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2019)
영화 <노예 12년>과 <닥터 스트레인지>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추이텔 에지오포가 감독으로 참여한 영화가 있습니다. 말라위 소년 윌리엄 캄쾀바의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입니다.
실화의 주인공 윌리엄은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교를 중단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심각한 기근에 빠진 마을을 구해내기 위해 풍력을 이용해 물을 공급하는 장치를 만들어내며 마을의 영웅이 되지요.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공동체를 위기로부터 구출한 윌리엄의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남기며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기근의 원인은 자연이 아닌 사람
영화는 소년 윌리엄의 지혜와 용기를 주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말라위 국민들을 극심한 기근 속에 빠트린 사회적인 정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짚어냅니다. 가뭄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들이닥치기 전, 선거 분위기로 들뜬 말라위 거리의 풍경은 다가올 기근의 원인이 단순히 자연재해로 인한 것만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지요.
재난의 전조는 담배 기업이 가난한 농민들을 압박해 그들의 땅에서 자란 목재를 쓸어가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웃 나라 모잠비크에서도 같은 이유로 물이 범람해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돈이 급한 농장주들은 헐값에 나무를 팔아치우고, 아름드리 숲으로 가득했던 마을은 황량한 사막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지요. 이러한 자본의 횡포를 견재해야 할 정부는 전혀 존재감이 없습니다. 오히려 연이어 닥친 가뭄과 기근을 나몰라라 하며 굶주림에 처한 국민들을 철저히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지요.
그렇게 극단적인 기근에 내몰린 사람들은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공동체는 파괴됩니다. 평화롭고 우애가 깊었던 윌리엄 가족도 생존의 위험 앞에서 점차 분열하고 와해되어가지요. 이렇게 영화는 각 사람과 가정이 얼마나 자연환경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는지, 또한 자연을 그저 자원으로 바라보며 무분별하게 훼손할 때 치르게 되는 혹독한 댓가에 대해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새롭게 소환된 애니미즘
영화의 주요한 변곡점마다 독특한 가면을 쓴 샤먼 집시 무리가 심오한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 배치된 기독교식 장례와 이슬람 장례 장면 중에 불쑥 튀어나오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고인의 영면을 기리지요. 유족들은 이들의 등장에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친근함을 느끼며 위로를 받습니다.
이들 집시들은 공동체의 일원이 처한 슬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들입니다. 또한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벌목과 가뭄으로 인해 닥친 지역의 생태계와 공동체가 겪는 고통입니다. 이웃의 죽음 앞에 나타났던 집시는 숲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윌리엄의 가족이 기근 앞에 와해되는 순간에는 죽음을 표현하며 윌리엄의 무너져가는 내면을 드러내주기도 하지요.
이렇게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애니미즘의 존재는 인간과 자연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상기시켜 줍니다. 영화가 자칫 개인의 노력을 칭송하는데 초점을 두는 성공 미담, 혹은 척박한 기근과 역경을 기술로 이겨내야 한다는 식의 교훈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이야기를 좀더 본질적인 성찰로 이끄는 지점이라고 느껴지네요.
바람, 신이 주신 선물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바람이 붑니다. 실제로 말라위의 환경은 매우 척박하지만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은 그치지 않는다고 하네요. 윌리엄은 자연이 준 선물에 주목하며 가족을 먹여 살릴 방도를 찾아냈습니다. 영화는 결국 식량을 자라게 하는 물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바람도 모두 자연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끝내 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지요.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동안 지구 환경이 겪고 있는 아픔을 기억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말라위 주민들과 같이 기후에 크게 의존하여 생활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대해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나마 느끼게 됩니다. 주님이 주목하는 세계의 고통받는 존재들에 우리의 관심이 향하고 이미 우리에게 풍족하게 주어진 선물에 감사하며 자족하는 일상이 계속되기를 소망해봅니다.
모기책방 시즌 1 OPEN !
모기책방은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와 함께 책을 읽는 방’입니다.
❙ 기간: 2024년 3월 19(화) – 5월 28일(화) / 격주 화요일(총6회)
❙ 시간: 저녁 7시-9시 30분
❙ 장소: 빅퍼즐문화연구소(마포구 홍익로5길 43, 2층)
❙ 모임 형식: 세미나(참여자 중 발제 담당자 지정)
❙ 진행자: 최 은 영화평론가. 모기영 부집행위원장
❙ 인원: 10명 내외
❙ 참가비: 모기영 정기후원자 5천원 / 비후원자 5만원
❙ 신청기간 및 방법: 2024.2.6.(화)-2024.3.12.(화) 구글 폼
https://forms.gle/TfZCjDD57tLSST4M8
3개월 간, 이런 책들을 읽습니다.
3/19 『다시, 성경으로』(레이첼 헬드 에반스, 바람이불어오는곳, 2020) **읽고 오세요!!**
4/2 『무례한 기독교』(리처드 마우, IVP, 2014)
4/16 『누가 포스터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제임스 K. A. 스미스, 도서출판100, 2023)
4/30 『문화의 신학』(폴 틸리히, IVP, 2018)
5/14 『파수꾼 타르콥스키, 구원을 말하다』(김용규, IVP, 2023) (1)
5/28 『파수꾼 타르콥스키, 구원을 말하다』 (2)
이런 분들이 오시면 좋습니다.
+기독교와 문화를 진지하게 공부해보고 싶은 분
+기독교와 대중문화, 두 세계에서 분투하시는 중인 분
+모기영과 함께하고 싶은 분
+모기영의 미래가 궁금하신 분
[참고사항]
+첫 모임은 발제 대신 각자 책(『다시, 성경으로』)을 완독하고 오셔서 감상을 나누는 시간으로 진행하고, 2-6회차 발제자를 선정합니다.
+5,6회차 『파수꾼 타르콥스키, 구원을 말하다』는 영화를 각자 감상하고 와서 타르콥스키 영화와 책을 함께 논할 예정입니다.
Q.‘시즌2’가 있나요?
모기책방 시즌2는 6월-8월 중 시즌1에 이어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읽는 책의 목록은 달라집니다.
글 /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4년 2월 17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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