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콘텐츠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좋은 콘텐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현재까지는 계속 보게 하는 매력이 있는 콘텐츠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콘텐츠가 좌우지간 계속 볼 힘이 있어야, 보는 사람에게 재미를 주든 정보를 주든 감자🥔를 주든 뭐라고 주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계속 차에, 제헌절 연휴에 《은밀한 하녀들》을 보기 시작했다가 새벽 3시까지 멈추지 못했습니다. 평소 12시 전에 자려고 애쓰는 사람인데, 이날은 정말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겨우 자고 다음날 일을 대충 하는 척 하다가, 홀려서 이어서 계속 봤습니다. 결국 이후 며칠간 모든 시즌을 정주행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다음 화가 궁금해 미치겠지? 그 이유가 뭘까? 마지막 시즌 마지막 화를 정주행하고 잔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서 깨달았습니다. '응,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던 건데?' 《응답하라 1988》도 《은밀한 하녀들》도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응답하라 1988》은 '덕선이의 남편을 찾아라'가 끝까지 보게 한 큰 요소 중 하나였잖아요? 처음에 큰 궁금중이 나오고, 매회 작은 궁금증이 생기고, 매화 마다 해결할 때쯤 또 다른 궁금증을 남기고 끝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큰 궁금증은 계속 품고 갑니다. 힌트만 나오고요.
그걸 깨달은 시점부터 콘텐츠를 볼 때 무엇을 보여줬나 보나 보여주지 않았는가를 위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궁금하게 만들고 답을 주는 그 시점의 차이를 보기 시작한 거죠. 그러다 우연히 김미경 대표의 영상을 하나 봤습니다. AI관련된 얘기가 주제였는데요. 후반부에 잠깐 강의 설계 얘기가 나왔습니다. 처음 강의를 기획할 때, 작곡 전공이라 강의를 작곡하듯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가장 몰입해야 할 클라이맥스를 먼저 만들고, 거기까지 어떻게 데려갈지를 설계했다고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하늘이 주신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 삼성증권 신입사원 36명을 대상으로 '실전 커뮤니케이션' 강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전 이전까지 늘 강의 기획할 때 PPT장표부터 만들었는데요. 이제는 경험을 먼저 설계하고 PPT와 핸드아웃은 나중에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강의는 '경험 설계를 못해서' 제 욕심만큼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림을 전공했기 때문에 보이는 형태의 본질인 구조를 보고 강약을 설계하는 것이 무의식에 박혀있습니. 글과 그림은 같은 공간 매체잖아요. 글도 그런식으로 했고요. 그런데 강의는 시간 매체라서 익숙하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강의 자체를 하나의 90분짜리 영상콘텐츠를 설계한다고 만드니 재밌더군요. 먼저 자기소개를 대폭 줄였습니다. 유튜브는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 나가거든요. 강의할 때 아이스브레이킹을 먼저 하고 자기소개는 이어서 아주 짧게 했죠(아래 사진). 주최측에서 참여형 강의을 원했고, 이것을 게임 형식으로 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딱 36명이니까 6명씩 6개 조로 나눠서 진행하고 우승조 전원 문화상품권을 시상한다고 처음에 공지했습니다. 삼품권을 상품으로 건 것도 참여도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에 한몫했습니다.
내용은 사전 설문에서 받은 부서의 실제 업무 상황을 Case 4개로 만들었습니다. 이전 강의에는 이론이 먼저 실습이 나중이었는데 순서를 바꾸었죠. 참여자가 이론이 궁금해지는 상황을 만든 겁니다. 문제 → 답 맞추기 → 답 공개 → 이유 → 이론 → 기억할 것(그림이나 도표 한 장)이 4세트로 돌아가게 구성했습니다. 김미경 강사의 '클라이막스'이론도 끼어 넣었습니다. 4번째 케이스를 가장 어려운 것으로 설계했고요. 마지막 강의 끝나기 10분 전에 우승조를 발표하고 시상 후, 핸드아웃으로 강의 내용을 랩업했습니다. '이럴 땐 이렇게' 하시라고요.

잘 경험할 수 있도록 좋은 생각을 설계하기
돌이켜보니 썸네일만들 때는 클릭률을 높이기 위해, 보는 사람이 느낄 감정의 해상도는 최대한으로 높이고 궁금하게 하려고 답의 해상도를 낮췄거든요. 그걸 제가 강의에서는 하나도 안했더라고요. 좋은 이론을 설명해준다고 사람들은 '아, 그게 좋은 이론이다. 써먹어야지'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정확히 생각을 전달받는 경험까지 설계해야한다는 것을 이번에 크게 깨달았습니다.
이번 강의를 만들면서 제가 계속 해왔던 일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유튜브 썸네일을 만들 때도 답을 다 보여주지 않고 궁금증을 남깁니다. 글을 쓸 때도 문장을 쓰고 나서 순서를 바꿉니다. 강의를 만들 때도 언제 알게 할지를 고민합니다. 각각 다른 기술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같은 일이었습니다.
연출.
연출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단순합니다. 내가 가진 정보를 전부 꺼내놓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할지를 먼저 생각하고 정보의 순서와 강약을 배치하는 것. 목적에 따라서 무엇을 먼저 보여주고 무엇을 뒤로 미룰지도 달라집니다. 좋은 생각이 재료라면, 콘텐츠는 그 재료를 다른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순서로 바꾸는 일입니다.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과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그래서 조금 다른 일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표현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표현하는 방법은 '나'에 중심이 가 있다면, 연출은 이런 경험을 하게 될 '너'로 중심이 옮겨갑니다. 그림을 그릴 때 대상 자체보다 여백의 모양을 표현하면 반대로 대상의 형태를 잘 그릴 수 있게 되는데 그것과 비슷합니다.
이제 한동안 표현보다 연출을 파볼 것 같습니다. 생각 자체를 훌륭하게 만드는 게 1번이라면, 그것을 다른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순서로 설계하는 것은 2번이 되는 거죠. 무엇을 보여줄지 못지않게 언제 보여줄지, 무엇을 바로 말하지 않을지를 설계하는 것. 그래서 요즘 제가 생각하는 좋은 콘텐츠의 정의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좋은 생각을 잘 설명한 콘텐츠가 아니라, 그 생각을 상대가 경험하게 만드는 콘텐츠. 다음에는 또 정의가 바뀔지도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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