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소개 24-1 / 농담, 밀란 쿤데라

작가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소설 / 작가 및 책 소개

2022.10.16 | 조회 1.2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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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의 고전 읽기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고전 문학 이야기

메일 수신 시 '웹에서 보기'로 읽으시면 포맷이 좀 더 눈에 잘 들어와요.

 

 

1. 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 1929.4.1~2023.7.11), 어떤 작가인가요?

 

"금세기 최고의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 주는 소설가"

- 루이 아라공, ‘농담’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

 

 

체코 태생으로 정치적으로 격변의 시기를 지내며 개인들의 삶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인간의 실존적 가치, 철학적 의미에 대한 고민, 정치 비판과 함께 유머가 한데 어우러진 깊이 있으면서도 대중성을 갖춘 소설들은 꾸준히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체코 및 세계 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로 평가됩니다.

체코 모라비아 지역 브루노의 중산층 출신으로 아버지는 저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원 원장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어려서 피아노를 배웠고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던 만큼, 작품에도 음악에 대한 대목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대학에서 문학과 미학 학사 과정을 공부했고 중간에 방향을 바꿔 프라하의 공연예술대학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어요. 졸업 후 동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맡았으며 시, 희곡,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활발하게 집필활동을 하게 됩니다. 

청년 시절에는 공산당에 가입 및 탈퇴를 몇 번 반복했고, 교수로 재직 중이던 시기 1963년경부터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고자 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어요.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고 일컬어지는 사회 혁명이 소련의 개입으로 무산되며 정부는 쿤데라를 모든 공직에서 해직하고 저서들은 금서 조치합니다. 결국 1975년 프랑스 렌느 대학에서 교편을 잡을 수 있도록 망명 허가를 받아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거처를 옮기게 되고 1979년 조국 체코의 시민권은 박탈당합니다. 유명 대표작들 대부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고 다수의 작품을 불어로 집필, 작가 스스로 여러 공식 행사에서 자신을 프랑스 작가라고 소개하기도 한다네요. 역설적으로 체코에서는 빛을 볼 수 없었을 많은 작품들이 전 세계에 알려지며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고, 지속적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을 만큼 현대 문학에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 1989년 정부는 쿤데라의 일부 저서 및 영화에 대한 판금 조치를 해제했고, 작가는 1996년에 망명 후 처음으로 체코를 방문, 이후 여러 차례 들렸으며 2008년에는 체코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12월, 체코 정부가 작가를 설득해 40년 만에 국적을 회복했다고 하네요. 

이름을 검색하면 여전히 쿤데라에 대한 수많은 기사들이 나오지만 세세한 개인적인 정보나 근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 약 37년간 공식 석상이나 인터뷰 등의 노출 없이 자발적으로 은둔하다시피 지내고 있습니다. 작품을 이해하겠다는 핑계 삼아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여기저기 뒤지고 있는 저의 태도를 작가가 진절머리 나게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게 있어 역사적 상황은 복수, 망각,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역사와 인간의 관계, 본래 행위의 소외, 섹스와 사랑의 분열 등 나를 매혹하는 실존의 주제를 극도로 날카로운 빛으로 새롭게 내리쬘 때만이 의의가 있다.> - 밀란 쿤데라

 

 

 

​2. 어떤 책인가요?

 

"쿤데라 문학의 사상적 근원을 보여 주는 대표작"

- 출판사 소개 -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과 미국의 압박 사이에 있던 체코슬로바키아가 내부적으로는 공산당계와 비공산계의 팽팽한 대립을 겪던 중 1948년 2월 체코 혁명에 의해 공산당이 승기를 잡으며 본격적으로 소련형 사회주의가 시작되던 때가 배경입니다. 이 시기 청년 시절을 보내며 몇 차례 공산당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던 작가는 1950년 ‘반공산당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공산당에서 추방당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주인공 루드비크는 새롭게 등장한 사회주의 이념으로 세상을 일궈나가는 것에 가슴이 뛰던, 당시 여느 대학생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학생이었어요. 사회 분위기는 엄격해지기 시작했지만 암울하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며 똑똑하고 따르는 친구들이 많던 루드비크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학생회 활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갑니다. 호감이 있어 좋은 관계로 지내던 여학생 마르케타가 방학 때 두 주 동안 당 교육 연수에 참가하게 되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농담과 같은 도발적인 문구를 적어 보낸 엽서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트로츠카 주의자로 몰린 주인공은 학생 연맹에서의 직책을 박탈 당하고, 학교에서는 제적되며 결국 반사회적 인물로 분류되어 수년간 수용소와 다름없는 군 생활을 하게 되면서 완전히 사회의 주류 밖으로 밀려난 삶을 살게 됩니다. 시간과 함께 험난한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의 젊은 시절도 이미 흘러가고 말았죠. 중년이 된 루드비크는 젊은 날 농담 적힌 엽서 한 장으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은 당시 동료 학생, 이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든 그에게 뒤늦은 복수를 계획했지만 결과는 허망했고 아무런 타격을 가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복수극조차 실패한 농담처럼 돼버립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신봉하지 않는 옛 사상,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때의 젊은이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되어있었어요. 실패한 복수, 놓쳐버린 젊은 시절, 이제는 이미 저 멀리 뒤안길로 멀어진 옛 사상들. 루드비크는 무엇을 위해 삶을 희생당한 걸까요? 모든 게 달라진 세상에서 이제는 분노해야 할 대상조차 분명치 않습니다. 모든 것이 농담 같기만 한 슬픈 역사 속 망가져 버린 주인공의 삶을 통해 사회에서 신봉하는 이념과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개인을 무력화 시키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시와 에세이, 희곡을 주로 작업하던 밀란 쿤데라가 1967년 발표한 첫 장편 소설로, 이듬해 프랑스어로 번역, 소개되면서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작가적 능력을 인정받고 이름을 알리게 된 결정적 작품입니다. 1969년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은 책에 수록된 안내와 아래 링크들을 참고했습니다.

 

 

 

3. 분량과 난이도

제가 읽은 민음사 판본으로는 약 530여 페이지로 꽤 분량이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루드비크의 굴곡 있는 삶 속 다양한 에피소드와 주변인들의 제각기 다른 삶을 다각도로 보여주면서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지루하거나 어렵다는 느낌 없이 읽을 수 있었어요. 

체코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더라도 책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방해가 되지는 않지만, 1948년 2월 체코 혁명을 기점으로 공산당이 집권하게 되었다는 사실 정도를 염두에 두면 대략적인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하기에 좀 더 수월할 듯합니다. 

 

소설 속에서 주요 사건이 일어나는 지역이자 작가의 고향, 체코 동부 모라비아 지역의 브루노
소설 속에서 주요 사건이 일어나는 지역이자 작가의 고향, 체코 동부 모라비아 지역의 브루노

 

 

4. 이 책의 매력

시대적 배경도, 다루는 주제도, 모두 책이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을까 싶지만 일차적으로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사람의 심리를 묘사하는 통찰력 있는 ​문장들과 진지한 분위기에서 더욱 돋보이는 유머러스 한 장면들이 종종 등장해요. 

책에 등장하는 농담은 여러 가지입니다. 루드비크의 삶이 비극으로 전환되게 한 결정적인 농담부터, 힘들던 시기 만났던 여인 루치에가 품고 있던 진실, 나름 비장하게 계획한 복수극의 전개 등등. 우울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심오하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지만 우리 모두의 인생이 그렇듯 한 발짝 멀리서 보면 실소가 나오는, 요즘 말로 ‘웃프다’고 하는 에피소드가 가득합니다. 

실패한 역사의 한 토막에 떠밀려 망가진 삶을 떠안은 주인공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도 번갈아 가며 들여다보면서 장면의 전환이 자주 일어납니다. 개인들의 인생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바라보게 하고, 삶 속에 언제나 존재하는 아이러니하고 비극적인 모습을 살펴보고 인생과 사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미와 깊이가 함께하는 작품입니다. 

 

그 시절 내겐 내밀한 슬픔 같은 것이 많지 않아 오히려 장난기가 상당했지만, 그래도 그 시대의 즐거움에 비추어서는 제대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 농담들에는 진지함이 너무 결여되어 있었는데 당시의 기쁨은 해학이나 아이러니를 용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농담, 민음사 p.53

 

 

* 7월 초, 뉴스를 통해 밀란 쿤데라의 사망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한 페이지가 또 넘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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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한결같은 빛을 발하는 고전 문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어요.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작가의 작품, 너무 유명해서  마치 읽은 것 같지만 사실 들춰본 적도 없는 책, 어릴 때 아동용 요약본만 읽었던 책들, 그런 고전들 위주로 읽고 소개합니다.  

 

한달에 두세편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 작품당 두편의 뉴스레터가 발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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