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케팅 컨퍼런스에 가면 묘한 분열이 보입니다. 한쪽은 여전히 "활성화율을 어떻게 올릴까", "친구 초대를 온보딩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깔까"를 이야기합니다. 다른 한쪽은 "우리 제품의 다음 사용자는 사람이 아닐 수 있다"를 이야기합니다.
저는 두 번째 쪽이 맞다고 봅니다. 솔직히 말하면, 첫 번째 진영은 이미 사라진 전장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습니다.
증거는 Netlify에서 나왔습니다. Netlify는 Pro 요금제에서 좌석(seat) 기반 과금을 명시적으로 제거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AI 에이전트가 코드를 짜고 배포 버튼을 누르기 시작하면, "1명에 얼마"라는 가치 측정 단위 자체가 의미를 잃기 때문입니다. 사람 한 명이 에이전트 50개를 돌리는 게 가능해진 순간, seat은 가치를 반영하지 못합니다.
이건 단순한 가격 정책 변경이 아닙니다. 그로스 해킹이 지난 9년간 사용해온 핵심 단위 — MAU, 활성 사용자, PQL, NPS — 가 통째로 흔들리는 사건입니다.
PLG 1.0 시대의 활성화 기준은 "14일 안에 첫 가치"였습니다. PLG 2.0의 벤치마크는 60초입니다. 그리고 AI-native 제품들은 그보다 더 가서, 계정 생성 이전에 가치를 전달합니다.
ChatGPT를 떠올려보면 바로 와닿습니다. 처음 들어가서 뭔가를 입력하는 순간 답이 나옵니다. 회원가입은 그 다음입니다. '가치 → 가입'의 순서로 뒤집힌 것입니다. 이게 2026년의 활성화 기준입니다.
여기서 제가 한국 팀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제부터 받아야 하는데요?", "회원가입을 안 받으면 데이터를 어떻게 모으죠?"
이게 바로 그 9년짜리 룰북에 갇혀있다는 증거입니다. 데이터를 모으는 게 활성화보다 먼저라고 믿는 순간, 당신의 활성화율은 절대 25%를 넘지 못합니다. 한 번 더 강조합니다. 활성화가 먼저고, 데이터는 그 다음입니다. 이 순서를 거꾸로 쓰는 팀은 모두 지난 5년간 천천히 죽어왔습니다.
제가 본 가장 인상 깊은 사례는 어느 노션 풍 협업 툴이었습니다. 이 팀은 로그인 화면에 "지금 바로 써보기" 버튼을 박았습니다. 클릭하면 임시 워크스페이스가 자동 생성되고 5분 뒤 자동 소멸합니다. 그 5분 안에 사용자가 가치를 경험하면 회원가입 모달이 자연스럽게 뜹니다. 활성화율이 18%에서 41%로 뛰었습니다. 마법이 아닙니다. 순서를 바꿨을 뿐입니다.
이게 또 재미있는 변화입니다. 2010년대 중반, 그로스 해킹의 상징은 A/B 테스트였습니다. 그러다 한동안 "테스트로는 큰 차이를 못 만든다"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2026년에 A/B 테스트가 다시 부활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AI가 변형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AI 보조 A/B 테스트를 도입한 팀은 분기당 실험 횟수가 4.7배 늘었고, 테스트 승률도 31% 높아졌습니다. 평균 승리 실험의 전환 상승 효과는 22%입니다.
22%가 별 거 아닌 것처럼 들리지만, 이걸 한 분기에 5개 굴리면 누적 효과는 단순합산 110%, 복리로 따지면 더 큽니다. 그리고 4.7배 더 많이 굴리니까, 5개가 아니라 20개가 됩니다.
여기서 제 생각을 하나 얹자면, 이 변화의 진짜 의미는 "그로스 해커 한 명의 생산성이 5배가 됐다"가 아니라 "실험을 안 하던 팀이 이제 실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작년까지는 PM이 가설 잡고, 개발자가 코드 짜고, 디자이너가 시안 만들고, 분석가가 결과 본 뒤 회의를 잡았습니다. 일주일짜리 사이클입니다. 지금은 AI가 가설부터 카피까지 다 던지고, PM 한 명이 결재만 하면 그날 안에 끝납니다. 일주일이 하루로 줄었습니다.
이건 그로스 해킹의 룰 변경이 아닙니다. 진입 장벽의 붕괴입니다.
제가 작년 한 해 동안 한국 스타트업 30곳쯤 자문하면서 본 패턴을 적자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AI를 도입하면서 사람을 그대로 둡니다. AI가 카피 100개 뽑으면 사람이 1개 골라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강합니다. 이 골라내는 시간이 가장 큰 병목입니다. 골라내지 말고 다 띄우세요. 사용자에게 50개 변형을 동시에 보여주고 데이터로 추리는 게 압도적으로 빠릅니다.
둘째, 활성화의 정의가 너무 무겁습니다. "회원가입 → 결제 → 첫 사용"을 활성화로 잡는 한국 팀이 아직도 많습니다. AI-native 시대의 정의는 정반대입니다. "첫 사용 → (필요하면) 결제 → (필요하면) 회원가입". 순서를 뒤집어야 합니다.
셋째, seat 가격에 매달립니다. 사람 수로 돈을 매기는 모델은 2026년에 죽어가는 종입니다. 가치 기반(사용량, 결과, API 호출 수) 가격으로 옮겨야 합니다. Netlify는 무서워서 안 옮긴 게 아니었습니다. 옮겨야 살아남기 때문에 옮긴 것입니다.
제가 본 또 다른 사례도 공유합니다. 작년 가을 어떤 한국 B2B SaaS 팀은 AI 기반 개인화 메일을 도입한 뒤 free-to-paid 전환이 6%에서 11%로 올랐습니다. 이 팀이 한 일은 마법이 아니었습니다. 사용자가 제품에서 한 행동을 기반으로 메일 카피를 1인 1통씩 다르게 보냈습니다. 사람이 했으면 죽는 일이지만, GPT 클래스 모델 한 대가 매일 새벽에 처리했습니다. 인건비는 거의 들지 않았고, 전환은 두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이게 PLG 1.0과 2.0의 격차입니다. 옛 룰북에서는 이런 카피 분기가 불가능했습니다. 새 룰북에서는 안 하는 게 직무 유기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면, 그로스 팀의 KPI 자체도 다시 써야 합니다. 옛날에는 "이메일 오픈율 30%" 같은 게 그로스 팀의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ChatGPT가 우리 도구를 추천한 횟수", "Claude가 우리 API를 호출한 비율" 같은 게 그로스 팀의 일입니다. 이 KPI를 가진 한국 그로스 팀은 제가 아는 한 손에 꼽힙니다. 그리고 이 손에 꼽히는 팀들이 향후 3년 안에 한국 SaaS 시장의 상위권을 가져갈 것이라고 봅니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건 측정 도구입니다. 아직도 많은 한국 팀이 GA4와 앰플리튜드만 봅니다. 둘 다 사람 기준 트래킹입니다. 에이전트 트래픽은 이 두 도구로는 거의 안 잡힙니다. 자체 로그를 봐야 합니다. API 게이트웨이 로그, MCP 서버 로그, 함수 호출 로그. 여기에 데이터가 있습니다. 사람만 보면 절반의 사용자를 무시하는 셈입니다.
PLG 1.0 시대에 한국 SaaS는 사실상 글로벌과의 격차를 줄이지 못했습니다. 영어권 제품 디자인, 글로벌 결제, 셀프서브 문화 — 우리에게 불리한 조건이 너무 많았습니다.
PLG 2.0, 즉 에이전트 시대는 다릅니다. 에이전트는 한국어를 잘 알아듣습니다. 한국 사용자가 어떤 에이전트를 쓰든, 그 에이전트가 내 API를 부르게 만들면 끝입니다. 거리·언어·UX 격차가 한꺼번에 사라집니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9년짜리 옛 그로스 해킹 룰북을 책상에서 치울 것. 그 책에 적힌 KPI, 깔때기, 활성화 정의를 그대로 들고 가면 6개월 뒤에 망합니다.
제가 마지막에 정리한 "옛 룰 vs 새 룰" 비교표가 원문에 있습니다. 9칸짜리 표인데, 마지막 한 칸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칸을 모르면 나머지 8칸을 다 알아도 차세대 리텐션을 못 만듭니다. 그리고 한국 그로스 팀이 가장 자주 놓치는 KPI 한 가지, 측정 도구를 바꿔야 하는 진짜 이유 — 본문에 다 풀어놨습니다. 이 부분만 봐도 다음 주 월요일 회의 안건이 바뀝니다.
특히 마지막 두 단락은 이 글의 결론이 한 번 더 뒤집히는 지점입니다. "그로스 해킹은 죽지 않았다"는 문장의 진짜 의미가 거기서 명확해집니다. 그리고 당신 제품의 다음 사용자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을 1%라도 인정한다면, 지금 당장 무엇부터 다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도 마지막 줄에 들어있습니다. 뉴스레터 분량 때문에 가장 결정적인 한 문장을 여기에는 옮기지 않았습니다. 원문 가서 확인하세요.
원문 보기: https://medium.com/p/b6d5a7937e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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