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의 ‘밀플뢰르’]
시모니데스의 기억
<더 디그>(사이먼 스톤, 2021)
인생은 덧없이 흘러요. 붙잡아야 할 순간이 있어요.
- 영화 <더 디그>의 이디스 부인의 대사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 시모니데스는 고대 귀족 스코파스의 부탁을 받습니다. 곧 성대한 연회를 열 텐데, 자신을 칭송하는 찬가를 만들어 그 자리에서 불러달라고요. 후원자의 부탁이라 시모니데스는 거절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연회장에서 부른 시모니데스의 찬가가 스코파스의 마음에 썩 들지 않았나 봐요. 당시 전통에 따라 시모니데스는 스코파스만이 아니라 고대 신(카스트로와 폴록스)을 칭송하기를 마치자, 이렇게 쏘아붙였다는군요. ‘사례의 절반은 내가 줄 테니, 나머지 반은 당신이 칭송한 두 신에게서 받으라’.
그런데 문밖에서 두 사람이 시모니데스를 부릅니다. 집 밖으로 나갔지만 두 사람은 보이지 않네요. 그때 일이 벌어집니다. 그만 집이 폭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시모니데스는 두 신의 보답을 생명으로 받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그 생명은, 스코파스가 준 절반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어쩌면 시모니데스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이곳에 있어야 했는지도 몰라요. 한순간 일어난 참혹과 비극의 현장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로서 그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증인으로요. 애초 시인은 스코파스를 찬미하기 위해 필요했지만, 이제 시인의 임무는 달라졌습니다. 잔해 속에 묻힌 망자들의 이름을 복원하는 일로요. 기억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른 바 기억의 기원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시모니데스는 연회에 참여했던 사람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얼굴을 머릿속에서 떠올려야 했죠. 그러기 위해서 그가 발휘한 기술이 있습니다. ‘기억술’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 방법은 공간을 이용해서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저기 연회장 좌장에 앉은 이가 스코파스라면, 그 옆에서 포도주 잔을 들고 쾌활한 웃음을 짓던 이, 포크가 놓인 자리는 누구, 그 맞은편 연회장 기둥 앞에 앉은 사람…. 우리의 기억은 맥락과 바탕 속에 놓인 것이어서, 공간 안에 잠재된 것을 그저 파헤치는 것으로도 떠올릴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실은 익숙한 일이기도 해요. 의식하지 않았던 기억이, 어느 장소의 물건을 통해 불현듯 되살아나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공간이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겁니다.
![<더 디그>(사이먼 스톤, 2021) [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9/1789728898530487.png)
모두가 무(기)력했고 절망했던 시기
<더 디그>는 발굴하는 사람의 이야기죠. 농부였던 할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받은 배질 브라운(랄프 파인즈)은 땅에 대한 밝은 감각 또한 이어받았습니다. 서퍽의 어느 땅에서든 흙 한 줌만 쥔다면 누구에게서 온 흙인지 알아맞힐 수 있는 감각과 안목을 지녔죠. 이디스 프리티(캐리 멀리건)가 자신의 땅에 솟아있는 둔덕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고용한 사람이 배질 브라운이라는 데서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첫 삽이 그렇게 띄어집니다.
이야기는 얼마 못 가 갈등에 봉착합니다. 누군가에게 ‘약점’이라 여길 만한 것이 배질에게 있었거든요. 정식 라이센스나 아카데미 교육과정을 수료하지 못했으므로, ‘겉보기에’ 배질보다 더 나은 학위나 라이센스를 지닌 사람이 온다면 자리를 비켜야 한다는 겁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파헤친 둔덕엔, 6세기 앵글로색슨족의 문명, 왕의 무덤과 그를 기리며 함께 놓은 거대한 배, 각종 갑옷과 무기들이 있었는데요. 단숨에 이 일은 국가적 사업으로 확장되기에 이릅니다. 대영박물관에서 국가적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오죠. 당연히 배질에게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공은 국가(적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배질과 같은 사람의 이름은 누락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요. 가령 이런 대사는 그가 불편해하는 것의 정체를 드러내요. “내가 그 배를 알아냈어. 캠브릿지 연구원은 아니지만 그 땅에 뭐가 묻혀있었는지 알아냈다고. 제이콥스와 스푸너도 함께 했는데 그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을 거야.”
배질의 고용주이자 그 땅의 소유주인 이디스의 불안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어릴 적 앓은 류마티스열로 인해 심장 판막에 이상이 생겼고, 이제는 더 이상 손쓸 수 없다는 것. 그녀 또한 배질처럼 무엇인가를 직감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요. 그런 점에서 배질과 이디스는 모두 같은 것을 두려워 합니다. 허망한 것. 사라지는 것. 끝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며 분노하는 배질과 인간은 죽음을 이길 수 없다며 눈물 흘리는 이디스는 겹쳐집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의미는 대체 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더 디그>(사이먼 스톤, 2021) [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9/1789728955415896.png)
두 인물만 이 물음을 앓는 건 아닙니다. 영화의 배경 자체가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요. 1939년,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불과 몇 달전, 그림자가 가장 어둡게 드리운 시기였습니다. 편대를 이룬 전투기들이 매일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가고, 징집 명령이 이디스의 조카 로리 로맥스(조니 플린)에게 떨어집니다. 로리는 묻습니다. “만약에 천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면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죠?” 허망함과 공허라는 공기가 1939년의 대기에 부유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 존재는 결국 사라질 것임에 좌절했고, 파국으로 치닫는 현실(전쟁, 이디스의 죽음)을 우리 손으로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 절망했습니다. 엄마가 앓는 모습을 보며 절규하는 아들 로버트의 대사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머니 아프신 것 알아요. 근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왜 아무것도 못하죠? 낫게 해드려야 하는데.” 모두가 무기력하거나 무력했고, 불안하거나 좌절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었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고 보여줍니다. 배질이 발견한 6세기 앵글로색슨의 거대한 배와 메로빙거 시대의 작은 금화를요. 배질은 작은 금화를 이디스의 손바닥 위에 놓습니다. 너무 가벼워서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금화는 생생하게 증명합니다. ‘우리가 여기 있었다’를요. 이것이 대답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억 말입니다. 설혹 배질의 이름이 누락되더라도, 이디스는 예정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누군가 배질을 알고, 후대가 선대를 기억한다면. 사람의 행위와 말은, 작업과 생명은 더이상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누군가가 여전히 그를 기억한다면, 그 대상은 결코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니까요. 기억은 죽음을 살릴 순 없지만, 결코 완전히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습니다.
영화 속 로리가 자주 작업 과정을 카메라로 포착했다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그는 사려깊게 작업 과정, 누락될 위기에 놓인 이들의 얼굴을 담았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내가 사진에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점은 사물이 거기 있었다는 것이다.”(98쪽) ‘있었다’라는 과거형이 뼈아프게 다가오지만, 그것만이라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영원을 갈구하는 유한한 인간에게 가까스로 주어진 축복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더 디그>(사이먼 스톤, 2021) [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9/1789729006168864.png)
다시 시모니데스. 참혹한 비극으로 죽은 이들의 이름을 복원한 그의 직업은 시인이었습니다. 문학, 영화, 이미지 그리고 이야기. 오늘날의 시모니데스. 예술은 그렇게 누락된 이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오늘날까지도 되살리고 있네요. 그게 꼭 예술가와 예술만이겠어요. 우리의 사진첩, 노트, 마음에 각인된 누군가의 음성과 문장들. 허망함에 대항하는 우리의 기억-기술들. 그 마음으로 다시 적어보는 영화 속 이디스의 대사.
인생은 덧없이 흘러요. 붙잡아야 할 순간이 있어요.
8회 모기영 단편경쟁 본선 상영작 선정!!
올해 신설된 CFFFE 단편경쟁 부문의 본선 상영작을 소개합니다.!!!


총 434편의 소중한 작품이 출품되었는데요, 그중 올해의 주제 ‘하이-파이, 로-파이’를 각자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담아낸 6편의 작품을 선정하였습니다.
위 작품들은 11/19-22까지 열리는 제8회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에서 상영되며, 최우수상 1편과 우수상 2편에 대한 시상은 11/22일에 있을 폐막식에서 진행됩니다.
본선 진출하신 감독님들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올해 영화제도 주간모기영 구독자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글 이정식
편집디자인 모기영 편집부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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