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야 헤세의 매력을 알게 되어 당시 여러 작품을 좀 몰아보기도 하고 주변에 늘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아주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책 편식을 조금 멀리해보고자 또 여전히 미지의 세계인 방대한 고전들을 더 알고 싶어 일부러 잠시 헤세를 미뤄놨던지라 오랜만에 그의 첫 소설이라는 페터 카멘친트를 주문하면서 많이 설렜어요.
‘아, 내가 좋아하는 작가야!’ 하는 마음과 함께, 잠시 미뤄둔 기간 동안 예전에 비해 조금 더 다양한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을 접했으니 다시 만나는 헤세의 문장들을 제가 어떻게 느낄지, 여전히 좋을지 아니면 조금 감흥이 떨어질지, 또는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읽은 그의 문장은 새삼스러우면서도 또 예전과 비슷하게 제 마음에 와닿았어요. 차분하게 자연을 향한 애정과 삶의 희로애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역시나 그의 개성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그래서 이번 책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이라 좋았습니다.
작가 헤르만 헤세와 페터 카멘친트에 대한 간략 소개는 ↓
1. 위대한 작가의 첫 발자국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 작가들의 생애를 살펴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고 사소하거나 중요한 정보를 알아가는 것은 꽤 흥미롭습니다. 삶과 창작물을 떨어뜨려 생각해야 한다는 것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한편,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좋아했으며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알게 되면 그의 작품들을 보는 시선이 편견이나 추측 때문에 제한되기보다는 오히려 확장된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이와 비슷하게 이미 문학계에서 확고한 위치에 오른 작가들의 첫 작품을 뒤늦게 읽는 것에도 역시 특별한 즐거움이 있죠. 위대한 작품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게 충분히 깊은 감동을 주지만, 마치 올림픽 대로를 지나다 일정한 자리에서 늘 마주치는 광고판 혹은 어떤 높은 건물같이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랜드마크처럼 생각했던 작가나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알게 되면 작가도, 그가 구현한 결과물도 좀 더 인간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데뷔가 인상적이었던 동시대 작가의 팬이 되어 차츰차츰 자신의 작품 세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보는 것 또한 의미 있지만, 이번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 역사나 추억을 찾아보다 보면 의미와 함께 ‘의외성’을 어김없이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페터 카멘친트를 읽으면서도 역시 이런 의외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너무 풋풋하면서 동시에 너무도 꽉 찬 작품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된 건 헤세의 단편집 ‘요양객’에 실려있는 ‘뉘른베르크 여행’ 때문이었어요. 자신의 작품 낭송회 겸 강연회를 다니는 기행문 성격을 띤 산문이었는데, 여기에 잠시 이 작품을 언급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준 책으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그 책에 대한 좋은 감상을 지닌 팬들이 많지만 작가 자신은 들춰본 지가 언제인지 잘 기억도 안 나는 듯한 그의 첫 작품. 그에게는 영원히 각인된 주홍글씨 같은 작품인 걸까 싶었어요. 혹은, 경력이 오래된 스타 가수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수십 년 동안 콘서트 할 때마다 어김없이 불러야만 하는, 모든 팬들이 소리 지를 준비를 하며 두 시간 내내 기다리는 신인 시절 대 히트곡 같은 걸까요.
작가의 모습이 좀 더 여과 없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문장들은 확실히 ‘첫 작품’의 신선함을 품고 있었습니다. 쉽고 간결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삶과 인간의 내면을 심도 있게, 또 능수능란하게 글로 표현하는 작가도 첫걸음은 예외 없이 이렇게 순수하고 풋풋했다니. 시를 발표하며 데뷔는 했지만 여전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작가로서 첫 소설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최대한 잘 표현하려 고심하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와 같은 초기 대표작들은 그의 어린 시절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들로 젊은 청년을 중심으로 방황하고 좌절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부처의 일대기에서 영감을 받은 싯다르타, 자유롭게 독신으로 일생을 살며 마지막에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크눌프, 환상과 실제가 뒤섞이며 자신의 경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경험 끝에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황야의 이리 등,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온 작품들은 좀 더 포괄적인 개인 내면과 삶의 태도에 모습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가장 첫 작품이라는 페터 카멘친트는 조금 놀랍게도 오히려 후기 작품들의 모습에 더 가깝게 느껴졌어요.
주인공 페터가 삶의 전체 주기 속에서 모든 희로애락과 일탈, 방황을 경험하는 모습에서 싯다르타가 연상되었고, 자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중년에 스위스 작은 마을의 방 한칸을 빌려 소박하게 지내며 남긴 기록을 엮은 산문집 ‘방랑’이 생각났어요. 그리고 이 외에도 다양한 장면들을 보며 자유롭고 사유하는 방랑객으로 살았던 크눌프가, 기묘하고 환상적인 경험을 하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 훌쩍 성장하는 황야의 이리 속 주인공 하리 힐러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을 읽어보기 전까지 저는, 헤세가 끊임없이 맞이했던 개인적인 고뇌의 시간을 통해 점차 거대한 우수 속 일부라는 인간으로서의 위치,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며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통해 온전히 삶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법, 결국 평범하지 않은 삶을 택한 그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글로 발전시켜 나갔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페터 카멘친트를 읽으면서 헤세가 평생에 걸쳐 글을 통해 이야기하려 했던 것들이 사실 이미 여기에 다 담겨있다고 해도 될 것 같았고, 그를 단번에 대중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게 한 작품답게 첫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완성도가 높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책의 페터가 돌고 돌아 다시 고향에 돌아와 자신을 발견하고 비로소 성장을 완성해 나가는 것처럼, 헤세도 어쩌면 그 시간을 지나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간 것이 아니라 처음 자기가 품었던 중심을 향해 깊숙이 들어가는 법을 터득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2. 뿌리에 대하여
페터는 알프스 산골 마을, 집성촌에서 태어납니다. 소수의 사람만을 제하고는 가깝던 멀던 일가친척들로 이뤄진 사회에서 삶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죠. 어려서부터 알프스의 험한 산을 오르며 자연과 광활한 하늘을 통해 넓은 세상에 대해 배우게 되었어요. 그렇게 자란 페터가 도시로 나가고 이때까지 자기가 접한 사람들, 사회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내딛는 모습이 많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 접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흥분, 그리고 동경하지 않지만 이 세련된 사회에 결국 자신이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득한, 약간의 오만함이 섞인 자신감에서 오히려 젊은이 다운 희망찬 모습이 느껴졌어요. 그의 청춘은 부잣집 출신의 음악가 리하르트를 만나며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고 비상하기 시작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 어색하지만 흥미롭고 때로는 허무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에 대한 욕심은 내려둘 수 없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충실하고 단단한 우정이 그가 경험하는 고통을 상쇄하고 한껏 그 시절을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게 아름답던 몇 년의 시간은 꿈처럼 흘러가고 이후로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인생의 상승과 하강을 여러번 겪은 뒤 고향에 다시 찾아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페터는 예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안정감을 느낍니다. 돌고 돌아 다시 만난 자신의 근원을 보며 이제야 비로소 중심을 찾아가게 되죠.
이걸 보며 예전에는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던 저의 ‘뿌리’에 대해 의식하게 된 제 기억속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해외에도 다녀오고, 제가 처음부터 속하지 않은 어떤 사회에 발을 들여보기도 하며 어느 누구 못지않게 다채롭고 풍요로운 경험 속에서 정신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다 조금 지친 어느 날 문득 일가친척들과 조우했을 때의 그 묘한 기분이 생생합니다. 여기서는 저를 감출 수도, 포장할 수 없고 포장할 필요도 없다는 것, 그리고 내 본질과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좌절감과 안정감을 모두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시간이 한참 지나 몇 년 전, 오랜만에 연락이 끊겼던 외가댁 친척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른 삼촌과 사촌들을 보며 새삼 뒤늦지만 그제야 저의 어머니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엄마의 형제를 통해 엄마를 좀 더 알게 된 것처럼, 한 사람의 뿌리를 아는 것은 우리가 평소 느끼는 것 이상의 큰 역할을 하나 봅니다.
나라는 사람이 처음 만들어진 기본 틀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 못한 채 지내다가도 결국 인생의 어디쯤에서 우리 모두는 그 그릇을 마주하게 되는 날을 맞게 되나 봐요. 내 스스로 한계를 둔다거나 제약은 둔다는 것과는 다르게, 결국 나 자신의 모습을 조우해야만 중심을 잡고 더 나아갈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인생에서 한 번쯤은 오는 것 같습니다.
3. 자연에 대한 찬가
여러 작품들을 통해 느낄 수 있던 헤세의 자연에 대한 애정은 이 소설에도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특히 스위스의 산자락과 이탈리아 시골 풍경을 묘사하는 구절 구절은 그저 아름다워, 알지도 못하는 그곳이 그리워지는 느낌이에요. 풍요로운 자연에 둘러싸인 스위스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결국 다시 그 자연으로 돌아온 페터는 마치 작가 자신의 모습을 예언이라도 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가 희망했던 모습이 글로 나왔을 것이고, 그도 결국 돌고 돌아 자신이 처음부터 소망했던 삶을 살아낸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4. 글을 마치며
이번 독후감을 끄적거리기 위해 이 책을 제가 처음 알게 된 헤르만 헤세의 단편집 '요양객'에 수록된 ‘방랑’을 다시 한번 들춰보았어요. 자연에 대한 사랑과 인생에서의 직업적인 성취, 사생활에서의 성공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결국 그 모든 걸 다 아우르며 살아가는 헤세의 태도가 페터와 많이 닮았다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어쩌면 그는 첫 소설부터 중년의 자신의 산문 기록들까지 이리도 일관되게 글로 남겼을까 하는 감탄과 함께 결국 한 평생을 기꺼이 속세에 얽매여 있는 구도자의 자세로 살아낸 그의 태도도 존경스러웠어요.
아직 헤르만 헤세가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께, 그리고 저처럼 그의 팬이지만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분들께 모두 권하고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요즘 코로나 상황이 좋지가 않아 회사에서 사무실 출근과 재택을 섞어가며 실시하고 있어요. 재택이 있는 날에는 집 근처 산에 아침 일찍 사부작사부작 다녀오곤 하는데요, 아직 해에 달궈지지 않은 나무 그늘 아래 산길을 걸으며 명랑하게 지저귀는 새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꽤 괜찮습니다. 마음껏 여행을 다니지 못해 답답한 심정이 조금 해소가 되기도 하고요. 특히 요 근래 자연에 대해 아름답게 찬미하는 헤세의 문장들로 더더욱 아침 산행이 즐거웠어요.
제가 멋지게 찍은 사진을 공유하고 싶지만 아무 자료가 없기에, 조금 뜬금없지만 작년에 제가 한동안 빠져서 자주 틀어보고 했던 블랙야크의 광고 영상을 공유해봅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봤는데도 영상이 너무 좋아 계속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브랜드랑은 아무 관계없어요)
이상 고온과 습도로 요즘 전례 없이 커다란 뭉게구름과 선명한 무지개가 자주 출몰하는데, 자연의 아름다움을 순간순간 즐기며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는 일상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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