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기여 안녕’ 또는 ‘무기야 잘 있거라’ 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제가 읽은 민음사 판본은 번역가의 판단으로 원제목의 의미와 현행 국어 맞춤법에 맞게 '무기여 잘 있어라'로 제목을 표기했다고 하여 저도 동일하게 적습니다.
전쟁 중에 우연히 만난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라는 큰 줄기를 따라가면서 그 시기 전쟁으로 인한 특수한 상황들이 일상이 되버린 헨리와 그의 전우들, 행복하지만 짧고 제약 많은 캐서린과의 인연을 통해 전쟁의 허탈함, 삶의 허망함, 그 속에서 만나는 찰나의 행복과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비극적인 결말 때문에 다 읽자마자 느낀 첫 감정은 허탈감이었어요. 저 앞 누군가가 들고 있는 무언가가 사탕인 것 같아 동동거리며 팔을 뻗고 쫓아가다, 제 손에 아무것도 쥐여진 것 없이 갑자기 게임이 끝나버린 것 같았어요. 정말 이게 다인가 하는 생각 때문에 책장을 덮고도 쉽게 책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거대한 이념 외에 주변 모든 것의 의미를 없애 버리는 전쟁 속에서도 뭔가를 찾아 행복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할 때쯤, 우리 생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신념에 도취되거나 허탈감에 빠지거나, 양 극단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을 시절, 이전에는 그저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특별해진 팬데믹을 겪는 지금, 커다란 제약 때문에 단순해지는 삶의 형태 속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욱 선명해지는 이 시기가 어쩌면 긴 전쟁을 겪는 그때와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밍웨이의 개성있는 담백하고 무미건조한 듯 간결한 문장들이 매력적이었던 작품, 독후감 시작 전에 우선 인상적이었던 문장들 중 몇몇을 남겨봅니다.
*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무기여 잘 있어라'에 대한 스포일러 없는 간략 소개는↓
1. 전쟁의 실체
여느 글이나 영화에서 묘사된 모습과는 다르게 그려내는 이 소설 속 전쟁은 아무 실체 없는 텅 빈 껍데기 같고, 아마도 이것이 실제 긴 전쟁을 겪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일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이탈리아 소속의 앰뷸런스 부대 장교인 주인공 헨리는 미국인인데, 자원입대했으나 딱히 이렇다 할 큰 신념이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가 마주치는 다른 부대 소속의 군인들 모두 하나같이 이 길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전쟁 자체를 너무나 싫어하고 지겨워하죠. 승리한다고 해도 비인간적인 이 전쟁을 통해 대단한 걸 이뤄낼 것이라 믿지도 않고요. 하지만 군인의 신분이 된 이상, 어떤 과정을 거쳐 입대를 했건 군을 떠나는 건 자유롭지 않습니다.
일상일 수 없는 나날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전쟁 기간, 헨리는 부대원들과 식사를 하던 중 폭파 사고로 부상을 당합니다. 애초에 배식을 받으러 이동하는 것 자체가 위험부담이 커서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했으나, 곧 공격이 시작되면 밥때를 놓치게 될 부하 직원들을 생각해 다녀오던 차에 사고를 당하죠. 친했던 팀원들은 즉사하거나 끔찍한 고통 끝에 사망하고, 앰뷸런스로 이동하는 중에 같이 실려가는 다른 병사 하나 역시 과다 출혈로 사망하는걸 목격합니다. 여튼 그 와중에 어찌어찌 잘 살아남았고 무사히 치료를 받은 헨리. 문병 온 사람들은 계속 그에게 이번 일로 훈장을 받게 될 거라고 말하고, 그가 어떤 영웅적인 행동을 하다 봉변을 당했던 건지 들려 달라며 멋진 일화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의 부상, 전쟁을 위해 보낸 시간, 다른 동료의 사망은 그 훈장을 통해서라도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잔인한 이념 놀음에 참가해 희생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을 훈장을 통해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 자체는 전혀 나쁠 것은 없겠지요. 여튼 헨리 자신은 썩 반갑지 않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받게 된 훈장은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퇴각 중에 합류하게 된 부대에서 전쟁의 현재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병들이 무차별적으로 장교 계급을 사살하고 헨리 역시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까스로 도망쳐 목숨을 건집니다. 훈장 따위 다 무슨 소용인지요.
이 전쟁으로 이뤄낼 위대한 것 혹은 지켜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고 그저 사람과 사람 간의 폭력만이 실질적으로 느껴집니다.
* 소설 초반부 헨리와 그의 부대원들이 지내던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고리치아 Goriza 풍경입니다.
사진을 가져온 고리치아에 대한 기사입니다.
2. 희망은 어디에
전쟁을 겪은 경험을 전염병에 빗대어 풀어낸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라던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등 일정 부분 이번 책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개인의 의지나 의도와 전혀 무관한 비인간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시기, 그 와중에도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들이었어요.
앞서 언급한 저 두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를 그저 단단히 살아가는 성실함과 우직함, 자신 스스로 세우는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며 희망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무기여 잘 있어라’ 는 삶 속에서 기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가차 없이 말하는 듯 합니다. 사건들에 앞서 뭔가를 암시하는 복선조차 없고, 그저 세상은 이상하게 돌아가고 그 굴레 속에서 사람들은 아무 개연성 없이 비극을 맞이하죠.
헨리는 이번 전쟁은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여기에서만큼은 전사하지 않을 걸 확신하고, 캐서린에게 성 안토니오 목걸이를 건네받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게 무색하게 바로 폭파 사고를 당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옵니다.
헨리와 그리 가깝지 않은 가족 간의 관계는 큰 역할 없이 지나가고, 케서린과의 사랑은 그에게 삶의 의지를 심어줬지만 금세 사라졌으며, 심지어 그 사랑은 케서린에게 비극적인 삶을 선사하기까지 합니다. 아이마저 사산되고 그 둘 사이에 남은 건 이제는 헨리가 기억하는 추억밖에 없습니다.
스위스에서 오랜만에 마주친 그레피 백작도 헨리도 모두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믿지 않는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신이 과연 정말 우리를 가호해 줄까요? 아무것도 믿거나 의지할 것이 없다면, 그럼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뭔가를 찾아내 희망이나 목표, 의미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노력으로 얻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저 우연히 주어진 행운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능한 한 보호하며 간직해가면서 그렇게 유한한 찰나를 즐겨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일지도, 그래서 할 수 있는 걸 그저 하는 것만이 올바르게 살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끼는 방법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무력한 존재일 뿐이니까요.
이 책을 읽고 나니 헤밍웨이가 이 작품보다 20여 년 후 발표한 ‘노인과 바다’는 굉장히 희망적인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세월과 함께 어떤 깨달음을 얻어 희망을 찾아냈던 건지 혹은 환상일 뿐이라도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단지 전쟁의 기억이 흐려진 것일지 궁금해집니다.
허탈하고 허망했던 이야기 속에 간간히 등장하던 작은 행복의 순간들이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여러모로 쉽지 않은 시기지만 가끔씩 선물처럼 주어지는 기쁨을 한껏 즐기도록 해봐야겠습니다.
후반부 헨리와 캐서린이 지냈던 스위스 로잔 지역 사진을 찾다보니 눈과 마음이 정화되네요.
다음 뉴스레터는 1월 15일에 발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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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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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
전쟁의 참담한 실상 최근 바이스 라는 영화를 봤는데 이 어마어마한 전쟁이 단순히 몇 사람들의 대화와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게 놀랍고 허탈하더군요.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단순히 영화 속 몇 컷이 아니라 줌 인 되어 적나라게 표현되는 문장들 속에서 헛헛함이 느껴집니다.. 이번편 너무나도 좋았구요, 다시 한번 코로나라는 작은 전시상황과도 같은 이 시기가 비교적 소박하게 느껴지네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
안느의 고전 읽기 (178)
일상이 평범할 수 없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나 전시 상황 모두 결국에는 비슷한 공통점이 있나봐요. 먼 미래를 계획하고 기대한다는것 자체가 여전히 사치스럽게 느껴지네요. 말씀하신대로 누구나 요즘 일상이 다들 소박할텐데, 그래도 단단한 하루하루를 지내보도록 해야겠습니다. 좋은 오후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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