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던 사람이 병원을 퇴원하면 입원 치료는 끝난다. 하지만 퇴원은 당사자에게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 병원을 나선 뒤에는 다시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고, 식사를 하고, 병원에 가고,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찾아야 한다. 치료를 받는 공간이 병원에서 지역사회로 바뀌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주거가 안정되지 않았거나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받지 못한다면 퇴원 이후의 생활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신질환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에서의 치료만일까.
길어지는 입원, 반복되는 재입원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신장애인 인권보고서(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신 및 행동장애 환자의 평균 재원기간은 2018년 기준 176.4일이었다. OECD 27개국 평균인 30.6일과 비교하면 약 6배에 달하는 기간이다. 또한 퇴원 후 30일 이내 재입원율은 한국이 27.4%로 OECD 평균 12.0%보다 높았다.[1]
이 통계만으로 재입원의 원인을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질환의 상태, 사회적 지지, 주거 환경, 퇴원 후 치료 연계 여부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 입원과 높은 재입원율은 입원 치료가 끝난 뒤에도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지원체계가 충분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와 사회권을 강화하고, 탈원화를 통해 지역사회 중심의 정신건강복지체계를 구축할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퇴원 자체가 아니라, 퇴원 이후에도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인가이다.[2]
퇴원 후, 필요한 것은 ‘집’ 하나만이 아니다
정신질환 당사자가 퇴원 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주거가 중요한 기반이 된다. 그러나 주거만 마련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퇴원 이후에도 정신건강 관리가 필요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이때 필요한 서비스를 당사자나 가족이 각각 찾아야 한다면 지원을 받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주거와 의료, 건강관리, 복지서비스 등이 서로 연결되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 지역사회 통합돌봄인데, 보건복지부는 이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의료·요양·돌봄서비스를 통합하고 연계해 제공하는 제도[3]라고 설명한다. 보건복지부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통합돌봄 서비스로 병원 기반 사례관리,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건강관리, 주거지원서비스, 주간재활시설, 동료지원서비스 등을 제시하고 있다.[4] 다만 이러한 서비스가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자원과 당사자의 욕구에 따라 지원 내용과 연계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정신건강 통합돌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서비스를 새롭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당사자에게 필요한 여러 서비스가 필요한 시점에 연결되고, 그 연결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주거지원
지역사회에서는 정신질환 당사자의 주거와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독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지원주택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의 지원주택은 주거공간과 주거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방식으로, 독립생활을 원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5] 서울시 지원주택은 정신질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아니다. 그러나 주거와 생활 지원을 함께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신건강 통합돌봄에서 주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주거지원은 단순히 거주할 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안정적인 주거를 기반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하고,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정신건강 분야에서도 주거지원과 사례관리, 의료·건강관리 등을 연계하는 방식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수행한 「정신건강 주거지원 시범사업 모니터링 연구」는 정신건강 주거지원 시범사업의 목적과 사업 내용, 전달체계의 역할, 참여지역의 지역자원 등을 분석하고 주거지원사업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6]
이러한 사업과 연구는 정신건강 주거지원이 주택 공급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거를 중심으로 의료와 복지, 건강관리 서비스가 함께 연결되어야 한다.
‘돌봄’은 누군가 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이나 가족만의 책임으로 바라보면 퇴원 이후의 돌봄 부담이 가족에게 집중될 수 있다. 반대로 병원이나 시설에만 의존한다면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기회가 제한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지역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선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주거를 마련하고, 필요한 서비스가 적절한 시점에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사와 욕구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주거가 필요한지, 어떤 치료와 서비스를 원하는지, 어느 정도의 지원이 필요한지를 당사자와 함께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대상자의 욕구를 확인하고 개인별 지원계획을 수립한 뒤,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후의 상황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통합돌봄은 특정 기관 하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의 여러 자원이 역할을 나누는 체계에 가깝다.
의료기관은 치료와 의학적 관리를 담당하고,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상담과 사례관리, 지역사회 연계를 지원할 수 있다. 복지기관은 주거와 경제적 지원, 일상생활 지원을 연결할 수 있으며, 동료지원가는 자신의 회복 경험을 바탕으로 당사자의 지역사회 적응을 도울 수 있다. 각 기관의 역할은 다르지만, 서로 소통하고 협력할 때 당사자에게 필요한 지원이 끊기지 않을 수 있다. 정신건강 통합돌봄은 이처럼 한 사람이나 한 기관이 돌봄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역할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신질환 당사자에게 병원은 필요한 치료의 공간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해서 당사자의 삶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퇴원은 다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출발점에서 필요한 것은 주거 하나만도, 의료서비스 하나만도 아니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지원이 필요한 시점에 연결되고, 그 지원이 끊기지 않는 환경이다.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배려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집을 구하고, 병원에 가고,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며 자신의 일상을 이어가는 평범한 삶의 한 모습이다. 지역사회 차원의 정신건강 통합돌봄도 결국 여기에서 시작할 수 있다. 퇴원한 당사자가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혼자 고민하게 하는 대신, 지역사회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병원 문을 나선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병원에서의 치료만이 아니라, 퇴원 이후에도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가 아닐까.
참 고 문 헌
국가인권위원회. (2021). 정신장애인 인권보고서(2021).
보건복지부. (2019, 6월 2일). 6월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이 시작됩니다.
https://www.mohw.go.kr/board.es?mid=a10503010100&bid=0027&act=view&list_no=349637
보건복지부. (2026). 통합돌봄 한눈에 보기.
https://www.mohw.go.kr/menu.es?mid=a60100000000
서울특별시. (2019, 12월 2일). 장애인 32명 10~30년 시설 생활 벗어나 독립…서울시 '지원주택' 첫 입주.
https://news.seoul.go.kr/welfare/archives/511527
조윤화 외. (2025). 정신건강 주거지원 시범사업 모니터링 연구. 한국장애인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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