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뉴욕 백수저의 사업 비결" 쉐이크 쉑 버거 창립자 대니 마이어

원문: <Danny Meyer...|The Tim Ferriss Show>

2026.04.01 |
from.
셰르파

Editor: Sherpa

 

혹시 '흑백 요리사'라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아시나요?

요리계에서 입지를 다진 '백수저'팀과

실력은 출중하지만 아직 명성은 높지 않은 '흑수저'팀의 요리 서바이벌을 다룬 시리즈입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밌게 본 시리즈이고,

국내에서도 크게 흥행하며 다이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도 레스토랑으로 성공한 사업가가 있을까 궁금해졌는데요,

역시 존재했습니다.

 

뉴욕에서 미슐랭 레스토랑 여러 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세계적인 버거 체인 '쉐이크-쉑 버거'를 창업하여 상장까지한 요식업계의 거물,

대니 마이어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글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겟습니다:)

 

인물 소개


<출처: 1stDibs>
<출처: 1stDibs>

대니 마이어(Danny Meyer)는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을 넘어 고객이 느끼는 '환대'의 가치를 비즈니스 모델로 승화시킨 현대 외식 산업의 거물로, 1985년 유니언 스퀘어 카페를 시작으로 뉴욕 외식업계의 판도를 바꾼 인물입니다. 그는 직원을 최우선으로 아끼는 마음이 고객 서비스로 이어진다는 '깨어있는 환대' 철학을 바탕으로 수많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성공시켰습니다.

 

기업 소개


<출처: ushg.org>
<출처: ushg.org>

유니언 스퀘어 호스피탈리티 그룹(USHG)은 대니 마이어가 설립한 멀티 브랜드 외식 기업으로, 파인 다이닝의 품격과 캐주얼 식당의 접근성을 결합한 독보적인 서비스 문화를 통해 뉴욕을 대표하는 미식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이 그룹에서 이벤트성 카트로 시작해 글로벌 체인으로 거듭난 쉑쉑버거(Shake Shack)는 프리미엄 식재료와 따뜻한 환대 서비스를 패스트푸드에 접목하며 전 세계적인 '파인 캐주얼' 열풍을 주도했고, 현재는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진출하여 단순한 버거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Editor's Pick!


  • “나도 몰라.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넌 살아 있는 시간보다 죽어 있는 시간이 지독하게 더 길 거야. 그런데 왜, 단 한 톨의 열정도 없는 일을 하려고 하냐?”
  • “Always Be Collecting Dots so you can Always Be Connecting Dots.” 그러니까, 항상 점들을 수집해야, 나중에 그 점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다는 뜻이죠.
  • 제가 “사업을 배운다”라고 말할 때, 그건 이 다섯 이해관계자 모두가 당신의 성공을 응원하도록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을 뜻합니다.
  • 해바라기는 햇빛이 비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마찬가지로, 직원들은 “관심과 에너지”가 향하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가상 인터뷰

본 아티클은 팟캐스트 <Danny Meyer...|The Tim Ferriss Show>의 내용을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편집한 글임을 밝힙니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니. 저는 마이알리노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마이알리노는 작은 돼지, 돼지 새끼라는 뜻이죠. 당신의 별명이자, 레스토랑 이름이기도 한데, 여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스무 살쯤이었을 때, 아버지를 위해 일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여행업에 종사하셨고, 항공사 직원과 그 가족들을 위한 단체 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제 형제자매와 저는 각각 스무 살이 되는 해에, 아버지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도시에서 투어 가이드로 일해 볼 수 있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로마에 있게 되었고, 그 경험은 제 인생 전체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들 중 하나였습니다. 결국 제가 어떤 커리어를 걷게 될지를 방향 짓는 계기가 되었죠. 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까칠한 관광객들을 태우러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조종사, 승무원, 수하물 관리 직원들, 그러니까 모두 항공사 직원들이었죠.

 

원래 제 임무는 이분들을 카메오 공장이나 바티칸 박물관 같은, 일정표에 적힌 관광지로 모시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 일이 음식에 대한 경험을 쌓을 기회로 보이더군요. 그래서 계속해서 트라토리아’(캐주얼한 이탈리아 레스토랑)들을 찾아다녔어요.

<트라토리아의 모습, 출처: Tripadvisor>
<트라토리아의 모습, 출처: Tripadvisor>

 

그 과정에서, 제가 손님을 데려올 때마다 머릿수당 1,000리라를 주겠다고 제안하는 트라토리아 세 곳을 찾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주 좋은 식당들에서 공짜로 식사하고, 손님들을 데려다준 뒤에는 주머니에 25,000리라를 넣고 나올 수 있었죠.

 

그렇게 제가 드나들던 식당 중 하나가 바로 라 타베르나 다 조반니라는 곳이었습니다. 그 식당 사람들은 제 아버지 회사에서 온 아들이라는 걸 알고, 저를 마이에리노’, 그러니까 작은 마이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별명이 꽤 귀엽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해 여름이 지나가는 동안, 제 미숙한 귀로는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마이에리노가 어느새 마이알리노’, 그러니까 작은 돼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이유, 즉 제게 농담을 건네기 시작한 이유는, 제가 그 식당에 갈 때마다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마이알리노, 즉 새끼 돼지 통구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훗날 제 50번째 생일이 되었을 때, 제 아내 오드리는 생일 선물로 마이알리노라는 로고를 만들어줬어요. 어린 시절의 제 사진 아래에 작은 돼지 그림이 들어가 있었죠. 그 로고가 너무나도 멋져서, 나중에 새 레스토랑 이름을 마이알리노라고 짓게 되었습니다. 저를 작은 돼지라고 부르든 작은 마이어라고 부르든, 둘 다 괜찮습니다. 저는 둘 다 좋아하거든요.

 

Q. 그런 일화가 있었군요. 제가 알기로는 대니, 당신의 인생에 예상치 못한 변곡점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어느 시점에서는 변호사를 준비하고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거대한 레스토랑 그룹과 상장한 버거 회사를 세웠습니다. 그러한 변곡점들에 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맞습니다. 저는 정치학 학위를 가진 상태였고, 제가 정치학을 전공한 이유는 1970년대를 통째로 어린 시절로 보낸 한 사람으로서, 미국 한가운데에 있는 미주리주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공화당 지지자였고, 어머니는 민주당 지지자였어요. 우리 집에서는 저녁 식탁에만 앉으면 항상 정치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이야기라는 건, 사실상 논쟁이나 토론에 더 가까웠죠. 주제는 워터게이트일 수도 있었고, 베트남전일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저녁 식탁에서 유일하게 합의할 수 있었던 건 뭘 먹을까?” 정도뿐이었어요. 음식이야말로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저는 세 남매 중 둘째로서, 모두가 기분 좋게 느끼고, 서로를 하나로 모으고, 가족을 붙들어 두는 역할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매일 저녁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당대에 벌어지는 사건들에 완전히 매료되었죠. 정치학 학위를 마치고 나서는, 정치나 언론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몇 년 동안은, 일단 돈을 벌기 위해 영업사원으로 일했습니다. 제가 팔던 건, 좀 웃기게 들리겠지만, 도둑을 막기 위한 전자 태그였어요. 잘나가는 영업사원으로써 돈도 꽤 벌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네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은 아니잖아.” 그래서 저는 변호사 시험을 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과정 전체가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요. 제 성향과 완전히 반대되거든요.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가 세상에서 최악의 변호사가 되었을 거라고 말할 겁니다.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누군가와 싸워야지, 누군가를 공격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일어나지 않거든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함께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죠.

 

시험 전날 밤은 금요일이었고, 저는 뉴욕의 한 이탈리안 식당에서 이모, 삼촌,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제 기분은 정말 엉망이었어요. 무엇보다 시험을 보고 싶지 않았고, 변호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거든요. 제 옆 테이블 사람들은 맛있는 파스타를 먹고 와인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출처: Unsplash>
<출처: Unsplash>

그러다 어느 순간, 제 삼촌 리처드가 고개를 돌려 제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기분이 구겨져 있는 거냐?” 그래서 제가 말했죠 내일 아침에 시험을 치러 가야 해서요.” 그러자 삼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 그거야 당연하지. 넌 변호사가 되고 싶잖아, 그렇지?”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사실아니에요.” 그 순간 삼촌은 분명 수저를 저에게 던지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삼촌은 제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죠.

 

네가 도대체 얼마나 오래 죽어 있을지, 그거 생각해 본 적 있냐?” 저는 대답했죠. “아니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요. 왜요?”

 

그러자 삼촌이 말했습니다. 나도 몰라.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넌 살아 있는 시간보다 죽어 있는 시간이 지독하게 더 길 거야. 그런데 왜, 단 한 톨의 열정도 없는 일을 하려고 하냐?”

 

저는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답했어요. “아마 다른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자 삼촌은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습니다.농담하지 마. 네가 평생 입에 달고 산 게 뭔지 내가 모를 줄 알아? 네 인생 내내 네 입에서 나온 건 음식 이야기랑 식당 이야기뿐이었어.”

 

제가 되물었습니다. “그래서요? 평생 식당에 손님으로 다니기라도 하라는 거예요?”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었는데, 정작 저는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삼촌이 말했죠 아니, 이 바보야. 네가 식당을 열어야지.”

 

그때까진, 식당을 연다는 게 해도 되는 진짜 진로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대학에서는 누구도 그런 진로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거든요. “식당을 열어라.” 같은 말은 들어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Q. 그렇죠. 지금은 스타 셰프와 레스토랑 경영에 대한 전문적인 기관과 코스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변호사 시험은 어떻게 하셨나요?

 

그렇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그다음 날 아침 실제로 시험장에 갔습니다. 하지만 단 한 군데의 로스쿨에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바로 그다음 월요일 아침, 저는 트리니티 칼리지 시절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연락했습니다.내가 식당을 하나 열 거야. 넌 돈을 맡고, 나는 음식을 맡는 거지. 어때?”

 

그때 친구는 한 은행의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흔쾌히 수락하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뉴욕 레스토랑 스쿨에 등록했습니다. 입학 조건이라고는 150달러만 내면 되는 그런 학교였어요.

<뉴욕 레스토랑 스쿨의 홍보 광고(1990), 출처: The Duke Mitchell Film Club>
<뉴욕 레스토랑 스쿨의 홍보 광고(1990), 출처: The Duke Mitchell Film Club>

 

우리는 레스토랑 경영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두 번 수업을 듣고서는 곧바로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부모님께 은행 일을 그만두고 식당 일을 해보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말해 버린 게 실수였던 거죠. 하지만 저를 혼자 남겨두는 게 미안했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은행에 식당을 고객으로 둔 곳이 딱 한 군데 있어.”

 

당시만 해도, 은행들은 레스토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뒷걸음질을 치곤 했기 때문에, 그건 굉장한 일이었어요.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원한다면, 내가 그 식당과 면접을 볼 수 있게 도와줄게. 어떻게 할래?” 저는 좋다고 했고, 그렇게 면접 자리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채용되었고, ‘점심시간 보조 매니저라는 직책을 달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직책이었지만요.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예약 전화를 받고, 점심 예약장을 정리하고, 출입문 앞을 지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단 7개월 만에 저는 이 일이 정말 좋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레스토랑에서 지금 제 아내를 만났고, 그 동네에서 이후에 여러 개의 제 레스토랑을 열었죠. 그 모든 것이 제 인생의 주요한 전환점이었어요.

 

Q. 점심시간 보조 매니저 일을 하며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군요. 그리고 그 많은 변화 중 단 하나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생에서 많은 일들이 그런 식으로 우연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트리니티 칼리지에 가지 못했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곳에서 바로 그 친구를 만났으니까요.

 

그리고 아버지가 로마에서 여행사를 운영하지 않았다면 저는 트리니티 칼리지에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연히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 트리니티 칼리지의 변호사가 아버지와 동석하며 아드님이 트리니티 칼리지에 진학하는 것을 고려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물어봤거든요.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그 학교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인생의 방향을 바꾸곤 합니다. 중요한 건, 그런 순간들을 알아차리고, 운 좋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면 그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정말 그렇습니다. 모든 사건이 우연히 일어났지만, 그 안에서 당신의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착실히 쌓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당신의 그러한 경험을 파고들 질문들을 준비해 봤습니다. 먼저 당신이 영업사원이었을 때로 돌아가 보죠. 그 당시 훌륭한 실적을 냈다고 들었는데, 그때 쌓은 노하우나 원칙이 있을까요?

 

먼저 한 가지 짚고 갈 점이 있습니다. 제가 영업을 했던 시기에는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이었어요. 그런데도 저는 엄청난 양의 조사를 했습니다. 제가 영업을 하려는 사업뿐 아니라, 직접 만나게 될 사람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많이 알고 가려고 했죠.

<출처: The New York Times>
<출처: The New York Times>

 

저는 주로 소매업자들에게 상품 도난 방지 태그를 팔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 소매 유통 업계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서로 친척이거나, 혹은 일종의 가족 네트워크로 묶여 있다는 사실 말이죠.

 

특히 시리아계 유대인 커뮤니티가 아주 크게 형성되어 있었어요. 저는 자연스럽게 실제 가족이든, 느슨한 관계이든, 누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그려보는 눈을 키우게 됐습니다. 누가 누구를 알고 있는지, 어떤 인맥 구조가 있는지를 파악하려고 애썼고, 그걸 가능한 한끝까지 활용해 보려 했죠.

 

그 과정에서 저는 아주 중요한 교훈 하나를 얻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팀에 가르치는 내용인데, 우리는 그걸 ABCD라는 줄임말로 부릅니다. “Always Be Collecting Dots so you can Always Be Connecting Dots.” 그러니까, 항상 점들을 수집해야, 나중에 그 점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다는 뜻이죠.

 

사람들은 그들이 느끼기에 딱 당신이 자신들에게 쏟는 관심의 정도만큼만 당신에게 관심을 돌려줍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상대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그만큼의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저는 이런 일을 시스템을 설계한다라거나 게임을 한다라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순수하게 상대에게 관심을 두고, 호기심을 품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 팁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호기심이라고 말할 겁니다.

 

Q. 이제, 로스쿨에 지원하지 않겠다는 대화를 어떻게 풀어 갔는지, 그리고 그때 부모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는지로 넘어가 보죠.

 

처음에는 솔직히 아주 쉬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사실을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거든요. 그냥 살짝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마침내 셰프가 되고 싶다고 말할 용기를 내게 되었어요. 부모님은 제가 요리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계셨거든요.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죠. “레스토랑 경영자가 되고 싶다고 말할 용기는 없으면서, 왜 셰프가 되고 싶다고 말할 용기는 있었지?” 실제로 그때 저는 셰프가 되고 싶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셰프들이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고요.

 

아버지는 어느 정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보다는 약간 덜 긍정적이었지만, 저는 어쨌든 해보기로 했죠. 그때 아버지는 레레 에 샤토 소속의 동료 두 명과 저를 연결해 주셨습니다.

 

제가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죠. “이탈리아 음식은 기본적으로 재료 세 가지만으로 요리한다. 그게 이탈리아 요리의 천재성이기도 하지. 하지만 정말 제대로 요리를 배우고 싶다면, 프랑스로 가야 한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둘 다 가볼게요.”

 

이후 저는 로마, 볼로냐, 사르데냐, 밀라노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한 레스토랑 경영자와 저를 연결해 주었습니다. 제가 레스토랑에 도착하기 바로 전날, 그 레스토랑은 미쉐린 2스타 중 하나를 잃었습니다. 프랑스에서 미쉐린 스타는 모든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제가 도착했을 때 주방 분위기는 완전히 침울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주방 인력 몇 명이 그만두고 떠난 겁니다. 그들은 이력서에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이라는 경력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거죠. 덕분에 저는 갑자기 여러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샬롯을 다지거나, 굴을 까거나, 비둘기 깃털을 뽑아 손질하는 일 같은, 꽤 큰 기회들이었죠.

 

Q. 여기서, ‘공짜로 일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당신이 돈을 벌며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론 무급으로 일하거나 기회를 얻기 위해 돈을 내며 일을 했었죠. “공짜로 일한다라는 선택에 깔려 있던 논리와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우리 업계에서는 이렇게들 말합니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이 일을 평생의 커리어로 만들고 싶다면 최고에게 배워야 한다고요. 그래서 기꺼이 무급으로 일하려 하는 겁니다. 저는 경험을 쌓기 위해 여러 업장을 돌았고, 대부분은 무급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뉴욕의 레스토랑에서조차, 저는 주당 250달러밖에 받지 못했어요. 지금 뉴욕에서는 웨이터가 반나절만 일해도 그 정도는 벌 겁니다. 그러니까 웃음이 나오는 수준의 금액이었죠.

<출처: Food & Wine>
<출처: Food & Wine>

 

그래도 제가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이겁니다. 첫 레스토랑을 연 뒤 두 번째 레스토랑을 열기까지 10년이 걸렸고, 지금은 전 세계 어딘가에서 일 년에 두 개 이상의 쉐이크쉑을 여는 수준이 되었죠. 이 과정을 통해 제가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은, 조금 느리게 가는 것도 큰 장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충분히 자라고, 뿌리를 내리는 것 말이죠.

 

기술의 발전으로 삶의 속도가 너무 빨라졌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일에 시작, 중간, 끝이 있어야 하고, 그 모든 게 30분짜리 시트콤 안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어야 한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돈을 받든, 받지 않든, 스스로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정말 깊이 배운다면, 그리고 겉핥기만 하다가 너무 빨리 옮겨 다니지 않는다면, 결국 엄청난 보상으로 돌아온다고요.

 

물론 두 번째 레스토랑을 여는 데 10년이 걸린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제가 파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십 대 때 한 번, 스무 살 무렵에 또 한 번, 아버지가 파산을 겪는 걸 지켜봤습니다. 아버지의 두 차례 파산은 늘 확장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올랐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확장은 곧 파산이다. 그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죠.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아. 두 번째 레스토랑을 여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그래서 오랫동안 확장을 전부 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에는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그 기간 저는 제 사업을 진짜로배웠습니다. 사업의 구석구석까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익혔죠. 이게 아마도 우리가 두 번째 쉐이크쉑을 열기까지 5년이나 걸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확장 속도를 너무 빠르게 가져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리하게 키우다가 나쁜 일이 벌어지는 걸 원치 않았거든요.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사업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말 잘 알게 된 거죠.

 

Q. 이 질문은 조금 순진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배운다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요?

 

모든 사업에는 다섯 가지 이해관계자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업을 배운다라고 말할 때, 그건 이 다섯 이해관계자 모두가 당신의 성공을 응원하도록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을 뜻합니다. 그게 바로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상태일 거예요.

 

그리고 이 다섯 이해관계자 모두가 당신의 성공을 응원하게 만들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은, 먼저 당신이 그들의 편이라는 걸 확신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첫 번째 이해관계자는 직원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가 모을 수 있는 최고의 팀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아는 것이 출발점이죠.

<대니의 팀이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출처: The New York Times>
<대니의 팀이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출처: The New York Times>

 

두 번째는 손님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 그냥 고객군이 아니라, 실제로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 아는 걸 말합니다. 저는 지금도, 정말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매일 밤 같은 루틴을 지킵니다. 그날 밤, 우리 레스토랑의 모든 예약 리포트를 전부 읽으면서 내일 우리 가게에 누가 오는지를 확인하는 겁니다.

 

그리고 밤을 좀 더 늦게까지 새울 수 있는 날에는, 영업이 끝난 뒤 작성되는 서비스 리포트도 읽습니다. 그걸 못 하면, 다음 날 아침 첫 일로 리포트를 보죠. 그러면서 그 손님들의 경험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확인하고, 필요한 곳에는 피드백을 남깁니다.

 

지금도 저는 여전히 점들을 연결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어요. 어떤 손님과 어떤 손님이 서로를 아는지, 이번에 책을 낸 손님이 있다면 그 책을 사서 홀 매니저 데스크에 올려두었다가 사인받을 수 있게 해 드리는 식으로요. 저는 이런 것들에 여전히, 예전만큼이나 큰 관심이 있습니다.

 

세 번째 이해관계자는 바로 지역사회입니다. 우리가 사업을 하는 지역사회에 대해서도 깊이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 동네에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으면서, 동네가 당신의 성공을 응원해 주길 바라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공급업체들입니다. 공급업체를 잘 알아야만, 최고의 재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원재료가 형편없는데, 좋은 비즈니스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이건 사실 제 할머니에게서 배운 교훈이기도 합니다.

 

저는 할머니 집에서 먹던 요리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할머니께 토마토소스 레시피를 알려 달라고 했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레시피는 알려 줄게. 하지만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네 소스는, 네가 쓰는 재료 중 가장 형편없는 재료의 수준을 절대 넘지 못한다는 거야.

 

그리고 두 번째로, 재료 자체의 수준은 네가 그 재료를 사 온 뒤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도 기억해라. 그러니까 제일 좋은 토마토를 사야 한다. 설령 제일 좋은 토마토를 샀다 하더라도, 그걸 냉장고 구석에 던져 넣어 멍들게 만들면, 토마토가 가진 당도가 다 날아가 버린다. 재료는 제대로 대접해야 해.”

 

사실 이건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채용에 관한 최고의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은 최고의 토마토를 골라야 하고,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전체 소스의 맛을 결정하죠. 저는 인생에서 배운 수많은 교훈이 사업을 배우는 과정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Q. 좋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직원, 고객, 지역사회, 공급업체 다음으로 신경 써야 할 대상은 어디인가요?

 

당연히 투자자입니다. 그리고 이 다섯 주체를 모두 비슷한 우선순위로 돌봐야 합니다. 제가 대학에서 딱 한 번 들었던 경제학 수업, 이콘 101을 떠올려 보면, 프리드먼은 이런 식으로 말했죠. “투자자를 먼저 챙기면, 나머지는 자연히 따라온다.”

 

한편으로,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맡았던 첫 일 중 하나는 존 앤더슨의 1980년 대선 독자 출마 캠페인에서 시카고 쿠크 카운티 책임자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조직원들 100%가 모두 자원봉사자였죠. 대부분은 저보다 나이가 많았고, 저는 겨우 22살이어서 돈으로 동기 부여할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누군가가 봉사로 일하고 있을 때,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 큰 목적을 제시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이 더 큰 생각에 공감하기 때문에 함께 한다.” 이 감각이 있어야 모두가 움직입니다.

 

저는 이때 배운 감각을,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할 때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물론 그때는 모두 급여를 받는 직원이었지만, 적어도 절반은 저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저는 그때 리더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보스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저는 우리 직원들을 일종의 자원봉사자처럼 대합니다. 진짜로 무급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당연히 급여는 받죠. 하지만 제 기준에서는,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곳에서도 최소한 25곳쯤은 입사 제안받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우리와 함께 일하기로 한 건 자신의 재능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자원한 것이라고 보는 거죠. 그렇다면 저는, 그들이 여기서 일해야 할 더 높은 이유더 큰 의미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사업의 첫 번째 이해관계자는 언제나 직원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걸 하나의 순환 구조, 즉 선순환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건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줄을 세우는 경주가 아닙니다. 직원이 맨 꼭대기에 있고, 투자자가 맨 아래에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출처: Eater NY>
<출처: Eater NY>

 

대신, 하나의 입력이 다음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또 다른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는 원형의 순환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정말 행복한 손님을 만들고 싶다면 행복한 직원들을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하죠. 그래야 손님이 행복해질 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마찬가지로, 행복한 투자자를 만들고 싶다면, 프리드먼 씨. 투자자 만족은 결과물이어야 합니다. 행복한 손님과 건강한 사업이 만들어낸 결과말이죠.

 

그리고 궁극적으로, 직원들을 진짜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결국은 행복한 투자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승진과 인상, 성장의 기회가 생기니까요. 저는 한때 아무도 승진하지 않고, 누구도 연봉이 오르지 않는 회사를 운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건 결코 행복한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 회사를 문 닫을 수밖에 없었어요.

 

Q. 결국 이해관계자들을 순환 관계로 보고 그들을 섬겨야 하는군요. 그중에서도 대니 당신은 직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직원 관리에 대한 당신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이 역시 할머니에게서 배운 정원 이야기입니다. 제가 세인트루이스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제가 가장 좋아하던 시기는 3월과 4월이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봄이 비교적 빨리 오는데, 그때가 바로 할머니가 꽃밭을 가꾸기 시작하는 시기였거든요.

 

매년 봄이 되면, 할머니는 저를 불러 함께 여름 꽃밭을 심자고 하셨습니다. 보통 3월 말쯤이었고, 아마 제가 여섯 살 때부터 그 일을 도왔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제게 작은 정원 장갑을 씌우고, 먼저 어떤 게 잡초인지부터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잡초를 골라내 뽑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아홉 살쯤 되었을 때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이제 진짜 정원을 잘 가꾸는 비법을 알려 줄게.” 저는 예전처럼 성실하게 잡초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제 손을 살짝 잡아떼어내고는, 무엇인가가 담긴 물뿌리개를 제 손에 쥐여 주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죠. “이제 꽃에 물 주는 법을 알려 줄게. 진짜로 잡초를 없애고 싶다면, 꽃에 물을 줘야 한단다. 꽃들이 무성해지면 그늘을 만들어서, 잡초가 자라는 데 필요한 햇빛을 가려주게 되거든.

 

저는 그게 인생 최고의 비즈니스 수업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커리어의 첫 10년 동안 거의 전적으로 문제 직원들을 어떻게 동기 부여해서 더 잘하게 만들지에만 집중했어요. 그러니까 잡초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직원들은 해바라기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해바라기는 햇빛이 비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마찬가지로, 직원들은 관심과 에너지가 향하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제가 모든 관심을 잡초에만 쏟으면, 조직 전체의 중력도 그쪽으로 끌려갑니다. 할머니의 말은 결국 이런 뜻이었어요.

 

꽃에 물을 주면, 꽃들이 무성해져서 잡초를 가려버린다. 문제에만 매달리기보다, 이미 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써라.” 제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서 그냥 지나쳤던, 잘하는 직원들 말이죠.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면, 결국 그들이 정원의 캐노피가 되어 잡초를 스스로 밀어내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출처: NY Post>
<출처: NY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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