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허니 랜드>(2019) - 반은 내 것, 반은 네 것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바로 그 해, 아카데미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주목을 받은 뛰어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습니다. 북마케도니아 국적의 두 감독(타마라 코테브스카, 루보미르 스테파노브)이 만든 <허니 랜드>는 선댄스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2019년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 되었지요. 영화는 마케도니아의 외딴 마을 하티체에서 양봉업을 하며 살아가는 50대 여인 아티제의 삶과 그의 생활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랜 시간 환경주의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일했던 스테파노브 감독은 원래 아티제라는 여성 양봉가와 하티체 지역의 강에 관한 단편 작품을 찍기 위해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예기치않게 아티제의 삶의 터전에 난입한 이웃들과의 갈등이 시작되며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그려지게 되었죠. 스테파노브와 타마라 감독은 약 3년에 걸친 시간동안 그 지역에 머물며 이들의 생활과 관계를 카메라에 담게 되었고, 우리 시대의 문제들이 축소판처럼 비추어진 한편의 놀라운 실화가 탄생하게 됩니다.
반은 내 것, 반은 너희 것
병든 노모를 홀로 돌보며 살아가는 주인공 아티제는 가파른 절벽과 돌담 틈사이에 지어진 벌집의 꿀을 채집하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녀는 얇은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을 뿐, 이렇다 할 보호장구도 없이 맨손으로 벌집을 다루지요. 하지만 벌들은 동요하지 않고 친구를 맞이하듯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입니다. 벌들이 아티제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자연에 대한 그녀의 존중과 배려 때문이지요. 아티제는 벌 한마리 한마리를 소중한 손길로 대하고, 놀란 벌들을 달래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합니다. 꿀을 취하면서도 그녀는 늘 '내거 반, 너희 거 반'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이죠. 자연으로부터 꼭 필요한 만큼만 거두어들이고, 자연의 소중한 선물을 주는 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그녀의 태도에 깊이 배인 삶의 리듬입니다. 아티제의 이러한 감수성은 함께 사는 반려동물들과 이웃들을 향한 섬세한 배려의 몸짓으로도 표현되지요.
평화롭던 마을에 어느 날 낡은 트레일러 한 대가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진입합니다. 유목생활을 하는 후세인 가족의 등장이죠. 못말리도록 투닥거리는 여섯명의 아이들과 가축들의 아우성은 고요했던 아티제의 터전에 혼돈을 가져옵니다. 아티제는 후세인 가족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도 최선을 다해 좋은 이웃이 되어주지요. 그러나 가축들을 모질게 대하고 서로를 짓궂게 괴롭히는 후세인 가족의 모습은 아티제의 삶과 너무도 대조되며 이웃간의 불협화음을 예고합니다.
모든 것이 내 것
아티제의 양봉업을 눈여겨 본 후세인은 자기집 앞마당에도 벌통을 두고서 벌을 치기 시작합니다. 아티제는 이웃의 새로운 사업을 응원하며 노하우를 알려주면서도 꿀을 수확할 때 절반 만큼은 벌들을 위해 꼭 남겨두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지요. 하지만 줄줄이 태어난 자녀들을 먹여살릴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던 후세인은 아티제의 경고를 무시하고 온 가족을 동원해 벌통을 쥐어짭니다. 분노한 벌들은 후세인의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벌침 세례를 날리고, 아티제의 벌들에게 몰려와 한바탕 전쟁을 벌이죠. 생산력이 좋았던 아티제의 벌들은 후세인의 벌들에게 몰살 당해 바닥에 뒹굴게 됩니다. 절망하고 분노한 아티제는 후세인과 그의 부인에게 항의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끝내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가축들을 모두 잃게 된 후세인은 홀연히 마을을 떠나버리지요.
사실 이러한 비극은 도시에서 찾아온 어느 장사꾼의 탐욕으로 인해 부추겨진 일입니다. 후세인의 꿀이 마음에 들었던 장사꾼은 수시로 찾아와 더 많은 생산을 강요했지요. 꿀에 대한 그의 극단적인 욕심은 벌집이 들어있는 아름드리 나무를 통째로 베어내어 꿀을 꺼내가는 모습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장사꾼이 베어내버린 나무를 바라보며 허망해하는 아티제의 얼굴에는 한마리의 벌까지도 소중히 대했던 삶의 원칙이 통째로 유린당한 듯한 절망이 가득 깃들어 있죠.
마케도니아 산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이 세 인물의 이야기가 세계의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는 지구상 어느 곳이든 이과 꼭 닮은 씨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겠죠. 순수를 지키며 울분을 삼키는 얼굴, 현실에 찌든 가장의 얼굴, 그리고 이미 터질듯한 배를 부여잡고도 끊임없이 먹을 것을 찾아대는 탐욕의 얼굴은 영화에서 세 군상의 인물들을 통해 고스란히 재현됩니다. 관객들은 아티제의 슬픔에 공감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한편, 그녀의 삶의 양식을 헤치는 또다른 삶의 태도들에 대해 지푸린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이유들로 자행된, 지속가능성을 파괴하는 수많은 야만의 행위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때로 우리는 그러한 얼굴들을 이웃으로 맞이해야 하기도 하지요. 이런 경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땅을 바라보며 우는 이의 절박한 기도
아티제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마다 울분을 쏟아놓으며 한탄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집 한켠에 뉘인 어머니의 침대맡이지요. 잘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어머니는 철저히 아티재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수용과 지지를 아티제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지요. 그녀는 무력하지만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어머니는 딸의 울분어린 한탄을 묵묵히 들으며, 그저 안쓰럽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응답합니다. 촛불 두어개로 충분한 두 사람의 공간은 아늑하고 거룩한 느낌을 풍깁니다. 그곳에서 아티제가 구구절절 쏟아놓는 말들은 마치 구약성서에 숱하게 등장하는 한탄의 기도를 닮은 것 같기도 하지요. 상하고 멍든 마음을 토로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인정했던 예배의 원형이라면, 아티제의 움막같은 공간은 그만의 기도처이자 예배의 공간이라 말해 볼 수 있을까요?
멈출 줄 모르는 탐욕의 손아귀에 처절하게 유린 당하는 우리의 생명세계와 이웃들의 고단함을 바라보며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심정으로 마른침을 삼키게 되는 날들입니다. 그렇게 멍든 마음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예배의 제물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5회 영화제 후원모금]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지속적인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 모기수다 시즌2 ]
🎬 6월의 모기수다에 초대합니다!
모기영의 영화감상 모임인 ‘모기수다’는 매월 둘째 토요일 오후 3시에 모입니다.
6월의 모기수다 영화는 일디코 엔예디 감독 감독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2017)입니다.
📍 시간 : 2023년 6월 10일(토) 오후 3시 (3~5시-영화감상, 5~6시-감상 나눔)
📍 장소 : 바람이불어오는곳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 5층, 501호)
📍 참여신청 및 문의 : '문토' 어플리케이션-> '모기수다' / 사무국 010-2567-4764
모기수다 모임 참여는 '문토'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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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의 모기수다' 클릭 후 '참여하기'
▶︎ 참가비 결재 (1만원)
*문토 이용 수수료와 다과준비 및 공간사용료를 위해 회비를 받고 있습니다.
5회 모기영을 위한 후원자 명단이 매주 새롭게 채워지는 것을 보며
이 소중한 영화제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구나 하는 힘을 얻습니다.
좋은 영화의 힘을 믿으며 혐오와 배제없는 축제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시는 분들을
계속해서 기다리겠습니다.
응원해주시고, 함께해주세요!
글 /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3년 6월 10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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