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2주간 건강하고 평안하셨나요?
지난 레터에서는 인생 계획을 그려보니 크게 비어있는 부분을 깨달았고, 그걸 채우고 싶어서 이직을 결심했다는 얘기를 했었죠. 이번에는 제가 다음 회사를 어떻게 탐색하여 XL8로 이직 결정을 했는지 공유해보겠습니다.
저는 어떤 회사가 다닐 만한 곳인지 알아보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해당 회사에 재직중인 분과 직접 만나서 정보를 얻는 것이라고 봅니다. 개발자가 귀한 시대니만큼, 이직 고려 중이라고 말 꺼내면서 만나자고 하면 거절할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는 판단도 했고요. 하지만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고 해서 그냥 만나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죠. 저의 시간과 지인의 시간 모두 소중하니까 만났을 때 이야기 나눌 주제에 관련된 질문을 미리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질문 만들기
질문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삼았습니다.
-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지, 그래서 나는 회사에 어떤 것을 원하는지 적절히 드러낸다. 나를 이런 생각과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해서 나에 대한 매력을 높인다.
- 회사, 팀, 제품이 매력적이며 내 인생의 일부를 투자할 만한 곳인지 판단할 재료로 삼는다.
여러 지인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꾸준히 질문 템플릿을 업데이트했고, 이는 제가 XL8로 이직한 뒤에도 계속됐습니다. 2022년 상반기 개인 목표 중 하나로 ‘XL8에 성공적으로 온보딩한다’를 잡아서, 그 일환으로 ‘회사, 팀, 제품을 이해하기’ 문서를 만들어 채워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래 보여드릴 템플릿은 제가 실제로 질문했던 내용과는 꽤 다르지만 ‘언젠가 다시 이직한다면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로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질문 만들 때 참고했던 글들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내 인생 계획에서 생각했던 조건들을 얼마나 충족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
지난 레터에서도 말씀드렸던,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들을 만족하는지 확인하는 건 필수라고 생각했습니다.
- 머신을 학습시키기에 충분한 데이터를 직접 가지고 있거나, 가져올 수단이 있다.
- 인공지능 기반 제품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어서 제품 개발에 참여하기만 해도 이쪽 생태계의 트렌드를 알 수 있으며, 이 도메인 기술을 전혀 모르는 나 같은 개발자에게라도 인공지능 학습과 역량 향상의 기회가 열려있다.
- 나의 현재 스킬셋(웹 프론트엔드 제품 개발, 개발자 코칭/매니징)을 이 회사가 필요로 하고, 내가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가 있다.
-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주고, 그에 대한 반응을 내가 직접 볼 수 있고, 그를 통해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 또한 제품의 성장 포텐셜이 커서, 내 기여분도 꽤 커질 수 있는 시장이어야 한다.
여기서 1번과 2번은 다른 미래 혁신 기술(기후변화 → 에너지/농업, 인구변화 → 교육/실버, 로봇, 자율주행, VR, 블록체인..) 도메인의 키워드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제가 이직을 결심한 이유도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동경 따위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안 되니 미래를 변화시키는 기술 근처로 가야겠다’는 이유였으니까요.
회사, 팀, 제품이 매력적이며 내 인생의 일부를 투자할 만한 곳인지 판단하기 위한 질문
회사를 이해하기
- 회사의 비전이 무엇인가? 그것이 회사의 창업자에게 왜 중요한가?
- 회사가 추구하는 핵심가치가 무엇인가? 그 가치가 회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활동 및 의사결정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최근의 사례를 들어줄 수 있는가?
- 회사의 조직 구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조직간에는 어떤 도구와 프로세스를 통해 협업하는가? 대표와 각 조직장들이 서로의 생각을 동기화하고, 의사결정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회사 입장에서 지난 1년간 집중한 내외부적 아젠다는 무엇이었고, 그 성과는 어떠했는가? 지난 1년간의 계획 실행에서 얻은 주요한 교훈은 무엇이었나? 현재, 그리고 앞으로 1년간은 무엇에 집중하고자 하는가?
개발팀을 이해하기
- CTO가 생각하는 ‘탁월한 개발팀'의 정의와 기준이 무엇인가? 개발팀이 더 탁월해지기 위해, 예를 들어 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가?
- 개발팀이 목표를 잡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프로세스가 어떻게 되는가? 어떤 프로젝트를 띄우거나 종료할 때 어떤 기준을 따르는가?
- 개발팀에 엔지니어 커리어 래더가 있는가? 구성원의 역량과 성과는 어떻게 측정, 평가, 피드백하는가?
- 구성원의 역량 및 커리어 성장을 어떻게 지원하는가? 새로운 구성원은 어떻게 온보딩하는가?
- 개발팀 입장에서 지난 1년간 풀기 위해 집중했던 문제는 무엇이었고, 그 성과는 어떠했는가? 지난 1년간의 계획 실행에서 얻은 주요한 교훈은 무엇이었나? 현재, 그리고 앞으로 1년간은 무엇에 집중하고자 하는가?
제품을 이해하기
- 회사의 주요 제품은 어떤 고객의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것인가? 그 문제가 그 고객에게 왜 중요한가?
- 회사의 제품이 경쟁 제품보다 그 문제를 푸는 데에 어떤 강점을 지녔는가? 그 강점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 회사의 제품은 시장에서 현재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더 성장할 계획인가?
- 내외부 고객으로부터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언제, 어떤 형태로, 얼마나 자주 받는가? 그 피드백이 개발팀에 전달되고, 적용되고, 다시 고객에게 전달되는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는가?
- 제품의 대표적인 성공 지표가 무엇인가? 북극성 지표가 있다면, 그 지표에 영향을 주는 주요한 요인은 무엇인가? 그 요인을 측정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 제품을 운영하면서 큰 장애가 발생했던 적이 있었나? 당시에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고, 이후 비슷한 문제를 겪지 않기 위해 어떤 개선이 있었는가?
회사를 인터뷰하기
질문을 어느정도 만든 뒤 페이스북과 링크드인을 통해 제가 인터뷰할 만한 대상을 물색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졌던 회사에 재직중인 분을 찾기도 했고, 강한 친분이 있어서 진실을 잘 얘기해줄만한 분을 찾기도 했죠. 연락을 취하기 전에는 검색 등을 통해 사전에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미리 수집했습니다. 대략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렇게 2021년 10월부터 두 달에 걸쳐 총 8개 회사를 인터뷰했습니다. 종류는 일부러 다양하게 잡아봤습니다. 국내 대기업, 글로벌 대기업, 글로벌 스타트업, AI 회사, 교육 회사, 블록체인 회사 등. 대부분은 정식으로 시간을 잡아서 미팅을 했지만 그냥 식사 자리에서 대화한 곳도 있습니다.
인터뷰 다니면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좋은 질문을 하면 좋은 답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은 인터뷰가 많았습니다. 회사의 민감한 정보가 있어서 질문에 답하기가 어렵거나, 답하는 분이 개발팀 소속이 아니었거나, 답하는 분도 이직한지 얼마 안 됐거나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저 자신도 효과적인 인터뷰 스킬을 익히지 않았던 상태라서 어느새 삼천포로 빠져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제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좋은 질문을 하는 것보다는 좋은 정보를 수집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좋은 질문을 한들 상대방이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제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좋은 정보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상당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원래는 ‘회사가 자랑할 만한 개발 문화가 있다면?’ 이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몇 번 질문을 해보니 이건 상대방이 ‘그럴듯한 거짓 정보'를 말하기 아주 쉬운 녀석이더군요. 그 회사에서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려면 경험을 이끌어내고, 기억해내도록 도와줘야 했죠. 이런 식으로 배워가며 질문이 점점 구체화되고 업그레이드됐습니다.
확실하게 알게 된 또다른 사실은, ‘조직 내에서 내가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는가'가 제게 아주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기업보다는 소규모 스타트업의 프론트엔드 리드 자리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대기업을 가더라도, 또는 프론트엔드 리드가 아니더라도 어떤 자리에서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여기긴 하지만, 여러가지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될텐데 조금이라도 더 영향력을 발휘하기 쉬운 환경이어야 에너지를 아낄 테니까요.
원래는 최소 10개 회사를 인터뷰할 계획이었고, 인터뷰할 대상이 부족하면 HR팀에 콜드 메일을 보내거나 지인의 지인을 소개받으려는 생각도 했었는데... 예상보다 인터뷰 다니는 게 너무 에너지가 많이 들더군요. 몸도 피곤했지만, 당시 다니고 있던 직장에 제 마음을 숨긴 채 행동해야 하는 게 더 괴롭게 느껴졌습니다. 회사 인터뷰하고 다음날 다시 직장에 가서 2022년을 계획하는 스스로가 위선자처럼 여겨졌어요. 이 과정을 더 길게 끄는 게 무리겠다고 판단해서 8개에서 멈췄죠. 어쨌든 두 달동안 저 스스로에 대해서도 더 많이 이해하게 됐고, 인터뷰 스킬도 발전시켰으며, 의사결정하기에 충분한 정보도 얻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분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면접, 그리고 이직
XL8은 탐색 기간의 거의 마지막에 인터뷰했습니다. 그래서 더 적절하게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XL8은 제가 인생 계획을 이루기 위해 중요하게 여겼던 여러 조건에 놀랍도록 잘 부합하는 회사였습니다. 매출이 이미 나오고 있는 확실한 인공지능 제품과 충분한 학습 데이터를 지녔고, 프론트엔드 리드를 필요로 하는 초기 스타트업이었고,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사람들이 잃고 있는 기회를 되찾아준다'는 비전도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인공지능 회사보다는 여기서 면접을 봐야겠다고 결정을 내렸죠.
그러나 한 군데만 면접을 보는 건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다른 기술 도메인도 의미있지 않을까 해서 블록체인 스타트업 한 군데와도 거의 동시에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두 회사 모두 며칠 정도 걸리는 채용 프로젝트를 요구했고, 두 회사 모두 본사가 미국에 있던 터라 아침 일찍 인터뷰 시간을 잡았습니다. 제가 회사를 인터뷰하던 기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에너지 소진이 크더군요. 그래도 면접 기간동안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해보고, 회사와 팀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도록 계속 노력했습니다. 제가 처음 인터뷰했던 대상과 관점이 좀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한 군데 더 비교를 해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블록체인보다는 제가 인공지능 도메인이 더 끌린다는 게 명확해졌습니다. 양쪽 다 의미있는 비전을 제시했지만, 블록체인 회사는 규모도 좀 더 크고 프론트엔드 리드 자리로는 갈 수 없다는 점도 하나의 의사결정 근거였고요. 그래서 최종적으로 XL8을 선택했으나, 탐색과 면접 과정에서 블록체인 시장과 의미에 대해 조금이라도 눈이 떠진 것은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블록체인 회사의 분들께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XL8의 오퍼 수락으로 이직 과정이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회사를 인터뷰할 기회를 주신 여러 지인들에게 제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말씀드리며 인사를 드렸죠. 그리고 당시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도 굉장히 많은 분들과도 인사했습니다. (뉴스레터 2호에서도 꺼냈던 얘기지만) 저는 동료의 퇴사 소식을 전체 공지로 고작 퇴사 며칠 전에 알게 되는 게 무척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랑 조금이라도 유의미한 협업을 하셨던 분들께는 한분한분 DM 또는 구두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것 또한 무척 힘이 들었지만 덕분에 좋은 마무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흘러 XL8에 정식으로 합류했고, 이직 1개월 회고를 남겼고, 이제는 정신없이 다음 목표를 향해 달리는 중입니다. 초반에는 적응하기 바빴다면 요즘은 제가 시도해보지 않았던 여러 기술적 챌린지에 부딛혀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내가 영향력을 충분히 펼칠 만한 회사인가’와 별개로, ‘내 역량이 영향력을 펼치기에 충분한가'도 중요한데 아직까지는 좀 부끄럽네요. 그래도 도전할 만한 즐거운 어려움이라서 만족하며, 이제는 저와 함께 협업할 동료를 또다시 열심히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레터부터는 채용 프로세스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이전 직장들과 현 직장에서 느낀 교훈들의 액기스를 정리하여 공유해볼 계획입니다.
요약
이직 후보 회사의 정보를 얻기 위해 지인들과 만남을 가질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의 매력도 드러내고, 회사의 정보도 제대로 얻고 싶어서 만났을 때 할 만한 질문들을 미리 만들어서 지인에게 드렸죠. 8개 회사를 인터뷰하면서 많은 정보를 얻었고 저 자신의 인터뷰 역량도 많이 늘었습니다.
인공지능 도메인과 블록체인 도메인에서 회사 한군데씩을 골라서 면접을 봤고, 그러면서 제가 인공지능 도메인에 끌린다는 게 더 확실해졌습니다. 또한 XL8은 프론트엔드 리드로서 제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걸 포함하여 여러가지 조건에 잘 부합하는 회사였기에 마음을 굳혔습니다. 오퍼 수락 후 인터뷰에 응해주신 지인들과 이전 직장의 동료들에게 인사를 남기고 대화하는 것으로 이직 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이직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이벤트고 에너지도 무척 많이 들어가는 이벤트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어떻게 그렇게 행동했을까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였죠. 저는 이런 에너지가 이직 초기까지는 잘 유지되지만 이것저것 부딛히면서 점차 사그라들더군요. 그래서 ‘내가 왜 이직을 하려고 했고, 그 목적에 점차 다가가고 있는가?’ 를 주기적으로 회고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Q. 구독자님이 현재 몸담고 있는 곳을 선택함으로써 얻고자 하신 바는 무엇이었나요? 다른 선택지보다 그곳에서 구독자님의 목표를 더 잘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어떻게 얻으셨나요?
Q. 그 직장에서 구독자님이 목표한 바를 이루셨거나, 이루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충분히 만족스럽게 목표에 가까워지지 못했다면, 현재 상황을 바꾸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해볼 수 있을까요? 과거에 이렇게 해보니 목표에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었다, 같은 기억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참고: Change Your Organization)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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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크의눈물
얼마전 이직해서 그런지 더 와 닿는 글이네요. 이 글에 제 경험과 생각도 덧붙이고 싶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삶의 밀도를 높이는 여정 (340)
감사합니다! 유산균님의 글 쓰시면 꼭 알려주세요 :)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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