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는 단 한가지 철학

원문: <The Techno-Optimist Manifesto>

2026.09.16 |
from.
비즈쿠키

Editor: Alex

 

어릴 때 미국에서 잠시 학교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대체로 한국에서 온 학생들이었습니다. 미국 지리 시험에서조차 미국 아이들보다 점수가 높았으니까요.

 

그래서 늘 궁금했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더 똑똑한 것 같은데, 애플이나 엔비디아, 구글 같은 회사는 왜 늘 미국에서 나오는 걸까.

 

제가 내린 결론은, 결국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철학의 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똑똑함의 문제가 아니라, 그 똑똑함을 어디에 쓰게 만드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오늘은 미국, 그중에서도 실리콘밸리라는 작은 동네에서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이 나올 수 있었는지, 그 공간을 지배하는 철학에 대해 쓴 아티클을 소개하려 합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재밌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에디터 픽!


  • 성장의 원천은 인구 증가, 천연자원 활용, 기술 단 세 가지뿐이다. 문화권을 막론하고 전 세계 선진국에서 인구 감소가 나타나고 있으며, 인류 전체 인구는 이미 줄어들고 있을지 모른다. 천연자원 활용에는 물리적·정치적 한계가 명확하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유일한 성장의 동력은 기술이다.

 

  •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는 기술 창출자가 그 기술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의 약 2%만을 점유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나머지 98%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사회적 잉여'의 형태로 사회 전체에 흘러들어간다.

 

  • 우리에게는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 미래는 열려있고 결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단순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가 무엇을 담고 있든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따라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에세이

본 아티클은 <The Techno-Optimist Manifesto>의 내용을 번역 및 편집한 글임을 밝힙니다.


 

우리는 미쳐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미쳐있다. 눈부신 과학적, 기술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워커 퍼시(Walker Percy)

 

인류의 역사는 30만 년에 달한다. 초기 29만 년 동안 우리는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이나 안다만 제도 센티넬족의 모습처럼 채집 생활을 영위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농경을 시작한 이후로도 발전 속도는 답답할 정도로 더뎠다. 기원전 4,000년 수메르에서 태어난 사람이 노르만 정복 당시의 영국이나 콜럼버스 시절의 아즈텍 제국에 도달했더라도, 그곳의 자원, 노동, 기술은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다 18세기에 이르러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폭발적으로 향상되었다. 무엇이 이러한 극적인 개선을 불러왔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마리안 투피(Marian Tupy)

 

더 나은 방법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을 찾아라.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

 

1. 거짓말

우리는 거짓에 둘러싸여 있다.

 

기술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낮추며, 불평등을 심화하고, 건강을 위협하며, 환경을 파괴하고, 사회를 퇴보시키고, 아이들을 몰락시키고, 인간성을 훼손하며, 미래를 위협하고, 급기야 모든 것을 파멸시키기 직전이라는 말을 우리는 끊임없이 듣고 있다.

 

기술에 대해 분노하고, 억울해하며, 분개하라는 강요를 받는다.

 

비관주의자가 되라는 압박을 받는다.

 

프롬메테우스 신화는 프랑켄슈타인, 오펜하이머, 터미네이터 같은 현대적 변형을 거쳐 우리의 악몽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타고난 권리, 즉 지능, 자연에 대한 통제력,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라는 말을 듣는다.

 

미래에 대해 절망하라는 강요를 받는다.

 

2. 진실

인류 문명은 기술 위에 건설되었다.

 

인류 문명은 지금도 기술 위에 서 있다.

 

기술은 인간의 야망과 성취의 영광이자 진보의 선봉이며, 우리 잠재력의 실현이다.

 

수백 년 동안 우리는 이를 정당하게 찬양해 왔다.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여기서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

 

우리는 훨씬 더 뛰어난 삶의 방식과 존재 방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우리에게는 도구와 시스템, 그리고 아이디어가 있다.

 

우리에게는 의지가 있다.

 

다시 한번 기술의 깃발을 들어 올릴 때다.

 

이제 기술낙관주의자(Techno-Optimist)가 될 때다.

 

3. 기술

기술낙관주의자는 사회가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믿는다.

 

성장이 곧 진보이며, 활력과 삶의 확장, 지식의 증진, 더 높은 복지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경제 성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성장의 부재는 모든 것을 죽인다"라는 폴 콜리어(Paul Collier)의 말에 동의한다.

 

모든 좋은 것은 성장의 결실이라고 믿는다.

 

성장의 정체는 제로섬 사고, 내부 분열, 몰락, 붕괴, 그리고 궁극적인 죽음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성장의 원천은 인구 증가, 천연자원 활용, 기술 단 세 가지뿐이다.

 

문화권을 막론하고 전 세계 선진국에서 인구 감소가 나타나고 있으며, 인류 전체 인구는 이미 줄어들고 있을지 모른다.

 

천연자원 활용에는 물리적·정치적 한계가 명확하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유일한 성장의 동력은 기술이다.

 

사실 새로운 지식과 도구, 즉 고대 그리스인이 '테크네(techne)'라 부른 기술은 인구 증가와 자원 활용을 가능하게 한 성장의 근본 원천이자 유일한 동인이었다.

 

기술은 세상을 움직이는 레버리지이며, 더 적은 투입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드는 수단이라고 믿는다.

 

경제학자들은 기술적 진보를 생산성 향상으로 측정한다. 즉, 매년 더 적은 투입물과 원자재로 얼마나 더 생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기술에 기반한 생산성 향상은 경제 성장, 임금 상승, 신산업 및 일자리 창출의 핵심 동력이다.

 

인적·물적 자원이 과거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에 계속해서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성 향상은 가격을 낮추고 공급을 늘리며 수요를 확장하여 전 인류의 물질적 복지를 증진한다.

 

이것이 우리 문명이 달성한 물질적 발전의 본질이다. 우리가 여전히 진흙 오두막에 살며 겨우 생명을 연장하고 자연의 결정만 기다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우리의 후손들이 우주와 별들 사이에서 살아가게 될 이유라고 믿는다.

 

자연이 만들어냈든 기술이 초래했든, 더 뛰어난 기술로 해결하지 못할 물질적 문제는 없다고 믿는다.

 

기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농업 기술을 혁신했다.

 

어둠의 문제가 닥쳤을 때 전등을 발명했다.

 

추위의 문제에는 실내 난방을, 더위의 문제에는 에어컨을 개발했다.

 

고립의 문제에는 인터넷을, 전염병의 문제에는 백신을 만들어냈다.

 

빈곤의 문제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풍요를 창출할 기술을 발명해 낼 것이다.

 

현실 세계의 어떤 문제든 제시하라. 우리는 그것을 해결할 기술을 만들어낼 것이다.

 

4. 시장

 

자율적인 구매자와 판매자가 만나 가격이 결정되고, 양측 모두가 이득을 얻을 때만 거래가 성립되는 자유 시장이야말로 기술 경제를 조직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믿는다.

 

이윤은 수요를 충족하는 공급을 만들어내는 유인책이며,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기업가는 높은 가격을 기회 신호로 포착하고, 가격을 낮춤으로써 새로운 부를 창출하도록 유도된다.

 

시장 경제는 탐색적이고 진화하며 적응하는 시스템이자, 부를 발굴하는 지능적 메커니즘이다.

 

하이에크의 '지식의 문제(Knowledge Problem)'가 지적하듯, 어떤 중앙집권적 경제 시스템도 한계가 명확하다. 실제 모든 정보는 현장의 최전선, 즉 구매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있다.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에게서 떨어진 중앙 정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생산과 소비라는 복잡한 시스템에서 중앙집권적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분권화는 이 복잡성을 모두의 이익으로 전환하지만, 중앙집권화는 모두를 기아로 몰아넣는다.

 

우리는 시장 규율의 힘을 믿는다. 시장은 스스로를 규율한다. 구매자가 외면할 때 판매자는 배우고 변화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시장 규율이 사라질 때 광기는 끝없이 증폭된다. 시장 규율을 받지 않는 모든 독점, 카르텔, 중앙 집권 기관의 슬로건은 "우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이다. 시장은 이러한 독점과 카르텔을 막아선다.

 

시장은 인류를 빈곤에서 건져 올린다. 실제로 시장은 수많은 사람을 빈곤에서 구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전체주의 정권하에서도 민중의 목을 짓누르던 억압의 발걸음을 조금만 치워주어도 소득과 생활 수준은 가파르게 상승한다. 발을 조금 더 치우면 더 나아지고, 완전히 치워버린다면 인류가 얼마나 부유해질지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시장은 본질적으로 개인주의적인 방식을 통해 우수한 집단적 결과를 달성하는 수단이다.

 

시장은 인간이 완벽하거나 선의로 가득 차 있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담 스미스가 말했듯,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주한이나 조주사,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도주의가 아니라 자애심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닌 그들의 이익을 말한다."

 

데이비드 프리드먼(David Friedman)이 지적했듯, 사람이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이유는 사랑, 돈, 강요 세 가지뿐이다. 사랑은 확장성이 없으므로 경제는 돈이나 강요로만 작동할 수 있다. 강요에 의한 실험은 이미 실패로 끝났다. 우리는 돈의 힘을 선택해야 한다.

 

시장에 대한 궁극적인 도덕적 옹호는, 방치되었을 때 군대를 모으거나 종교를 창시했을 이들의 에너지를 평화롭고 생산적인 활동으로 돌려놓는다는 점에 있다.

 

니콜라스 스턴(Nicholas Stern)의 말처럼, 시장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들을 돌보는 방식이다.

 

시장은 기초 연구, 사회 복지, 국방 등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비용을 대기 위한 사회적 부를 창출하는 유일한 길이다.

 

자본주의적 이윤과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사회복지제도 사이에 충돌은 없다. 오히려 두 개념은 궤를 같이한다. 시장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이 사회가 원하는 모든 것을 지불할 경제적 부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적 경제 계획은 최악의 인간을 등용하여 모두를 몰락시키지만, 시장은 최선의 인간을 활용하여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다준다.

 

중앙집권적 계획이 파멸의 굴레라면, 시장은 상승하는 나선이다.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는 기술 창출자가 그 기술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의 약 2%만을 점유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나머지 98%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사회적 잉여'의 형태로 사회 전체에 흘러들어간다.

 

시장 시스템 내에서의 기술 혁신은 본질적으로 50 대 1의 비율을 갖는 사회공헌이다. 신기술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얻는 쪽은 누구인가? 기술을 개발한 단 하나의 기업인가, 아니면 삶을 개선한 수억 명의 대중인가? 답은 자명하다.

 

경쟁 우위와 구분되는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의 '비교 우위' 개념에 따르면, 모든 일에서 세계 최고인 사람이라도 기회비용 때문에 대부분의 물품을 다른 이에게 구매하게 된다. 적절한 자유 시장 맥락에서의 비교 우위는 기술 수준과 관계없이 높은 고용률을 보장한다.

 

시장은 노동자의 한계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결정한다. 따라서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은 임금을 하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승시킨다. 이는 경제학에서 가장 직관에 반하는 아이디어일 수 있지만 사실이며, 지난 300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인간의 욕망과 필요는 무한하다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견해를 지지한다.

 

시장은 사람들이 생산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복지를 증진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인간을 국가가 사육하는 동물원 동물로 전락시킬 것이다. 인간은 사육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쓸모 있고, 생산적이며, 자부심을 느끼는 존재여야 한다.

 

기술적 변화는 인간 노동의 필요성을 줄이기는커녕, 인간이 생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노동 수요를 늘린다.

 

인간의 욕망과 필요가 무한하기 때문에 경제적 수요 역시 무한하며, 일자리 성장은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

 

시장은 착취가 아닌 생산의 영역이며, 제로섬이 아닌 양의 합(Positive-sum)의 게임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서로의 작업과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구축한다.

 

제임스 카스(James Carse)는 유한한 게임과 무한한 게임을 구분했다. 유한한 게임은 승자와 패자가 갈리며 끝나지만, 무한한 게임은 참가자들이 가능성을 탐구하며 영원히 지속된다. 시장이야말로 궁극의 무한한 게임이다.

 

5. 기술-자본 머신

기술과 시장이 결합할 때 닉 랜드(Nick Land)가 말한 '기술-자본 머신(techno-capital machine)'이 탄생한다. 이는 끊임없는 물질적 창조와 성장, 풍요를 만들어내는 엔진이다.

 

시장과 혁신의 기술-자본 머신은 결코 멈추지 않고 선순환의 나선을 따라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비교 우위는 전문화와 무역을 촉진한다. 가격이 떨어지면 구매력이 확보되어 새로운 수요가 창출된다. 가격 하락은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모든 이, 즉 인류 전체에게 이롭다.

 

인간의 욕망과 필요는 끝이 없으며, 기업가는 이를 충족하기 위해 수많은 인력과 기계를 투입하여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끊임없이 창출한다. 공산주의자들과 러다이트들의 지속적인 비난 속에서도 이 상승 나선은 수백 년간 작동해 왔다. 실제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혼란 이전인 2019년 기준, 지구 역사상 가장 많은 일자리와 높은 임금, 최상의 물질적 생활 수준이 달성되었다.

 

기술-자본 머신은 아이디어의 영역에서 자연선택이 작동하도록 만든다. 가장 뛰어나고 생산적인 아이디어가 승리하며, 이들이 결합하여 더 뛰어난 아이디어를 낳는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기술 기반의 재화와 서비스로 구체화되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치를 세상에 만들어낸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기술적 진보가 스스로를 동력 삼아 발전 속도를 가속화한다는 '수확 가속의 법칙(Law of Accelerating Returns)'을 정의했다.

 

우리는 가속주의(accelerationism), 즉 수확 가속의 법칙을 실현하고 기술-자본의 상승 나선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기술 발전 추진을 지지한다.

 

기술-자본 머신은 반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 친화적인 존재다. 그것은 인류에게 봉사한다. 기술-자본 머신과 모든 기계는 우리를 위해 작동한다.

 

이 상승 나선의 핵심 자원은 지능과 에너지, 즉 아이디어와 이를 실현할 동력이다.

 

6. 지능

지능은 진보의 궁극적인 엔진이다. 지능은 모든 것을 개선한다. 똑똑한 사람과 지능적인 사회는 측정 가능한 모든 지표에서 우수한 성과를 낸다. 지능은 인류의 천부적 권리이며, 이를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확장해야 한다.

 

지능 역시 상승 나선에 있다.

 

첫째, 전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이 기술-자본 머신에 합류하고 있다. 둘째, 인간이 기계와 공생 관계를 맺어 기업이나 네트워크 같은 새로운 사이버네틱스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 셋째, 인공지능이 기계와 인간의 역량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우리는 역량을 상상할 수 없는 높이로 끌어올릴 '지능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

 

인공지능은 현대의 연금술이자 현자의 돌이다. 우리는 모래에 사고력을 부여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만능 문제 해결사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허용만 된다면 인공지능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인간과 기계 지능이 결합하여 새로운 치료법을 찾는 분야에 비하면 의학을 비롯한 수많은 영역은 여전히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다. 교통사고부터 전염병, 전장의 아군 오사 사고에 이르기까지 AI로 해결할 수 있는 수많은 사망 원인이 존재한다.

 

AI 발전의 지연은 인명 피해로 직결된다. 출현이 막힌 AI로 인해 방지할 수 있었던 죽음을 방치하는 것은 살인과 다름없다.

 

우리는 인공지능(AI)만큼이나 증강지능(Augmented Intelligence)의 힘을 믿는다. 지능형 기계는 지능적인 인간을 증강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한다.

 

증강지능은 한계 생산성을 높이고, 이는 임금 상승과 수요 창출, 그리고 새로운 공급 창출로 이어지며 상한선 없는 발전을 이끌어낸다.

 

7. 에너지

에너지는 곧 삶이다. 우리는 에너지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에너지 없는 삶은 어둠과 기아, 고통뿐이다. 에너지가 있기에 우리는 빛과 안전, 온기를 누린다.

 

에너지 공급 역시 상승 나선을 그려야 한다. 에너지는 우리 문명의 근본적인 엔진이다. 에너지가 풍부할수록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고 모두의 삶이 한층 풍요로워진다. 전 세계 인구의 에너지 소비량을 현재 선진국 수준으로 올린 뒤, 전체 에너지 생산을 1,000배 늘리고 다시 인당 소비량을 1,000배 끌어올려야 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 격차는 엄청나다. 이 격차는 에너지 생산을 대대적으로 늘려 모두의 삶을 개선하거나, 에너지 생산을 대폭 줄여 모두의 삶을 악화시키는 방향 중 하나로 줄어들 것이다.

 

에너지 확장이 자연환경의 파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탄소 배출이 없는 무제한 에너지를 제공할 명확한 해법이 있다. 바로 원자력 발전이다. 1973년 닉슨 대통령은 미국의 완전한 에너지 자립을 위해 2000년까지 1,000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독립 프로젝트(Project Independence)'를 제안했다. 닉슨의 판단은 옳았다. 당시에는 건설하지 못했지만, 의지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추진할 수 있다.

 

1953년 토머스 머레이(Thomas Murray) 미국 원자력위원회 위원은 "수년간 무기로 포장된 원자핵 분열은 야만인에 맞서는 우리의 주요 방패였다. 이제 원자핵은 인류의 건설적인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신이 주신 도구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 역시 정확했다.

 

두 번째 에너지 해법인 핵융합이 다가오고 있다. 이 역시 적극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핵분열을 불법화했던 나쁜 아이디어가 핵융합마저 막아서려 할 것이다. 결코 이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기술-자본 머신과 자연환경 사이에는 어떠한 내재적 충돌도 없다. 미국의 1인당 탄소 배출량은 원자력 발전 없이도 100년 전보다 낮아졌다.

 

기술은 환경 파괴와 위기를 해결할 정답이다. 기술적으로 진보한 사회는 자연환경을 개선하지만, 정체된 사회는 환경을 파괴한다. 환경 파괴의 극치를 보고 싶다면 구소련 등 과거 공산권 국가들을 보라. 사회주의는 소련은 자본주의 미국보다 환경에 훨씬 치명적이었다. 아랄해의 비극이 이를 증명한다.

 

기술적으로 정체된 사회는 환경을 파괴하면서 한정된 에너지를 쓰지만, 기술적으로 진보한 사회는 모두를 위한 무제한의 깨끗한 에너지를 누린다.

 

8. 풍요

지능과 에너지를 양의 피드백 고리에 배치하여 둘 다 무한대로 확장해야 한다.

 

이 피드백 고리를 활용해 우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풍요의 척도는 가격 하락이다. 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소비자의 구매력과 실질 소득은 상승한다. 수많은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떨어지면 구매력과 실질 소득, 삶의 질이 폭발적으로 향상된다.

 

지능과 에너지를 '계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저렴하게' 만든다면, 모든 물질적 재화는 연필만큼이나 저렴해질 것이다. 연필은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제조하기 어렵지만, 연필을 빌려 갔다가 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 모든 공산품이 연필처럼 되어야 한다.

 

기술을 적용해 경제 전반의 가격을 가능한 한 0에 가깝게 낮춤으로써, 소득 수준과 삶의 질을 성층권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말은 옳았다. "이 나라가 위대한 점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나 가장 가난한 소비자나 기본적으로 똑같은 것을 구매하는 전통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TV를 보며 코카콜라를 볼 때, 대통령이나 리즈 테일러도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것을 안다. 길모퉁이의 노숙자가 마시는 코크보다 더 나은 코크를 아무리 돈을 많이 주어도 살 수 없다. 모든 코크는 같으며, 모든 코크는 훌륭하다." 브라우저, 스마트폰, 챗봇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세상을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가 말한 '극소화(ephemeralization)', 즉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탈물질화(dematerialization)'로 이끈다. 풀러는 "기술은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하게 해주며, 결국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만든다"라고 했다.

 

따라서 기술적 진보는 모두를 위한 물질적 풍요로 이어진다.

 

기술적 풍요가 가져다줄 궁극의 결실은 줄리안 사이먼(Julian Simon)이 말한 '궁극의 자원', 즉 인간의 폭발적 증가다.

 

사이먼의 견해대로 인간이야말로 궁극의 자원이다. 인구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창의성, 더 많은 아이디어, 더 많은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물질적 풍요는 더 많은 인구를 의미하며, 이는 다시 더 큰 풍요로 이어진다.

 

풍부한 지능과 에너지, 물질적 재화를 고려할 때 지구의 인구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세계 인구는 500억 명 이상으로 쉽게 늘어날 수 있으며, 타 행성에 정착함에 따라 그 이상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들 중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과학자, 기술자, 예술가, 비전가가 배출될 것이다.

 

기술의 궁극적인 사명은 지구상에서, 그리고 우주의 별들 사이에서 삶을 진보시키는 것이다.

 

9.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그러나 우리는 유토피아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토머스 소웰(Thomas Sowell)이 말한 '제약적 비전(Constrained Vision)'을 지지한다.

 

유토피아, 공산주의, 전문가주의의 '비제약적 비전'과 달리, 제약적 비전은 인간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경험적으로 아이디어를 검증하며, 개인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유토피아를 믿지 않지만, 종말론 역시 믿지 않는다.

 

변화는 한계선 상에서 점진적으로 일어나지만, 그 한계가 누적되면 거대한 결과로 이어진다.

 

비록 유토피아는 아닐지라도, 브래드 들롱(Brad DeLong)이 말한 "유토피아를 향해 구부정하게 걸어가는 것(slouching toward Utopia)", 즉 불완전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현실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믿는다.

 

10. 기술적 초인이 되는 길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행위 중 하나다.

 

스스로를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존재로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는 기술 교육뿐만 아니라 실무 경험, 실용적 기술 습득, 팀에 참여하고 리드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 자신보다 더 위대한 것, 집단으로서 더 위대한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망이다.

 

무언가를 만들고, 영역을 넓히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려는 인간 본연의 욕구는 기술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생산적으로 승화될 수 있다.

 

적어도 지구상에서 물리적 개척지는 닫혔을지 몰라도, 기술적 개척지는 활짝 열려 있다.

 

기술적 개척지를 탐험하고 그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우리는 기술과 산업의 로망을 믿는다. 기차, 자동차, 전등, 마천루가 주는 에로스, 그리고 마이크로칩, 신경망, 로켓, 분열된 원자가 주는 관능을 믿는다.

 

우리는 모험을 믿는다. 영웅의 여정을 떠나 현상 유지에 반기를 들고, 미지의 영역을 지도화하며, 드래곤을 정복하고, 공동체를 위해 전리품을 가져오는 여정을 믿는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의 선언문을 변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투쟁 없이는 아름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격적 성격을 띠지 않는 작품은 명작이 될 수 없다. 기술은 인간 앞에 복종하도록 미지의 힘을 공격하는 격렬한 습격이어야 한다."

 

우리는 기술의 주인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기술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피해자 의식은 기술과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삶의 영역에서 불필요하고 자멸적인 굴레다. 우리는 피해자가 아닌 정복자다.

 

우리는 자연을 믿지만, 자연을 극복하는 힘 역시 믿는다. 우리는 벼락 앞에서 공포에 떠는 원시인이 아니다. 우리는 최상위 포식자이며, 벼락조차 우리를 위해 일한다.

 

우리는 위대함을 지향한다. 우리에 앞서간 위대한 기술자들과 산업가들을 존경하며,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으로서, 그리고 집단으로서의 인류를 믿는다.

 

11. 기술적 가치

우리는 야망, 과감함, 집요함, 단호함, 즉 '강함'을 믿는다.

 

업적과 성취를 존중한다.

 

용기와 담력을 믿는다.

 

자격이 갖추어졌을 때의 자부심, 확신, 그리고 자존감을 믿는다.

 

자유로운 사상, 언론, 탐구의 자유를 믿는다.

 

진정한 과학적 방법과 자유로운 토론, 전문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계몽주의적 가치를 지지한다.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의 말처럼 "과학이란 전문가의 무지에 대한 믿음이다."

 

또한 "질문할 수 없는 답보다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을 갖겠다"라는 말을 믿는다.

 

신의 시늉을 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정보를 가진 이들이 결정을 내리는 현장 지식의 힘을 믿는다.

 

다양성을 수용하고 흥미로움을 증진하는 것을 지지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세계로 도약하는 것을 믿는다.

 

주체성과 개인주의를 믿는다.

 

철저한 실력주의를 지지한다.

 

억울함과 분개심을 단호히 거부한다.

 

캐리 피셔(Carrie Fisher)가 말했듯 "분개하는 것은 자신이 독약을 마시고 상대방이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스스로 책임을 지고 극복해 낸다.

 

진화를 믿기에 경쟁을 지지한다.

 

삶을 믿기에 진화를 지지한다.

 

진실을 믿는다.

 

가난보다는 부유함이, 비쌈보다는 저렴함이, 결핍보다는 풍요가 낫다고 믿는다.

 

모두를 부유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저렴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부, 명예, 복수 같은 외적 동기부여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만족감, 팀원 간의 동료애, 더 나은 자신으로 발전하는 성취감 같은 내적 동기부여가 훨씬 더 충만하고 지속 가능하다고 믿는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한 '아레테(arete, 탁월함)를 통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행복/번영)'를 믿는다.

 

기술은 보편주의적이다. 인종, 민족, 종교, 국적, 성별, 성적 지향, 정치적 견해, 키, 체중, 머리숱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전 세계의 인재들이 참여하는 가상의 유엔이 기술을 만들어낸다. 긍정적인 태도와 저렴한 노트북 한 대만 있다면 누구나 기여할 수 있다. 기술이야말로 궁극의 열린 사회다.

 

실리콘밸리의 호의의 선순환(pay it forward) 규범, 이해관계의 일치를 통한 신뢰, 서로의 배움과 성장을 돕는 관대한 정신을 지지한다.

 

미국과 그 우방국들은 약해져선 안 되며 강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력은 경제력(금융력), 문화적 힘(소프트파워), 군사력(하드파워)에서 나오며, 이 모든 힘은 기술력에서 비롯된다.

 

기술적으로 강력한 미국은 위험한 세계에서 선(善)의 동력이 된다. 기술적으로 강력한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와 평화를 지켜내지만, 기술적으로 약한 자유민주주의는 권위주의적 경쟁국에 패배하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기술은 위대함의 가능성과 실현 확률을 높여준다.

 

나 자신, 공동체, 그리고 사회를 위해 잠재력을 만개하고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을 믿는다.

 

12. 삶의 의미

기술낙관주의는 정치 철학이 아닌 물질 철학이다.

 

좌파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좌파인 것은 아니다.

우파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우파인 것도 아니다.

 

우리가 물질에 집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는지의 시야를 넓히기 위함이다.

 

기계가 결정을 대신함으로써 기술이 삶의 선택권을 빼앗는다는 비판이 흔히 제기된다. 이는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기계 사용에 따른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삶을 스스로 창조할 자유에 비하면 극히 일부일 뿐이다.

 

시장과 기술이 주는 물질적 풍요는 종교, 정치, 그리고 사회적·개인적 삶의 방식 선택에 대한 지평을 넓혀준다.

 

기술은 해방을 가져다준다. 인간의 잠재력, 영혼, 정신을 해방한다. 자유로워지는 것, 충만해지는 것,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확장한다.

 

기술은 인간다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평을 열어준다.

 

13. 적

우리에게는 적이 있다.

 

우리의 적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쁜 아이디어다.

 

지난 60년간 우리 사회는 '존재론적 위험', '지속가능성', 'ESG',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사회적 책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사전예방원칙', '신뢰와 안전', '기술 윤리', '위험 관리', '탈성장', '성장의 한계'라는 다양한 이름 아래 기술과 삶 자체에 반하는 대대적인 사기 저하 캠페인에 노출되어 왔다.

 

이 사기 저하 캠페인은 과거 공산주의에서 유래한,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재앙적이며 죽지 않고 좀비처럼 살아남은 악성 아이디어들에 기반하고 있다.

 

우리의 적은 '정체'다.

 

우리의 적은 능력주의 반대, 야망 반대, 노력 반대, 성취 반대, 위대함에 대한 반대다.

 

우리의 적은 국가주의, 권위주의, 집단주의, 중앙집권적 계획, 사회주의다.

 

우리의 적은 관료주의, 거부권 정치(vetocracy), 노인 정치(gerontocracy), 전통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다.

 

우리의 적은 부패, 규제 포섭(regulatory capture), 독점, 카르텔이다.

 

우리의 적은 한때 활력 있고 진실을 탐구했으나 이제는 타협하고 부패하여 무너져가는 기관들이다. 이들은 역기능과 무능함이 극에 달했음에도 지원금을 정당화하고 존재감을 유지하려 발악하며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

 

우리의 적은 상아탑, 현실과 동떨어진 채 추상적 이론과 특권적 신념, 사회 공학에 빠져 있는 전능한 자격 만능주의 전문가들의 세계관이다. 이들은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도 지지 않으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면제받은 채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가지고 신 놀음을 하고 있다.

 

우리의 적은 표현과 사상의 통제이며, 조지 오웰의 '1984'를 지침서처럼 사용하는 현상이다.

 

우리의 적은 토머스 소웰의 '비제약적 비전',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보편적·동질적 국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다.

 

우리의 적은 인류가 불을 처음 사용한 이래 모든 진보를 가로막았을 '사전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다. 사전예방원칙은 서구 사회가 저지른 가장 치명적인 실수 중 하나인 민간 원자력 발전의 대규모 도입 차단을 위해 발명되었다. 이 원칙은 오늘날에도 극심한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고 있다. 이는 심각하게 비도덕적이며, 단호히 타파해야 한다.

 

우리의 적은 감속, 탈성장, 인구 감소다. 엘리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인구 감소, 에너지 축소, 더 큰 고통과 죽음을 바라는 허무주의적 욕망이다.

 

우리의 적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최후의 인간(Last Man)'이다: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아직 가슴속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한다.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그대들에게는 아직 혼돈이 남아있다.

 

아아! 인간이 더 이상 별을 낳지 못할 때가 오리라. 아아! 스스로를 더 이상 경멸할 줄 모르는 가장 경멸스러운 인간의 시대가 오리라...

 

"사랑이란 무엇인가? 창조란 무엇인가? 갈망이란 무엇인가? 별이란 무엇인가?" — 최후의 인간은 이렇게 물으며 눈을 깜빡인다.

 

지구는 작아졌고, 그 위에서 모든 것을 작게 만드는 최후의 인간이 날뛰고 있다. 그의 종족은 벼룩처럼 멸종하지 않는다. 최후의 인간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일한다. 일이 소일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소일거리가 자신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한다.

 

더 이상 가난해지지도, 부유해지지도 않는다. 둘 다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목자도 없고, 한 떼의 무리뿐이로다!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하고, 모두가 같다. 다르게 느끼는 자는 스스로 정신병원으로 들어간다.

 

"예전에는 온 세상이 미쳐있었지" — 가장 영리한 자들이 말하며 눈을 깜빡인다.

 

그들은 똑똑하여 일어난 모든 일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의 비웃음에는 끝이 없다...

 

"우리는 행복을 발견했다" — 최후의 인간들은 이렇게 말하며 눈을 깜빡인다.

 

우리의 적은... 바로 저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결코 저런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좀비 아이디어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그들의 두려움이 무근거하며 미래는 밝다는 사실을 설명할 것이다.

 

그들은 억울함, 비통함, 분노가 뒤섞인 '르상티망(ressentiment)'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신과 소중한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그릇된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다.

 

스스로 만든 고통의 미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모든 이들을 기술낙관주의의 길로 초대한다.

 

망설일 필요 없다.

 

기술, 풍요, 그리고 삶을 추구하는 우리의 동반자가 되어라.

 

14. 미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인류 문명은 발견과 탐험, 산업화의 정신 위에 구축되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 또 그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는가?

 

두려움과 죄책감, 억울함으로 가득 찬 세상인가?

 

아니면 야망과 풍요, 모험이 넘치는 세상인가?

 

데이비드 도이치(David Deutsch)의 말을 믿는다. "우리에게는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 미래는 열려있고 결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단순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가 무엇을 담고 있든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따라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우리는 과거에, 그리고 미래에 빚을 지고 있다.

 

이제 기술낙관주의자가 될 때다.

 

이제, 직접 만들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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