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뉴스레터는 무슨 책으로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 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작품? 아니면 지금 시국에 치트키 같은 페스트? 가장 최근에 읽은 제 머릿속 따끈따끈한 책?......
이렇게 메일리 덕에 조금 이르게 올해 읽은 책을 죽 되돌아봤고, 이왕이면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으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소개합니다.
1.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 1812.2.7~1870.6.9), 어떤 작가인가요?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
책 뒤표지에 나와있는 설명처럼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생전에 이미 작가로서의 확고한 지위와 인기를 얻었고 사후에도 여전히 그만한 명성을 누리고 있습니다.
풍부한 등장인물들, 특유의 위트와 함께 어린 시절 목격하고 경험한 영세민들의 생활, 빈민 아이들이 노출된 열악한 노동 환경 그리고 법률 사무소 및 의회 전문 기자로 일하면서 갖추게 된 넓은 식견을 통해 포착한 시민들의 생활과 사회의 부조리들을 반영한 독보적인 작품들을 남겼어요.
하급 공무원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무절제하게 돈을 쓰며 빚을 지는 바람에 갑자기 가난을 겪게 된 작가는, 당시 어린 나이에 경험한 공장에서의 노동과 힘든 생활에 심적으로 크게 상처를 받았다고 해요. 그때의 경험을 반영한 작품들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로써 그는 소설 사상 처음으로 빈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사회 계급 전체가 예술적 위엄을 부여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 합니다. (해외저자사전에 적혀있는 표현인데, 무척 마음에 들어 그대로 옮겨 적었어요.)
개성 있는 성격의 풍부한 등장인물들, 흥미로운 내용 전개와 유머 섞인 문장, 이에 더해 부조리한 사회상을 반영하고 날카롭게 비판하며 인간 내면 심리를 섬세하고 문학적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들은 당시 소설이 오락거리 정도로 치부되곤 했을 때, 그 이상의 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해요. 스타와 같은 인기를 누렸고 그의 의견은 일간신문만큼이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영향력 어마어마한 인플루언서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언론사에서 수년간 기자와 에디터로 경력을 쌓은 뒤, 1840년부터 본인이 직접 발행인으로 다양한 매거진을 창간하는데, 자신이 발행한 매거진을 통해 여러 작가들을 소개하고 자신의 작품들 역시 이 매체들을 통해 연재하거나 발표하기도 합니다. 그를 인기 작가로 발돋움하게 한 1838년 발표작 ‘올리버 트위스트’, 그리고 그 유명한 스크루지 영감이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캐럴’ 등 총 15편의 장편소설과 5편의 중편 소설, 무수히 많은 단편 및 에세이를 남겼어요.
2. 어떤 책인가요?
1861년 그가 40대 후반의 나이에 완성한 작품으로, 그가 1859년 창간한 문예지를 통해 연재한 소설입니다.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폭넓게 조망하는 그의 후기 작품의 성격이 잘 드러난 소설이라고도 하네요. 장르상으로는 놀랍게도 *고딕소설에 속해요.
*중세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 양식의 하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특히 성행했으며, 고딕소설이란 명칭은 중세의 건축물이 주는 폐허스러운 분위기에서 소설적 상상력을 이끌어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 대부분의 고딕소설들은 잔인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통해 신비한 느낌과 소름 끼치는 공포감을 유발하는 데 주안점을 둠. 현재는 중세적 배경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인간의 이상 심리상태를 다룬 소설 유형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됨. 예)프랑켄슈타인
부모의 얼굴은 본 적도 없는 주인공 핍은 스무 살 정도 많은 우악스러운 누나의 집에서 살고 있어요. 그저 밥 먹여주고 잠재워주는 것으로 대단한 은혜를 베푼다는 듯 생색내지만 사실은 막무가내인 누나의 폭력적인 양육방식 아래에서 다행스럽게도 다정하고 세심한 매형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냅니다. 어른들의 배려라고는 전혀 없는 환경에서 그 마을의 어느 홀로 사는 부유한 노부인이 말상대를 해줄 아이를 찾는다는 요청에 우연히 거대한 저택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음침하고 기괴한 그곳에서 만나게 된 노부인의 아름다운 양녀 에스텔라에게 첫눈에 반한 사춘기 핍은 그날 이후 자신의 처지와 계급의 차이, 신분 상승의 욕구 등을 그 나이 아이답게 느끼기 시작하죠.
이후 신분을 밝히지 않는 누군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받게 된다는 믿기 힘든 행운이 핍에게 찾아오고 그 재산에 걸맞은 ‘신사’로 자라기 위해 적절한 교육과 생활환경을 갖추기 위한 목적으로 런던으로 떠나게 됩니다. 갑자기 바뀐 처지, 그만큼이나 어쩐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만 같은 에스텔라,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유산 상속인. 그는 정말 멋진 신사가 될까요? 에스텔라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요? 유산을 물려준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요?
이렇게 무척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뒤에도 엄청난 내용들이 있지만, 스포일러를 자제할게요.
찰스 디킨스는 1859년 봄에 ‘1년 내내 (All the year around)’라는 주간지를 창간 발행하게 되는데, 초반 연재하던 다른 작가의 작품이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해 근 2년 동안 판매 부수가 계속 하락했다고 해요. 그가 직접 투자해서 창간한 주간지라 그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고, 관계자들과의 회의 끝에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직접 연재하는 방법밖에는 난관을 타계할 길이 없겠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때가 1860년 10월 2일이었고, 그 회의에서 12월부터 연재하기로 결정합니다. 시간은 촉박했으나 소설 자체는 5년 전부터 구상을 해오던 상태였고, 회의 며칠 전 이미 상황을 예상하고 집필을 시작했었다고 해요. 오래전부터 구상했던 작품이라 그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수월하게 써 내려갔다고 하며, 1860년 12월부터 이듬해인 1861년 6월까지 총 36회에 걸쳐 연재를 하게 됩니다. 연재가 시작되자마자 즉각적인 호응을 얻으며 ‘1년 내내’ 주간지 판매 부수도 올라가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야기의 구성 자체가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핍의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사람의 다양한 욕구와 심리를 그려내고 계급 간의 차이와 부조리, 다양한 삶의 형태를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미 계급 간의 이동이 경제력에 의해 가능해졌던 시대이고 신분 상승의 욕구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이면에 더더욱 소외되고 비인간적인 삶을 살던 빈민과 아이들의 모습이 자본주의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에요. 이에 더해 시대를 불문하는 도덕적인 덕목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들이 많이 있습니다.
* 작가와 책에 대한 내용은 책에 수록된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 및 아래 링크들을 참고했습니다.
3. 분량과 난이도
이 작품은 1861년 연재를 마치고, 넉 달 뒤 총 3권으로 묶인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고 하네요. 제가 읽은 민음사 판본은 총 2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작품 해설과 연보를 제한 총 분량은 약 870페이지 정도로 꽤 긴 장편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줄거리 자체가 흥미진진해서 상당히 속도감 있게 읽히는 편이고, 워낙 등장인물과 사건사고가 많아 전혀 지루하거나 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문장이나 단어들도 어렵지 않아요. ‘영국식 유머’라고 하는 특유의 반어법위트들도 꽤 많이 등장해서 그런 대목들을 놓치지 않고 잘 캐치한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요.
4. 이 책의 매력 포인트
이 책의 장르가 고딕소설이라는 점이 가장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어요.
저는 1998년 제작된 귀네스 팰트로와 에단 호크 주연인 동명의 미국 영화를 통해 이 작품을 처음 접했기 때문에 그저 신비롭고 아름다운 분위기만을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막상 책으로 읽다 보니 상당히 기괴하고 기이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너무나 비현실적인 설정들과 현실적인 상황이 묘하게 어우러져 그 희한한 조합이 오히려 더욱 흡입력 있는 장면들을 구성합니다.
1권에서 2권 초반까지는 이렇게 신비스럽고 묘하며 으스스 한 분위기로 전개되는데, 2권 초반 지나고 나면 본격 스릴러 서스펜스가 시작됩니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위대한 유산이 이런 책이었다고?’라고 계속 놀랐어요.
모든 이의 마음을 끄는 사랑 이야기가 이 책에서는 서정적이면서도 기이한 방식으로 매력적이고요, 이토록 정신없이 놀라운 전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핍의 성장과정과 함께 도덕과 윤리, 고결한 인격 등을 다루는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깊은 질문들이 꾸준히 관통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반어법적인 위트, 영국식 유머도 큰 재미였습니다.
* 책의 상세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독후감은 12월 10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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