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돈 룩 업>(2021) - 우리가 종말을 맞는 법
성탄을 기다리는 몇주 동안의 날씨가 너무 포근해서 당황스럽습니다.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겨울은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여름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렇게 높은 기온으로 보낸 연말을 우리는 경험해본 적이 있었던가요?
보통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지만, 이례적으로 예약구매를 신청해 둔 책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 페미니스트 신학의 선구주자로서 평생을 기후위기와 씨름한 생태신학자 셀리 멕페이그 교수가 2019년 작고하기 전 생애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난 <불타는 세상속의 희망 그리스도>입니다.(생태문명연구소 역간)
출판사 리뷰로 남겨진 질문들을 하나씩 읽어갈때 마다 가슴이 조여오는 기분이 듭니다.
- 왜 현재의 평균기온 상승 속도가 과거 대멸종 시대들보다 훨씬 빠른가?
- 왜 1.5도 방어 댐이 붕괴되듯이 2도 방어 댐도 붕괴될 것이 확실한가?
- 왜 산유국들은 탄소배출 절반 감축은 커녕 두 배 늘려 생산할 계획인가?
- 왜 20년 후에는 동시다발적 식량 폭동과 사회적 붕괴가 발생할 것인가?
- 왜 지배층은 민중을 각자도생으로 몰아가는가?
일각의 극단주의적 음모론과 같은 이야기라 믿고 싶어지지만, 이러한 질문들(혹은 선언)은 세계의 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하고 있는 경고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2023년 11월 17일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표면 온도가 2도 이상 일시적으로 오른 날로 기록되었고 (출처: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 티핑포인트 이전까지의 탄소 예산을 보여주는 웹사이트는 지구 표면의 평균 온도가 1.5도 상승하기까지 앞으로 5년 7개월여가 남았다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www.mcc-berlin.net/en/research/co2-budget)
현실보다 현실 같은 코미디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린걸까 생각하노라면 곧장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2021년 12월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며 한창 연말 분위기로 들뜬 세상을 향해 종말론적 경고를 보낸 애덤 맥케이의 블랙코미디영화 <돈 룩 업>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랜스, 메릴 스트립, 케이트 플란쳇, 조나 힐, 티모시 살라메 등 출연자 대부분이 아카데미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들일 만큼 초호화 캐스팅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지요.
캐스팅 만큼이나 이 영화를 주목하게 만든 것은 영화가 담고 있는 풍자적인 메시지입니다. 6개월 뒤에 혜성이 충돌하여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회피하며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바쁜 정치인들과 극우 포퓰리즘에 대해 영화는 적나라하게 풍자합니다. 웃기기 짝이 없는 황당무개한 전개를 바라보면서도 쓴웃음을 짓다 못해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기어이 문명의 파멸을 목전에 두게 된 오늘날 우리의 처지를 영화의 이야기가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들이 종말을 맞는 법
영화는 결국 지구 종말의 장면을 그려냅니다. 과학자들의 경고와 시민들의 각성, 물결처럼 일어난 민중들의 목소리가 무색하게도 인류는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내지 못하고 끝내 모두 파멸을 맞이하게 되지요. 영화의 전반부가 왜 일이 그지경이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면, 후반부는 파국의 결말 앞에서 보이는 상반된 두 집단의 태도를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한쪽은 끝까지 자신들의 오만함을 꺾지 않은 채 첨단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세상이 어찌 되든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이지요. 나머지 한쪽은 헛된 희망을 떠들어대는 TV 뉴스를 꺼버린 채, 와인과 커피를 곁드린 만찬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동안 느낀 감사의 순간들을 나누기 시작하지요.
정직한 절망을 선택한 이들이 차린 최후의 식탁은 서로를 용서하고 포용하며 일상 속에 깃든 사랑을 만끽하는 대화로 채워집니다.
"마당에서 잠들었던 그날에 감사해요. 아기사슴을 마주 보며 깼죠. 인생 최고의 날이었어요." (민디박사의 아들)
"제가 감사하는 건, 우리가 끝까지 노력했다는 거예요." (디비아스키)
"당신이 돌아와서 기뻐요" (민디박사의 아내 준 민디)
한편 대통령의 아들인 제이슨 올린 비서실장이 읊어내는 기상천외한 기도는 우습다 못해 당황스러움을 주기까지 합니다.
"저는 그런 걸 위해 기도하고 싶어요. 물질적인 것들 있잖아요. 멋진 집, 명품 시계, 자동차, 옷 같은 게 다 사라질지 모르는데 이런 것들은 안사라졌으면 해요. 그것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멘."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은 종말을 맞이하는 두 대조적인 그룹들 사이에 깃든 영성이라고 여겨집니다.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청년 '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는 일찌감치 종교적인 전통으로부터 떠났지만 어두운 거리의 자유인으로 살아가며 자기만의 영성을 간직해 온 청년이지요.
불타는 세상에서 희망은 있는가?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파국의 현실 앞에서 샐리 맥페이그가 펼쳐내는 희망의 영성은 어떠한 현실 앞에서도 우리의 하나님이 실재하는 사랑이며 우리는 그 현존 안에서 자유하며 기뻐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짧은 인용으로는 그 영성의 깊이를 다 담아내기 어렵겠지만, 영화가 이러한 신학적 선언과 함께 공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무엇이 닥쳐 오든 당신의 담대함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라는 가나안 청년 율의 기도는 기후위기와 생태적 파국 앞에서 어느 생태신학자가 평생을 숙고하고 연구한 끝에 도달한 영성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한편의 영화가 지닐 수 있는 깊이에 다시금 놀라게 됩니다.
대림절 아침 두번째 기다림의 초를 밝히며, 기후위기의 세상에서 내가 기다리며 고대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인류 스스로가 완성해 낼 구원의 세상은 아무래도 내가 기다릴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 대신, 이토록 파멸하는 세상에 직접 찾아와 함께 고통받기로 선택한 사랑의 왕이 바로 우리의 기다림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시린 마음을 온통 절절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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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3년 12월 9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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