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제 자문 사례에서 반복적으로 본 패턴이라 더 그렇습니다.
지난주에 NIQ가 발표한 2026 CMO Outlook 보고서를 보고 한참 멍해 있었습니다. CEO와 CFO가 장기 브랜드 빌딩의 가치를 믿는다고 답한 비율이 80%에서 69%로 떨어졌더군요. 단 2년 사이에 11%포인트가 증발했습니다. 같은 보고서에서 CMO의 84%가 마케팅 ROI를 예산 배분의 최우선 지표로 꼽았다고 합니다. 사실상 거의 모든 마케터가 단기 숫자에 매달리는 구조입니다.
처음에는 "그럴 만하지"라고 넘겼습니다. 경기가 어렵고, 모두가 측정 가능한 것에 매달리는 시기니까요. 그런데 다음 페이지의 데이터를 보고 표정이 굳었습니다.
성과 마케팅 일변도로 전환한 브랜드들의 매출 성장률이 브랜드 빌딩을 병행한 경쟁사 대비 평균 23%포인트 낮게 나타났습니다. 단기 ROAS는 좋아졌는데, LTV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CAC는 분기마다 올랐고, 신규 고객은 한 번 사고 사라졌습니다. 재구매율은 24개월 평균선 아래로 내려갔고, 평균 객단가도 1년 만에 8% 하락했습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CFO가 ROI를 외칠수록, 그 회사의 마진은 더 빨리 녹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2년간 자문한 회사 중 퍼포먼스 비중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린 곳들이 18개월 뒤 어떤 결과를 받았는지 일일이 추적해 봤습니다. 결론은 똑같았습니다. 매출 정체. 한 곳의 예외도 없었습니다. 업종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이커머스, SaaS, D2C 식품, 뷰티 모두 결과가 같았다는 게 가장 충격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퍼포먼스 마케팅의 본질을 다시 보면 답이 나옵니다. 그건 이미 만들어진 수요를 거두는 일입니다. 수요 자체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브랜드 빌딩이라는 농사를 멈추면 첫해는 추수만 해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해에는 곳간이 줄어듭니다. 셋째 해부터 굶기 시작합니다.
한국의 많은 회사들이 지금 정확히 그 셋째 해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본인들이 그 사실을 모른다는 점입니다. ROAS 대시보드는 여전히 4를 가리키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더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 보태야 합니다. AI 검색 시대가 오면서 게임의 규칙 자체가 바뀌었거든요.
AI 사용자의 24%가 이미 AI 쇼핑 어시스턴트를 씁니다. ChatGPT, Perplexity, Gemini가 "이 카테고리에서 어떤 제품이 좋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답에는 보통 3개에서 5개의 브랜드만 등장합니다.
검색 첫 페이지의 10개도 아니고, 추천 영상 20개도 아닙니다. 단 3~5개. 이 좁은 명단에 들어가지 못하면 사실상 사라집니다. 더 무서운 건 한 번 빠지면 다시 들어가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AI는 자기가 학습한 데이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답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AI 답변에 안 잡혔던 브랜드는 올해 더 안 잡히고, 내년에는 영영 안 잡힙니다.
저는 이걸 "디지털 멸종의 두 번째 파도"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 파도는 자연 검색에서 밀려난 회사들이었죠. 두 번째 파도가 지금 시작됐고, 이건 훨씬 더 가차 없습니다. 검색 결과 11위는 그래도 존재라도 하지만, AI 추천 4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0과 1의 차이가 아니라, 있음과 없음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이 명단에 들어가는 방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그 카테고리에서 인터넷의 텍스트와 이미지에 가장 깊고 일관되게 새겨진 브랜드여야 합니다. 즉, 브랜드 자산이 두텁게 누적된 회사들입니다. 퍼포먼스 광고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종류의 자산이고요.
여기서 한 가지 인지과학 이야기를 짚고 가겠습니다. 인간의 뇌는 하루에 받는 자극의 99% 이상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광고는 거의 전부가 그 99%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의식되지 않은 광고도 한 가지 일은 합니다. 익숙함을 누적합니다. 인간은 익숙한 것을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안전한 것을 선호합니다. 1968년 자이언스가 증명한 단순 노출 효과가 이거고, 그 후 60년간 무수한 마케팅 연구가 재증명한 사실입니다.
브랜드 광고가 하는 진짜 일이 이겁니다. 의식되지 않더라도 익숙함을 쌓고, 매장 앞에서, 검색창 앞에서, AI 어시스턴트 앞에서, 그 익숙함이 결정 변수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 퍼포먼스 광고는 즉시 클릭만 노립니다. 익숙함이 누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출이 끝나는 순간 효과가 0이 됩니다. 단가만 보면 퍼포먼스가 싸 보이지만, 자산 가치를 환산하면 브랜드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싸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럼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제 생각을 짧게 풀어드립니다.
첫째, 예산을 6대 4로 돌려야 합니다. 브랜드 60, 퍼포먼스 40. IPA가 20년 동안 추적한 데이터로 증명한 황금 비율입니다. 이걸 깬 회사들이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카테고리에 따라 5대 5도 가능합니다만, 7대 3으로 퍼포먼스를 더 쓰는 순간 거의 예외 없이 정체로 갑니다.
둘째, 브랜드 KPI를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ROAS 옆에 무보조 인지도, 첫 회상 브랜드 비율, 카테고리 검색량, 그리고 가능하다면 AI 추천 등장 빈도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측정되지 않는 자산은 결국 잘립니다. CFO가 매달 보는 대시보드에 브랜드 신호를 강제로라도 띄워야 합니다. 안 띄우면 매년 칼이 들어옵니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간 약속입니다. 브랜드 빌딩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최소 3년은 임원진에게 약속받으세요. 6개월짜리 브랜드 캠페인은 브랜드 빌딩이 아닙니다. 그건 비싼 퍼포먼스 캠페인일 뿐이고, 12개월 차에 잘리면서 매몰되는 예산만 남깁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례만 짧게 공유하겠습니다. 작년에 어떤 D2C 브랜드가 CAC가 30% 오른 시점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퍼포먼스 비중을 절반으로 줄이고, 그 예산을 브랜드 콘텐츠와 커뮤니티에 부었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6개월 동안 매출이 12% 빠졌고, 임원회의에서 마케팅 책임자가 잘릴 뻔했습니다.
그런데 9개월 차부터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자연 검색 유입이 두 배가 됐고, 직접 방문이 60% 늘었고, 12개월 차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47% 성장했습니다. 마케팅 예산은 그대로였습니다. ROI 계산식이 바뀐 게 아니라, 그 회사의 게임 자체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이게 데이터가 보여주지 않는 진실입니다. 브랜드는 시간이 걸리는 자산입니다. 분기 단위로 측정하면 손해로 보입니다. 연 단위로 보면 복리로 쌓입니다. 그래서 분기로 마케팅을 평가하는 모든 회사는 구조적으로 브랜드를 못 키웁니다. 분기 평가 시스템 그 자체가 브랜드의 적입니다.
제가 이걸 강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시장은 특히 위험합니다. Seoulz의 2026 보고서에 따르면 220억 달러 규모의 감정 우선 소비 전환이 진행 중이고, 한국 소비자들이 합리적 효용보다 정서적 공명을 구매 결정의 1차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가격 비교, 기능 비교의 시대가 저물고 있고, "이 브랜드를 쓰는 내가 좋다"가 결정 변수가 됐다는 뜻입니다. 이건 퍼포먼스 광고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감정이고, 오직 누적된 브랜드 서사로만 만들어집니다.
이번 주 월요일 아침 첫 회의에서 딱 한 가지 질문만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회사 마케팅 예산의 몇 퍼센트가 브랜드 빌딩에 가고 있나요." 답이 30% 이하라면,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렇다고 못 따라잡는 건 아닙니다. 다만 늦게 시작할수록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따라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한 가지 더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이 뉴스레터에는 절반밖에 못 담았습니다. 분기 평가 시스템이 왜 구조적으로 브랜드의 적인지, CFO를 적이 아닌 동료로 만드는 구체적인 설득법, distinctive brand asset 감사를 실무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그리고 광고 노이즈가 폭발한 시대에 왜 브랜드 광고만 살아남는지까지. 이 네 가지가 사실 진짜 핵심입니다. 뉴스레터의 결론은 원문 마지막 두 단락에서 한 번 더 뒤집힙니다. 거기까지 읽지 않으시면 정말 절반만 보신 셈입니다.
원문 보기: https://medium.com/p/49a9dc2bb867?postPublishedType=init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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