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린 시아마가 그린 사랑과 성장의 초상

2025. 9. 19. (73호)

여성의 시각에서 사회적 규범을 탐구하며 예술로 표현하는 감독, 셀린 시아마(Céline Sciamma)

(이미지 출처: The Guardian / Pedro Alvarez for the Observer)

셀린 시아마 감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네아스트(Cinéaste, 영화애호가, 제작자, 감독을 뜻하는 용어로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지닌 감독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보내는 호칭)로 선보이는 작품마다 섬세한 각본과 연출로 평단은 물론 여러 감독과 배우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나타냈는데요. 장편 데뷔작이자 소녀 간의 첫사랑 이야기를 그린 <워터 릴리스>로 칸영화제 신인 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소년이 되고 싶은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톰보이>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퀴어 영화에 수여하는 테디 심사위원상을, 사회가 정해 둔 프레임을 벗어나 여성으로서 주체성을 찾아가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걸후드>로 칸영화제에서 퀴어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2019년에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칸영화제에서 <기생충>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이후 영화의 호평과 함께 역으로 이전 작품이 개봉되는 등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은 ‘인물들의 연대와 성장’을 테마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히 유년기에서 청년기 사이의 주인공이 성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주체성과 정체성을 자각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무엇보다 여성으로서 감독이 느끼는 사회적 규범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으며 ‘여성들의 서사’에 힘을 실어왔는데요. 주인공들은 전통적인 관념의 여성성에 저항하거나 성별에 대한 사회적 경계를 넘어서는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은 인물의 내면과 관계 변화의 미묘한 순간을 포착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서정적인 연출이 돋보이기에 좋아하는데요. 데뷔작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확고한 주제의식과 이를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방식이야말로 프랑스 예술 영화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팬심으로는 필모그래피 전부를 추천하고 싶지만, 이번 레터에서는 국내 관객들에게 셀린 시아마라는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쁘띠 마망>을 소개합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

셀린 시아마 감독, 2020년 개봉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작품으로 18세기말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작은 섬을 배경으로 결혼을 앞둔 귀족 여성과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 여성 화가의 사랑을 그렸습니다. 마치 고전주의회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랑과 예술을 통해 당대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섬세한 연출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는데요. 제72회 칸영화제에서는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 비하인드 스토리 

감독의 데뷔작부터 호흡을 맞춰온 아델 에넬이 정략결혼을 앞둔 귀족 여성 ‘엘로이즈’ 역을 맡았는데요. 셀린 시아마 감독은 처음부터 아델 에넬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해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통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노에미 메를랑은 여성 화가 ‘마리안느’ 역을 맡아 결혼이라는 제도적 속박을 거부하고 예술가로 살아가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극 중에서 마리안느가 그리는 작품들은 프랑스의 여성 작가 ‘엘렌 델메어’가 그렸는데요. 감독은 단순한 소품이 아닌 작가의 화풍이 담긴 작품을 요청했고 작가는 본인의 시선에서 ‘초상화에 담길 엘로이즈를 연기하는 아델 에넬’의 특징을 포착해 완성했다고 합니다.

📼 줄거리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18세기말 프랑스에서 여성 화가로 활동하는 마리안느는 브르타뉴 지역의 한 귀족 부인으로부터 정략결혼을 앞둔 딸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외딴섬으로 향합니다. 부인이 의뢰와 함께 내건 조건은 딸인 엘로이즈가 본인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모르게 그림을 완성해 달라는 것이었는데요. 당사자에게 들키지 않고 초상화를 완성해야 하는 마리안느는 비밀스럽게 그녀를 관찰하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엘로이즈 역시 산책 동반자로 소개받은 마리안느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며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 마리의 리뷰 

영화는 개인의 운명이 계급과 성별에 따라 결정되던 18세기라는 시대 배경을 통해 그 속에 놓인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엘로이즈’의 경우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의 정략결혼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물로 그녀의 결혼이 원래는 언니의 혼처였으나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세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는 당시 여성들이 억압적인 사회와 체제 속에 갇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마리안느’의 경우 당시에는 드물었던 여성 화가로서 결혼이라는 제도적 속박을 거부하고 주체적인 예술가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인물인데요. 두 사람이 초상화를 완성하기까지 함께한 짧은 시간 동안의 ‘기억’이 서로의 남은 생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동성애를 다루는 감독의 방식이었는데요.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사랑을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서로를 사랑했던 기억을 통해 남은 생을 살아갈 원동력’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영화는 오프닝부터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서로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데요. 오프닝에 등장했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잊지 않았음을, 많은 이들이 명장면으로 꼽는 비발디의 사계 엔딩은 엘로이즈 역시 마리안느를 기억하고 있으며 사랑했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었음을 보여줍니다. 서로에 대한 기억으로 주어진 생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은 설령 시대에 저항하지 못하더라도 기억을 통해 기록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쁘띠 마망 (Petite Maman)

셀린 시아마 감독, 2021년 개봉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쁘띠 마망 스틸컷)

<쁘띠 마망>은 ‘여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다뤄온 셀린 시아마 감독의 이전 작품과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닌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으로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시골집에 내려온 8살 소녀가 숲 속 오두막에서 엄마와 이름이 같은 동갑내기 친구 ‘마리옹’을 만난 우정을 쌓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 비하인드 스토리 

영화는 ‘만약 어린 시절의 내가 같은 나이의 어린 시절 엄마를 만나면 어떨까’라는 감독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여성들의 서사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감독이 외연을 확장해 가족 간의 유대를 따듯한 시선으로 그려내며 호평받았습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작품인 만큼 촬영 역시 감독의 고향에서 진행했고 세트도 할머니 집을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은 색감을 더해 세트와 소품, 의상을 완성했습니다. 극 중 넬리와 마리옹을 연기한 배우들은 어디서 데려왔을까 싶을 만큼 꼭 닮았는데요. 실제 일란성쌍둥이 자매로 감독은 모녀이자 동시에 친구 같은 관계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다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라면 모녀의 삶에서 정확히 같은 지점에 만나게 되는 수평적 관계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줄거리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쁘띠 마망 스틸컷)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 ‘마리옹’과 함께 시골집으로 내려온 8살 ‘넬리’는 어린 시절 엄마의 추억이 깃든 그곳에서 엄마와 이름이 같은 동갑내기 ‘마리옹’을 만나게 됩니다. 단숨에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낀 넬리와 마리옹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지만 넬리는 이 우연한 만남 속에 숨어있는 놀라운 비밀을 발견합니다.

🔍 마리의 리뷰 

영화는 넬리의 시선을 따라가며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 전개되는데요.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다루고 있음에도 넬리와 마리옹 두 사람의 관계에만 집중해 할머니에서 딸, 딸에서 손녀로 이어지는 세대 간의 유대감을 보여줍니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좋은 영화는 갈등을 기반으로 한 대화가 아니라 자기 생각과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을 믿고 툭 터놓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솔직해서 그렇게 하기가 쉽고, 그래서 어린이 영화와 아역배우를 좋아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발행인이 <쁘띠 마망>을 셀린 시아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넬리와 마리옹을 보고 있으면 아이다운 솔직함과 순수함 때로는 놀랍도록 진중하고 어른스러우며 심지어 철학적인 면모도 발견하게 되거든요.

넬리가 마리옹을 만나게 되는 과정 역시 담백합니다.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도 없고 마리옹에게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비밀을 알려줌으로써 두 사람의 과거나 미래에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죠. 그저 숲에서 우연히 마주친 또래의 소녀들이 친구가 되어 함께 역할 놀이를 하거나 오두막을 완성하고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으며 현재의 시간을 즐겁게 보낼 뿐입니다. 시대와 인종을 막론하고 세상의 모든 딸들은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사이이기에 나와 같은 시절의 엄마를 만나 친구가 되는 넬리와 마리옹의 만남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보다 엄마에게도 나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유대감과 함께 위로를 얻게 됩니다.

Epilogue

🎞️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톰보이 (Tomboy)>, 셀린 시아마 감독, 2020년 개봉 

<톰보이>는 소년이 되고 싶은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워터 릴리스>, <톰보이>, <걸후드>로 이어지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성장기 트릴로지’중 2편에 해당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감독의 어릴 적 경험을 토대로 했는데 짧은 머리 때문에 소년으로 오해받았을 때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꼈던 기억을 살려 완성했다고 합니다. 영화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주인공 로레가 친구들에게 자신을 ‘미카엘’로 소개하고 남자아이 행세를 하면서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 섬세하게 묘사하는데요. 또래 남자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해서 따라 하고 남성성에 호기심을 느끼는 로레의 모습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다루는 감독의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로레의 호기심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는 대상이 어른이 아닌 로레의 여동생 잔과 친구 리사 같은 아이들이라는 점 역시 기억에 남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볼 때마다 때로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포용력이 더 넓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요. <톰보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쁘띠 마망>과 함께 셀린 시아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함께 보기 좋은 콘텐츠로 추천합니다!

🔗 추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OTT 

🔖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자료 출처 표기방식) 

👩🏻‍💻 Who's Marie? ￨ 📼 씨네아카이브 탄생기 ￨ 🎥 씨네아카이브 몰아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