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수평적인 세계와 수직적인 세계에서
인터넷 통신사 대기업의 하청 콜센터 수습근로자로 소희(김시은)가 근무한 순간부터, 그녀가 들어간 곳은 단순 회사가 아니라 어떤 세계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소희가 속했던 세계와 이제 속할 이후 세계를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두 세계를 선으로 표현해 볼까요. 수직선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수평선이 그어진 세계가 있습니다. 수평적인 세계의 소희가 수직적인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 그녀의 내면에서 두 세계의 선은 복잡하게 꼬이는데, 이 꼬인 선을 대체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영화는 이야기를 진행해 나갑니다.
일단은 세계의 구분을 적어볼까요. 먼저 수직적인 세계. 이 세계의 가치는 성과이고, 작동 원리는 위계입니다. 본사는 하청을 거느리고, 관리자는 수습생들을 통제하죠. 위에서부터 아래로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이 선은 그러나 회사-근로자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소희의 위에는 고객이라는 또 다른 층위가 있습니다. 그럴 때 소희는 대답하거나 듣는 것만이 허용된 사람이에요. 발화자의 위치에 도달하려면 이 세계가 추구하는 성과가 필요한데요. 여기서 또 하나의 층위가 소희에게 얹힙니다. 성과를 기준으로 한 동료 근로자들과의 위계. 콜 수와 해지방어율이라는 실적에 의해 매달 근로자들의 위계는 갱신되지만 이 치열한 생존경쟁이 정작 회사를 위한 것임을 아는 순간 근로자들은 허탈감에 빠집니다.
그리고, 수평적인 세계가 있습니다. 이 세계의 가치는 (사람의) 존재이고, 작동 원리는 관계입니다. 잦은 연장근무로 시간을 마련하기 어렵던 소희가 오랜만에 연습실에 방문했을 때, 그녀를 환하게 반겨주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수평적 세계가 나누는 관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드러난다면 자동적으로 서열화되기 쉬운 기준인 나이, 직업, 재산, 생활수준 등은 괄호에 넣은 채, 부드러운 친밀감 안에서 고등학생 소희와 성인인 그들은 쉽게 친구가 됩니다. 성과가 아니라 사람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따뜻한 온기가 이 관계에 있습니다.
소희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해도, 자신이 속했던 세계의 모국어를 잃지 않아요. 존재 자체의 긍정과 타인과 연결되려는 의지라는 모국어를. 이런 소희의 선한 의지를 영화는 상징적인 설정으로 드러냅니다.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헤드셋을 내려놓은 지원에게 그녀는 가장 먼저 달려가 위로를 건네고, 결국 회사를 떠난 지원의 책상을 소희가 이어받죠. 이때 소희의 자리는 타인의 아픔의 자리라 말해도 될 거예요. 고객의 치욕스러운 성희롱을 견디다 결국 폭발하고 나서는, 자신 때문에 전 팀장 준호(심희섭)를 난처하게 만든 것에 대해 소희는 사과하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소희는 자살한 전 팀장의 장례식에 홀로 참석하죠. 유서에 회사의 부조리함을 적은 죄때문에 근로자 누구도 전 팀장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내부 방침을 어기고서 말입니다. 저 자신보다 타인의 곤경과 아픔을 더 앞세우는 사람의 태도가 소희에게 있다고도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소희의 죽음 이후, 영화는 그 자리에 형사 유진(배두나)을 초점 인물로 내세웁니다. 유진은 회사와 학교, 교육지원청을 다니면서 그들의 책임과 부조리를 발견하지만, 그것 중 과연 소희를 죽음으로 이끈 가장 결정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특정하는 일은 실패합니다. 어쩌면 그건 예정된 실패인지도 모릅니다. 소희가 다닌 회사, 그 회사에 소희를 보낸 학교, 학교가 학생을 관리하는지 관리•감독하는 교육지원청을 유진이 거슬러 올라가면서 책임을 파헤치는 방식은 그 자체로 수직적인 세계가 움직이는 방향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애초부터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특정하는 것은 영화의 지향점이 아닐지 몰라요. 그것보다, 저마다 자기 몫의 책임을 끌어안는 일. 이 세계의 악과 불의에 내가 연루되었을 수도 있다는 겸허한 자의식. 이것이 영화가 제시하는 수평이라는 관계의 방식입니다. 준희가 과도한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고 있을 때, 유진은 그녀를 찾아가서 말합니다. “네가 그 자리에 없어서 소희가 그렇게 된 건 아니야.”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태준(강현오)에게는 “또 욱하고 싶으면 나한테 말해. 경찰에게 말해도 괜찮아.”라고 말했습니다. 이로써 유진은 서사적인 면에서 ‘소희 다음’에 오는 인물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며, 기필코 타인과 연결되려는 의지를 지닌 ‘다음 소희’임을 증명합니다. 타인의 죽음 앞에 어느 누구 하나 제 책임을 말하지 않는 수직적인 세계를 향해, 수평적인 세계는 연결과 연대로 대답합니다. 자주 제 몫과 안위를 확보하는 데 몰두하는 우리가 따라야할 가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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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날이 선선해졌네요. 번지르르한 말은 넘쳐도 그렇게 살기에 자주 실패하는 저는 윗글의 마지막 문장을 몇 번이나 쓰고 지웠다 했습니다. 내용은 텅 빈, 말 뿐인 문장 같아서요. 그러나 추구해야 할 목표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말과 삶의 헐거움을 느낄 때 사람의 마음은 쉽게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요. 그럴 때일수록 그 헐거움을 기꺼이 인정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걸음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모기영도 그 걸음을 변함없이 걸어나가겠습니다.
글 : 이정식
편집 디자인 : 강원중
2024년 08월 26일 월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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