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48. 엠마 톰슨의 얼굴들 (배우특집 ep.6)

엠마 톰슨 (Emma Thompson)의 얼굴들

엠마 톰슨은 드라마, 멜로, 코미디,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마다 색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배우입니다. 1992년 <하워즈 엔드>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를 비롯한 12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는데요. 각본가로서의 재능도 뛰어나 제인 오스틴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엠마 톰슨의 매력은 독보적인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장르의 어떤 배역도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생동감을 불어넣은 느낌이 듭니다. 마치 그 인물이 현실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거나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것처럼요. 시대극에서는 기품 넘치는 모습을, <러브 액추얼리>와 같은 작품에서는 평범한 영국인의 얼굴을 보여주기도 하고, <칠드런 액트>에서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지성인의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해 냅니다. 엠마 톰슨이 표현하는 캐릭터 안에는 배우 본연의 개성도 묻어나는데요. 배우로서의 개성과 표현해야 하는 인물 사이의 절충점을 찾아 캐릭터와 장르를 넘나들며 완벽하게 소화할 줄 아는 배우란 생각이 듭니다.

엠마 톰슨의 필모그래피 중 추천드릴 작품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골라봤는데요.😅 각본가로서의 그녀의 재능과 배우로서의 재능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센스 앤 센서빌리티>와 그녀의 필모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칠드런 액트>입니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 (Sense & Sensibility), 이안, 1996년 개봉

<센스 앤 센서빌리티>는 제인 오스틴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19세기 영국 젠트리 계급 여성들의 연애와 결혼을 그렸습니다.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이 연출을 맡고 엠마 톰슨이 각본에 참여했는데요. 원작 소설보다 더 극적인 작품이 탄생했다는 평과 함께 아카데미에서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아카데미 7개 부문 노미네이트, 베를린 영화제 작품상, 골든 글로브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영화에는 영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했는데요. 엠마 톰슨과 케이트 윈슬렛이 각각 엘리너와 메리앤 자매를 맡아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뛰어난 연기 앙상블을 선보였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의 경우 이 작품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이후 <타이타닉> 주인공을 따냈다고 해요. 이외에도 휴 그랜트가 에드워드 페러스를, <해리포터 시리즈>의 스네이프로 익숙한 앨런 릭먼이 브랜든 대령 역을 맡아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19세기말 잉글랜드. 엘리너와 마리앤 대쉬우드 자매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유산이 첫 부인의 아들 존에게 넘어가자 지금껏 살아온 서섹스의 놀랜드를 떠나게 됩니다. 두 자매는 동생 마가렛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존 미들턴 경이 제공한 데본 주의 별장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엘리너는 이곳에서 에드워드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애정이 싹틉니다. 한편 단조로운 시골 생활은 미들턴 경과 그의 장모 제닝스 부인이 중매에 몰두하도록 만들고 그들의 눈에 마리앤과 브랜든 대령이 들어오지만 마리앤은 월러비와 사랑에 빠집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세대를 거쳐가며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왔는데요. 인물 설정이 비슷하고 항상 연애로 시작해 결혼을 끝나는 작위적인 이야기라는 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발표한 소설은 모두 고전 반열에 올랐고, 오랜 시간 회자되며 사랑받아왔는데요. 이는 당시 영국 사회의 배경과 가치관을 인물들의 상황이나 심리 묘사를 통해 잘 녹여냈기에 세대를 넘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센스 앤 센서빌리티>는 <오만과 편견>보다 더 재미있게 본 작품이기도 한데요. 소설 속 곁가지를 걸러내고 곳곳에 유머와 풍자를 가미해 마지막까지 엘리너와 메리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어쩌면 <오만과 편견>은 결말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센스 앤 센서빌리티> 속 자매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그려지는데요. 언니 엘리너는 차분한 이성(Sense)’을, 동생 마리앤은 열정적인 ‘감성(Sensibility)’을 나타나며 이는 작품의 주제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두 자매가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 역시 이성과 감성에 따라 다르게 그려지는데요. 엘리너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하며 감정 표현을 억제해 온 인물이지만 엔딩 장면에서 만큼은 유일하게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에드워드와 엘리너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터놓고 교감하며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는데요. 꾹 눌러왔던 감정을 마침내 분출시키는 엠마 톰슨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두 성향의 대비를 통해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찾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렸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이성적인 엘리너는 여린 감성의 에드워드와 이어지고, 감성적인 마리앤은 과묵한 브랜든 대령과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랑이란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되는 것이고 연애와 결혼 역시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내가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리처드 이어, 2017년 개봉

<칠드런 액트>는 모든 판결에 있어 완벽을 추구하는 존경받는 판사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는 소년의 사건을 맡게 되면서 마주하게 되는 변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어톤먼트』, 『체실 비치에서』 등을 집필한 이언 매큐언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이언 매큐언은 영화의 각본에도 참여했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칠드런 액트(The Childeren Act)’는 “법정이 미성년자와 관련한 사건을 판결할 때 최우선으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해야 함”을 명시한 1989년에 제정된 영국의 아동법인데요. 소설과 영화는 이 법에 근거한 판결로 예기치 않은 변화를 겪게 되는 판사와 소년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 호평받았습니다.

원작 소설은 이언 매큐언이 판사들과의 저녁 식사 모임에 동석했다가 떠올리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판사들이 서로의 판결에 대해 토의하는 대화 속에서 드라마틱한 요소를 읽어냈고, 가정 법원에서 다루는 사건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에서 발생하는 인간적인 분쟁들로 각 사건이 한 편의 드라마틱한 단편 소설처럼 느껴져 본격적으로 가정법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을 집필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고 해요.

극의 중심이 되는 ‘피오나’ 판사는 엠마 톰슨이 맡아 우아한 카리스마와 연약함을 동시에 지닌 인물을 그녀만의 섬세한 표현력으로 완성시켰습니다. 법률 자문을 맡은 판사는 엠마 톰슨의 연기를 보고 “판사라는 위치가 갖는 외로움을 잘 반영했다”라고 찬사를 건네기도 했다고 해요. <칠드런 액트>는 개인적으로 엠마 톰슨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자 엠마 톰슨이 표현하는 ‘피오나’ 이외에 다른 인물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존경받는 판사 피오나는 결혼생활의 위기를 맞은 가운데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수혈을 거부한 소년 애덤의 생사가 달린 재판을 맡게 됩니다. 치료를 강행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애덤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었던 피오나는 이례적으로 병원에 찾아가 애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날의 만남은 두 사람의 삶에 예기치 않은 파장을 불러옵니다.

피오나는 어떤 판결이 소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칠드런 액트’에 입각해 판결을 내리기 위해 애덤의 인생에 관여하게 됩니다. 이는 피오나가 애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애덤 역시 피오나에게 영향을 주었고 두 사람이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결말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인데요. 피오나와 애덤은 각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피오나에게는 결혼생활, 애덤에게는 종교가 이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믿음에 의구심을 품게 되고 피오나와 애덤의 만남은 그 믿음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가장 크게 변화하는 인물은 애덤으로 그에게 주어진 삶은 ‘죽거나 혹은 살거나’ 두 가지뿐이었지만 피오나와의 만남은 그에게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게 했고 종교에 대한 관점과 삶의 태도까지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애덤은 자신의 변화를 피오나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피오나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애덤은 피오나와의 첫 만남에서도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애덤의 한 마디는 줄곧 판사로서 논리적 판단과 감정을 배재한 이성적 모습을 보이려는 피오나를 변화하게 만든 결정적인 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피오나는 어디까지나 ‘칠드런 액트’에 의거해 판결을 내렸고 한 소년이 ‘다가올 삶과 사랑, 그리고 시’를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왔다고 생각했지만, 피오나로 인해 변화한 소년 역시 이성에 매몰되어 있는 피오나의 감정을 되살려 주는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어쩌면 피오나는 애덤의 변화와 선택을 지켜보며 삶이란 항상 이성적인 논리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요. 때로는 이성의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감성에도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며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룸으로써 우리의 삶도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는 것처럼요.

Epilogue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트 (Good Luck to You, Leo Grande)>, 소피 하이드, 2022년 개봉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남편과 사별하고 퇴직 후 중년의 끝자락에 접어든 여성이 그동안 억눌려 있던 성적 호기심을 탐구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와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되어 작품의 완성도를 인정받았습니다. 엠마 톰슨이 생애 첫 노출 연기를 펼쳐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는데요. 엠마 톰슨은 60대에 도전하게 된 노출 연기에 대해 “보여주기 위해 보정하는 몸이 아닌 나이 들어서도 자연스러운 몸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생각으로 촬영 전 상대 배우, 감독과 함께 내 몸에 대해 좋아하는 점, 싫어하는 점, 불안한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라고 밝히기도 했어요. 영화에서 리오와 낸시는 성을 매개로 만남을 가지지만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인간적으로 교감하고 낸시는 리오와의 대화를 통해 규율에 매여 지내며 억압되어 있던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고 해방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리오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조금씩 변화하는 낸시의 내면이 엠마 톰슨의 섬세한 연기력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진 만큼 엠마 톰슨의 연기 내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함께 보기 좋은 작품으로 추천드립니다!

🔖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자료 출처 표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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