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리책 전문 번역가 정연주입니다.
해외 요리책 트렌드 브리핑 뉴스레터의 3호이자 4월호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이번 호부터는 조금 구성을 바꿔보았습니다!
요리책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한데, 신간만 카탈로그처럼 이야기하기가 조금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다음과 같이 구성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 HOT&NEW 이달의 신간
이달의 주목할 만한 신간 요리책들을 소개합니다.
- SPOTLIGHT 요리책의 가능성
한 권의 요리책을 집중 조명하며, 이 책이 보여주는 요리책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Author in Focus 이달의 작가
해외에서 주목받는 요리책 저자 한 명을 소개합니다.
그들의 작업을 통해 요리책의 오늘과 내일을 조망해봅니다.
포인트는 단순히 신간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요리책이라는 세계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포맷과 스타일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그리고 주목할 만한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선 요즘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이달의 신간부터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HOT&NEW 이달의 신간
로이 최 <The Choi of Cooking>
2025년 4월 15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영화 아메리칸 셰프와 넷플릭스의 더 셰프 쇼를 보신 분이라면 익숙할 한국계 미국인 로이 최 셰프의 최신 요리책이 나왔습니다. 요리책이자 에세이라고 할까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와는 또다른, 푸드 트럭으로 미국을 재패한 실력자가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죠.
이번 책은 조금 더 '건강'을 로이 최 셰프다운 스타일의 레시피로 챙기기 시작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해요. 마음껏 먹으면서 음식 덕질을 하는 젊은 시절을 지나면 모두가 건강을 챙기게 되는 것은... 세계 공통인 모양입니다. 제 주변도 그렇거든요. 아무튼, 더 셰프 쇼를 한동안 유산소와 밥 친구로 삼아온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입니다.
Calvin Eng <Salt Sugar MSG>
2025년 3월 18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브루클린의 레스토랑 Bonnie’s의 Calvin Eng 셰프의 첫 요리책입니다. 무엇보다 타이틀에 MSG가 똭 들어가 있는 것이 눈길을 끌어서 내용을 읽어봤거든요. 미국에서 자란 광둥계 이민 2세대 셰프가 본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가족의 음식을 해석해낸 집밥 요리책입니다.
이번 에드워드 리 셰프님의 책을 번역하면서도 느꼈지만, 미국이라는 멜팅 팟 속에서 정체성을 유지하고 찾아가는 과정은 누구나 어딘가에서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저도 집 떠나온 지 21년, 이제는 고향보다 서울에 산 기간이 더 기네요.
정체성과 가족의 역사, 그리고 맛에 대한 자부심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광둥식 전통 요리와 퓨전 레시피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된장 까르보나라 누들, 중국식 랜치 드레싱을 곁들인 돈가스라니.....
Rick Martínez <Salsa Daddy>
2025년 4월 29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살사는 소스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다!’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수상 작가 릭 마티네즈가 무려 70종의 살사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입니다. 와, 살사만으로 70개... 하지만 우리도 김치만으로 책 한 권은 뚝딱이기는 하죠. 익숙한 재료에서 처음 듣는 수많은 멕시코 고추 종류까지 정신없이 환상적인 멕시코 식재료와 레시피가 난무하는 요리책이예요.
그리고 살사는, 타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스의 맛이 타코의 완성도를 좌우한다는 걸 알겠죠. 단순한 사이드에 놓인 소스 한 종지가 아니라 살사가 요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재미있죠!
<나의 까르보나라>
2025년 3월 24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재팬)
18명의 철인 셰프가 말하는 나만의 완벽한 까르보나라!
제가 해외 요리책 트렌드 뉴스레터 1호에서 이 책의 전작인 <나의 페페론치노>를 소개했었어요. 그런데 두둥! 조금 더 '어머 이건 사야 해'에 가까운 <나의 까르보나라>가 나와버렸습니다.
저의 까르보나라는 베이컨(구할 수 있으면 구안찰레)에 노른자 5개(2인분), 엄청난 양의 페코리노거든요. 그런데 까르보나라라는 주제를 놓고 열린 셰프 파스타 포럼과 같은 이 미친 콘셉트의 책, 대체 셰프마다 얼마나 다르게 만들 수 있는지 그 비밀이 궁금해서 죽겠습니다. 지금 yes24로 주문한 상태입니다.
<요리는 지식이 9할>
2025년 2월 4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재팬)
왜 맛있을까?를 아는 사람은 요리를 다르게 한다. 요리에는 감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이해와 논리로 접근하자고 이야기하는 스타일의 신간입니다. 소금은 언제 넣어야 할까? 온도는 맛에 어떤 영향을 줄까? 요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이론과 수치, 매커니즘으로 해체해서 다시 조립해줍니다.
챕터명이 '맛의 방정식', '거꾸로 계산하는 조리법', '세계에서 제일 긴 햄버그 레시피'... 뭘 이야기하려는 건데? 싶죠. 그리고 재미있어 보이고요. 지식과 감각, 실험과 요리를 연결하고 싶은 사람이 끌릴 만한 신간입니다.
SPOTLIGHT 요리책의 가능성
<A Day at elbulli> - 클래식 에디션
2012년 12월 3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엘 불리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모습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담아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 책, 그것이 전부이지만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책입니다.
엘 불리를 아시죠? 그때도 지금도 혁신적인 분자 요리를 선보이던 선구자적인 레스토랑. 스페인의 작은 마을 로사스에서, 1년에 단 6개월만 문을 열고 나머지는 연구에 몰두하다, 이제는 문을 닫고 '창의성 센터'라는 재단으로 변했고요. 찾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죠. 다만 당시 레스토랑의 모든 것을 기록한 뮤지엄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곳이 제공하는 사진도 소개합니다.
이 책은 <180일의 엘 불리>라는 이곳에서 6개월간 일을 한 기자가 남긴 기록물을 보고 궁금해져서 구입했었습니다. 책이 참 커요. 그래서 당시 집의 책장에 맞지 않아 책장 위에 보관했다가 이사를 여러 번 하며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구입할 당시에는 레시피가 조금이라도 있을까? 있어봤자 누가 따라할 수나 있을까? 하면서 구입했어요.
그리고 다른 의미로 감동했습니다. 정말로 아침에 엘 불리를 여는 직원들의 모습과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예약해서 이날만을 기다리던 손님들이 찾아와서 레스토랑의 모습에 감탄하고 긴 코스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아름다운 사진으로 담아놨어요.
그 어떤 구성보다도 이 레스토랑을 구석구석 함께 체험하는 느낌의 요리책이었습니다. 요리책? 하지만 저는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으면 요리책으로 분류하거든요. 음식에 대한 책을 이렇게도 다룰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한 책입니다.
Author in Focus 이달의 작가
나이젤라 로슨 - ‘내 마음대로’가 주방의 여신이 되는 길이라면
책의 뒷표지이기는 한데요, 이분의 사진이 여기 실려 있어서 뒷표지를 먼저 올려봤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구입한 나이젤라 로슨의 책이고요, 베이킹에 관한 책인데, 타이틀이 참 뭐랄까, 마음에 들어요.
나이젤라 로슨은 영국의 대표적인 음식 작가, TV 쇼 요리사, 저널리스트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식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요, 특이사항으로는 아버지가 전 영국 재무장관이라고 해요. 뭔가 굉장히 완벽하고 거창하고 대단하기만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소개하는 레시피는 언제나 오히려 요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는 식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요리를 통해서 조금 더 삶을 즐기게 만들어주고 싶어한다고 할까요. 트위터에도 아직 항상 본인의 요리와 주변 사람의 요리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직접 만들어보고 코멘트를 다는 느낌이 항상 따스하고 다정해요. 요리를 하고 싶게 만드는 요리 작가입니다. 너무 유명해서 제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겠죠. 그런데 왜 한 권도 번역서가 없을까요!
나이젤라 로슨 <How to Be a Domestic Goddess>
2001년 11월 14일
이 책을 산 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화려한 작가의 모습과 이 책의 타이틀이 너무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산 것은 아마 2005년 정도였을 것 같아요. 제가 한참 하라는 대학 공부는 하지 않고 요리 잡지에 몰두하던 시절이었죠. 마샤 스튜어트만큼 완벽한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려나, 작가가 그렇게 생겼(?)는데, 하지만 책 내용이 너무 궁금하다, 그런데 막상 사서 본 책의 내용은 전혀 달랐어요. 말하자면 주방의 여신이 되는 비결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었다고 할까요?
레시피를 자세하면서 편안하게 따라할 수 있도록, 그리고 본인의 경험과 요리에 대한 철학까지 굉장히 허심탄회한 느낌으로 길게 저술하는 방식의 책이었어요. 실제로 이 책을 보고 베이킹을 편하게 해보고 싶어졌다는 사람의 후기도 많이 봤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달도 제가 하고 싶은 요리책 이야기에 잔뜩 집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부터 삶의 철학을 전하는 책, 그리고 한 레스토랑을 대신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방식을 보여준 요리책까지, 요리책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를 보면 항상 경이롭습니다. 그래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요.
다음 달도 새로운 요리책의 풍경을 담아 돌아오겠습니다.
요리 전문 번역가 정연주
번역 문의: dksro47@naver.com (영한, 한영, 일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