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주간모기영 161호

[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위대한 작은 농장>(2018)

2025.05.24 | 조회 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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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위대한 작은 농장>(2018)

 

 ‘작은 것들이 점점 자라 대지에 가득 차는 때’라는 뜻을 지닌 소만(小滿)을 지나는 중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온 들과 숲은 푸른 것들로 가득 차고, 번식에 성공한 산새들이 분주하게 먹이를 잡아다 나릅니다. 곧 혹독한 무더위가 들이닥칠 것을 알기에, 이 짧은 호사를 한시라도 더 누리려고 야외로 나갈 핑계를 만들게 되는 때이기도 하지요. 

열 평 남짓한 텃밭에서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이제는 제게 어떤 의례와 같은 소중한 성역이 되었습니다. 씨를 뿌리고, 거센 들풀을 조금씩 정돈해주는 것 말고는 온전히 해와 바람과 비에 맡겨야 하는 텃밭에서 삶의 이치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신혼집 좁은 아파트 베란다에도 루꼴라와 바질, 상추, 그리고 각종 허브류가 빼곡히 자라나고 있습니다. 한켠에는 자연 액비로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해서 흙으로 만들어주는 퇴비상자도 두었습니다. 덕분에 분리수거장에 음식물을 버리는 일도 거의 줄었고, 양분이 부족한 화초들에게 고품질의 거름도 주게 되었죠!

웬델베리, <온 삶을 먹다, 대지의 청지기 웬델 베리의 먹거리 농사 땅에 대한 성찰>(2020)
웬델베리, <온 삶을 먹다, 대지의 청지기 웬델 베리의 먹거리 농사 땅에 대한 성찰>(2020)

한국 도심의 아파트에 사는 삼십대 남자로서 이렇게 다소 유별난 취향을 가지게 된 이유는 대학시절 만난 생태사상가 웬델베리의 책들 때문이겠습니다. <포트윌리엄의 이발사>, <온 삶을 먹다>,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와 같은 그의 글들은 밤을 지새워 읽을 만큼 즐겁고 아름다우면서도 석유자본주의에 잠식당해가는 농본적 삶의 가치를 기필코 지켜내고 싶다는 절박한 자발성을 형성해 주었습니다. 그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잇는 시대의 예언자로 평가받지만 소로우가 연결시키지 못했던 자연세계와 농업(문화)과의 관계까지 엮어 내면서 훨씬 더 광범위한 사상적 영향을 끼치고 있지요.

‘먹거리의 정치학은 우리의 자유와 연관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과 목소리가 다른 누군가의 통제를 받을 경우 우리가 자유롭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우리의 먹거리와 그 원천이 다른 누군가의 통제를 받을 경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간과해 왔다. 책임 있게 먹어야 하는 이유 하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웬델베리 / 온 삶을 먹다 p.301
<위대한 작은 농장> 포스터 
<위대한 작은 농장> 포스터 

2018년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된 뒤 한국에는 2020년에 개봉한 아름답고 소중한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작은 농장>(The biggest little farm)속에서 웬델베리가 주창하는 먹거리의 정치학을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하던 존, 그리고 요리사였던 몰리 부부가 어느 버려진 황무지를 개간해서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형태의 농장을 일구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농장의 규모를 보면 ‘작은 농장’ little farm이라는 제목이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농약을 살포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동원해야하는 미국의 전형적인 산업농에 비하면 작다고 할 수 있는 농장이겠습니다.) 촬영도 스토리도 탄탄한 <위대한 작은 농장>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베를린, 선댄스영화제 등의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지요. 영화가 볼 만 하다는 말씀!

<위대한 작은 농장> 
<위대한 작은 농장> 

존과 몰리가 농장을 만들기 시작한 캘리포니아의 황무지는 석유자본식의 농업으로 인해 황폐하기 이를데 없는 상태로 변한 상태였죠. 수십년간 반복된 대규모의 경운과 단일작물 재배는 땅을 망가뜨리며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윤만을 추구하며, 전쟁무기로부터 영감을 얻은 중장비를 동원한 산업농은 사람도 동물도 더 이상 살기 어려운 땅을 우리에게 돌려줄 뿐이지요.

‘경쟁과 혁신은 얼마간 생산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는 했다. 그러나 이 해결책은 방만하고 무분별하며 너무나도 값비쌌다. 우리는 땅과 사람을 상대로 한 경쟁에서 이겨 왔으며, 그러는 가운데 스스로에게 헤아릴 수 없는 손해를 끼쳐 왔다.’ 

같은 책. p.133
<위대한 작은 농장> 
<위대한 작은 농장> 

수십가지의 먹거리가 생산되고, 생태계가 순환하는 자급자족형 농장을 이루고 싶다는 존과 몰리의 이상주의는 먼저 황폐해진 땅을 재자연화하는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땅을 갈아엎는 대신 지피식물이 자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지렁이와 미생물이 땅의 체질을 변화시키도록 기다렸지요. 이들의 멘토였던 앨런은 전통농업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으로 두 사람을 훌륭하게 가이드합니다. 농약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수백가지 종류의 작물이 함께 자라게 하는 방식은 관행농의 관점으로 봤을 때 그저 미친 짓으로 보였습니다. 과수원에는 달팽이가 들끓고 온갖 야생동물이 침입해오면서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좌절감을 겪기도 하지요.

그러나 앨런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은 ‘자연의 힘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성하게 자라난 수백종의 식물들이 홍수와 태풍으로부터 농장을 지켜주고, 어느새 농장의 일원이 된 야생동물들은 울타리 안팎의 생태계가 완벽하게 돌아가도록 각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존과 몰리 부부가 일구어낸 애프리콧 레인 팜스(Apricot Lane Farms)는 현재 200여종의 과채와 수십종의 동물이 순환생태계를 이루며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교육의 현장으로 수많은 대중을 만나고 있습니다. (https://www.apricotlanefarms.com/)

<위대한 작은 농장> 
<위대한 작은 농장> 

영화가 전하는 이상적인 풍광들과 아름다운 성공담을 보며 시기심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꿈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는지를 되짚어보면 영화는 결국 도심에서 바등거리는 우리 모두의 일상에도 각자의 위대한 작은 농장을 향한 소중한 이정표를 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이 모든 것이 ‘먹거리’에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입니다. 요리사였던 몰리는 자신이 먹는 식재료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형태로 생산되며 유통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면서부터 '위대한 작은 농장’을 향한 꿈을 가지기 시작했지요. ‘먹는 즐거움’이 무엇인줄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몸과 생활을 형성하는 재료들의 출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위대한 작은 농장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는 겁니다!

‘성 산업에서의 성과 마찬가지로 식품산업에서 먹는 행위는 열등하고 부실하고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주방과 여타 먹는 장소들은 점점 더 주유소를 닮아 간다. 우리의 집이 점점 모텔을 닮아 가듯 말이다. 이제 우리는 ‘삶은 그리 흥미로운 게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듯하다. ‘삶의 만족은 최소한으로, 되는대로, 빨리 누리도록 하자’고 하는 듯하다. 우리는 일터에 가기 위해 서둘러 끼니를 때우고, 저녁이나 주말이나 휴가를 즐기기 위해 서둘러 일을 때운다. 그리고 최대한의 속도와 소음과 폭력을 다해 서둘러 휴가를 때운다. … 이 모든 게 가능한 까닭은, 이 세상에서 몸가진 생명체의 인과관계에, 그것의 가능성과 목적에 너무나 무감각한 탓인지도 모른다.’ 

같은 책 p.302

웬델베리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책임 있게 먹기’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그리 대단한 것들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조언합니다. 그는 여전히 도심에 살며 점차 생의 기쁨으로부터 무감각해져가는 이들을 위해 몇가지 실천목록들을 제시합니다.

1) 먹거리 생산에 가능한한 참여한다.

2) 음식을 가능한 직접 조리한다.

3) 사야 할 먹거리의 원산지를 안 다음, 집에서 가장 가까이서 생산된 먹거리를 산다.

4) 가능한 지역의 농부나 텃밭 주인이나 과수원 주인과 직거래를 한다.

5) 자기 보호의 차원에서, 산업화된 먹거리 생산의 경제와 기술에 대해 가능한 많이 배운다.

6) 모범적인 농사나 텃밭가꾸기에 대해 배운다.

7) 먹거리가 생기고 자라는 과정에 대해 가능하면 직접적인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많이 배운다.

텃밭 가꾸는 원중캉의 발랄한 뒷모습(?)
텃밭 가꾸는 원중캉의 발랄한 뒷모습(?)

10평 텃밭이라는 성소에서 오늘도 살아있음의 기쁨을, 몸 가진 존재의 충만함을 배워봅니다. 먹을 것들이 주는 즐거움, 그것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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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중

편집디자인 /  모기영 편집부

2025년 5월 24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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