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찻잔 속의 태풍 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오늘 작은 일에 감정의 기복이 크게 일어나는 제 스스로를 발견하며, 이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이 표현은 '당사자에게는 매우 큰 일로 느껴지지만 외부에서 볼 때는 매우 작은 사건'을 의미하는 영어식 속담입니다.
이 속담은 '어떤 일 자체의 규모나 영향이 느껴지는 것만큼 그리 크지 않다'라는 의미로 주로 쓰이지만, 저는 이번에 찻잔 자체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왜 찻잔에 태풍이 칠까요? 그 이유는 찻잔의 그릇이 작기 때문입니다.
태풍에는 잘못이 없습니다.
찻잔의 그릇이 작았기 때문에 표면의 파동이 찻잔의 면과 면을 치면서 더 증폭돼 나간 것입니다. 만약, 이 찻잔의 그릇이 대접만했다면, 이 파동은 이 면에서 저 면으로 이동하는 동안에 자연스레 소멸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퇴사. 그리고 기다림
저는 현재 약 9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주님 앞에 머무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배울것만 배우고 내 사업을 시작해보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고, IB 부문으로 옮겨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고 나서는 계속 때를 기다려왔던 터라, 다음 단계로 나가란 마음을 받았을 때 그것을 바로 실행에 옮기긴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음 받은 다음날 바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퇴사 한 후. 주님이 다음 단계에 대해 뭔가 말씀해 주셔야하는데 어떤 음성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이것 저것들을 알아보고 준비하려 했지만, 회사를 그만둘 당시에 가졌던 것 만큼의 강한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지나다 보니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뭐라도 성취해서 내 가치를 입증해야할 것 같고,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고, 사회에서 뒤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근데, 사업할 그릇은 준비되었니?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점차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나는 왜 사업을 하려고 하지?
주님의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혹은 각종 미사여구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사업을 하고자 했던 나의 진짜 동기는 나의 왕국을 건설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 해봤자 결국 그 성과는 회사의 몫이니, 오롯이 나에게 쌓이는 것. 내가 오너로써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포지션을 갖고 싶다.
사업은 결국 사람과 함께 하는 건데 나는 사람을 품을 준비가 되어있나?
직장을 다닐 때는 사회에서 만난 누군가를 품는 다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는 경쟁 사회이고, 내가 퍼포먼스를 보이고 치고 나가는 만큼 나에게 더 큰 기회가 찾아온다.' 라는 생각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나만 생각했습니다. 내 성과가 중요했고, 내가 어떻게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을지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인정을 얻어가며 나는 능력이 있고 남들과는 다르다고 스스로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들을 보내며 점차 내 동기가 무엇인지, 내 그릇이 얼마나 작았는지 그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며, 이 땅에서 그분의 뜻을 행할 사람을 찾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선발 기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방식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자격있는 자를 선택하시는 것이 아닌, 선택된 자를 자격있게 하신다."
어린 목동 다윗을 선택했던 주님은 그의 외면이 아닌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주님을 향한 중심에 주목 하셨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 이후에, 전쟁영웅으로, 왕의 사위로 잠깐 승승장구 하는 것처럼 보였던 다윗은 사울의 박해를 피해 10년간의 처절한 광야 훈련에 들어가게 되며 그 곳에서 비로소 한 나라의 왕으로써의 그릇이 준비되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찻잔 속의 태풍을 보면서 드는 생각
만약, 내 그릇이 찻잔 만하다면, 앞으로 닥칠 모든 일이 태풍과 같이 느껴질 것 입니다. 조그마한 시험이 하나 던져질 때, 작은 나의 그릇 안에서 그 문제는 파동치며 증폭되어 버릴 것입니다.
주님이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위임하기 전에는 먼저 그의 중심을 보시고, 그가 그것을 받을 만한 그릇으로 준비 되었는지를 살펴보실 것 같습니다.
만약 그의 그릇이 간장 종지 만하다면, 어떻게 주님이 그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에게 하나님의 소중한 영혼들을 맡기실 수 있을까요.
사업을 한다는 것은. 주님이 최대 주주로 계신 회사에 고용된 경영자로서 경영을 맡는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회사는 주주를 위해 존재하고, 경영자의 역량은 주주의 이익을 얼마나 대변하는 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위 비유는 꽤나 적절한 비유 같습니다.
나는 주주인 주님의 사업체를 관리하는 경영자로 잠시 있을 뿐. 그 소유권과 최종 결정권은 주님께 있고, 이해관계가 주님께 집중되어야 된다는 구조로 생각해보면. 앞서 제가 얘기했던 저의 동기와 모습들은 주님의 사업을 맡기에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얼룩지고 조그마한 그릇처럼 보이네요.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고 있고, '금융으로써 사람들의 불안을 해결해 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구상하고, 시장 리서치를 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펀딩 방법도 이리 저리 알아보고 있었구요.
그런데, 다 떠나서.
네 그릇이 준비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맞닥뜨리고 다시 한번 주님께 무릎 꿇게 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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