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리책 전문 번역가 정연주입니다.
올해로 번역가로 일한지 11년째가 되는데, 연내로 50권째의 요리책 번역서를 출간하게 될 것 같아요.
그동안 에드워드 리 셰프님의 <스모크&피클스>, 제가 사랑하는 <풍미사전> 시리즈, 대백과사전에 가까운 <프랑스 쿡북> 등 다양한 멋진 요리책을 번역할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요리책은 평생의 제 사랑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요리책에는 말 그대로 요리 레시피가 실린 요리책에서 요리 문화서, 개념서, 과학 기술서, 역사서, 요리 소설 등 요리와 관련된 다양한 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딱 한 장에만 음식 이야기가 실려 있어도 이 책은 사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요리책 덕후였거든요. 지금은 일이니까 요리책을 보고 있지만, 오히려 취미로 볼 때보다 구석구석까지 살펴보게 되어 업무 만족도가 200%입니다.
매일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업무라는 핑계를 대고 각종 서점 사이트의 요리책 신간과 베스트셀러 코너를 살펴보는 것이죠. 이게 벌써 11년째 이어진 습관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쌓이는 해외 요리책 정보를 나만 알고 있기엔 아깝지 않을까?
요리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유용한 인사이트를 나누면 더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해외 요리책 트렌드 뉴스레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매달, 지금 가장 주목할 만한 해외 요리책 트렌드를 전해드릴게요.
첫호에서는 2024년 영어권과 일본어권의 요리책 트렌드를 간략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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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영어권 요리책 트렌드
- 2024년 영어권의 요리책은 코로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다시 힐링 푸드comfort food, 그리고 여럿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 식탁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은 점이 눈에 띕니다. 손쉽게 만들어서 사람들과 나누어 먹기 좋은 음식에 대한 니즈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에 먹었던 추억이 어린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게 되면서 다양한 문화권을 디테일하게 조명하는 책도 다채롭게 등장했고요. 그 중에는 강민구 셰프님의 <장JANG>을 포함해 우리나라의 요리책도 몇몇 보였습니다.
- 물론 요리와 베이킹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과 과학적인 지식, 풍미에 대한 조합을 짚어보는 기본서도 새롭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식물성 식단에 대해 단순한 채식 레시피를 넘어 균형 잡힌 영양 섭취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책도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에서 인기를 얻은 인플루언서의 요리책도 갈수록 완성도를 높이며 개성 넘치는 레시피를 시장에 선보이는 중입니다.
- 파트별로 눈에 띄는 책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1. 편안한 요리
코로나 이후로, 외롭고 힘들어서 나를 위로하는 음식을 다시 찾고 사람과의 교류를 그리워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와 함께 편안하게 만들고 나누어 먹는 것을 주제로 잡은 책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오토렝기 셰프의 신간입니다.
오토렝기 컴포트 Ottolenghi Comfort: A Cookbook
2024년 10월 8일(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요탐 오토렝기 셰프가 지난 10월에 출간한 신간 요리책입니다!
원래도 따라하고 싶은 맛있는 레시피, 특히 원재료의 맛이 두드러지는 레시피로 유명하지만 이번에는 이름처럼 집에서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요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과 세계 여행의 기억을 담아 오래도록 세대를 넘어 전하고 싶은 레시피를 모았다고 합니다.
2. 디테일한 지역 또는 문화권 요리
처음에는 ‘중국 요리’, ‘일본 요리’ 혹은 ‘일본계 셰프의 요리책’ 처럼 큰 카테고리의 외국 요리책이 나왔다면 점점 세분화되고 개별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각 문화권에 대한 존중과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겠죠!
요즘 신간 요리책, 요리 에세이를 보면 자신의 문화권에 대한 깊은 사랑과 정보가 담긴 것이 많아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지고 있는 책을 소개합니다.
한 입, 한 입 Bite by Bite: Nourishments and Jamborees
2024년 4월 30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삽화와의 조화가 아름다워서 눈길이 간 에세이인데, 저자인 에이미 네주쿠마타틸이 시인이자 수필가라고 해요.
럼피아, 피칸, 람부탄 등 낯선 음식에서 익숙한 음식까지 음식과 음료가 우리로 하여금 기억 속에 숨어 있던 파편을 찾아내게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브레이킹 바오 Breaking Bao: 88 Bakes and Snacks from Asia and Beyond
2024년 10월 22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개인적으로 항상 찐빵의 보들함을 떠올리게 하는 바오 번을 정말 좋아해서 가끔 직접 만들기도 하는데, 그 바오의 구운 것, 찐 것, 튀긴 것, 얇게 썬 것까지 중국식 빵의 다양한 조리법을 선보이는 책입니다. 한눈에 반하고 말았어요..!
남부 여성이 요리할 때 When Southern Women Cook: History, Lore, and 300 Recipes with Contributions from 70 Women Writers
2024년 11월 12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에드워드 리 셰프님의 책을 번역하면서, 굉장히 매력적인 이 미국 남부의 요리가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 책으로 소개된 적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에서는 바비큐 외에도 이 미국 남부의 요리책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 이 책은 특히 요리계에서도 정작 잘 소외되는 여성의 이야기를 엮어서 남부 음식의 다양한 역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3. 식물성 식단의 심화 버전
식물성 식단은 어려운가?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라면 아니겠죠. 저는 식물성 식단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여러 의미로 우리 입에 들어가는 음식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 공부해서 제대로 먹도록 할 테니 어렵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 건강한 식단이라는 건 제대로 먹으려면 무엇이든 어려운 것이 아닌가. 그러니 식물성 식단이 특히 더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갈수록 이 식물성 식단을 그저 ‘채식 요리’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먹는 법에 대한 책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식물성 요리 기본 마스터링 Mastering the Art of Plant-Based Cooking: Vegan Recipes, Tips, and Techniques
2024년 9월 3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온갖 주요 사이트(뉴욕 타임즈, 본아페티…)에서 올해의 책으로 손꼽혀서 대체 무엇이지? 하고 찾아본 책입니다. 기본 재료를 수제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식물성 식단의 레시피를 소개하고 식물성 식단을 제대로 꾸려나가는 기본 기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식물성 식단의 기초 조리서’의 고급 버전이라고 할까요?
콩과 곡물 요리책 The Complete Beans and Grains Cookbook: A Comprehensive Guide with 450+ Recipes
2024년 2월 6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제가 사랑하는, 테스트를 거친 레시피를 소개하고 그 원리에 대해 알려주는 아메리카 테스트 키친에서 발매한 콩과 곡물에 대한 요리책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저속노화의 대표 식재료로 손꼽히는 재료들이죠. 잡식주의자에서 채식주의자까지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는 다채로운 콩 레시피를 모았습니다.
4. 푸드 에디터 정연주의 Pick
위에서 소개한 책들도 각 카테고리에서 제 눈에 띈 것을 소개하는 것이지만, 유난히 카테고리와 상관없이 제 맘에 드는 책도 있죠! 여기서 소개합니다.
끝없는 향연: 음식과 여행, 정원에서 즐거움을 찾는 법에 대한 새로운 회고록 A Thousand Feasts: a new memoir on how to find joy in food, travel and gardening
2024년 10월 1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링크)
영국의 유명 요리사이자 방송인 나이젤 슬레이터의 새로운 에세이입니다. 지금 이 책은 바다를 건너 저에게 오고 있습니다. 영화화되기도 한 <토스트>의 작가죠. 저는 토스트 외에도 이 분의 <Tender>라는 정원과 채소, 과일에 대한 요리책을 가지고 있는데요. 정원을 가꾸는 요리사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있거든요. 여기서는 음식과 여행, 정원과 관련된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플레이버라마 Flavorama: A Guide to Unlocking the Art and Science of Flavor
2024년 3월 12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저는 각 풍미와 풍미의 조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하면 일단 좋아하는데, 여기 새로운 풍미 과학에 대한 책이 나왔습니다. 풍미 과학자 아리엘 존슨이 쓴 책으로 다양한 풍미에 대한 설명은 물론 조합하는 법, 레시피를 새롭게 변주하는 방법까지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려 ‘맛의 예술과 과학을 풀어내는 가이드’입니다!
2024 일본어권 요리책 트렌드
- 작년에 일본에서 서점을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 서점에 비해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아주 간단한 조리법을 다량으로 모은(예: 한 페이지에 3개씩) 요리책 시리즈가 매우 인기를 끌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역시 요리책 부분 대상 in Japan의 대상 작품 또한 바로 이 시리즈의 2024년 신간이었어요.
- 이 수상작 중에는 제가 일본에서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구입한 책도 입상 부분에 들어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조금 뿌듯했다고도 말하고 싶습니다.
- 그리고 작년과 올해 초까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부분이 세이로무시, 즉 찜기로 만드는 음식에 대한 요리책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찜 요리에 대한 책이 계속 등장하고, 베스트셀러 순위에 계속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건강한 음식이 일본에서도 계속 주목받고 있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파트별로 눈에 띄는 책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1. 간단 요리 대백과 스타일
뭐랄까, 한권으로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초등학교 전과를 사는 느낌은 아직도 유효하구나 라고 할까요. 이 간단 요리 대백과 스타일의 책은 사실 SNS도 팔로하고 있는 중인데, 여러 해 전부터 일본 서점에 가면 언제나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보다 저도 훑어보고 아 집밥할 때 뭐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애(레시피가 수백 개) 하면서 사오기도 했죠. 2024년 요리책 대상 작품도 이 책이 되었습니다! 수상작 2권을 소개합니다.
도시락으로도 좋은 의욕 1% 밥 보존식편
2024년 1월 29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재팬)
표지가 익숙한 분도 많으실 것 같아요. 펼쳐보면 한 페이지에 서너 개의 레시피가 쭉쭉 이어지는데 고기와 채소, 밥, 면 등 주제별로 나뉘어져 있고 간단한 레시피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다른 버전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은 도시락으로 싸기도 좋은 보존식편이라고 하네요. 약간 혹합니다. 다음에 도쿄 여행을 가면 사오게 될 것 같아요.
류지식 악마의 레시피2
2024년 2월 28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재팬)
표지의 마약달걀이 눈에 들어오네요. 저 사실 이분 SNS도 팔로하고 있어요. 특별한 조미료 없이 간단하게 만들 수 있고 절반 이상이 저당 레시피인 책입니다. 간단해서 중독성이 더 강한 레시피를 주로 소개한다고 할까요?
2. 찜 요리
개별적인 요리 주제로는 단독으로 두드러지는 것이 찜 요리의 인기입니다. 사실 2023년에도 올해의 요리 트렌드로 세이로무시가 선정되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그 인기는 2023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래의 세이로무시 레시피책이 2024년의 베스트셀러인 것은 물론이고 아직도 찜 요리 레시피책이 속속 나오고 있어요. 보고 있으면 저도 좀 만들고 싶어지고요. 건강할 것 같고, 채소도 듬뿍 먹을 수 있을 것 같고.
모든 것을 찌고 싶다 세이로 레시피
2024년 9월 26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재팬)
표지를 보고 있으면 나무 찜기 자체가 요즘으로 치면 ‘인스타그래머블’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큰 것과 작은 것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어요.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찜 요리를 SNS에 올리다가 인기를 얻어서 책까지 내게 되었다는 책입니다. 찜기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요리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계 14만부를 돌파했다고 해요. 부럽다.
3. 푸드 에디터 정연주의 Pick
재미있어 보여서 사 왔는데 이 책이 2024년 수상작에 입상했다, 그러면 오 나 좀 쩌는데? 싶고 그렇죠. 그냥 조용히 성공했다 포즈를 취하고 넘어갈 뿐이지만요.
23시의 안주 연구소
2023년 6월 14일 (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재팬)
쓰다보니까 이 책은 2023년 출간이네요. 하지만 제가 산 것은 2024년이고 입상한 것도 2024년이니까. 요리를 거의 한 적이 없는 주인공이 안주를 배워가는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재현성 높은 레시피와 일러스트가 가득해 읽기에도 재미있습니다.
나의 페페론치노
2024년 6월 29일(표지 사진 출처: 아마존 재팬)
입상작은 아니고 제가 개인적으로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책입니다. 셰프 18명의 페페론치노, 그러니까 알리오 올리오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이런 스타일의 책을 참 좋아해요. 그리고 감바스/아히요처럼 같은 서양 요리를 한국과 일본에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참 재미있네요.
어떠셨을까요? 혼자 찾아볼 때에도 재미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다른 분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내용을 정리하니 한눈에 파악하기 더욱 좋아졌습니다.
보시고 무엇이든 저하고 요리책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실 수 있다면 제일 기쁠 것 같아요.
앞으로 매달 요리책 트렌드 브리핑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리 전문 번역가 정연주
번역 문의: dksro47@naver.com (영한, 한영, 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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