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이야기

세번째 발효 부엌 이야기

할머니네 동동주, 항생제와 장 미생물, 코지두부

2026.10.08 | 조회 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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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 내 몸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적응 하지 못했다.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일본에서 겨울에도 거뜬할 더위를 먹고왔다고 생각했는데.. 여러분은 환절기를 잘 건너가고 계신가요?

조금 더 자주 가볍게 레터를 보내고 싶은데 잘쓰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 자꾸만 무거워진다. 그래도 오늘은 꼭 보내고 싶어 작정하고 앉았다!(비장)

세번째 편지만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요즘 발효 실험에 대한 의욕이 많이 사라졌다. 이것을 보는 구독자님들께 지혜를 구하고 싶다. 원인은 다름아닌 맛 없음ㅠ,,ㅠ 그동안 자몽 술, 샤인머스캣 와인, 비트 버섯 피클, 파 포카치아 등 이것저것 만들어보았지만 만족스러운 맛이 하나도 없었다. 자몽술은 자몽의 씁쓸함이 그대로 들어가 너무 썼고 샤인머스캣 와인은 며칠만 두었는데도 너무 드라이 해졌다. 비트 버섯 피클은 비트의 달달함과 버섯의 감칠맛이 신맛이 잡아먹혔다. 파 포카치아는 하나도 부풀지 않아 납작한채로 오븐에서 나왔다. 어서 숙련되어 일상의 영역으로 가져가고 싶은데...🥺 냉장고에는 아직 먹지 않은 발효피클과 술로 한가득이다. 이것들을 슬기롭게 처리해야 다음 발효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과 발효된 피클, 맛이 없는데 도수만 높은 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직접 하는 실험보다 요즘은 관념적 발효에 더 흥미가 생긴다. 여러 균과 박테리아 이야기, 발효 문화.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할머니와 발효

최근 할머니네 두번 다녀왔다. 일본 워홀에 다녀오고 1년만에 뵌 할머니는 "아이구 공주 왔어요~" 덩실덩실 몸을 흔들며 반겨주신다. 나는 할머니네 집에 가기 전부터 귀와 입이 근질거렸다. 발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할머니는 원주에서 배운 기술로 서울 대림동에서 약 사십년간 추어탕 장사를 하셨다. 추어탕은 직접 담군 고추장을 사용했고 깍두기와 김치도 직접 담구시고 동동주, 동동주에 들어가는 누룩마저 직접 만드셨다. 할머니네 가면 늘 할아버지가 동동주를 마시고 있었다. 동그랗고 입구가 넓은 술독에 담긴 동동주. 대추나 인삼같은게 둥둥 떠나녔고 큰 국자가 함께 나왔다. 할아버지가 한 잔 따라준 동동주는 어린 내 입에도 달콤 쌉싸름한게 참 맛났다. 그것을 전부 할머니가 만든거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올해, 발효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추어탕집 장사를 접은지 10년 뒤인 셈이다. 

점심을 먹구 소파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착 달라붙어 앉았다. 할머니! 할머니는 어디서 술만드는거 배웠어요? 우리집이 종갓집이라 제사하려고 술을 빚었어. 그때는 조세법이 있어서 (경찰) 떴다고 하면 술은 땅에 다 묻어두고 집 밖으로 나갔어 산으로 도망가거나. 우리집 동동주를 을마나 사람들이 좋아했는데. (어떤 행사에 나갔다고 했다) 사람들이 동동주 사먹으려고 줄서고 그랬어. 어휴 근데 왜 그런거를 하려고 그러냐. 그게 만만치가 않아 힘들어.

누룩은 어떻게 만들었어요?

김포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스트로폼 박스에 넣고 했지. 그게 보통일이 아니야. 이제 다 잊어버려서 기억도 안나 벌써 10년 전이다

에이 할머니 좀만 더 얘기해 주세요~ 김장하듯이 한번에 만든거에요?

그치 그게 보통일이 아니여 너가 10년만 일찍 말했으면 다 알려줬을텐데 

어쩐지 할머니는 자꾸 이야기를 해주다가도 눈쌀을 찌푸리며 다 잊어버렸다고 이제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열심히 할머니를 졸라 동동주에 들어가는 재료까지 들을 수 있었다. 동동주를 만들때는 누룩도 넣지만 술약(이스트)도 엿기름도 설탕도 조금 넣었다고 한다. 정확한 레시피가 아니라 할머니식의 좋은 재료는 다 때려넣는 느낌이었다. 아마 못따라 만들겠구나 싶었다. 술약을 넣었다는 것에서 조금 김이 새긴 했지만 몇십년간 식당도 운영하면서 안정적으로 술을 만드려면 넣을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는 길, 내게는 발효가 새로운 발견과 즐거움인데 할머니에게는 고된 노동에 관한 기억이겠구나 싶었다. 장이 썩지 않게 관리하고 술을 만들기 위해 쌀을 씻고 방앗갓에서 찌어오고 옹기를 소독하고 섞고 주무르고 잘 되고 있나 들여다보고... 집도 종갓집, 이후에는 식당을 했기 때문에 늘 어마어마한 양을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발효문화가 이어져온건 이러한 여성들의 집약적인 노동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고된 노동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은 얼마나 있었을까. 그 음식을 먹고 자란 손녀조차 지금에서야 할머니가 정말 대단하다는걸 알았는데. 잘 알아봐주지 않고 누군가의 고된 노동으로 계속 이어져 온 이 관행이 생활발효문화가 점점 사라지는 것에 일조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메주를 달고 누룩을 띄우고 장독을 돌봤을 거칠거칠하고 두툼한 주름진 야무진 손들을 떠올랐다. 그들에게 장독대 요정이라는 이름을 붙혀주고 싶다!

 

장 미생물을 지켜랏!

최근 지독한 감기에 걸렸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한약을 며칠 먹었다. 몸이 낫는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다음날 풀타임 출근을 해야하기에 결국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찬바람을 뚫고 병원에 가면서도 가는 것이 맞나. 분명 몸의 속도대로 천천히 낫고 있는 것 같은데.. 고민하다 도착해버렸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자에 앉히고 입 코 귀를 기구로 한번씩 찌른다. 증상이 어때요. 음 콧물이 좀 있네. 목이 좀 부었어요. 약 처방해 드릴게요. 의사의 네 마디, 2분 만에 진료종료. 뭐, 원래 병원이 그렇지.. 하며 처방전을 보는데 항생제가 있었다. 항생제! 불신이 가득해져 나는 그대로 처방전을 주머니에 구겨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항생제나 장 미생물을 생각하게 된 것은 발효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부터다. 그 책은 항균, 항생, 무균같은 보편적이라 생각하는 위생개념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세균이나 박테리아, 곰팡이를 위험한 존재로, 균이 없는 환경을 위생적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을까? 실은 우리 몸에도 미생물들이 살고 있는데. 그것도 아주 많이. 그 수가 10조개의 세포보다도 많다고 추정된다.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만나는 존재도 엄마의 질이나 병원에 있는 미생물들이다. 그 미생물들이 첫 기반이 되어 우리의 미생물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미생물들은 영양이 풍부하고 적당한 습도인 소화기관에 주로 서식하며 우리가 소화하지 못하는 여러 물질을 분해해 영양소로 만들어주고 혈관의 건강이나 우리의 감정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미생물 생태계는 사람마다 다르고 무척 다채로워서 마치 지문같이 고유하다고 한다. 몸 안에 있는 미생물들의 작은 우주를 상상해보시라. 참 신비하다.

책을 읽은 후 장 미생물들을 의식하게 되었다. 좋은 발효음식을 먹으면 좋은 먹이를 주는 기분이 들고 변의 상태를 보며 그들의 건강을 체크하게 되었다. 그러나 항생제는 모든 미생물을 차별없이 죽인다. 마치 열대우림에 떨어지는 폭탄처럼. 오늘 조사한바에 따르면 대부분 감기나 독감은 바이러스 감염이라 세균감염에 효과가 있는 항생제는 약효가 없다고 한다. 한국은 항생제 사용국가 2위이다. 항생제가 약효가 빠르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졌고 의사들도 꼭 필요하지 않음에도 심각해 보이면 항생제를 처방해주는 것 같다. 나도 쉴 날이 없는 노동자였다면 빨리 낫기위해 조금 불안해도 약을 전부 털어 먹었을지도 모른다. 집으로 와서는 감기에 좋은 것들을 몽땅 먹고 마시고 푹 잤다. 생강즙을 잔뜩 넣은 당근생강수프, 대파후무스, 생강차. 다음날 몸이 많이 괜찮아졌다. 항생제 남용은 빨리빨리 문화의 부작용이다. 모든 존재에게 자기 몸의 속도대로 나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좋겠다. 

 

지금 주방에서는...

첨부 이미지

큐민 사워크래프트를 넣어 후무스를 만들었는데 프레시하고 감칠맛이 up된 후무스 완성. 후무스가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워크래프트를 넣음으로서 좀 더 잘 되지 않을까? 

진저에일
진저에일

생강과 설탕 물을 넣고 매일 섞어 5일정도면 완성된다! 정말 파는 진저에일 맛이 났다. 나는 알콜발효의 씨앗물로 쓰려고 만들었다.

샤인 머스캣을 부시고 있다.
샤인 머스캣을 부시고 있다.

바로 이 샤인머스캣 와인을 만들기 위해! 샤인머스캣을 깨끗히 씻고 당도를 올리기 위해 얼렸다 녹이고 으깼다. 이후 진저에일 스타터를 넣고 삼일간 발효하니 너무 드라이해서 먹기 힘든 알콜 음료가 탄생했다. 역시 와인은 아무나 만드는게 아닌가보다. 한입만 먹어도 머리가 띵할정도로 도수가 꽤 높았다.

코지두부/두부구이/두부치즈케이크
코지두부/두부구이/두부치즈케이크

요즘 자주 만들어 먹는 유일한 발효요리. 코지소금두부! 물을 뺀 두부에 10프로 양의 누룩소금이나 시오코지를 바르고 냉장고에 3일정도 숙성, 그 이후 먹는다. 두부의 식감이 무척 부드러워지고 아주 약간 치즈스러운 느낌이 난다. 나는 그냥 구워먹었는데 겉에가 구운 치즈같은 느낌이 나 무척 맛있었다. 반은 비건치즈케이크를 만드는데 사용했다. 캐슈넛도 코코넛 오일도 안들어간 치즈 케이크였는데 맛이 놀랍도록 논비건스러워 너무나 뿌듯했다. (누군가 레시피를 원하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케이크를 원한다면.. 의정부로 놀러 오세요)

 

그리고

11월에 의정부에서 열리는 열람실이라는 재미난 행사에서 두부요리 한접시 팝업과 발효 고추소스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다. 발효 핫소스는 실은 먹어본적도  만들어본 적도 없지만 서울에서 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외국 발효 책이나 사이트에 들어가면 거의 다 핫소스 레시피가 있길래 궁금하기도 했다. 주 재료는 고추, 양파, 마늘, 과일이던데 어떤 맛이 날까! 이번주부터 여러 실험을 해봐야할 것 같다.

 

이번 레터도 읽어주어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가을날을 보내고 있나요? 최근에 먹었던 맛있는 요리가 있었나요? 부디 여러분의 일상도 공유해주세요. 궁금해요 ㅎㅎ 다음 편지는 조금 더 자주 보낼 수 있길 바라며 안녕~ 

 

추신 - 이번 감기 정말정말 지독하더라구요. 여러분 따뜻한 물 많이 마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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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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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희의 프로필 이미지

    김경희

    0
    약 19시간 전

    초원양 감기 조심해요~~~ 나는 아직 몇년동안 한번도 안걸렸다는거🤭 레터 만들었다고 공유받은게 얻그제 같은데..! 벌써 세번째군요 너무 재밌어요😆 실패도 해야 성공도 하는거니까 계속해서 좋은 실험하기를 응원해요🤗 나는 요즘 게으름이 터져서.... ㅜㅜ 아까 점심에 취나물 무침을 만들었는데 초원씨 생각이 났네요...ㅎㅎ

    ㄴ 답글 (1)
  • 은치의 프로필 이미지

    은치

    0
    약 16시간 전

    항생제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을 떄 되게 웃음이 나오긴 했는데(걍 귀여워서) 글을 읽으니 납득이 더 가기 하네요. 전 이번 감기 때 비타민을 많이 먹었습니다... 뭐가 맞는 건진 모르겠지만.. "큐민 사워크래프트를 넣어 후무스를 만들었는데 프레시하고 감칠맛이 up된 후무스 완성." 이 문장 뭔가 일본 레시피 사이트에서 많이 본 표현이 있어서 웃기고 좋았음. 저도 두부치즈케잌 레시피 갖고 싶어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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