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일라씨와 (비하인드)담화의 박일아입니다.
본격적인 연말이 시작되었습니다.
2022년이 여러분께는 어떤 한 해로 기억되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최근에 편지 한통을 받고 답장을 쓰면서
제 일 년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시간을 내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분은
모기영 이사진 중 한 분이신 배재우님 입니다.
지난 4년간 얼핏얼핏 이사님의 생각을 들어오긴 했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깊은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배재우 저는 CBS에서 라디오 피디로 근무하다가 올해(2022년) 1월 말에 정년퇴직을 한 전직 피디입니다. 퇴직한 후에는 조그마한 서재(상우서재)를 마련하고 매일 이곳에서 책과 유튜브 등을 보고 또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경제력은 제로입니다.
- 모기영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배재우 제가 CBS에서 ‘라디오 광장’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모기영 출범의 주역이신 최 은 선생님이 ‘최 은의 문화칼럼’이라는 타이틀로 매주 영화를 중심으로 책과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대해 소개를 해주셨어요. 그 과정에서 최 선생님으로부터 모기영 출범에 대한 고민도 듣고 또 출범 이후에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합류가 이루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인연이 맺어진 것이죠.
- 1회부터 “모기영은 잘 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들었어요.
배재우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 사랑의 대상은 세상 전체입니다. 교회에만 특정된 것이 아니죠. 모기영은 ‘모두를 위한’이란 타이틀에서 자연스럽게 이 말씀을 품고 시작했어요. 요즘 한국교회가 세상의 비난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사랑’을 교회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선포하면서 독선적인 태도를 형성하고 혐오의 문화를 배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오만한 태도에서 벗어나 하나님 선교의 도구로서 겸손한 종의 자리로 내려와야 합니다. 모기영의 슬로건이 ‘혐오 대신 도모, 배제 대신 축제!’잖아요? 이것이 오늘의 일그러진 한국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다시 말해 모기영에는 출범 때부터 오늘의 시대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잘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 지난 4년간 참여해주셨던 모기영의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시간)은 무엇일까요?
배재우 1회 모기영에서 상영한 영화 중에선 <어 퍼펙트 데이>, <하루>, 그리고 3회 영화제에선 <행복한 라짜로>, 올해 4회 영화제에선 <너에게 가는 길> 등이 기억에 남는 필름입니다. 특히 올해 폐막작으로 상영된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의 현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인식하게해 준 귀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모기영에서 상영된 작품들을 보면 많은 경우 ‘내가 좁은 세상에서 살았구나’ 하는 자극을 줍니다. 조금씩 인식의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게 해주죠.
그리고 기억에 남는 시간은 1회 모기영 때 딸, 아내와 함께 서울극장 앞 포장마차 거리에서 사흘을 연속 포장마차 음식을 즐기며 대화를 나눈 때입니다. 모기영을 통해서 이렇게 극장 안팎에서 추억을 새겼습니다.
초겨울 가족들과 영화보고
포장마차에서 대화라니!
첫 회 때 기억 정말 낭만적입니다.
- 오랫동안 CBS PD로 계셨는데요, 기독교계의 언론인으로서 지난 30년간 일하면서 느낀 바를 간략하게 요약하신다면?
배재우 제가 1985년에 CBS에 입사해서 올해 은퇴할 때까지 36년 동안 재직했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폐합(1980년)으로 보도와 광고기능이 중단된 상태였죠. 방송사의 생계가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헌금을 통해 유지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절망의 시간 속에서 당시 사장이셨던 고 김관석 목사님은 과감하게 기능 정상화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CBS를 통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질서를 꿈꾸셨습니다. 당시 언론의 구조는 직업 기자나 피디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일반시민은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먹던 상황이었는데, ‘아래로부터의 언론질서’를 제시하면서 대안언론, 대항언론의 역할을 CBS가 수행하기를 소망하셨던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 ‘월요특집’이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요즘은 디지털 미디어의 놀랄만한 확장으로 언론, 또는 커뮤니케이션 질서가 직업 언론인, 방송인이 독점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당시 고 김관석 목사님의 시야가 예언자적이었던 것입니다. 언론인은, 특히 기독교 언론인에게는 예언자적인 시야와 사명감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언론의 정신과 역할이 오히려 위축되고 퇴보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신문자료로만 보던 ‘언론통폐합’ 시절
CBS에서 근무하셨다니
갑자기 역사적 증인을 보는 듯한 마음이...(😲😉)
어려운 부침 가운데서 고민했던
한 번 한 번의 선택들이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생각도 들고요.
- 한국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거 같습니다. 배재우 이사님께서는 은퇴 이후의 삶을 즐기시는 거 같은데요, 은퇴를 준비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배재우 저는 은퇴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퇴 후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간에 대한 감각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조직생활을 할 때는 매 순간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됐었습니다. 이런 태도가 은연중에 ‘현재’의 삶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현재의 시간을 오지도 않은 미래에 미리 흘려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은퇴 이후에는 시간을 현재에 가두어두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계절을 느끼고 자연과 사람을 보다 천천히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방송을 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얘기를 많이 다뤘는데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이를테면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이웃이 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은퇴 후에는 작은 실천이지만 세월호 기도회를 비롯해 이분들 곁에 조용히 서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은퇴를 앞둔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은퇴 후가 축복의 삶이 되려면 은퇴 전에 먼저 재무계획을 잘 설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삶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회복하는 것도 은퇴 이후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조직생활을 할 때는 자신의 건강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 오랜 시간 앓아 온 천식과 당뇨를 위해 긴 시간 동안 산책하려고 노력합니다.
크리스천들에게는 은퇴 후에 본격적으로 성서연구를 해보라는 것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신앙훈련이 주로 교회나 목회자에 의해 top-down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제부터는 시간을 들여 머리와 가슴으로 성서를 읽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의 자세로 신앙을 리셋하는 것이죠. 요즘 성서에 대한 해설서가 많이 출간돼있어서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불교에서는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을 쓰는데 기독교에도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저는 직업(직장)을 벗어나면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보상(급여)에 구애됨 없이 가치를 우선해서 활동할 수 있게 되니 에드워드 사이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마추어의 자리’에 와있게 된 것이죠. 아마추어의 자리는 전문직업인과 비교할 때 순수하고 자유가 많습니다.
모기영에 참여하는 저의 자세도 아마추어의 마음입니다. 모기영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공감하고 또 작은 힘이지만 모기영의 자리에 서서 흐름을 거세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즐겁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은퇴 후에는 즐기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기영도 어떤 측면에서는 아마추어의 마음들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힘 있고 아름다운 겁니다.
(😭 감동의 눈물)
- 모기영에서는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가 어울렸으면 좋겠는 바람이 있는데
이에 대한 좋은 의견이 있으실까요?
배재우 모기영은 이미 종교와 세대를 넘나드는 영화제가 됐습니다. 비록 사이즈는 다른 영화제보다 작을지 모르지만 속내는 ‘모두’의 영화제가 된 것이죠. 그런데 모두가 어울리려면 광장의 질서, 광장의 구조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광장에는 복잡한 규제가 없습니다. 최소한의 질서와 공감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나이나 사회적 지위가 크게 프리미엄을 얻지 못합니다. 필요한 건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과 목소리입니다. 모기영도 이런 광장의 정신이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는 예수님은 넓은 분입니다. 속이 좁지 않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광장을 품으신 분입니다.
시간 내주셔서 인생에 대한
자세와 깊은 사색을 나눠주신
배재우님께 감사드립니다.
모기영과 함께 해주시는 분들의
인생 시간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다양한 관심사와 열정과 경험을
들을 수 있어서 풍성한 거 같습니다.
오늘 밤도 모두의 평안을 빕니다.
2022.12.10.토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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