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신년 잘 시작하셨나요? 이렇게 조용한 연말과 새해는 많이 낯설고 새롭네요.
올해 처음으로 소개할 고전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입니다. 불안함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긴 전시 상황 속 허탈한 주인공을 보면서 오히려 인생에서 선물처럼 주어지는 작은 행복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낯설고 어정쩡한 신년을 맞는 지금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하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선택해봤어요.
※ ‘무기여 안녕’ 또는 ‘무기야 잘 있거라’ 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제가 읽은 민음사 판본은 번역가의 판단으로 원제목의 의미와 현행 국어 맞춤법에 맞게 '무기여 잘 있어라'로 제목을 표기했다고 하여 저도 동일하게 적습니다.
1.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1899.7.21 ~ 1961.7.2), 어떤 작가인가요?
미국을 대표하는 저널리스트이자 단편 및 장편 소설 작가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간결하게 사실 위주로 묘사한, 하드보일드라고 일컫는 강건체의 문체가 특징으로 대표작으로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어라', '킬리만자로의 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이 있습니다.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그의 문학적인 성과도 잘 알려져 있지만 제1 차 세계대전 참전 및 파리에서의 특파원 생활, 스페인 내전 시기 스페인 정부군 지원 및 종군 기자로서의 활약, 제2차 세계대전 특파원 활동, 카스트로와의 친분, 오전에는 모히토로 시작해 저녁은 다이쿼리로 마무리한다는 그의 음주 습관 등 거칠 것 없이 모험적으로 지내온 그의 생애 역시 널리 알려져 있어요. 생전에나 사후에나 그를 언급하면 그가 남긴 문학 작품뿐 아니라 그의 삶도 함께 떠올리게 되는 작가라 그의 평범치 않았던 생애도 잠시 소개합니다.
인물사진의 대가 유서프 카쉬가 찍은 사진. (네이버에서 가져왔어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근교 오크파크에서 성장, 어린 시절 활달한 성격의 글쓰기를 좋아하던 눈에 띄게 우수한 학생이었으나 울타리 밖으로 나가고 싶어 1917년 (18세)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캔자스시티 스타(The Star) 지(誌)의 리포터로 취업하여 거주지를 캔자스시티로 옮깁니다.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참전을 위해 여러 번 자원하지만 권투 연습으로 얻은 눈의 부상 때문에 번번이 입대를 거부당했다고 하네요. 결국 1918년, 미국 적십자사 소속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지원하여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고 이때 박격포 포탄 및 중기관총 사격을 당해 부상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 ‘무기여 잘 있어라’에는 이 당시 작가의 경험을 반영했을 것이라 짐작 가는 여러 장면이 등장해요.
종전 후에 미국으로 귀국했으나 1920년에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 ‘토론토 스타’지의 기자로 근무하게 되고 이 시기에 소설가 셔우드 앤더슨과의 교류도 시작됩니다. 그 이듬해 특파원의 자격으로 파리로 거처를 옮기게 되는데, 셔우드의 추천을 통해 문화계의 큰 손인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나게 되고 이 인연의 도움으로 파리 생활 동안 다양한 문인들과 교류하게 되고 거트루드와 에즈라 파운드 등에게 문학 작법 교습도 받습니다.
1923년 7월 파리에서 그의 첫 출판물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 Three stories and Ten Poems’를 300부 한정판으로 출간했으며 이듬해에는 단편집 ‘우리의 시대에 In Our Times’를 발표하고 이 책은 다음 해인 1925년 미국에서도 출간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1926년 10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를 발표, 이 작품을 통해 ‘로스트 제너레이션 Lost Generation*’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 대중에게 헤밍웨이를 각인시키며 안정적인 명성을 얻는 성공을 거두게 되죠.
* '잃어버린 세대’라는 뜻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 느낀 절망과 허무를 작품에 반영한 작가들을 일컬음 (표준국어 대사전)
1928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플로리다의 키웨스트에 정착해 1950년대까지는 미국에 있을 때는 여기서 주로 지내며 주요 작품들을 집필합니다. 그가 서른이 된 해인 1929년 9월, ‘무기여 잘 있어라 A Farewell to Arms'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출간 4개월 만에 8만 부가 판매되며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어요.
1937년에는 북아메리카 신문 연맹 (NANA)의 특파원 자격으로 스페인 내전을 취재했으며, 모금 연설 등 정부군 지원 활동도 합니다. 1939년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그 해 겨울 두 번째 결혼도 별거로 끝나며 쿠바로 거처를 옮기기 위해 아바나 근교의 저택을 구매해요. 지금은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 집에서 61년 쿠바를 떠나기 전까지 계속 지냈으며, 작가가 붙인 이름 ‘핑카 비히아 Pinca vigia (전망 좋은 집)’ 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두 사진 모두 박물관에 대한 기사에서 가져왔어요.
1940년 10월,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 해군으로 자원해 독일 잠수함 수색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1943년부터 신문 및 잡지 특파원으로 유럽에서 전쟁 취재 시작, 1944년 ‘콜리어’지의 특파원으로 연합군 노르망디 상륙작전, 독일 진격 등을 취재하고 파리 입성도 참가했다고 하네요.
1946년 3월 네 번째 결혼과 함께 미국 아이다호의 케첨에도 집을 마련합니다.
1952년 9월에 ‘라이프 Life’지(誌)에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를 발표했으며 이후 단행본으로도 출간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이후 약 십여 년간 괄목할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아 작가 생명이 끝났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침체되었던 명성을 노인과 바다로 단번에 회복했으며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1954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됩니다.
1959년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해 1961년에는 쿠바의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아예 귀국했지만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건강 악화로 시달리다 그해 7월 미국 케첨 자택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총기 사고로 생을 마감합니다.
2. 어떤 책인가요?
1929년 9월 출간되자마자 초판은 3만 부 판매, 4개월 만에 총 8만 부가 판매되며 헤밍웨이에게 상업적으로 큰 성공과 명성을 안겨준 장편 소설로 1928년 3월 초고 집필을 시작해 1929년 6월에야 마무리 한, 꽤 오랜 기간 동안 집필하며 검토한 작품입니다.
작가의 참전 경험이 반영된 이야기로 미국인이지만 이탈리아군의 앰뷸런스 부대 장교인 주인공 헨리를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 추상적인 이념의 허상, 가까운 이와의 관계의 소중함 등 삶과 인간의 존재에 대한 복합적이고 풍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자원해서 앰뷸런스 부대에 들어온 헨리는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부상과 동료들의 사망, 퇴각하는 과정에서 탈영자나 부대 이탈자를 처단하는 무차별적인 살인 등을 겪으며 실체가 와닿지 않던 전쟁이라는 폭력의 텅 빈 실상과 사람들이 도취된 신념의 허망함을 깨닫게 됩니다. 비인간적이고 무의미한 긴 전쟁의 기간과 그 속에서도 사랑하는 여인과 동료들, 따뜻하게 맞아주는 시골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화들이 중첩되며 삶과 존재에 대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 작가와 책에 대한 내용은 책 뒤 작품 해설과 아래 링크들을 참고했습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78543&cid=44546&categoryId=44546
>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1954/hemingway/biographical/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Ernest-Hemingway
>https://www.newyorker.com/magazine/1950/05/13/how-do-you-like-it-now-gentlemen
로스트 제너레이션
>https://ko.dict.naver.com/#/entry/koko/d492afaf90e54f46aa156c199e7ef1bd
>https://www.thestar.com/news/insight/2016/09/19/how-hemingway-became-hemingway.html
스페인 내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28342&cid=42140&categoryId=42140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99271&cid=42050&categoryId=42050
3. 분량과 난이도
내용은 총 5부로 나누어져 있고, 제가 읽은 민음사 판본으로는 약 500페이지로 꽤 많은 분량이에요. 하지만 시간 순서대로 서술하기 때문에 따라가기 어렵지 않은 편이고 초반 도입부를 지나면 바로 주요 사건들이 전개되면서 점차 흥미가 더해집니다.
헤밍웨이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 때문에 어떤 부분은 빠르게 넘어가기도 하지만, 세부적인 감정 묘사 없이 짧게 사실만 서술한 문장들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이면에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는 장면들도 있어요.
전반적으로는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고, 시간만 충분하다면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지치지 않고 완독할 수도 있겠다 느꼈어요.
4. 이 책의 매력 포인트
기본적으로 연애 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작품이란 것 알고 계셨나요?
제목이 주는 무게감, 500여 페이지의 만만치 않은 분량, 이 책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반전 소설’이라는 표현 등 그 모든 것들 때문에 시작하기 전부터 막연한 부담이 있었어요. 막상 책을 펼치니 캐서린과 헨리가 전쟁 중에 약간의 일탈처럼 만나 서서히 사랑이 무르익는 과정을 따라가도록 되어있는 소설이었고, 읽으면서 재미와 깊이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화려한 수사 없이 짧고 뚝뚝 끊어지는 헤밍웨이 특유의 문체가 이 작품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 어떤 대목에서도 독자에게 특정한 감정을 주입시키거나 강요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담백함 때문에 사실만 나열된 장면들을 보며 짐작할 수 있는 감정의 진폭이 더욱 확장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갑작스럽고 무미건조한 전우들의 죽음, 캐서린과 함께 하는 나른한 오후, 오랜만에 만난 노신사와의 짧지만 깊은 대화들이 간결한 문장을 통해 더욱 풍부하고 서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 책의 상세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독후감은 1월 10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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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
290쪽 인용글에서 실제 전시상황에 생생함이 절절히 느껴지네요.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로써는간접적으로 알음알음 느껴왔는데.. 헤밍웨이의 신념도 대단하고, 아직 대략적인 소개만 받았지만 너무나 특이한 인물임은 확실히 알겠어요. 그리고 저도 '핑카 비히아'처럼 저의 집에 멋진 별칭을 붙여주어야겠어요! ㅋㅋ
안느의 고전 읽기
저런 표현들이 참 좋더라구요. 무미건조한듯 본질을 이야기하는. 집에 별칭 붙이는거 너무 멋지죠!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으셨기를 바랍니다 ^^ 좋은 밤 보내시고, 활기찬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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