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부끄러운 고백을 해볼까 해요. 오래전, 삶에 대해 위태로운 생각을 가진 적 있다는 것을요. 심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을 겪어서 그런 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평범한 일상을 유지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어요. 평범함이라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딱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상태라면, 누군가에게는 필사적인 의지가 동반되어야 간신히 성취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쯤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저처럼 간신히 평범함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서요.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입니다. 소설가 배수아는 소설집 『올빼미의 없음』에서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지요. “젊은 시절 항상 그는 자살한 사람들을 어느 정도 질투하고 선망해왔다. 종종 강하고 날카로운 인식 속에 있을 때면 특히, 그는 자살한 사람들의 글만을 신뢰했다. 자살하지 않은 사람은 인간의 절대적인 어떤 상태, 혹은 자유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리라. 그들은 어떤 해석으로든 타협자이며 공동의 방식의 선택자이기 때문이다.”(81쪽) 소설 속 문장이므로 섣불리 글 쓴 사람의 신념과 연결시키진 않았지만, 이 같은 급진적인 선언이 매혹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목숨을 끊는 선택이 자기자신을 속이지 않는 정직함이라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삶에 대한 비슷한 태도를 <디 아워스>는 보여줍니다. 무거운 돌을 잔뜩 코트 주머니에 넣고서 호수에 몸을 던지기 전,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가 남편에게 남긴 유서에는 이런 문장이 있는데요. “언제나 삶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그리고 삶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되며, 마침내 그것을 깨달으며,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그런 후에야 접는 거예요.” 삶을 진심으로 사랑해 본 사람만이 그 삶을 중단할 자격을 갖는다는 말. 그러니 그런 이들의 선택에 대해 남은 자들은 쉽게 어떤 해석도, 주석도 덧붙일 수 없다는 말.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다음, 그사이 저는 목사가 되었고, 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나만 생각했던 제가, 너를 생각하게 되면서 저는 오래 전 그 생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어요.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본 영화에서 제 눈길이 머물던 부분이 예전과 꽤 달라져있더군요. 이제는 그렇게 목숨을 끊은 버지니아 울프보다 끝까지 그 곁을 지키며 그를 돌봐준 레너드(스티븐 딜레인)가, 삶의 허망함을 마주하고 가족을 떠난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보다 그 엄마를 오히려 돌보는 것 같던 아들 리처드가, 그 어린 리처드는 자라 시인이 되었지만 끝내 목숨을 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그를 돌보던 클라리사 본(메릴 스트립)이 이제 제게는 어떤 의미로 더 위대해 보여요. 몰락과 파멸로 향하는 그들의 걸음을 마지막까지 함께해 준 사람들. 돌봐야 할 너가 있으므로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던 사람들. 죽어도 죽을 수 없던 사람들.
이제 저는 삶의 진실보다 사랑의 태도를 배우고 싶습니다.
"극장 언저리 모기수다"
기독교 월간지 <복음과 상황>에 모기영의 다섯 필자가 연재하고 있는 "극장 언저리 모기수다", 2023년 3월호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어디갔어, 버나뎃>(2019)를 소개합니다. (최은 수석프로그래머) 제 2회 모기영의 상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는 복음과 상황에서 48시간 동안 공개하는 유료기사입니다. (3/26 까지)
소설가 한강의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에 수록된 단편 「회복하는 인간」의 한 대목이에요. 삶을 대하는 태도 중에는 이런 태도도 있다는 점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아직은 ‘통념 뒤에 숨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에 대한 배움이 더 깊어지는 순간 소설 속 ‘당신’처럼 이해한다고 느낄지도요. 다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그 누구의 날카로운 비난이나 성급한 편견, 혹독한 평가로부터 숨을 수 있는 단단하고 고요한 장소를 갈망한다는 그 마음만은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당신에게 그런 장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글 : 이정식
편집 디자인 : 강원중
2023년 3월 25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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