 눈살만 찌푸려지는 말을 눈살이 찌푸려지는 음악을 통해 늘어놓지만, <Disco 2000>에서 Pulp는 기가 찰 소리를 기가 차게 좋은 음악으로 털어놓아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난 여전히 어린 시절의 목요일 속에서 축축하고 외롭게 살고 있다고 고백하며, 결혼한 소꿉친구에게 일요일에 만나면 어떠냐고, 만날 때 너의 아이를 데려와도 좋다고 말하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은 아니다. 좋은 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해, 못난 솔직함도 고백이 되고 위로가 된다. 의도를 뒷받침할 수단을 찾는 일은, 분야를 막론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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