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15. 봄, 벚꽃 그리고 첫사랑

로맨스의 정석, 첫사랑 영화

영화의 장르를 구분하는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유사성을 띠는 서사 구조, 등장인물, 주제, 화면 구성이나 분위기 등 작품의 특징적인 요소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장르 분류 기준이 시대의 흐름이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재생산되기도 하고요. 우리에게는 크게 내용에 따라 구분 짓는 경우와 형식에 따라 구분 짓는 경우가 익숙할 것 같은데요. 전자는 로맨스 • 코미디 • 스릴러 • 액션 • SF • 음악 • 뮤지컬 등이 포함되고, 후자는 무성 • 흑백 • 유성 • 단편 • 장편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로맨스는 내용에 따라 분류한 것으로 대부분 이상화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그립니다. 크게는 ‘사랑’을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로맨틱 코미디 같은 가벼운 분위기부터 절절한 멜로, 치정극까지 로맨스 장르 안에서도 영화를 보는 관점에 따라 더 세분되기도 합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경우 연애를 테마로 훗날 연인이 되는 남녀 주인공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작품이 주를 이루고, 멜로의 경우 인물의 드라마틱한 서사와 연출을 통해 희비가 엇갈리는 통속극에 가까운 경우가 많죠. 먼저 선정한 작품을 소개하기 전, 씨네아카이브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한국, 일본, 대만 그리고 프랑스 첫사랑 영화 4편을 간략하게 소개해 드립니다.🤗

설원 위에서 외쳐보는 당신의 안부, <러브레터>이와이 슌지 감독, 1995년 개봉

사랑했던 연인 후지이 이츠키가 죽은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약혼녀 와타나베 히로코는 추모식 날 그의 중학교 앨범에서 지금은 사라진 이츠키의 옛 주소를 발견하고 그리운 마음에 안부를 묻는 편지를 띄웁니다. 며칠 후, 거짓말처럼 후지이 이츠키로부터 답장이 오고 히로코는 편지를 보낸 이가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이며, 중학교 동창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츠키는 히로코와의 편지를 계기로 자신과 이름이 같았던 그와의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러브레터>는 이와이 슌지가 쓴 소설이 원작으로 작가가 직접 각본과 연출까지 맡았어요. 북해도 오타루의 설원을 배경으로 빼어난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도 유명하죠. 영화와 함께 영화의 배경지 그리고 OST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히로코가 연인을 잃은 설산에서 그리움과 애틋함을 꾹꾹 눌러 담아 안부를 묻던 장면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이자 “잘 지내고 있어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라는 대사는 많은 패러디를 양산하기도 했죠. <러브레터>는 개인적으로 첫사랑의 설렘과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애틋함, 그리움을 아름답게 그린 일본 멜로 영화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사실 봄보다 겨울에 조금 더 어울리는 영화이긴 하지만요.🤭

Cap ou pas Cap?, <러브 미 이프 유 데어>얀 사무엘 감독, 2003년 개봉

폴란드 소녀라는 이유로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된 소피에게 사탕 상자를 내밀며 먼저 다가온 줄리앙. 가끔 빌려 달라며 내미는 상자를 받고 소피는 줬다 뺏는 것이 어디 있냐며 다시 갖고 싶으면 내기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운전기사 없는 스쿨버스 출발시키기, 꾸중하는 선생님 앞에서 쉬하기 등 8살에 시작된 무모한 장난은 17살까지 이어지고, 오고 가는 장난과 사탕 상자 속에서 소피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줄리앙을 사랑하게 되지만, 계속 엇갈리기만 하는 두 사람은 결국 소피가 줄리앙의 결혼식을 망친 것을 계기로 절교를 선언하며 연락을 끊습니다. 10년 후 도시 설계사가 되어 아내와 함께 ‘완벽한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이유 모를 공허함을 느끼던 줄리앙에게 어느 날 소피와 함께 가지고 놀던 사탕 상자가 배달되고, 끝난 줄 알았던 두 사람 사이의 내기가 다시 시작되는데요. 과연 위험한 내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러브 미 이프 유 데어>는 어린 시절부터 ‘사랑 게임’을 이어온 두 주인공을 그린 프랑스 영화로 달콤한 사탕보다는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 같은 영화에 가깝습니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심오한 감성(?)으로 그려낸 연출과 인물, 여러 해석이 난무하는 영화의 결말 때문에 처음 봤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했었어요.😱 흔히 생각하는 첫사랑 영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독창적인 작품으로 마리옹 꼬띠아르와 기욤 까네의 풋풋했던 시절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소피와 줄리앙의 내기 신호와 같은 ‘Cap ou pas cap’은 ‘capable ou pas capable’의 줄임말로 번역하면 ‘할 수 있어? 없어?’가 됩니다. 실제로 있는 놀이 이름이기도 한데요. 영화 속에 나온 방식 그대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성공하기 힘든 퀘스트를 던지면서 “cap ou pas cap”라고 외치면 놀이가 시작됩니다. 영화를 위해 만든 놀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있는 놀이라는 것을 알고, 프랑스는 아이들의 놀이마저 범상치 않은 감성을 지녔다 생각했었어요.😂

내 눈 속의 사과 같은 너,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구파도 감독, 2011년 개봉

이제 막 17살이 된 커징텅에게는 함께 우스꽝스러운 짓을 일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모두 같은 반이 된 친구들과의 공통점은 모범생 션자이를 좋아한다는 것. 어느 날, 커징텅은 여느 때처럼 교실에서 사고를 치고, 담임 선생님의 부탁을 받은 션자이에게 특별 감시를 받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모범생과 문제아 사이만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듯했지만, 마음과 달리 잘해보려는 일도 자꾸만 어긋나고, 애써 한 고백에도 션자이는 묵묵부답입니다. 사소한 오해가 쌓여 멀어지게 된 지 15년이 흐른 어느 날,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는데요. 돌고 돌아 다시 만난 커징텅과 션자이는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청춘 로맨스 특히 첫사랑 영화로 잘 알려진 대만 영화입니다. 비슷한 감성의 첫사랑 대만 영화들을 이야기할 때 꼭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감독이 직접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요. 2000년대 온라인 소설을 보는 것 같은 유치한 설정과 작위적인 묘사가 많지만, 그 시절 인소 좀 읽어봤다 하는 분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이런 하이틴 장르의 첫사랑 영화들은 좀 유치해야 맛인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작품의 영어 제목은 조금 견디기 힘드네요. 영어 제목은 “You are the apple of my eye”로 내 눈 속의 사과 같은 너라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건축학개론>이재용 감독, 2012년 개봉

생기 넘치지만, 숫기 없던 스무 살. 건축학과 승민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음대생 서연에게 반하게 됩니다. 함께 과제를 하면서 차츰 마음을 열고 친해지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승민은  고백을 마음속에 품은 채 작은 오해로 인해 서연과 멀어지게 됩니다. 서른다섯의 건축사가 된 승민 앞에 15년 만에 불쑥 나타난 서연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그에게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으로 서연의 집을 짓게 된 승민은 서연과 함께 집을 완성해 가는 동안 어쩌면 사랑이었을지 모를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감정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매듭짓지 못했던 두 사람의 첫사랑은 어떤 결말을 보여줄까요?

<건축학개론>은 국내에서 첫사랑 영화를 언급할 때 꼭 거론되는 작품으로 과거 ‘첫사랑’의 기억으로 얽혀 있는 두 남녀가 15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나 추억을 완성하는 이야기입니다. 스무 살의 승민을 연기한 이제훈, 서연을 연기한 수지, 승민의 동네 친구 납득이를 연기한 조정석까지 해당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죠. 특히 납득이는 당시 신드롬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분이 패러디하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짤이 돌아다니는 진정한 감초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작품 곳곳에 녹아 있는 아날로그 감성과 영화의 삽입곡들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노트북 (The Notebook), 닉 카사베츠, 2004년 개봉

17살 노아는 밝고 순수한 앨리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고 둘은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빠져듭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들 앞에 놓인 신분격차라는 장벽에 막혀 이별하게 되고, 24살이 된 앨리는 우연히 신문에서 노아의 소식을 접하고 잊을 수 없는 첫사랑 앞에서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요. 앨리와 노아 두 사람의 첫사랑은 마지막 사랑이 될 수 있을까요?

<노트북>은 니콜라스 스팍스가 쓴 소설이 원작으로 원작은 작가의 장인, 장모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로 밝혀지면서 더욱 주목받으며 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한 <노트북>은 출판사와 계약도 하기 전에 영화의 판권이 팔렸다고 하니, 영화화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연출을 맡은 닉 카사베츠 감독은 소설을 읽고 “소설 속 사랑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자, 바라왔던 사랑이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라며 원작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고 해요. 그리고 섬세한 연출과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원작의 절절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냈습니다.

<노트북>은 로맨스 영화를 언급할 때 꼭 회자되는 많은 이들의 인생작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도 개봉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으며 2016년과 2020년 두 번이나 재개봉되기도 했어요. 풋풋했던 첫사랑으로 만나 엇갈린 운명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향한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로 최고의 로맨스 영화라는 찬사와 함께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로맨스의 바이블로도 불립니다. 주연을 맡은 레이첼 맥아담스와 라이언 고슬링은 <노트북>을 통해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됐는데요. 레이첼 맥아담스는 이후 로맨스 장르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명실상부 로코 퀸으로 자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라이언 고슬링은 ‘노아’역으로 가장 먼저 낙점되었다고 하는데요. 감독은 “잘생기지도 쿨 하지도 않고 약간 겁쟁이처럼 보이는 보통 남자의 이미지가 주인공과 닮았다”고 생각했기에 그를 노아로 캐스팅했다고 해요. 그리고 감독의 안목에는 이견을 제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라이언 고슬링이 아닌 노아는 상상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영화는 앨리와 노아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졌던 1940년대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현재에서 시작해 현재에서 끝나는 구조를 띠고 있어요. 감독은 노신사가 치매를 앓고 기억을 잃은 노부인에게 앨리와 노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밋밋할 수 있는 플롯에 생동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런 구성은 ‘주인공의 신분 격차’와 같은 로맨스 장르에서 진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요소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또 “가난하지만 휘트먼의 시를 읽는 노아와 부호이지만 음담패설을 즐기는 앨리의 아버지를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신분의 차를 뛰어넘는 사랑”을 정직하게 그려냈습니다.

서로 사랑하지만 마음의 무게가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누가 더 많이 사랑하고 덜 사랑하냐 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아가 더 많이 사랑했지만, 그 마음을 앨리가 알아봐 주었던 것처럼요. (전 앨리를 향한 노아의 마음이 더 깊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요즘에는 마라 맛 로맨스가 대세 라지만 저는 여전히 서서히 타올라 따끈하게 오래가는 그런 낭만적인 로맨스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지디가 그랬죠.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하지만 <노트북>을 보고 있으면 첫사랑만큼은 영원하고, 한날한시에 사랑하는 사람과 숨을 거둔다는 연애관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곁을 지켜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과 일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돼요. 영화가 오랫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도 평생에 단 한 번뿐인 사랑, 오직 단 한 사람을 만나고 함께 한다는 클리셰 같은 이야기가 사실은 쉬운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플립 (Flipped), 롭 라이너, 2010년 개봉

새로 이사 온 옆집 소년 브라이스를 보고 첫눈에 사랑을 직감한 7살 소녀 줄리. 솔직하고 용감한 줄리는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만, 브라이스는 그런 줄리가 부담스럽습니다. 줄리의 애정 공세를 피해다니기만 6년. 브라이스는 줄리가 직접 부화시켜 키운 닭이 낳은 달걀을 매일 가져다 주는 걸 거절하지 못하고 몰래 버리다 들키게 되고, 화가 난 줄리는 그날부터 브라이스를 피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향한 줄리의 관심이 사라지자 브라이스는 오히려 줄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는데요. 줄리의 첫사랑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요?

영화 <플립>은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원작의 배경은 2000년대이지만 영화에서는 1960년대로 시대적 배경이 바뀌었습니다. 국내에서는 극장 개봉 없이 DVD로만 출시되었는데도 '설레고 귀엽고 감동과 교훈도 있는 풋풋한 첫사랑 로맨스 영화'로 입소문을 타며 팬들의 끈질기 요청 끝에 2017년 스크린 정식 개봉이 확정되었다고 해요. 개인적으로도 풋풋한 하이틴 첫사랑 영화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2차 판권으로 공개되고 재개봉 후에도 꾸준히 여러 커뮤니티에서 ‘인생 영화’로 꼽히며 평균 이상의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어요.

영화는 <어 퓨 굿맨>,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연출한 롭 라이너 감독의 작품으로 6번째 레터 '20세기 로맨스'에서 소개했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역시 롭 라이너가 연출한 작품이었습니다. 감독은 아들의 소개로 원작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사랑 이야기에 매료되어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감독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영화로 누구나 어떤 사람에게 처음 반했던 순간, 특히 첫사랑은 잊지 못하는 것처럼, 그때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과거를 돌아보고 기억을 되짚어 보면서 웃음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어요.

<플립>은 각색 과정에서 시대 배경이 바뀌게 되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해요. 원작과 달리 완전한 아날로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덕분에 주인공들의 순수하고 풋풋한 감정이 한층 돋보였고 파스텔 톤의 전원 풍경과 주인공들의 복고 의상이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주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같은 상황에서 다른 생각과 입장을 보이는 줄리와 브라이스의 시선이 교차하는 구성도 흥미롭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플립(flipped)’은 ‘뒤집힌’이라는 뜻으로 동일한 사건을 두고 줄리에서 브라이스, 브라이스에서 줄리로 화자가 변할 때마다 화면 역시 상하좌우로 전환되며 제목에 충실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flipped’은 ‘반했다’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하는데요. 영화 속 브라이스가 마침내 줄리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인정하는 “I had flipped, completely”를 통해 직접적으로 암시됩니다.

줄리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브라이스에게 건네던 할아버지의 충고였는데요. 사람의 외면이나 배경보다 그 사람의 내면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였겠죠. 저 역시 누군가에게는 무지개 같은 사람이, 그리고 누군가의 무지개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풋풋한 첫사랑 영화이면서 동시에 성장 영화의 면모도 담고 있습니다. 줄리와 브라이스 두 사람의 성장담을 통해 인생에 있어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요. 원작의 작가는 “아이들이 누군가를 판단할 때 겉모습이 아닌, 사람의 내면을 알아보는 법을 어떻게 배우는지를 담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영화에서 줄리와 브라이스의 가정은 상반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줄리네 집은 넉넉하진 않지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보여요. 반대로 브라이스의 가정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소통이 단절되어 있죠. 원작과 영화는 두 가정을 비교해서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플립>은 첫사랑 이야기 속에 삶의 교훈과 가치를 적절하게 녹여내고 이를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전달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때묻지 않았던 마음을 깨우치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입니다.

Epilogue

구독자님에게 첫사랑은 어떤 의미인가요? 첫사랑은 ‘너’라서 보다 ‘너와 함께한 처음’이 주는 특별함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건 아닐까요. 처음이라 서툴고 아프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풋풋하고 애틋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렇지만 지금 곁에 있는 너의 첫사랑을 굳이 들춰 내지는 말기로 해요. 지금의 행복과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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