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아직 스크린이 어둠에 잠겨있을 때, 소피(프랭키 코리오)의 손에 들린 캠코더가 ‘줌인’하는 기계음만이 형형합니다. 곧이어 스크린에 떠오른 것은, 아빠 캘럼(폴 메스칼)의 부산스러운 몸동작이죠. 확대한 터라, 캘럼의 동작은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고 동작이 남긴 잔상 역시 짙습니다. ‘인터뷰 하려고 그러니 가만히 있으라’는 소피(프랭키 코리오)의 타박에 아빠는 그제야 잠깐 멈추고 아이를 바라봅니다. 아이는 묻습니다. “11살 때 아빠는 지금 뭘 할 거라 생각했어요?” 외면하려는 듯 아빠는 고개를 돌리고, 다 숨지 못한 얼굴의 옆모습이 스크린에 얼어붙었습니다. 잠깐의 암전 후, 명멸하는 빛 아래에서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해 눈을 감은 사람. 어지럽게 펼쳐지는 기억의 실타래. 화면 속 노이즈처럼 어딘가 불분명한 기억 속 형상. 방금 저희가 본 오프닝 시퀀스는 이 사람의 기억이라는 걸까요. 앞으로 나아가던 기억은 돌연 멈추고, 거꾸로 돌아갑니다. 20여 년 전, 아빠와 갔던 튀르키예의 소박한 호텔로요.
오프닝 시퀀스를 길게 이야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오프닝 시퀀스가 영화 전체를 압축적으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에요. 그해 튀르키예에서 소피와 캘럼은 자주 서로를 향해 캠코더를 들었지만, 캠코더가 누락한 잔여의 시간, 녹화와 녹화 사이에 일어난 일은 오직 기억만이 담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소피의 기억에 줌인할 것이고, 그렇게 확대된 기억을 보는 일은 어딘가 부서지고 마모되어 불명료한 형태를 가늠하는 일일 거예요. 그렇게 해서 복원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어떤 기억은 영영 깊은 망각의 바다에 잠겨 찾기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그 점에서 다른 영화였으면 ‘서사의 생략’ 정도로 생각하고 넘겨버렸을 숏과 숏 사이의 공백이, 그해를 기억하는 이 영화에서만큼은 어쩐지 슬픔으로 다가오네요.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는데, 그 잃어버린 것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표정을,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지었습니다.
어쩌면 전체가 소피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분명 그 자리에 소피가 없었는데도 여전히 상영되는 아빠의 장면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호텔에서의 마지막 저녁, 의도치 않게 날카로운 말로 서로를 베었던 부녀는 따로 떨어진 채 자신의 상처를 그 자신이 싸매어야 했는데요. 그때 영화는 캘럼이 향한 곳을 차례로 보여줍니다. 깊은 밤, 캘럼은 길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 태우면서, 낯선 이국의 거리를 걷다가, 검은 바다를 향해 몸을 날립니다. 밤은 더 깊어지고, 뒤늦게 숙소로 돌아온 소피는 캘럼이 알몸으로 침대에 엎드려 자는 장면을 목격하죠. 분명 소피의 의식에 포착되지 않은 일들을, 그녀는 어떻게 기억하는 걸까요? 어쩌면 소피가 가상적으로 구성한 것은 아닐까요. 저는 이 기억의 재구성 작업이, 조금은 처연하게 느껴집니다. 저녁의 다툼과 새벽의 알몸 사이 비어있던 기억의 공백을, 소피는 그때의 아빠의 심정을 상상하며 채워넣은 건 아니었을까요.
그러고보니, 그해를 떠올리는 지금 소피의 나이는, 20여 년 전 아빠의 나이와 같습니다. 31살. 당시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던, 어딘가 흔들리고 위태롭던 아빠의 시선과 움직임. 침착을 가장하던 말투, 혹여 자신의 우울이 딸에게 전염될까 오히려 쾌활하게 소리치던 음성. 부러진 팔과 굽은 어깨로 자신의 삶을 가까스로 버티던. 그 모든 것을 비로소 이제야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 당신이라는 시차에 간신히 닿았는데, 당신은 또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리 가 있네요. 영원히 우리의 시차는 같은 거리로 벌어져 영영 닿지 못하는 건 아닌지요.
하지만 영화는 이 시차를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고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아요. 하늘을 올려다보던 소피가 문득 아빠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장면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바라보는 태양이 우리가 떨어져 있어도 실은 같이 있다는 증거라는 것. 그런데 둘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 버린 경우라면? 그때 둘을 연결하는 ‘태양’은 ‘기억’이라는 것. (영화의 마지막에서 소피와 작별인사를 나눈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소피가 그동안 아빠를 기억하던 그녀의 ‘기억의 공간’입니다.) 그러니 영화 전체에 서려있는 아빠를 향한 소피의 추모는 이런 마음이 아닐까요. 기억의 공간에서 나는 힘껏 눈을 감고 내가 그리는 당신의 모습을 영원히 불러낼 겁니다. 시간의 물결에 기억이 마모되거나 손상될지라도, 무엇으로도 쉽게 채우지 못할 만큼 누락된 기억이 클 지라도, 망각의 바다 깊은 곳에 잠겼을 지라도, 새하얀 기억의 여백에 나는 당신과의 시간을 적을 것이며, 끈질기게 불명료한 당신의 형태를 복원할 겁니다.
이것 외에 다른 방법이 주어져있지 않은 사람의 간절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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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살아온 생의 시간에 의해 저희는 서로 시차가 나지만, 각자 처한 공간에 있어서도 서로에게 이방인일 수 있습니다. 시차와 고국을 훌쩍 뛰어넘어 끝내 서로를 연결하는 것이 기억과 영화의 힘이자 모기영의 힘은 아닐지요.
그 상서로운 힘을 믿으며 모기영은 5회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함께해 주세요.
글 : 이정식, 강원중
편집 디자인 : 강원중
2023년 6월 24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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