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눈앞에 있는 것의 절반밖에

🎼 Jue 「D-Day」, 2022

이번주 드라이빙 뮤직!!!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이번 주도 거짓말처럼 지나갔네요. 저는 평소에 안경을 쓰는데요. 중요한 약속이나, 친하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에만 일회용 렌즈를 착용합니다. 소프트 렌즈인데도 자주 끼지 않으니 어쩌다 한 번 렌즈를 끼고 난 다음 날이면 뻑뻑하고 피곤해지는 나약한 눈을 가져서. 어쩌면 PMS나 계절만큼이나 렌즈 착용 횟수에 따라 컨디션이 달라지는데요. 오랜만에 이틀이나 안경을 쓰지 않았던 주간. 눈 비비며 편지를 씁니다.

에어컨과 뜨거운 햇빛이 오가는 날들, 구독자 님의 눈은 건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 7월 셋째 주의 일 : 말다툼

맛있는 음식과 술을 밤새 나누자고 약속한 모임이 이번 주에 있었습니다. 깊어가는 밤, 아주 사소한 말로 누군가의 마음이 상했고, 언성이 높아졌고, 감정의 불이 활활 타올랐어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모두가 당황했습니다. 다툰 두 사람의 마음은 좁혀지지 못한 채 해가 떴어요. 다음 날 아침, 남은 이들은 어색하게 칼국수를 먹고 헤어졌고요.

얼떨결에 격한 말다툼을 목격하고 나서, 제가 보아온 싸움들을 돌이켜보았지요. 정말이지 몇 번 없더라고요. 운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싸움' 근처라면 최선을 다해 도망다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맞지 않는(것 같은) 사람과는 인연을 이어가려 노력하지 않았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애인들과 감정이 격해질 때면 입을 다물고 화가 누그러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만났고요.

목소리를 크게 냈던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작은 목소리를 좋아합니다. 어쩌면 작은 목소리'만'을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제 청력 역치는 비정상일지도 모릅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할 만큼 지독한 회피형 인간이지요. 조금은 편협하고, 또 조금은 비겁하게 산 덕분에 안전했던 날들이 제게 있었고요.

다툼의 당사자들은 이전부터 쌓인 게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들의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을 때 하는 것, 쏟아지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 지나간 일을 꺼내는 것, 애매하고 사소했던 순간의 마음을 언어로 바꾸어 전달하는 것, 오해하는 것, 오해를 철회하는 것, 사과하는 것, 그러나 끝내 인정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소리치는 것... 제가 잘할 줄 모르는 수많은 일을 뜨거운 목소리로 와다다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네, 크게 긴장했습니다. 앞으로 운이 나쁠 때를 대비하라는 경고를 들은 것 같았거든요. 종종 용기를 내고 단전에 힘을 주어야할 일이 생기겠지요. 아무리 도망을 다닌다고 할지라도요.

📍 7월 셋째 주의 장소 : 바닷가의 한 에어비앤비

다툼이 있던 그날, 부산이 아닌 다른 바닷가 마을의 한 에어비앤비에 묵었는데요. 거실에만 에어컨이 있고, 방의 선풍기는 무척 약해서 덥고 답답했어요. 하지만 문을 열고 나가는 것도 조심스러운 마음에 방문을 꼭 닫은 채 밤을 보냈습니다. 커튼을 제대로 치지 않아 여름 해가 금방 들었고, 평소보다 불편한 잠자리라 일찍 깼어요.

마땅히 할 일은 없었기 때문에, 물기 하나 없이 마른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방에 들어와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냈지요. 챙겨온 책, 『생의 실루엣』을 뒤적이기도 하고(그러나 제대로 읽지 않음), 살짝 녹은 얼음물을 아껴 마시기도 하고(얼음이 녹기만을 기다리다가 똑, 똑, 떨어지는 차가운 물 한 방울씩 마시는 거 뭔지 아시죠?),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노트에 정리해보기도 하고, 손부채질도 하면서요.

숙박업소라기엔 너무도 누군가의 집 같아서,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의 작은 방에 신세를 지고 일어난 이른 새벽의 몸짓으로 시간을 죽였습니다. 밤에는 한참을 뒤척이고 아침이면 눈을 뜨지 못하는 확실한 저녁형 인간이 유일하게 아침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귀한 순간이라서. (방 밖에 나가면 불편해지리라는 생각을 잊으려고 애쓰며) 남의 집을 만끽했습니다.

📚 7월 셋째 주의 책 : 케이트 쇼팽 외 『실크 스타킹 한 켤레』 문학동네, 2021

5월 어느 날, 제가 꾸리던 책방에서 늘 만나던 손님들이 부산에 놀러 오셨는데요. 그때 다 같이 들렀던 책방에서 이 책을 샀어요. 저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책인데 함께 갔던 J님이, "이거 봐요!"하면서 절 불렀거든요. 책 제목은 『실크 스타킹 한 켤레』. 면지의 촉감이 마치 레이스 스타킹을 연상케 한다고요. 면지에 홀려 냉큼 데려온 책. 7월 내 천천히 넘기다가 이번 주에 완독했습니다.

'19, 20세기 영미 여성 단편선'이라는 부제가 바로 아래 적혀있는 것처럼, 알라딘 책 소개의 작가 페이지를 보면 여성 작가들의 흑백 사진이 줄지어 놓여있는 점이 재미있었지요. 전체 단편이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인상 깊은 작품도 있었습니다. 일부를 공유해볼게요.

그런데 골동품 연구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분명 대부분이 은퇴한 대령일 것이다. 늙은 일꾼 무리를 여기 꼭대기까지 이끌고 와서 흙덩어리나 돌을 조사하고는 이웃 성직자에게 편지를 보내겠지. 그러면 그들은 아침식사 시간에 그 편지를 열어보며 자기들이 대단한 존재인 양 뿌듯해하고, 화살촉을 비교하기 위해 옆 마을까지 원정을 가고, 이는 그들에게도 그렇지만 자두 잼을 만들거나 서재를 청소해야 하는, 그래서 막사인지 무덤인지 그 중대한 문제가 한없이 미결정 상태로 있으면 좋을 그 부인들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대령은 양편의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쌓으며 기분좋게 철학적 사고를 즐길 것이다. 그러고는 결국 막사라는 결론을 내리겠지. 그리고 누군가 반박을 하자 소논문을 써서 지역 협회의 정기 모임에서 발표를 하려는 참에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그가 마지막으로 또렷이 했던 생각은 아내도 자식도 아니고, 막사와 그곳의 화살촉이다. 화살촉은 지금 중국 여자 살인범의 발과 엘리자베스시대의 못 한 줌과 튜더시대의 수많은 토관과 로마시대의 도자기 한 점과 넬슨이 마셨다는 와인 잔과 더불어 지역 박물관의 진열장 안에 있다. 이런 것들이 뭘 증명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p.215 버지니아 울프 ⟨벽의 자국⟩

오직 나만이, 내 시각만이 육신에 눈멀지 않고 그 너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후로 거듭 내 공감 능력 덕분에 실재하는 물질적 세계의 촘촘한 망을 뚫고 아이의 영혼을 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자문했다.
“이래도 못 믿겠어요?” 브랜던 박사가 내 말을 그대로 내게 던졌다. 가련한 인간. 삶이 그에게 육신의 시각밖에 주지 않았다면 그게 과연 그의 탓일까? 눈앞에 있는 것의 절반밖에 볼 수 없는 게 과연 그의 잘못일까?
하지만 그들에겐 보이지 않았고, 보이지 않았으므로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286 엘런 글래스고 ⟨제3의 그림자 인물⟩

읽은 사람들과 떠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면, 저한텐 대체로 성공인 책들. (책에 관한 한 다른 분야보다 훨씬 관대한 사람. 싫은 책은 대체로 많지 않은 사람=나) 이 책 역시 한없이 이야기하고 싶은 책이라서 좋았습니다. 이어서 나혜석을 읽습니다.

왜 일은 늘 몰리는 건지. 아마도 이번 주는 늦은 밤을 돈과 바꾸며 지내야 할 것 같아요. 오늘은 레터를 쓸 수 없다고, 휴식 메일을 보낼까 했는데요. 편지를 쓰다 보니 오히려 개운해지는 마음이 들어서. 평소보다 조금 늦더라도 평소와 같은 편지를 보내봅니다.

앗, 다음 주에는 휴가를 떠납니다. 편지에 담고 싶은 마음과 이야깃거리를 모아올게요.

한 주 쉬고 8월 첫째 주에 만나요!

구독자 님도 여름휴가 떠나시는지, 계획은 세우셨는지, 저처럼 곧 어딘가로 이동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모쪼록 즐거운 여름, 건강하고 맛있는 여름을 보내시기를 빕니다- :)

2022.07.20.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