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단순한 현실들로 이루어진 자기만의 세계

🎼  Mellow Fellow 「Dancing」, 2018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6월과 무사히 작별하셨나요?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6월을 떠나보냈어요.

달력이라도 빨리 넘겨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던 6월의 끝. 그래서 7월은 적당히 힘차고 기분 좋게 시작했습니다. 뜨거운 날씨에도 굳이 버스를 잡아타거나, 훌라후프를 돌리며 독서하거나, 평소보다 자주 빨래하면서요. (빳빳하게 마르는 빨랫감을 보는 기쁨!)

구독자 님도 별 탈 없이 시작하셨기를 바라요. 저는 한 주 이렇게 보냈습니다.

🚙 7월 첫째 주의 일 : 타건샵 방문과 키보드 교체

매직키보드에 끝내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작디작은 매직키보드를 들이면서 책상이 한결 넓어진 느낌이 들어서 처음에는 시원하기도 했고, 매직마우스나 아이맥과 잘 어울리는 모양이 보기 좋다고만 여겼는데요. 예쁜 것과 별개로 크기와 무게가 좀 되고, 숫자 키와 방향 키가 큼직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키보드가 좋더라고요. 새하얗다는 점도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블랙과 화이트 중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당연히 전자를 택하는 사람이거든요. 스프레드시트나 엑셀 작업할 때 텐키리스는 어찌나 속이 터지던지요.

계속 염탐하던 몇 개의 키보드를 타건해보려고 부산에서 갈만한 곳을 찾아 방문했습니다. 집과 그리 멀지 않아서 반가운 마음으로 주말에 달려갔어요! (실은 이전에 갔었는데 문을 닫아서 울적한 마음으로 돌아왔었던 기억...) 그동안 유튜브로 여러 키보드를 보고,  제게 맞을 만한 모델명을 누적해왔는데요. 막상 타건샵에 가니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기도 했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키보드에 반해버리기도 했어요.

재미있는 건, 족히 한 시간은 넘게 온갖 키보드를 다 두들기다가 고심하고 고심해서 고른 애가 구매 불가인 상품이었다는 건데요. 닫힌 문을 만났을 때처럼 울적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가, 누적해왔던 리스트 중의 한 키보드(a.k.a. 풀무무)를 질렀습니다. 지루해 못 견딜 때 원래 사려던 모델을 들여볼까 생각 중입니다.

지금의 뉴스레터는 새로운 키보드와 함께하고 있어요. 보글보글한 소리가 작은 서재에 가득해요. (뿌듯)

📍 7월 첫째 주의 장소 : 책방밭개

2020년의 여름, 부산에 놀러 왔었어요. 당시 책방 문을 닫을지 고민하며 부산에 내려와 사는 삶을 막연히 상상하던 중이었는데요. 어렴풋하게나마, 부산에서 책방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꿈도 꿨었지요. 그래서 실제로 부산에서 책방을 운영하시는 사장님 몇 분께 상황을 여쭙고 싶었어요. 물론 코로나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때라 큰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부산은 '광역시'인데! 내가 운영하던 책방의 상황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냐고 추측했거든요.

전포동에 있던 (지금은 사라진) B모 책방과, 책방 밭개. 두 곳에 들러 슬쩍 사장님의 의중을 살피기로 했어요. B모 책방 사장님은, '결사반대'하셨어요. 코로나와 함께 엄청난 매출 감소를 겪었고, 실제로 사장님도 재계약 여부를 고민 중이라고요. 두 번째로 방문한 밭개는 이사 준비 중이었어요. 열심히 짐을 싸는 사장님을 보니 뭘 더 묻겠냐 싶었죠. 그때의 '이사'가 사정이 어려워져서 한 이사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앞선 방문에서 낙담한 덕분에 당연히 아프고 힘든 이사일 거라고 제 맘대로 상상하곤 서울로 돌아왔지요.

결국 저는 책방 문을 닫았고, 2021년 봄부터 부산에서 지내게 되었는데요. 이사한 밭개에 가 봐야지, 가 봐야지 하는 마음만 빚처럼 품은 채 지냈어요. 갈 일이 영 생기질 않더라고요. (게으름을 가리려는 비겁한 핑계...) 6월을 마무리하면서 흐르는 시간이 야속해진 저는 부산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몽땅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충동적으로 밭개 사장님께 책 주문을 넣었고, 주문한 책을 받기 위해 방문하면 되겠다 싶었지요.

책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는 길을 검색해봤어요. 저희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단숨에 가는 코스가 있었어요. 내려서 조금 10분 내외로 걸어야하지만, 종종 오갈 만한 거리였어요. 이렇게나 쉽고 가까운데 1년을 채우고 가는 길이라니. 민망하고 벌써 아쉽더라고요.

큰 삼거리 앞에서 내려야 했는데, 방송을 잘 못 듣고 한 정거장 먼저 내려 뙤약볕 아래에서 한참 걸어야 했는데요. 대로와 함께 늘어선 커다란 상가 건물 틈 사이로 들어가 지하차도를 지나고 나면 멋진 기찻길이 등장해요! 기찻길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보이는 책방. 둥그런 코너의 노오란 밭개는 무척 예뻤어요.

-

땀을 뻘뻘 흘리고 헉헉거리며 문을 열었더니, 밭개 사장님은 "지난번에 왔을 때도 이렇게 더웠죠?"라고 말씀하셨어요. 벌써 2년 전의 일인데 섬세하게 기억해주셔서 감탄했지요. 시원한 책방을 만끽하면서 서가를 구경했습니다. 밭개의 서가는 예전에도, 지금도 무척 좋았네요. 책 읽는 친구와 함께 와서 둘러봤다면 민폐가 될 만치 오래 머무를지도 모르겠어요.

주문했던 책이 두꺼워서, 사고 싶은 만큼 사지는 못했지만. 민담 전집 가운데 '이탈리아 민담집'을 골랐습니다.

민담 속 연애에는 아무래도 흥미가 가질 않지만, '후렴처럼 붙는 푸념들'이 궁금해져서 골랐습니다. 길티 플레져가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아직 첫 장을 열지는 못했습니다!

📚 7월 첫째 주의 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민음사, 2000

지난 목요일에 드디어 완독한 『백년의 고독』 . 독서 모임 선정 도서라서 부랴부랴 끝을 맺었어요. 아직 읽지 못한 거창한 이름의 책들이 무척 많은데요. 예전에는 그런 책들을 빨리 읽고만 싶었어요. 초조한 마음으로 그저 유명한 책이라면 죄다 독파하고 싶었는데요. 지금은 여유가 생겼습니다. 체념으로부터 오는 여유. 어차피 다 못 읽고 죽을 게 확실하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오는 여유.

그래도 독서 모임 덕분에 이렇게 끝을 보고 마는 책들이 있습니다. 홀로 읽으라고 했으면 중간에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데드라인이 있어서 성실하게 읽을 수 있었어요. 모임 전에 다 읽어서 유튜브에 강의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고요. 설레는 마음으로 줌을 켰는데, 참석률이 저조하더라고요! 아마도 고독한 한 가정의 이야기에 지쳐버리신 게 아닐까,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모임은 늘 좋지만 단점을 굳이 찾자면, 제 템포보다 조금 빠르게 읽게 된다는 점이에요. 만나는 시간 전까지 끝장을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날림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다들 그러시죠?) 그렇기 때문에 아마 이 책을 제가 온전히 이해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서 강의해주신 선생님도 강의를 마치며 한 마디 더하시더라고요. "대충 다 파악이 되셨죠? 이제 다시 읽어보시면 됩니다!")

-

이 소설은 6대에 걸친 한 가문의 이야기인데요.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장면이 수시로 등장해서 지루할 틈이 없어요. 모임 멤버들도 처음에 걱정했던 것에 비해 무척 좋았고, 또 기억에 남는 파트가 많았다고 했어요. 다만 저희가 입을 모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 이야기는 '정말 많이 읽은 것 같은데 책장이 얼마 넘어가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함께 책을 읽는 분들은 (저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모두 책을 오래 읽어오신 분들인데요. 뭔가를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각이 있지 않습니까? '이 정도의 이야기가 전개되었고, 이 정도의 시간을 썼으면 적어도 이 정도의 페이지는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라는 나름의 생체 시계(?)가 '읽는 사람'에게는 있는데, 이 책에서만큼은 전혀 작동하질 않는 겁니다. 적어도 100페이지 정도 읽었을 것이라고 추측한 후 페이지 수를 확인하면, 반의 반 정도밖에 넘어가지 않은 상태. 하나같이 당황스러웠다는 말로 입을 모았어요.

그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라서. 저희는 이유를 찾아보려고 했는데요. 결국 '백 년 치'를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로 종결했습니다. '백 년 치' 치고는 두 권밖에 되지 않는 다소 소박한 분량이지만, 내용상 '백 년 치'를 꽉 채웠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요.

혹시 구독자 님께서 『백년의 고독』을 완독하셨다면, 읽는 동안 어떤 느낌을 받으셨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예외없이 뚜렷한 개성이 있고 무척이나 신기합니다. '미녀 레메디오스'를 설명하는 한 부분을 남기며 책 소개를 마무리해보려고 해요. 6대를 거치는 데다, 이름이 거의 비슷한 남성 캐릭터들은 종종 헷갈리고 잊기도 했지만, 여성 캐릭터들은 전부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 또한 마법같은 책.

어제는 6월의 레터에서 소개했던 해맞이 글방에서 첫 번째 합평의 시간을 가졌는데요. 못 본 사이의 근황을 나누는 시간에 할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급히 뉴스레터 글을 꺼내 읽었지 뭔가요.

글방의 사람들은 비를 이기기 위한 빨래를 하거나, 밭을 분양받아 가꾸거나, 아이를 다 키웠다는 자각을 하는 등 각자의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채웠던데, 테스트 구독자 님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으면 당장 꺼낼 수 있는 답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7월의 중간에서, 다시 만나요!

2022.07.06.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