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혹시 지난주 뉴스레터를 기다리셨나요? 매주 루틴처럼 쓰는 뉴스레터인데 지난주는 현생의 일을 처리하느라 뉴스레터를 까맣게 잊었습니다. 뉴스레터를 쓰지 못할 때면 미리 말씀드리는데, 저번 주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한 주를 빠지니, 저도 모르게 뉴스레터를 준비할 시간에 침대에 누워 있게 되더라고요. 한 번 흐트러진 리듬을 바로잡는 일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포기도 쉬워지죠. 어차피 잘못된 거 한 주 더 쉬어도 괜찮겠지, 다음 주부터 다시 하면 되지... 포기의 편안함을 맛보고 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에는 몇 배의 악력이 더 필요해지곤 합니다. 미루는 일이 익숙한 선택지가 되지 않도록,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매주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포기 대신 다시 일으켜 세운 마음을 담아, 이번 주 이야기를 열어봅니다.

✏️ 이렇게 사용해요
탈삽(脫澁)은 감의 떫은맛을 없애 먹기 좋게 만드는 과정이다. 감에는 타닌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입안의 침과 만나 떫은맛을 낸다. 물에 담그거나, 알코올이나 이산화탄소를 가득 채운 밀폐된 상자 속에 가두어 두는 등 외부의 일정한 온도와 압력 속에서 감은 단단하고 떫은 가시를 거두고 달고 부드러운 감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살아간다. 우리는 처음부터 사회에 잘 맞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저마다의 기질과 고집, 고유성을 가진 거친 존재들이었다. 누구는 달고, 누구는 시고, 누구는 쓰고, 누구는 떫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외부의 기대에 맞추는 법을 익히며 탈삽을 통과하며 조금씩 사회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간다. 그 과정이 꼭 나쁘다고는 못 하겠다. 함께 살아가려면 유용한 변화도 있으니까.
그래도 가끔 궁금하다. 내 원래 맛은 어땠을까. 아무런 외압도, 기준도 묻지 않았던 날것 그대로의 빛깔은 어땠는지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떫음이 정말 나쁜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둬도 괜찮았을까. 알코올이 더해지기 전, 밀봉되기 전의 나. 지금의 나를 이루는 여러 겹을 하나씩 걷어 내면, 그때의 나를 언젠가 알아챌 수 있을까.
💥<에디터의 질문> 사회라는 밀폐된 방을 거치며 떫고 거친 구석들을 깎아내고, 모나지 않은 매끈한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을 다들 지나오셨겠지요. 남들과 무난히 어우러지기 위해 뾰족했던 개성을 다듬기 전의 모습이 그리워지거나 어색하게 느껴진 적이 있으신가요?
저마다의 탈삽을 지나,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

가을이 깊어지니 과일 가게에 주황빛 감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처음부터 떫은맛이 적어 서걱서걱 무던한 단맛을 건네는 단감, 높다란 건조대에 걸려 차가운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겉은 쫀득하고 속은 촉촉해지는 곶감, 알코올이나 따뜻한 물에 담가 인위적인 탈삽을 거쳐 떫은맛은 지우고 아삭함은 살려낸 침시(소금물이나 맹물에 우려낸 감)와 침감, 그리고 항아리 속에서 긴 침묵을 견디며 마침내 터질 듯 붉고 푹 익어가는 홍시와 연시까지. 감마다 맛있어지는 방법이 다르고, 가장 맛있는 때도 조금씩 다르죠.
아삭한 단감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지나면 홍시와 곶감을 만나겠죠? 감을 고르고, 겨울의 간식거리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납니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지금의 맛을 충분히 누리고, 곧 찾아올 겨울을 천천히 맞이해보아요.
낯선 단어 '탈삽'을 일상으로
[👁 눈으로] 감나무 찾아보기. 잎이 떨어진 가지 끝에 매달린 주황빛 열매를 바라보며, 저마다의 속도로 익어가는 감과 한 해의 끝을 향해 가는 계절을 함께 느껴 보기.
[✍️ 손으로] 어릴 때부터 변하지 않은 점 하나, 살아오며 새롭게 익힌 점 하나, 이제는 내려놓고 싶은 태도 하나를 적어 보기.
[🚪 밖으로] 곶감이나 감말랭이처럼 겨울에 먹을 간식을 마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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