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알카라스의 여름>(2022) - 땅과 친구를 위한 노래
드넓은 과수원 한가운데에 네모 반듯 정갈하게 지어진 어느 복층의 주택이 전형적인 스페인 농촌마을의 풍경을 이룹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놓여진 이 풍경은 삼대째 복숭아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키메트 가족의 삶과 처지를 한눈에 담아내지요. 마치 바다 위에 놓인 배처럼, 과수원 한가운데 놓인 키메트의 집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그 자체로 농장의 일부입니다. 온 가정이 대대로 복숭아를 생산하는 일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닌 키메트 가족의 삶 그 자체였지요.
여느때처럼 온가족이 모여 복숭아를 수확하던 여름날, 평화롭던 가족의 터전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찾아옵니다. 삼대가 삶을 일구어온 농장이 알고보니 가족의 소유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이유인즉, 이제 노년이 된 키메트의 아버지가 과거 지주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을 때 서류상의 계약서를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계약서 한 장 써두지 않았느냐는 자녀들의 울분섞인 물음에 할아버지는 '그땐 계약서 같은건 쓰지 않았다'는 맥빠지는 대답밖에 할 수 없는 처지였지요.
그도 그럴 것이, 이 땅은 분노한 폭동으로부터 할아버지가 지주의 목숨을 구해주고 그 고마움의 댓가로 넘겨받은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로 인해 지주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죠. 그러나 시간이 흘러 땅의 소유를 보증해 줄 친구는 이제 세상을 떠났고 신의와 인정보다는 살벌한 자본의 논리가 땅을 지배하는 세상이 찾아와버렸습니다. 불현듯 나타난 지주의 아들은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복숭아 나무를 모두 갈아엎고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태양광 산업을 하겠다는 통보를 건네지요. 키메트의 가족은 복숭아 농사가 아닌 삶은 상상해본 적이 없지만 지주의 요구대로 태양광 패널을 관리하는 잡역부가 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땅을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현실 앞에 할아버지는 허망한 표정으로 씁쓸한 마음을 읊조리지요. "피뇰과 내가 얼마나 친했는데.."
스페인의 주목받는 감독 카를라 시몬의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은 그녀의 전작 <프리다의 그해 여름>과 같이 감독이 나고 자란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일찌기 부모님을 여읜 자신의 어릴적 모습이 전작에 담겨있다면, <알카라스의 여름>에서는 이웃 마을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삼촌들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담아냈습니다. 목가적인 유럽의 농촌마을에 살아가는 일가정의 삶을 지극히 미시적으로 묘사한듯한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 가족을 가득 둘러싼 시대와 사회적 정황을 마주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농민들은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불리우는 태양광 사업은 자본가의 손을 만나 또다시 가장 연약한 이들의 땅과 삶을 갉아내고 있지요. 복숭아 밭에 놓인 건물의 운명이 그 밭의 운명과 연결될 수 밖에 없는 것 처럼 키메트 가족의 일상과 삶도 결국 그 땅에 들이닥친 생경한 도전들과 운명을 같이할수 밖에 없는 것 이겠지요.
영화는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게 된 상황 앞에서 좌충우돌하는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지주의 요구에 따라 태양광 사업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키메트와 여동생들은 다툼을 벌이게 되고, 애꿎은 어린이들은 서로 분리되어 그 천진한 시간들을 함께 보낼 수 없는 가련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지요. 가족들은 다시 화목을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사태의 본질을 응시하는 눈을 갖게 됩니다. 서먹했던 아들과 아버지는 함께 농민 시위에 나가 핏대를 세우며 복숭아를 집어던지고, 자녀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던 여동생은 다시 돌아와 잼을 만드는 일손을 거들지요. 영화의 끝에서는 가족들이 다함께 우두커니 서서 농장을 갈아엎는 포크레인을 저항하듯 노려봅니다. 자신들의 땅을 빼앗고 짓밟는 자본과 이익의 논리를 향해 결연한 침묵을 던지는 가족들의 얼굴은 관객들로 하여금 어떤 묵직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날라와 아드잠"
감독이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통해 그려낸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식은 영화속에 배경처럼 새겨진 이미지들을 통해 더욱 섬세하게 펼쳐집니다. 농장의 성가신 존재로 여겨지는 토끼들은 키메트의 총에 의해 쉽게 사살 당하듯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는 배경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그러나 키메트의 농장에 일용직 노동자로 찾아온 어느 이민자 청년의 시선으로 인해 그저 골치거리이기만 했던 토끼들의 죽음은 곧장 한 생명의 숭고한 죽음으로 환기됩니다. 토끼의 사체를 뒤적이며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온 '부부'라는 이름의 유색인 청년은 작은 생명에 대해서도 예를 갖추는 태도를 가르쳐주지요. ‘날라와 아드잠’이라는 고향의 말, 그리고 짧고 경쾌한 몸짓을 통해 토끼와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는 그의 모습은 키메트의 작은딸 이리스에게 남다른 감명을 남긴듯 합니다. 그렇게 토끼의 존재는 어쩌면 키메트 가족과 같이 구조 속에서 억압받기 쉬운 연약한 존재들(일용직 이주민 노동자, 어린 아이들, 작은 생명들)의 처지를 상기시켜주는 장치가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죽임을 당한 순수한 몸들은 자본가의 집 현관 앞에 놓여지게 되지요. 이윤이 유일한 척도가 되는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죽어나가게 된다는 사실을 그 토끼들의 누운 몸들이 항변하고 있는 것 일까요?
여름휴가에 어울리는 영화를 추천해보려던 것인데, 온통 흉흉한 소식이 가득하여 마음이 애석해지는 주말입니다. 우리의 세상이 어찌 이지경이 되었는가 하는 탄식 속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장악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아프게 돌아볼 뿐입니다.
영화속에서 할아버지가 선창하며 손녀들이 따라부르던 노래의 가사가 오늘날의 현실과 버무러져 새로운 감정으로 마음 속에 울려펴집니다. 친구를 위해, 땅을 위해 부르는 노래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날들입니다.
[5회 영화제 후원모금]
강*중, 강*영, 강*철, 김*현, 김*관, 김*정, 김*호, 김*교, 김*선, 더불어숲평화교회, 로고스서원, 류*, 박*혜, 박*영, 박*애, 박*선, 배*필, 배*우, 박*홍, 북인더갭, 신*주, 신*식&변*정, 아카데미숨과쉼, 윤*훈, 윤*원, 이*기, 이*욱, 전*영, 정*하, 정*석, 지*실, 최 *, 허*호 님 (총 36명)
모기영 후원자를 위한 <지옥만세>(2022) 시사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초청 & 서울독립영화제 넥스트링크를 수상한 임오정 감독의 <지옥만세>(2022) 시사회에 모기영 후원자 여러분을초대합니다.
-일시 : 8/10(목) 19:00 (20:50부터 GV)
-게스트: 임오정 감독, 오우리 배우
-장소 :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 (서울특별시 마포구 어울마당로 65, 지하4층)
-티켓신청 및 양도(2매) : https://forms.gle/AJ6DevBsC1dJ8KqAA
-문의 :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사무국(010-2567-4764)
[ 모기수다 시즌2 ]
🎬 8월의 모기수다에 초대합니다!
모기영의 영화감상 모임인 ‘모기수다’는 매월 둘째 토요일 오후 3시에 모입니다.
8월의 모기수다 영화는 겐 로치 감독의 <레이닝 스톤>(1993)입니다.
📍 시간 : 2023년 8월 12일(토) 오후 3시 (3~5시-영화감상, 5~6시-감상 나눔)
📍 장소 : 바람이불어오는곳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 5층, 501호)
📍 참여신청 및 문의 : '문토' 어플리케이션-> '모기수다' / 사무국 010-2567-4764
모기수다 모임 참여는 '문토'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 앱스토어 / 구글스토어에서 '문토(MUNTO)' 어플 설치
▶︎ '모기수다' 검색
▶︎ '8월의 모기수다' 클릭 후 '참여하기'
▶︎ 참가비 결재 (1만원)
*문토 이용 수수료와 다과준비 및 공간사용료를 위해 회비를 받고 있습니다.
소중한 정기후원 감사드립니다 ❤️
* 2023년 7월 1-31일 기준
강도영 강원중 강종철 구귀남 김대현 김명관 김영준 김소혜 김재균 김지향 김진선 김혜영 김희라 대지교회 류현 박성민 박일아 박은영 박재우 박준용 박진숙 박현선 박현홍 배재우 송정훈 신동주 신원균 이동은 이범진 이신석 이유리 이유혁 장다나 정민호 조소희 지은실 채송희 최규창 최은 최현 한송희 님
보내주신 소중한 후원금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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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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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3년 8월 5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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