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vol.10 | view more | SUBSCRIBE
CRSH : 이야기
안녕하세요, 초록생활연구소 에디터 미아입니다. 🌿
열 번째 편지입니다. 숫자 10이 주는 묵직함이 있습니다. 어느새 여기까지 왔습니다. 함께 읽어주신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조금 멀리, 그리고 깊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버드, 큐가든, 뉴욕식물원 등 세계의 식물 연구를 이끄는 기관들이 주목하는 키워드, 바로 '식물인문학(Plant Humanities)'입니다.

🌱 식물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식물인문학은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역사·예술·문학·철학 등을 식물학의 눈으로 읽는 학문입니다. '식물인문학'이라는 이름을 찬찬히 되새김질해보면, 사실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식물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처음 씨앗을 심은 순간부터, 향신료를 찾아 바다를 건넌 순간까지, 약초를 키워 병을 고치고, 꽃을 꺾어 사랑을 고백하던 순간까지, 식물은 언제나 삶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식물인문학은 새로운 학문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름 붙이지 않았던 것에,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 하버드 식물인문학 연구소 이야기
‘식물인문학’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진지하게 탐구하는 곳 중 하나가 하버드 대학교 덤바턴 오크스(Dumbarton Oaks) 연구소입니다. 워싱턴 D.C.에 자리한 덤바턴 오크스는 1940년 설립된 하버드 산하 연구소로, 비잔틴 학·콜럼버스 이전 문명, 정원과 조경 연구로 오랜 기간 동안 명성을 쌓아온 곳입니다.
식물인문학은 2013년 심포지엄 '제국 식물학(The Botany of Empire in the Long Eighteenth Century)'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연구소에서 서가 깊숙이 잠들어 있던 희귀 식물도감들을 꺼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 속에선 제국의 욕망과 사람들의 삶이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식물도감은 식물 책이라기보다 역사책이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2018년, 앤드루 W. 멜론 재단의 지원(총 145만 달러)을 받아 JSTOR 랩스와 함께 식물인문학 이니셔티브를 공식 출범시켰고, 3년간의 연구 끝에 2021년 3월 플랜트 휴머니티스 랩(Plant Humanities Lab)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소장 요타 바트사키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로 식물 종의 5분의 2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에 연루된 인간과 환경의 트라우마 유산,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식물과 사람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재평가하는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식물의 위기는 곧 인간 이야기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신의 식물인문학은 급박합니다. 연구소의 주요 탐구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제국과 식물 — 향신료·면화·설탕 등 식물이 어떻게 식민 제국의 경제를 지탱했는가
- 토착 지식과 생물다양성 — 공동체가 오랫동안 보존해 온 식물 지식의 현재적 의미
- 식물의 세계 여행 — 수천 년에 걸친 식물의 이동 경로와 문화 교류의 역사
- 디지털 인문학 — 희귀 식물도감·표본집을 디지털화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
🌿 강황 한 줌에 담긴 세계사

이야기를 하나 해볼게요. 플랜트 휴머니티스 랩이 탐구한 식물 중 하나, 강황(Turmeric) 입니다. 우리에게는 카레의 재료, 혹은 건강식품으로 익숙한 노란 뿌리이지만, 강황 안에는 긴 인간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수천 년간 인도에서 종교 의례·의학·염색에 쓰였던 강황은 유럽으로 건너가 ‘동방의 황금’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1995년, 미국 특허청이 강황의 상처 치유 효능에 특허를 부여했습니다. 인도 과학산업연구위원회(CSIR)는 ‘이건 수천 년 된 우리 전통 지식’이라며 이의를 제기했고, 1997년 결국 특허가 취소되었습니다.
강황 한 줌에 제국의 욕망, 전통 지식의 권리, 세계화의 모순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식물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이야기를 읽는 것입니다.
🌐 큐가든, 그리고 우리 식물
영국 큐가든(Royal Botanic Gardens, Kew)도 식물인문학을 정규 연구 분야로 공식화하고, 예술·인류학·고고학·민족식물학·제국사까지 아우르는 학제간 연구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엔 식물원이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 아카이브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하버드 아놀드 수목원엔 한국의 식물 표본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1905년 식물학자 존 조지 잭(John George Jack)을 시작으로, 1917~1919년 어니스트 윌슨(Ernest Henry Wilson) 등 탐험가들이 20세기 초 한국에서 채집한 것입니다.
큐가든 역시 식민지 시대 전 세계에서 수집한 약 700만 개의 표본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중엔 동아시아 표본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 서양 식물학자들의 발길이 닿은 곳에는 우리의 식물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세계의 식물인문학 연구소들이 "식민지 식물 채집의 역사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할 땐 식민지였던 우리의 이야기도 예외가 아닙니다.
추천 도서
식물의 인문학
식물학자의 눈이 아닌, 인문학자의 눈으로 식물을 읽는 책입니다. 식물이 우리에게 주는 좋은 영향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 기자 출신 박중환 작가의 글이 설득력 있게 다가올 거예요.

초록생활연구소의 한 주
세계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 이야기도 궁금하실 것 같아요. 지난 주 아차산숲속도서관에서 ‘성장을 가꾸는 시간, 커리어 가드닝’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있었습니다. 숲 안의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이미 식물인문학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숲속에서 식물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이 우리의 생산성에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지 몰랐어요. 저도 식물과, 자연과 더 가까이 지내보려고 해요."라고. 식물과 인간 이야기를 다루는 초록생활연구소가 마음으로 연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초록서원(草綠書院)이 시작되었습니다. 초록서원은 인문학 책을 함께 읽는 독서 중심 커뮤니티입니다. 자연과 사람, 역사와 삶을 넘나드는 책들을 펼쳐놓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식물인문학이 결국 인문학이듯, 초록서원에서 나누는 이야기도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업, 기관, 도서관과의 미팅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식물의 언어가 일하는 공간과 배움의 공간 모두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고 계십니다.
초록생활연구소는 식물인문학을 철학적 바탕으로, 자연과 예술로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라이프 디자인, 식물로 공간과 마음을 치유하는 그린 생추어리 등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일상으로 끌어오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 초록생활연구소는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 식물인문학 강연 기업·기관·도서관 맞춤형 강연 프로그램
- 마음을 정리하는 공간, 그린 생추어리 컨설팅
- 초록생활 워크숍 — 일상에서 식물과 연결되는 체험 프로그램
- 초록서원 — 인문학 책을 함께 읽는 정기 커뮤니티
우리 조직에, 우리 공간에, 식물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편하게 연락 주세요.
📩 hello@crsh.kr
📱 crsh.kr
💌 마치며
식물인문학 강연이나 초록생활연구소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이 메일에 바로 답장해 주세요. 어떤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가 필요한지 — 함께 생각해 드립니다. 식물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고, 식물인문학은, 결국 인문학입니다. 하버드 연구소에서 강황의 역사를 탐구하는 학자도, 아차산 숲속에서 나무 이야기를 듣던 분도, 초록서원에서 책장을 넘기던 우리도 — 식물을 통해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
초록생활연구소 드림
💬 이번 호를 읽으며 떠오른 식물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당신의 식물 이야기가 다음 뉴스레터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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