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소개 27-1 /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화가 폴 고갱이 영감이 된 소설 / 작가 및 책 소개

2023.06.03 | 조회 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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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의 고전 읽기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고전 문학 이야기

메일 수신 시 '웹에서 보기'로 읽으시면 포맷이 좀 더 눈에 잘 들어와요.

1. 윌리엄 서머싯 몸 (William Somerset Maugham, 1874. 1.25 ~ 1965.12.16) 어떤 작가인가요?

 

그의 위대성은 단지 다양한 문학 형식을 두루 섭렵해 내는 작가적 능란함에 있지 않고, 그가 쓴 작품들이 어김없이 독자의 흥미를 끌어낸다는 데 있다. 대중들이 읽기에 재미있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 대중들을 자신의 애독자로 흡수하여 그들의 문학 수준을 고양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문학의 귀중한 보급자>역할을 담당하였으며, 현대판 셰익스피어에 비견될만하다.

출판사 서평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읽기 쉽고 재미있는 간결한 문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들을 다수 발표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달과 6펜스’를 포함, ‘인간의 굴레’, ‘면도날’ 등의 장편 소설이 특히 현재까지 많이 회자되는 작품들이지만, 그의 커리어 초기 유명세를 안겨준 것은 30대 초반일 때 소위 잭팟을 터뜨린 희곡 작품들입니다. 젊은 시기에 이미 크게 성공해 ‘영 앤 리치 (Young and Rich)’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유명인이었어요. 아흔하나의 나이로 프랑스 니스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끊임없이 히트작을 발표했으며, 작품 구상을 위해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고, 호화로운 저택에서 지내며 수많은 유명인들과 교류하는 아주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을 영위하며 평생 성공한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지냈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소설들을 포함한 다수의 장편과 단편소설, 32편의 희곡, 여러 기행문과 비평문들까지, 사실상 시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 걸쳐 수많은 글을 남겼고, 그의 작품은 거의 100여 편에 이르는 TV 방영물과 영화 등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조실부모한 그를 어려서부터 돌봐 준 숙부의 권유로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 자격을 취득하지만 작가가 되고픈 열망이 강했고 23세에 의학생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쓴 첫 소설 ‘램버스의 라이저 Liza of Lambeth’가 성공하자 의사의 길을 바로 포기합니다. 첫 작품이었던 이 소설은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출간되자마자 몇 주 만에 완판되었다고 해요. 이후 파리, 스페인 등을 여행하며 단편, 장편, 기행문, 희곡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합니다. 반응이 좋던 것, 그렇지 않던 것도 있었지만 그의 희곡 작품들이 서서히 상승세를 타게 되어 1908년, 그가 여전히 33세로 젊은 나이일 때 영국 런던 웨스트앤드에서 그의 작품 4편이 동시에 무대에 오르며 셰익스피어 이래 최대의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이로써 경제적 안정을 확보, 이후 평생을 부유하고 유명한 스타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되었어요. 

찰스 디킨스 이후 가장 많이 읽히고 그의 동시대 작가 중 가장 많은 수입을 거두는 작가*로 알려졌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나, 대중성 있는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비평단이나 당시 동료 작가들에게는 그가 성취한 화려한 가시적 성과에는 못 미치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몸은 자신의 제한된 어휘 사용과 문학적인 은유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 1924년 그가 단편소설로 2500달러를 받았다고 하는데, 현재는 약 20배 정도의 가치로 생각하면 된다고 하니, 한화 약 6천만 원 정도 되겠네요.

 

파리의 영국 대사관 고문 변호사였던 아버지 덕에 그의 출생지는 파리이고, 좀 더 정확하게는 대사관 공관에서 태어났어요. 당시 프랑스 영토에서 출생하면 프랑스인들과 마찬가지로 병역의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면제하기 위한 방책으로 그의 아버지가 생각해낸 묘안이었습니다. 그가 출생한 당시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였고, 이후 에드워드 시대를 거쳐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를 지나, 그의 나이 50대 중반인 1928년에는 프랑스 남쪽 니스 Nice의 페라 곶 (Cap Ferrat) 지역의 호화로운 맨션으로 옮겨, 이후 거기에서 거의 사십여 년을 지내다 아흔하나의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생의 후반을 보냈던 화려한 저택, 빌라 모레스크 (Villa Moresque)의 작업실에서는 지중해가 내려다보였고, 스텝만 13명이 상주했다고 합니다. 당대 다양한 문인들뿐 아니라, 처칠 수상과 같은 영향력 있는 정치인과 배우, 연예인들까지 들락거리곤 했고, 그곳에서의 화려한 모임과 파티는 제2차 세계대전 때에만 중단되었다고 했을 정도로 빌라 모레스크는 성공한 작가의 화려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장소로 알려졌습니다.

생의 절반을 보낸 페라 곶 (Cap Ferrat) 지역
생의 절반을 보낸 페라 곶 (Cap Ferrat) 지역
성공한 작가의 화려한 삶의 상징과 같았던 '빌라 모레스크' 정문
성공한 작가의 화려한 삶의 상징과 같았던 '빌라 모레스크' 정문

그의 인생이 그저 반짝이는 황금빛이기만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가 8세 때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2년 후에는 아버지마저 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10살경에 갑자기 부모를 다 잃은 그는 영국의 숙부의 보살핌 아래 자라지만,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서머셋 몸이 아흔이 넘어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늘 배게 밑에 어머니의 사진을 놓아두었을 정도로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해요. 어린 시절 체구가 왜소했고 말을 더듬는 습관도 있었던 그는 이 때문에 왕따를 당하기도 했는데, 마음에 상처를 주는 냉소적인 발언으로 상대방에게 저항하곤 했고, 그의 이런 성격이 작가가 된 이후 여러 작품 속 캐릭터에 반영되어 그의 문학적 개성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영 앤 리치’로 지내던 그는 사교계에서 유명했던 시리 웰콤 (Syrie Wellcome) 과 엮이게 됩니다. 이미 부유한 제약회사 사업가 헨리 웰콤과 혼인 상태였던 그녀와 서머셋 몸 사이의 길고 깊고 썩 아름답지만은 않은 인연은 어찌 되었든 결혼으로 이어지긴 합니다. 서머싯 몸은 사실상 성적 지향성은 게이에 더 가까웠고 애인까지 있던 상황이지만 시리와 몸 사이의 유일한 아이인 딸, 라이자 (Liza) 가 이미 태어난 뒤였고, 시리는 전 남편에게 고소를 당해 이혼하게 되었기에 서머싯 몸은 결국 그녀와 혼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이혼할 때까지 이중생활을 유지했어요.

그와 오랜 기간 교제한 연인들의 이름이 지금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로 그의 성 정체성은 전혀 비밀이 아니었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알게 되어 긴 시간 동안 동반자로 지냈던 제럴드 핵스턴 (Gerald Haxto) 은 1944년에 사망, 이후 여생을 함께 보낸 몸의 비서이자 연인이었던 앨런 설 (Alan Searle) 과 딸 라이자를 두고 유산 상속 문제가 있어 마음 편치 않은 시절을 보내며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부유하게, 그리고 큰 병 없이 오래 살기까지 했으니, 제가 고전 읽기를 하며 알아본 중 가장 화려하며 수월한 생을 보낸 작가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으나 그의 고단한 사생활에 대한 정보들을 살펴보면서 연보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던 여러 굴곡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은, 책 뒤에 수록된 해설과 작가 연보 및 아래 링크들을 참조했습니다.

https://www.newyorker.com/magazine/1949/08/27/happy-house

https://www.newworldencyclopedia.org/entry/W._Somerset_Maugham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09/sep/13/secret-lives-somerset-maugham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W-Somerset-Maugham

https://www.gradesaver.com/author/w-somerset-maugham

http://www.themauresque.com/the-villa/

https://www.irishtimes.com/news/tales-from-the-villa-mauresque-1.92200

https://www.nytimes.com/2010/05/02/t-magazine/02talk-maugham-t.html

빌라 모레스크에서 촬영한 서머싯 몸 사진 (1947)  /  SOMERSET MAUGHAM, VILLA MAURESQUE, 1947 BY CECIL BEATON © THE CECIL BEATON STUDIO ARCHIVE AT SOTHEBY'S.
빌라 모레스크에서 촬영한 서머싯 몸 사진 (1947) / SOMERSET MAUGHAM, VILLA MAURESQUE, 1947 BY CECIL BEATON © THE CECIL BEATON STUDIO ARCHIVE AT SOTHEBY'S.

 

2. 어떤 책인가요? 

 

후대에 걸쳐 두고두고 평가받을 수작이다. 빈틈없는 구성, 강렬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명쾌하고 간결한 문체가 고루 돋보이는 위대한 작품이다.

뉴욕타임스

 

 
 

1919년 출간했으며 몸의 4대 소설 중 하나라고 언급되는 이 작품 덕에 대중의 인지도와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 책이 인기를 끌면서, 이보다 몇 년 일찍 1915년에 발표했으나 전쟁 중이라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장편 소설 ‘인간의 굴레’까지 재조명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미 극작가로 충분히 성공했지만 이 소설 덕분에 일반 대중들의 폭발적 인기까지 얻으며 작가로서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프랑스 태생으로 타히티 섬에서 여생을 보내며 이국적이고 개성 강한 그림을 남긴 화가 폴 고갱에게 영감을 받아 집필한 작품입니다. 제목 '달과 6펜스'에서 달은 광기 어린 예술혼을 나타내고, 6펜스는 당시 은화 한 닢의 가치로 세속성을 뜻하는데, 사회적이고 세속적인 모든 사회적인 통념과 기준에 반하는 듯한 야생적인 사람 '스트릭랜드'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상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집필을 하고 전쟁이 끝난 직후 발표했는데, 그 시기 현실적인 괴로움이나 사회 문제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오로지 예술혼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인간 문명의 잔인함에 지친 대중은 오히려 순수하고 예술적인 욕망을 다루는 이 소설을 좋아해,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하네요. 

 

3. 분량과 난이도

민음사 판본으로 읽었고, 해설 및 연보를 제하면 약 300여 페이지로 적당한 분량이지만, 제가 빨리 읽은 책 중 하나로 꼽힙니다. 쉽고 간결한 문체, 그리고 거의 시간 순서대로 서술되는 전기 형식을 갖추고 있어 이야기의 구성 자체도 문장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가독성 좋은 책입니다.

 

4. 이 책의 매력 

예술가에 대한 동경을 늘 품고 사는 저에게는, 폴 고갱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는 것 자체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어요. 막상 책을 읽다 보니, 몇몇의 커다란 설정을 제외하고는 고갱과는 또 다른 인물인 주인공, 스트릭랜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가상의 인물이긴 해도 순수하고 강렬한 열정을 지닌 한 예술가에 대한 증언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도저히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저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예술을 택하고 마는 스트릭랜드. 그것을 결심하는 순간 그전까지 본인이 어렵사리 유지했던 모든 관습과 굴레를 벗어 던져버립니다.

이야기 전체의 구성도 깔끔하고, 스트릭랜드라는 괴팍한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제가 느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날카롭게 포착한 사람들의 심리를 간결하고도 쉽게, 하지만 세세하게 풀어놓는 문장들이었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인상적인 부분에 북 다트를 꽂다가 결국 표시하는 걸 포기했어요. 너무 많아서 이걸 다 표시할 수는 없겠다 싶었거든요. 두세 페이지에 내내 계속 감탄만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도 하기 전 서론부터 문장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책 전체 어느 한 부분 골라서 강조하는 것조차 망설여지지만, 책의 후반부에 타이티 섬의 풍경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스트릭랜드를 묘사하는 대목들은 너무 이국적이고 아름다워서 읽는 동안 제가 미지의 섬에 여행 다녀온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이 섬이 아름답다면 그건 바다와 하늘, 초호의 오만가지 빛깔, 그리고 우아한 야자수가 이루어내는 아름다움이랄까, 그런 것인데 스트릭랜드가 살던 곳에는 뭐랄까요, 에덴동산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아, 정말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선생께서도 거길 보실 수만 있다면 참 좋을 겁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외진 곳에, 머리 위로는 푸른 하늘, 사방에는 울울창창 나무만 우거진 곳이죠. 그야말로 색채의 향연 같았어요. 그뿐인가요, 향긋하고 서늘한 바람은 또 어떻구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낙원이었습니다.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민음사 p.270

 

 

고갱이 그린 타히티 풍경 - Tahitian Landscape, 1892 (https://www.metmuseum.org)
고갱이 그린 타히티 풍경 - Tahitian Landscape, 1892 (https://www.metmuseum.org)

 

달과 6펜스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독후감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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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한결같은 빛을 발하는 고전 문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어요.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작가의 작품, 너무 유명해서  마치 읽은 것 같지만 사실 들춰본 적도 없는 책, 어릴 때 아동용 요약본만 읽었던 책들, 그런 고전들 위주로 읽고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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