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당신은 인생 계획에서 빈 부분을 어떻게 채우시나요?

적당히 큰 그림과 마일스톤을 그려두고, 사이사이를 유연하게 채워나가는 게 계획성과 즉흥성의 이점 모두를 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2022.04.05 | 조회 2.3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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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밀도를 높이는 여정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더 가치있게 써봅시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2주간 건강하고 평안하셨나요? 유감스럽게도 저는 가족 모두가 코로나에 걸려 격리상태에서 골골댔던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레터를 발송하는 시점에는 격리가 해제됐지만 참 답답하고 힘들었네요.

지난 레터에서는 학습, 집중, 휴식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로써 제 삶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만든 프레임워크를 큰 그림에서 공유하고자 했던 첫 번째 시리즈가 끝났습니다. 이번 레터부터는 그 프레임워크의 부분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겠습니다.

두 번째 레터에서 저에게 가치있는 선택지를 쉽게 발견하는 핵심이 ‘좋은 커뮤니티에 속하는 것’이라고 했었죠. 직장은 제게 가장 중요한 커뮤니티 중 하나이며, 좋은 직장에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삶의 밀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시리즈는 이직과 채용에 대해 다룹니다. 지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경험에 과학적 연구결과와 논리가 몇 스푼 섞인 형태의 글이 될 예정입니다.

이번 레터는 제가 왜 이직을 결심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생 계획을 그려보니 크게 비어있는 부분을 깨달았고, 그걸 채우고 싶었습니다.

 

10년 전 그린 30년 계획

작년 여름, 제가 한국신용데이터에서 프론트엔드 팀 리드 역할을 맡아 열심히 사람을 구해 팀 빌딩을 하고 있었던 시기에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그로부터 몇개월 전 한국신용데이터에서 (현재 제가 다니고 있는) XL8로 이직하신 분의 연락이었죠. XL8이 인공지능 번역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라고 소개하시며,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이직을 고려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당시 프론트엔드 팀을 키워나가는 데 큰 재미를 느끼고 있었던 터라 거절했지만 왠지 마음속에 회사 이름이 남았습니다. 이직에 대한 생각도 점차 맴돌기 시작했고요.

그리고 9월 초 제 생일을 앞두고 가족여행을 떠났는데 아내가 (자산 측면에서) "생애설계연표 작성을 해보자"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아내가 구독하는 한 유튜버가, '10억 모으기'를 목표로 신혼 때 연표를 작성했다는 겁니다. 저는 '우리 인생에 얼마나 돈이 필요할까를 계획하려면, 먼저 우리가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제대로 설계해봐야겠다' 라는 말을 아내에게 했고, 불현듯 10년 전이 떠올랐습니다.

 

10년 전 생각한 30년 뒤의 나

저는 10여년 전 학생 시절에 KLC라는 창업동아리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동아리의 주요 활동 중 하나가 ‘미래공유'라는 이름으로 인생 30년 계획 템플릿을 채우고, 발표하고, 서로 피드백하는 것이었어요(이 템플릿으로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도 본인 계획을 세워서 서로 공유도 했었죠). 템플릿을 채우는 방식은 대략 이랬습니다.

  1. 내 인생의 비전과 모토를 정의합니다.
  2. 그를 토대로 30년 뒤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적습니다.
  3. 30년 목표에 가까워지려면 15년 뒤에는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적어보고, 다시 그를 토대로 10년 뒤를 적어보고, 3~5년 뒤, 그리고 1년 뒤까지 적어봅니다.
  4. 마지막으로 앞으로 한두달동안 어떤 노력을 해야 '1년 뒤의 나'에 가까워질지 적습니다.
  5. 현재에서 미래로 이동하면서 디테일을 더 채웁니다. '이 때'의 활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저 때'의 나와 연결될 수 있을지.

위는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미래공유 문서의 스크린샷입니다. 이 때부터 제 인생 목표는 "내가 있음으로 해서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음을 스스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였습니다. 어찌보면 거창하고, 어찌보면 소소했지만 이런 모습의 저를 상상할 때 행복감을 느꼈죠.

10년간의 나

다시 2021년 9월의 저로 돌아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대학원 다니다가 자퇴 후 창업하고, 친구들과 모바일 게임도 하나 만들어서 출시하고, 스타트업 몇 개를 거치며 꽤 열심히 살았습니다. 만 34세가 되었고, 결혼해서 귀여운 딸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괜찮은 회사에서 연봉 많이 받고 인정받으며 직장생활 하고 있습니다. 10년만에 이전의 인생 계획을 떠올리며 자문합니다. 이제 이걸로 충분한가?

지난 10년간,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크게 변했지만 큰 줄기는 항상 "내가 있음으로 해서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음을 스스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에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개 현재에 충실했을 뿐, 인생 목표를 이루고 그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구체적, 의식적인 노력은 별로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인생 계획도 이 때 세워두고 끝이었을 뿐 주기적으로 돌아보질 않았죠.

계기는 여행 중 아내의 한마디였지만, 어쨌든 34세 생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인생 설계를 하면서 움직일 때가 왔다고 느꼈습니다.

 

다시 그린 인생 계획

20년 뒤의 나

2012년에 세웠던 계획처럼, 만 55세가 되는 2042년을 기준으로 나는 뭘 하며 살고 있을지 상상해봤습니다.

1) 현업에서는 은퇴합니다. 주로 하는 일은 글 쓰고 사람 만나서 대화하는 것.

  • 자녀가 커가는 걸 지켜보고, 최대한 경청하며 꿈을 지원합니다.
  • 자서전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 나 또는 내 주변 사람들이 실현하고 싶은 아이디어를 함께 논의하거나, 때론 직접 개발합니다.
  • 괜찮아 보이는 스타트업이 더 잘 성장할 수 있게 코칭해줍니다.

2) 돈은 상당히 많습니다. 구체적으로는,

  • 시간을 절약해 나와 가족들이 더 유의미한 일을 할 수 있다면 돈을 아끼지 않을 수 있는 수준. 안드로이드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집안일하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인다거나, 5레벨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서 이동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거나.
  • 신체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돈을 아끼지 않을 수 있는 수준. 매일 집에서 요가/필라테스를 배운다거나, 마사지를 받는다거나.
  •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취미활동에 돈을 아끼지 않을 수 있는 수준. 보드게임, 즉흥연기, 피아노 등.
  • 괜찮아 보이는 스타트업에 개인적으로 엔젤투자를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수준. 특히 유아~초등교육 분야.

즉 은퇴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도, 인생 목표인 "세상에 유의미한 임팩트 남기기"는 지속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과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삶입니다. 제가 첫번째 레터에서 적었던 ‘가치있는 삶’과 유사한 면이 있죠.

중간이 비었다

그런데 이렇게 최종 목표를 써놓고 미래공유때 했던 것처럼 중간을 채우려니 ‘어떻게 그 상태가 될 수 있을까'를 적어보는 게 굉장히 어렵더군요. 결국 몇 년 뒤의 미래를 어느정도 예측해야 하는데, 제가 미래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서 뭘 상상하든 터무니없이 틀릴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세상을 바꾸고 있거나, 근미래에 크게 세상을 바꿀 만한 기술과 환경적 변수가 대강만 늘어놔도 이렇게나 많습니다.

  •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기후 변화
  • 끝없이 낮아지는 한국의 출산율, 급변하는 인구 구조
  • AI와 로봇으로 효율화되고 대체될 수많은 직업들
  • 드론과 자율주행 차량이 바꿀 물류 시장
  • VR과 AR이 바꿀 게임과 쇼핑 시장
  • 블록체인이 바꿀 금융 시장
  • 메타버스로 대체될지도 모르는 인터넷

작년 9월의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이야 짧은 백엔드 개발 경험과 웹개발 경험, 프로덕 엔지니어로서 이 회사(한국신용데이터)에서 쌓아올린 신뢰를 조합하여 프론트엔드 팀 리드 하면서 높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이러한 변수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로 5년이 지났다면 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 답은 ‘아니다'였습니다. 게다가 제가 20년 뒤에 은퇴해서 누리고 싶은 삶을 위해서는, 특히 스타트업에 개인 투자를 할 수준이려면 단순히 근로소득 모으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 역량으로 꽤 큰 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해보니, 최소 한 번쯤은 비교적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IPO 또는 그에 준하는 엑싯까지 함께 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이상을 종합해볼때, ‘앞으로 5년 정도는 진지하게 미래를 바꾸는 기술을 익히고, 그러한 기술과 더불어 지금 가지고 있는 개발 역량과 관리 역량을 발휘하여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몇 년간 함께 성장시킨다’가 저와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이상적인 계획이겠다고 생각했죠. 이게 대략 6개월 전이었습니다.

 

이직을 생각하다

저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이라는 엘런 케이의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미래를 내 손으로 발명하는 것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미래를 바꾸는 분야(위에서 언급한 변수들과 관련된 기술을 사용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소위 ‘미래혁신기술' 중 제가 가장 접근하기 쉽고, 가장 현실화된, 그리고 다른 혁신들의 밑바탕이 될 기술은 AI라고도 생각했죠. 어쩌면 XL8이 무의식에 남아있었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당시 다니던 한국신용데이터에서는 인공지능 또는 미래혁신기술과 관련된 경험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다음 직장을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회사를 찾고 싶었습니다.

  1. 머신을 학습시키기에 충분한 데이터를 직접 가지고 있거나, 가져올 수단이 있다.
  2. AI 기반 프로덕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어서, 프로덕 개발에 참여하기만 해도 이쪽 생태계의 트렌드를 알 수 있으며, 이 도메인 기술을 전혀 모르는 나 같은 개발자에게라도 AI 학습과 역량 향상의 기회가 열려있다.
  3. 나의 현재 스킬셋(웹 프론트엔드 프로덕 엔지니어링, 엔지니어 코칭/매니징)을 이 회사가 필요로 한다. 적어도 내 높아진 연봉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는.
  4.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주고, 그에 대한 반응을 내가 직접 볼 수 있고, 그를 통해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프로덕을 만든다. 그러면서도 프로덕의 성장 포텐셜이 커서, 내 기여분도 꽤 클 수 있는 시장이어야 한다.

다만 '미래를 바꾸고 있는 기술'을 아주 심도있게 파고들어서, (예를 들어) AI 엔지니어로 전직하는 걸 고려하진 않았습니다. 저의 주요한 무기는 여전히 웹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링과 팀 매니징/코칭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얻고, 제 핵심역량이 더 많은 곳에서 더 잘 활용될 수 있게 하는, 그래서 제가 세상에 더 큰 임팩트를 줄 수 있게 돕는 도구로서 이러한 기술을 익히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뒤 9월부터 위 기준을 만족하는 회사를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탐색했는지부터는 다음 레터에서 공유해볼게요.

 

요약

아내가 ‘우리 인생에 돈이 얼마나 필요할지 설계해보자'는 말을 꺼냈고, 저는 그러러면 인생 설계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0년 전에 세웠던 30년 계획을 돌아보고, 다시 20년 뒤의 제 삶을 그려보았습니다.

20년 뒤를 그려보니 최종 목표만 있고 중간과정이 너무 모호했습니다. 세상을 바꿀 기술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그러한 기술 중에서도 인공지능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했고요. 당시 회사가 제 목표를 충족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러한 인공지능 기술을 다루고 익힐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하여 미래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이번 레터는 개인적인 얘기가 많았습니다. 첫 레터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저에게는 어떤 일을 왜 하는지 정리하고 시작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두번째 시리즈도 이렇게 시작하게 됐네요.

XL8은 제 네번째 직장입니다. 첫 두 이직은 현 직장에 대한 불만보다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이유였고, 이직 결심은 계획적이라기보다는 즉흥적이었습니다. 이번 이직은 꽤 오랫동안 고민하여 인생 계획에 맞춰 움직인 것이라서 느낌이 많이 다르군요.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기대됩니다.

사실 이번 레터에서 ‘계획'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지만, 계획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해서 그대로 따르는 걸 제가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계획을 구체화하는 데 드는 비용도 클 뿐더러, 사고가 경직되어 상황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우니까요. 적당히 큰 그림과 마일스톤을 그려두고, 사이사이를 유연하게 채워나가는 게 계획성과 즉흥성의 이점 모두를 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세운 인생 계획도 그래서 상당히 엉성하지만, 지금까지는 만족스럽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Q. 지난 몇달간 구독자님이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일들 중, 즉흥적이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결정은 무엇이 있었나요? 반대로, 계획을 충실히 따랐지만 결과가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던 결정은 무엇이 있었나요?

Q. 이 경험들에서 돌이켜볼때, 구독자님이 어떤 일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구독자님이 중요하게 하고 있는 일에서 그 요소를 강화시키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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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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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민

    1
    about 2 years 전

    안녕하세요. 휘동님. 글 잘읽고 있어요~ 아이를 낳고 난 이후, 달라진 생각들이 휘동님이 작성해주신 글의 맥락과 유사해서 반가웠어요. 자투리 시간들이 소중해지기 시작했고, 앞으로 10년-20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인생 계획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직장이 저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다음 메일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ㄴ 답글 (1)
  • Q1

    1
    about 2 years 전

    지난 주 지인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보고 구독하게 되었네요. ㅎ 많이 생각하게 하는 뉴스레터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10대 비전이니 가족사명서 같은 것을 적어놓고 열정을 가지고 살곤 했는데..., 덕분에 다시 리마인드가 되고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소중한 경험 및 Inspiration 공유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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