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  생각의 여름 「손과 손」, 2022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일기예보에는 온통 먹구름이 가득해요. 대문을 열면 훅 몰려오는 열기에 숨이 막힐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는데요. 잠에서 깨어난 후 습관처럼 서재 문을 열자, 평소처럼 뜨겁지 않고 적당히 어두운 아침이라 산뜻한 맘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시원한 시간을 보내는 저와 달리 뉴스에는 끔찍한 이야기가 가득하더라고요. 물 때문에 사라진 사람들과 어딘가에 갇힌 사람들,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과 물로부터 쫓겨난 사람들의 이야기가요. 구독자 님과 주변은 안전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부산이 아닌 곳에서 지내며 바쁘게 움직이고 떠들었어요. 윗동네에서 보낸 시간을 나눠볼게요.

🏖 8월 둘째 주의 일 : 북토크

지난주 편지에서도 적었던 것처럼,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 북토크 자리가 있었어요. 이제는 사라진 책방에서 천천히 2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지혜의 집 도서관에서요.

책방을 운영하며 느낀 마음을 모아 책을 만들고 난 뒤, 1년 만에 공간을 접게 되어서. 그러고도 바이러스는 멈추지 않아서. 게다가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어서. 책방이 있던 동네에서는 얼굴을 마주하고 책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요. 처음으로 대면 북토크를 하기 위해 KTX 서울행 열차를 타고, 1호선 소요산행을 타고, 한참을 위로 더 위로 올라갔어요. 

그곳에서는 책방 문을 닫고 난 후 부산에서 지내며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했어요. 생각한 것만큼 잘 풀리지 않은 지난 1년 반 정도의 기간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본 시간이었어요. 무엇이 쓰고 싶었고, 왜 잘 안 되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쓰고 있고, 앞으로는 어떻게 쓰고 싶은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요.

북토크를 준비하면서 주절주절 정리한 생각이 모니터 속 하얀 A4용지의 7매를 가득 채웠어요. 덕분에 복잡했던 마음도 나아졌고요. 하반기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글쓰기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참고했고, 그중 일부를 낭독한 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아래에 짧게 공유해볼게요!

글쓰기 워크숍에 대한 글의 일부인데요. 제가 사람들하고 함께 쓰면서 느낀 마음이 그대로 적혀있어서 공유했어요. 북토크 자리도 비슷한 것 같았어요. 저 혼자 떠들던 시간은 물론이고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시간 역시, 서로의 진지한 마음이 오간다는 걸 느껴서 기뻤습니다.

구독자 님의 '글'과 '말', '생활'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좋은 상태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언제나 생활이 엉망이고, 글과 말로 그 엉망인 생활을 포장해보려 애쓰는 것 같다는 민망한 고백도, 위의 글을 빌려 하고 왔어요.

🏡 8월 둘째 주의 장소 : 오늘의 서재

도보로 갈 수 있는 책방이 생겼어요! 이름은 오늘의 서재. 나락서점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오픈 소식을 듣고 어제 부리나케 달려갔는데. 작은 책방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더라고요. 천천히 둘러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조용히 돌아 나왔는데요.

오늘 장 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들러봤어요. 아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해가 드는 2층의 아늑한 공간이 있답니다. 8월 1일 자로 오픈했으니, 아직 문을 연 지 보름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곳. 책장은 아직 듬성듬성하지만, 머지않아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그득그득해지겠다고 생각하면서.

부산에서 지내는 동안 종종 방문하면서 이곳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매한 책은 『니클의 소년들』. 책방 문을 닫기 전후에 출간된 책은 까맣게 모릅니다. 숭덩 잘려 나간 폐업 근처의 시간 속에서 영영 잃어버린 책들이 가득한데요. 2020년 12월 출간된 이 책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스치듯 했었던 것 같아요.

미처 연이 닿지 않았던 여러 책을 만날 수 있는 작은 방이 집 근처에 생긴 걸 감사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픈 기념으로 목공 연필과 고양이 자수가 놓인 덧신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

📚 8월 둘째 주의 책 :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 2020

마침내. 끝을 본 시집. 7월부터 매일 시 한 편을 필사하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7월부터 천천히 쓰다 보니 마지막 편까지 모두 옮겼어요. 이번 주에 '해설'과 '시인의 말'까지 읽은 후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 의자에 앉으면 가장 먼저 필사부터 하는데, 다 쓰고 나면 드디어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시집은 책방의 동지에게 한참 전에 선물 받았는데요. 당시엔 읽지 않고 있다가 이번 여름이 되어서야 제대로 펼쳤어요. 제목에 '여름'이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여름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몇 개의 계절 정도는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는 마음이었어요. 7월에 급히 필사 모임을 연 건 어쩌면 이 시집을 읽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이번 여름을 놓치면 또 일 년을 꼬박 참아야 하니까요. 

편지를 쓰는 오늘 오전에는 정말 오랜만에 서실에 다녀왔습니다. 평소처럼 먹 갈고, 글 쓰고, 붓 빨고 그러다가, 덜컥 연말에 있을 작품 전시회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남은 여름과 다가올 가을은, 똑같은 글을 쓰고 또 쓰면서 보내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쓰고 싶은 글귀가 있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시집을 뒤적여 몇 개의 토막을 드렸습니다. 선생님은 '꿋꿋이'라는 부사를 한참 들여다보며, 이 글자 어려운 데 괜찮겠냐고 걱정하셨어요.

선생님이 최종적으로 골라주신 짧은 글을 한참 들여다보게 될 날을 기다립니다. 어느 부분이든 좋을 것 같아요. 이 시집의 구석구석이 다 좋았거든요.

실시간 뉴스는 여전히 호우 상황을 알리고 있네요. 같은 나라인데 물 한 방울 내리지 않은 곳에 지내면서 지구촌 소식을 보듯 낯선 서울 풍경을 바라봅니다.

(아마도) 매일 반복되는 구독자 님의 출가와 귀가가 무사하기를 빕니다. 

2022.08.10.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