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야보다 유독 스타트업들의 앱(App) 서비스에 한글 로고가 많은 이유는 뭘까요? 배달의 민족, 직방같은 스타트업 원조격 브랜드는 물론이고 타다, 당근마켓, 여기어때, 오늘의집, 세탁특공대 등등 굉장히 많은 브랜드들이 한글 로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위메프'나 '맘시터'같은 영어로된 이름을 가진 브랜드들도 한글 발음을 그대로 표기해 로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탈잉의 경우에도 런칭 시 사용하던 'Taling'이라는 영문 로고를 일부러 '탈잉'으로 바꾸면서까지 한글 로고 리뉴얼을 진행했습니다. 3.3이나 1/3같은 숫자 표기한 브랜드 이름도 예외는 아닙니다. '삼쩜삼', '삼분의일'과 같이 한글로 변환해 브랜드 로고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으면 스타트업들의 한글 사랑이 정말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반대로 '야놀자'에서 'yanolja'로 한글 로고를 영문 로고로 교체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글로벌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한글 중심의 로고는 이제껏 국내 브랜드 개발에서 있어 일반적인 경향은 아닙니다. 보통의 기업이나 상품, 서비스 브랜드들에서는 앞 다투어 영문으로 바꾸는 추세가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모두가 글로벌과 디지털 트랜스폼을 외치는 상황에서 영문을 중심으로 글로벌한 세련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안되면 억지로라도 영문 조합을 만들어 가려는 분위기가 브랜드 개발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제가 지금 껏 참여했던 여러 브랜드 개발에서 있어서도 순수 한글로 된 브랜드를 만들었던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물론 한식이나 한국 문화 관련된 브랜드들에서는 당연히 '한글'이 주제가 되겠지만, 그런 류의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10 중에 8개 이상은 대부분 영문으로 된 이름과 로고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요즘엔 작은 지방 도시의 슬로건 하나도 영문이 대세인 시대입니다. 영어 이름이어야 더 멋지고 브랜드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홍보와 유통의 중심이 온라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url등의 확보나 독립적인 표기에 있어 영문 표기가 더 유리한 부분이 있는 것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글 로고를 쓰는 스타트업들을 보면서 제가 그 동안 가졌던 선입견이 깨지고 있는 중입니다. 한글로도 충분히 세련되고 유연하게 브랜드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걸 많은 스타트업들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문 중심 로고에서 벗어나 스타트업다운 발상으로 만든 한글 로고들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산업들에서도 한글도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러한 한글 로고의 경향은 왜 생겼을까요? 단지 스타트업이 가진 특유의 도전과 실험 정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던 걸까요?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고객 관점에서의 눈높이를 최대한 빠른 시간에 맞추고, 가장 작은 비용으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브랜드들의 전략적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앞 서 한글 로고들만 모아 놓고 강조해서 그렇지 실은 대부분의 스타트업 로고들은 영문 버전이 다수를 이룹니다. 특히 Cupang,Toss,Upbit,Musinsa, ABLY 등 스타트업 분야 중에서도 유통, 금융, 패션, 분야에서는 한글 로고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반면 한글 로고들을 많이 사용하는 스타트업들은 내 일상과 생활에 굉장히 깊숙이 들어와 있는 브랜드가 많습니다. 배달, 숙박, 부동산, 세탁 등등 그야말로 완전하게 생활 밀착형이며 사적인 서비스들입니다.
배달의 민족, 야놀자 등이 개념도 생소했던 App서비스 플랫폼 시장을 어떻게 개척해 갔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글 이름과 로고를 사용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배달의민족'을 생각해보겠습니다. App 초기 시장이기도 했지만, 배달을 스마트폰으로 주문한다는 것 자체가 소비자들에게는 큰 도전이었죠.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주문하거나 직접 받아오던 걸, 모바일 화면으로만 모두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면 이름이라도 쉬워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게 배달 App이라고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말이죠. '배달의민족'의 이름에 배달이라는 서비스의 성격이 직접적으로 담겨있고, 거기에 더해 로고까지 한글 그래도 표기한다면 고객들의 친숙도를 훨씬 높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야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그 당시 인기 있던 글로벌 숙박앱인 ‘아고라’같은 이름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들어도 뭔지 잘 몰라서 낯설었을 것입니다. 어떤 서비스인지 정체도 잘 모르겠고, 잘 외워지지도 않는다면 쉽게 외면받을 가능성이 컸을 것입니다. ‘야! 놀자’라고 일반적인 브랜드의 어법도 아니고 친구처럼 친근한 말투의 이름은 이용자들이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배달의 민족이나 야놀자가 같은 앱 서비스 기반의 스타트업들의 초기 고민들은 여전히 새롭게 생겨났던 많은 스타트업들 또한 같이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에서 만든 브랜드들처럼 론칭 초기부터 막대한 홍보 물량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한글 로고를 써서 쉽고 직관적인 의미로 바로 다가갈 수 있게 하는 편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글 로고만이 더 나은 브랜딩 방안이라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영문과 한글을 선택하는 건 우열을 가리는 선별이라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의 한 방법입니다. 브랜드에 따라 영문 로고가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기에 좋을수도 한글 로고가 더 좋을수도 있습니다. 브랜드의 미래를 그려가야하는 의사 결정권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전략적인 판단을 했던, 한 영역에서의 1, 2위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한 곳이 영문을 쓰면 한 곳은 한글을, 한 곳이 한글을 쓰면 다른 한 곳은 영문을 쓰고 있습니다. 한 곳은 세탁특공대와 LaundryGo, 다른 한 곳은 여기어때와 yanolja 브랜드입니다.
먼저 세탁 App의 1,2등 브랜드인 세탁특공대와 LaundryGo를 살펴보겠습니다.
세탁특공대는 누구나 보고 들으면 어떤 서비스를 하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는 이름입니다. 한글 로고타입도 거의 본문 서체를 쓴 듯 장식적이지 않고 가독성 좋게 표현됐습니다. 대신 밋밋한 글자 표현을 보조해 세탁물을 펄럭이는 깃발처럼 표현한 심벌로 브랜드의 개성을 더했습니다. 또한 특공대답게 전반적으로 블랙과 화이트 대비되는 색감을 통해 세탁물을 마치 미션 처리하듯 수거하고 완료하는 느낌을 줍니다. 수거용 아이템이나 복장이나 트럭까지 하나의 스토리가 느껴질 만한 장치들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한글 커뮤니케이션의 장점이 스토리까지 잘 연결되고 있습니다.
첫 화면부터가 공격적입니다. 부수적인 말이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대화하고 주문을 마치 작전을 수행하듯이 하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LaundryGo는 영어로 세탁물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고는 있지만 한글로 표현한 세탁특공대와는 굉장히 다른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세탁특공대에 비해 더 감성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입니다. 언뜻 보기에 글로벌 세제 브랜드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런 느낌에 맞게 LaundryGo는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이라는 자체 상품도 만들었습니다. 샴푸, 린스, 바디워시, 로션, 치약, 칫솔 등 일상에서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제품군과 타월, 침구류, 로브, 파자마, 티셔츠, 앞치마, 속옷, 양말 등 런드리고에서 세탁과 수선 서비스를 통해 관리 가능한 제품군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는 모 기업인 '의식주컴퍼니'라는 사명에서 볼 수 있는 비전에 맞는 운영 정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탁특공대, LaundryGo는 세탁이라는 서비스를 같이 하지만 이렇게 브랜드 서비스 정책이나 이미지 전략에 따라 이렇게 느낌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가격 차이가 없다면 둘 중 어느 브랜드를 고를지에 따라서도 고르는 고객의 성향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를 가진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다음 브랜드는 숙박 대표 App인 야놀자와 여기어때입니다.
세탁특공대, LaundryGo와는 다르게 야놀자, 여기어때는 이름에서 굉장히 유사한 감성이 느껴집니다. 가볍고 유쾌합니다. 절대 진지하거나 심각할 것 같지 않은 브랜드로 느껴집니다. 사실 야놀자가 영문으로 리뉴얼하기 전에는 더 그런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한글 '야놀자'에서 영문 'yanolja'로 변하자 그 이미지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옵니다. 웃음기를 쫙 뺀 고딕형의 영문 로고는 기존의 성격과 개성을 다 빠지고 중성적이며 이성적으로 변했습니다. 이제는 놀기만 하지 않고, 뭔가 더 새로운 일들을 해나갈 것 같다는 인상입니다.
그와 함께 브랜드 리뉴얼 후 진행했던 '야놀자 - 테크놀로지'라는 캠페인은 야놀자의 더 큰 미래의 포부를 이용자들에게 심어줬습니다. 지금까지는 뭔가 확실한 문자 그대로를 말하는 '야놀자'의 의미였다면, 영문으로 리뉴얼되면서 의미와 사업영역까지도 확장되는 느낌입니다. Samsung이나 Hyundai가 그랬던 것처럼 '놀자'라는 단어 뜻 자체가 아니라 'yanolja'라는 영문 자체의 상징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글로벌로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반면에 '여기어때'는 국내 고객 수요를 착실하게 쌓아가 숙박App에 있어서 야놀자의 뒤를 따르는 굳건한 2위자리를 지키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에게 '여기어때?'라고 묻는 친근한 어투와 장범준, 이영지라는 인물 중심의 광고 캠페인을 통해 친구처럼 가깝고 편안한 즐거움이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잘 구축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있어서 한글 로고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 서비스가 해외로의 확장을 생각한다면 야놀자가 그랬던 것처럼 영문 중심의 브랜드 리뉴얼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분명 존재합니다.
지금까지 스타트업에는 왜 유독 한글 로고가 눈에 띄게 많은지, 왜 그런 전략적 결정을 했는지 알아봤습니다. 앞 서 말씀드렸다시피 스타트업에서 한글 로고가 하나의 추세라고는 주장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압도적인 차이로 대다수의 브랜드는 영문 로고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특하고 희소성 있는 이미지 때문인지 제 눈에는 스타트업 전체 브랜드 로고 맵안에서도 한글 로고들이 눈에 띄게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왜 제가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브랜딩을 진행 할 때 있어서 한글 로고가 좋을까요? 영문 로고가 좋을까요? 사실 정답은 없습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사업 방향성과 브랜드가 고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 선택은 달라야 합니다.
선택은 브랜드의 모든 면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 결정 하나에 따라 어쩌면 우리 브랜드의 언어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표기법 자체도 다르지만, 같은 의미를 전달하더라도 질감이 달라집니다. 느껴지는 감성도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에 따른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문화도 변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브랜드 로고를 한글로 할지, 영문으로 할지는 단지 언어 표현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브랜드 전체 문화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글. 우현수 @woohyunsoo
브랜드 컨셉 빌더 [브릭] BRIK.co.kr을 설립해 브랜드 스토리와 스타일 구축을 돕고 있습니다. 저서 <일인 회사의 일일 생존 습관>을 실천하며 더 나은 미래를 차곡 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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