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십자가의 방향
‘시네마 분더카머’를 따라와 주신 분이라면 눈치 채셨을지 모르지만, 저를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영화에는 공통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깊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깊은 서사(소설이든, 영화이든)에 자주 매혹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준은 좀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이야기에 깊이가 있다, 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며, 또 그것이 객관적이고 명료한 실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언하기가 모호하다는 건데요. 그런 점에서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지적에 목숨을 끊은 화가를 이야기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깊이에의 강요』도 떠오릅니다. 소설 속 평론가는 화가의 죽음 이후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고 그녀의 작품은 삶을 파헤치려는 열정이 보인다고 하죠. 애초부터 그도 깊이에 대해 잘 모른다는 듯이요. 깊이는 무엇이며, 어느 지점에서 드러나는 걸까요.
제 나름의 명제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깊이 있는 이야기는, 그걸 보거나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아래를 내려다보게 만듭니다. 가로축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수평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세로축의 시선으로 깊은 곳을 바라보면, ‘나’라는 표면을 지탱하는 삶의 근거와 토대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죠. 그때 우리는 내 삶이 이토록 허약한 토대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표층이라는 일상에 몰두하며 사느라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조차 망각했다는 것을 간신히, 그리고 비로소 깨닫습니다. 깊이를 향한 시선이 실은 하나님을 향한 신학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런 문장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심연에 대해 아는 사람은 신에 대해 아는 사람”(폴 틸리히, 『흔들리는 터전』, 1987, 76쪽) 깊이를 향한 탐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앎과 다르지 않다는 듯이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줄여서 <에에올>)가 그런 깊이를 갖춘 영화라는 건데요. 그렇다면 우리를 아래로 내려다보게 만들어 나의 삶을 떠받치는 토대와 근거, 그러니까 나의 심연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만드는 지점이 이 영화에 있는 걸까요? 있습니다. 마블 시리즈의 타노스와 비견될 정도로 ‘온 우주의 빌런’이 바로 다름 아닌 사랑하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기발함을 알 수 있지만, 그보다 저는 조이가 빌런이 된 과정이 훨씬 인상 깊었습니다. 조이는 평행우주의 모든 곳을 오갈 수도, 또 우주의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는 전능함을 갖췄는데요. 그런데 이 능력은 사실 무(를 향한)능력이자 무기력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전능으로 조이는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베이글을 만들었기 때문이죠. 극의 후반부에 이르면 베이글을 만든 진짜 목적에 대해 조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나를 파멸시키고 싶었어.”
무를 향한 강박, 파멸을 향한 충동. 그것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베이글을 내세운 것 역시 생각해 볼 만한 지점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원은 순환성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무상(無常)을 의미하기도 하죠. 여기에는 시작도, 마침도 없습니다. 제 꼬리를 잡아먹는 신화 속 우로보로스(Ouroboros)처럼, 원형적 이미지는 철저히 재귀적이죠. 조이는 평행우주를 다니면서 자신의 엄마 에블린을 찾는데요. 엄마에게도 이 ‘무의 베이글’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입니다.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조이가 다름 아닌 에블린을 찾는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그녀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조이가 엄마에게 이해받고 싶었구나, 라고요. 가장 가깝지만 가장 쉽게 서로에게 타인이 되고 마는 모녀는 때로 서로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빌런으로 여기다가도, 우주 속 무수한 것들 중에서 오직 내 마음을 알아봐 줄 수 있는 서로에게 단 하나의 존재이기도 하죠. 조이는 엄마에게 자신의 심연을 보여주고 싶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조이와 에블린은 평행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돌멩이가 되어버렸는데요. 모녀는 이렇게 대화합니다.
“조이, 여기가 어디야?”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우주 중 하나야. 실은 대부분이 이래.”
“좋네.”
“응, 여기 앉아 있으면 모든 게 아득하게 느껴져.”
(…)
“모든 걸 경험하면서…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당신이 보고 다른 길도 있었다고 납득시켜줬으면 했어.”
조이의 마지막 대사가 어쩌면 그녀의 깊은 곳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허무와 무상, 권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엄마, 가르쳐 주세요.’
조이의 간곡한 요청에 에블린은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지 않는 삶의 권태에서 우리는 어떻게 의미를, 삶의 반짝임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런 류의 질문은 사실상 현대인들이 처한 실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에에올>은 웨이먼드의 입을 빌려서 대답합니다. “제발, 우리 그만 싸우면 안될까요? (…)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게 다 내 잘못 같아요. (…) 다정함을 보여주세요. 특히나 혼란스럽고 두려울 땐.” 저는 웨이먼드의 대답에서 두 가지를 배웁니다. 세계에 일어나는 모든 악과 불행이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건 내가 연루되어 있다는 선한 죄책감과 모든 것이 얽혀버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지 모를 때는 내가 주변에게 베풀 수 있는 다정함부터 시작해 보자는 선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굳센 의지. 이런 죄책감과 의지는 일견 순진하고 어리숙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삶의 태도 중 하나라고 저는 믿습니다.
끝내 조이가 스스로를 파멸하기 위해 베이글로 뛰어 들어가자 에블린도 함께 베이글로 뛰어 듭니다. 이제껏 조이와 평행우주를 오가면서 그동안 조이가 경험한 모든 것들(허무, 무상, 무의미)을 함께 겪은 에블린의 행로로 미루어봤을 때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에요. 에블린은 죽음과 무의 자리로 내려가서 조이를 이끌고 삶의 자리로 올라옵니다. 떨어지는 조이를 향해 간절히 뻗는 팔, 조이가 떨어진 곳으로 함께 추락하는 에블린의 몸. 수평과 수직의 방향으로 에블린은 조이를 향해 내려가고 나아갑니다. 이것은 베이글의 원형과 대비되는 십자가의 방향이죠. 마침내 에블린이 조이의 손을 붙잡고, 삶의 자리로 올라와 서로 포옹할 때, 저는 에블린이 조이에게 이제껏 심연에서 해결되지 않은 거대한 물음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었을 거라고 느꼈습니다. 언어의 층위에서 확실해지진 않았을 지 몰라도, 그보다 더 깊은 층위에서, 그러니까 심연에서 근본적으로 조이는 알게 되었을 겁니다. 가장 깊은 사랑을요.
성경의 장소가 재현되지 않고, 성경 속 인물이 같은 이름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기독교적 진리는 이렇게 제시되고 재현될 수 있음을 <에에올>은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따금씩 삶이 권태롭거나 무상하게 느껴질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덧없음과 슬픔을 느낄 때, 그렇게 우리가 조이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갈 때, 먼저 우리 심연을 헤아려주신 그분을 떠올리면서 이번 사순절을 보내는 것은 어떤지요.
덧.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진리를 삶으로 가르쳐 주신, 지금은 하나님 품에 안긴 사랑하는 할머니 양순옥 권사님을 생각합니다.
모기책방 시즌 1 OPEN !
모기책방은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와 함께 책을 읽는 방’입니다.
❙ 기간: 2024년 3월 19(화) – 5월 28일(화) / 격주 화요일(총6회)
❙ 시간: 저녁 7시-9시 30분
❙ 장소: 빅퍼즐문화연구소(마포구 홍익로5길 43, 2층)
❙ 모임 형식: 세미나(참여자 중 발제 담당자 지정)
❙ 진행자: 최 은 영화평론가. 모기영 부집행위원장
❙ 인원: 10명 내외
❙ 참가비: 모기영 정기후원자 5천원 / 비후원자 5만원
❙ 신청기간 및 방법: 2024.2.6.(화)-2024.3.12.(화) 구글 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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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간, 이런 책들을 읽습니다.
3/19 『다시, 성경으로』(레이첼 헬드 에반스, 바람이불어오는곳, 2020) **읽고 오세요!!**
4/2 『무례한 기독교』(리처드 마우, IVP, 2014)
4/16 『누가 포스터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제임스 K. A. 스미스, 도서출판100, 2023)
4/30 『문화의 신학』(폴 틸리히, IVP, 2018)
5/14 『파수꾼 타르콥스키, 구원을 말하다』(김용규, IVP, 2023) (1)
5/28 『파수꾼 타르콥스키, 구원을 말하다』 (2)
이런 분들이 오시면 좋습니다.
+기독교와 문화를 진지하게 공부해보고 싶은 분
+기독교와 대중문화, 두 세계에서 분투하시는 중인 분
+모기영과 함께하고 싶은 분
+모기영의 미래가 궁금하신 분
[참고사항]
+첫 모임은 발제 대신 각자 책(『다시, 성경으로』)을 완독하고 오셔서 감상을 나누는 시간으로 진행하고, 2-6회차 발제자를 선정합니다.
+5,6회차 『파수꾼 타르콥스키, 구원을 말하다』는 영화를 각자 감상하고 와서 타르콥스키 영화와 책을 함께 논할 예정입니다.
Q.‘시즌2’가 있나요?
모기책방 시즌2는 6월-8월 중 시즌1에 이어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읽는 책의 목록은 달라집니다.
봄입니다. 햇볕의 농도가 더 짙어진 것 같아요. 만물이 소생하고 밝아지는 계절인 만큼, 우리를 좌절시키거나 낙담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저항하면서 끝내 선함을, 사랑을, 인내와 소망을 품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글 : 이정식
편집 디자인 : 강원중
2024년 03월 02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주간모기영에 바라는 점이나 아쉬운 점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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