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레터

사법시험 5수생이 캘린더 시장에 뛰어든 이유

모바 김병훈 대표 인터뷰

2026.07.02 | 조회 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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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제로 인사이트, 제이콥🏄‍♂️

“빨리 결판을 낼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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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한 날, 이상하게 해낸 일보다 못 한 일이 먼저 떠오르죠. 그런 날에도 분명 해낸 일이 있는데 말이에요. 계획을 촘촘히 세우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고요.

그 ‘해냈다’는 감각의 힘을, 모바의 김병훈 대표는 누구보다 절실히 배웠습니다. 사법시험에 5년 동안 매달렸지만 다섯 번을 내리 떨어졌고, 한참 동안이나 ‘시험에 붙을 사람은 따로 있다’는 패배감에 갇혀 지냈거든요. 그런 그를 다시 일으킨 건 ‘작은 성공’이었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해냈다는 성취감이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는 걸 몸소 깨달은 거죠.

아치 캘린더(Arch Calender)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계획을 다 못 지킨 날에도 작은 성공 하나로 다시 하루를 붙잡게 해주는 캘린더죠. 그런데 이 캘린더를 시장에 내놓는 방식이 좀 남달랐습니다. 공짜가 당연한 캘린더 앱을 유료화했고, 시드투자 1건만으로 605일을 클로즈드 베타*로 버텼어요. 잘 쓰이지 않던 연동 기능은 과감히 덜어냈고요. 그렇게 기능을 비우면서, 구글과 애플이라는 거대한 고래가 버티고 있는 캘린더 앱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빼고, 버티고, 좁히는 선택들로 그는 무엇을 본 걸까요. 오늘은 모바 김병훈 대표의 Day 0로 돌아갑니다.

*클로즈드 베타(Closed Beta): 정식 출시 전에 초대받은 일부 사용자에게만 제품을 열어, 피드백을 받으며 다듬는 비공개 시험 기간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사법시험 5수생, 알을 깨다
2. 빨리 가지 않기로 했다
3. 기능을 뺄수록 또렷해진 것
4. 고래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1. 사법시험 5수생, 알을 깨다

Q. 대학 때 법학을 전공하셨죠. 어떻게 그 길을 선택하게 되셨어요?

그때는 제가 공부를 좀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수능 시험이 고3 내내 봤던 모의고사 중에 가장 성적이 잘 나왔거든요. 그래서 나는 앉아서 엉덩이 싸움 하는 데 강점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죠. 법학과를 가면 사법시험을 볼 수 있고, 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되면 안정적으로 돈을 버니까, 그 길로 쭉 가면 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깊게 고민해서 고른 건 아니고, 마침 점수대도 맞아서 간 거죠.

 

Q. 그럼 사법시험은 언제부터 준비하셨어요?

22살부터 휴학하고 바로 준비했어요. 군대도 미뤘고요. 붙으면 법무관으로 갈 수 있으니까 뭐든지 다 스트레이트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두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때 처음 생각해보게 된 거예요. ‘내가 이게 왜 떨어지지?’ ‘이게 나랑 안 맞나?’ 그렇게 5년 동안 다섯 번 시험을 봤어요. 그러면서 자신감도 점점 떨어져갔죠.

그런데도 미련이 계속 남더라고요. 군대 가기 직전엔 법학을 전공한게 너무 아쉬워서,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법 관련 인턴까지 했어요. 그런데 그 무렵부터 마음 한편으로 자꾸 다른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너무 내가 한쪽 길만 생각해온 것 아닌가’?, ‘이렇게까지 이 길이 안 맞으면 내가 맞는 건 뭘까?’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한 번도 고민 안 하고 살아온 게 그제야 부채감으로 밀려왔어요. 사춘기가 없었다는 게 그런 거예요. 그냥 사시(사법시험) 붙으면 된다, 그 길만 보고 산 거죠. 그래서 28살에 군대에 가면서, 거기서는 무조건 다양한 걸 도전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Q. 창업이라는 세계를 처음 만난 게 군대였다고요.

제가 늦은 나이에 입대하니까 22살, 23살 친구들이랑 같이 군생활을 했어요. 의경으로 입대했는데, 거기서 스타트업 창업을 하고 온 친구들을 만난 거예요. 저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아, 이렇게 창업이라는 걸 할 수 있구나.” 마침 그 무렵에 고시반에서 같이 공부하던 형이 유명한 금융 스타트업 창업자 분을 알고 있어서 그 회사 이야기도 듣게 됐고요. 그러면서 IT 서비스를 만들어서 창업을 한다는 게 어떤 건지 조금씩 알게 됐죠.

그래서 전역하고 무작정 구글코리아 프로그램에 지원했어요. 유퀴즈에서도 한번 소개된 정김경숙 전무님이 만든 프로그램인데, 50명을 뽑아 2주간 교육하고 마지막 날 IR 데이를 하는 거였어요. 당시 제가 아는 건 법밖에 없으니 아이템도 법으로 잡았죠. 사람들이 직접 겪은 법률 문제 해결 경험을 잡플래닛처럼 모으는 커뮤니티였어요.

 

Q. 그런데 그 첫 도전에서 1등을 하셨어요.

진짜 깜짝 놀랐죠. 처음엔 50명에 든 것만 해도 감사했거든요. 1등을 하면 미국 구글 본사에 보내준다고 했는데, 저는 친구들한테 그러고 다녔어요. ‘어차피 될 놈은 정해져 있다’, ‘우리는 재미로만 하자.’ 그 정도로 패배주의가 심했어요. 발표 전날까지도 안 한다고 할까 고민했고요. 그런데 결국 1등을 해서, 얼떨결에 구글 본사까지 가게 됐죠.

구글코리아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해 IR데이 피칭하는 김병훈 대표.
구글코리아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해 IR데이 피칭하는 김병훈 대표.

Q. 그 정도면 그 아이템으로 바로 창업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때 제 나이가 31살이라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회사를 안 가면 영영 못 갈 것 같았거든요. 1등해서 상도 받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창업을 하느냐는 완전 딴 얘기였어요. 남 일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이건 취업에 좋은 스펙으로 쓰자 하고 넘겼어요. 구글 본사까지 다녀오니 외국계 회사가 좋아 보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창업은 내 얘기가 아니라며 가슴 한 구석에 밀어놨어요.

첫 직장은 로지텍(Logitech)으로, 게이밍 기기 마케터로 입사했어요. 좋은 회사였는데, 제가 뭘 안 해도 글로벌 포트폴리오가 워낙 좋아 회사가 잘됐어요. 저는 그게 좀 재미가 없더라고요. 구글 프로그램에서 직접 기획하고 발표했을 때의 그 아드레날린이 계속 남아 있었나 봐요.

 

Q. 이후에도 창업 전에 2번 정도 이직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로지텍을 다니면서 언젠가 창업하기로 마음은 먹었었어요. 그런데 바로 실행하지 못한거죠. 계속 두려웠거든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창업한다고 말을 하고 다녔어요. 내뱉은 말 때문에라도 하게 되려고요. 이직 면접에서도 솔직하게 창업하려고 왔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이직한 회사에서 태헌님(공동 대표)을 처음 만나 가까워졌어요. 저는 제가 가진 강점이 뭔지 아는데, 그게 엔지니어링이나 좋은 프로덕트를 알아보는 감각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런 걸 가진 사람이랑 꼭 함께 창업하고 싶었는데, 태헌님이 딱 그런 사람이었죠. 트렌드도 엄청 잘 파악하고, 대중의 니즈가 어떤건지 너무 잘 알더라고요. 무엇보다 엄청 정직하고 양심 있는 사람이라 신뢰가 갔어요. 그래서 태헌님께 함께 창업하자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도 PM(Product Manager) 직군은 꼭 직접 경험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한 번 더 이직해서 회사 생활을 했어요. 개발자는 어떻게 뽑고 제품은 어떻게 만드는지, 제품의 한 사이클을 돌려보는 걸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창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로지텍 재직 시절의 김병훈 대표.
로지텍 재직 시절의 김병훈 대표.

Q. 그렇게 시작을 두려워하던 창업을, 결국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PM으로 직무 전환을 준비하던 시기에 토스 PO(Product Owner) 면접을 봤는데, 거기서 이승건 대표님이 면접에 들어오셨었어요. 면접 도중에 그분이 제게 그러더라고요. “창업할 거면 지금 하라”고. 공부를 오래 한 사람은 빠르게 도전하지 못하고, 시험공부 하듯이 준비하고 결과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데, 창업에는 시험이 없고 사용자가 답을 주는 거라고 하셨어요. 저의 성향을 완벽하게 간파하신 거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데미안」인데, 돌아보면 저는 진짜 알을 못 깨는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오랜 기간 창업을 망설이다가 2023년 11월에 드디어 회사를 나와서 ‘모바’를 창업했는데, 그때는 오히려 불안한 느낌이 하나도 없었어요. ‘나 드디어 했네’, ‘드디어 알을 깼구나’ 이런 홀가분함이 가득했고, 그제서야 진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 느낌이었어요.

 

💡 Insight Note

정답이 있는 세계에 오래 머문 사람은,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서 자기 길이 새롭게 시작되기도 한다. 여섯 번의 시험 낙방 끝에 “나는 왜 안 되지”를 처음 물어본 순간, 김병훈 대표의 길은 비로소 열리기 시작했다.

→ 혹시 당신도 지금 인생의 정답을 찾고 있진 않나요? 내가 지나온 길 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본 적이 있나요?

 

2. 빨리 가지 않기로 했다

Q. 모바를 시작하며 처음 들고나온 아이템은 무엇이었나요?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건 협업툴이었어요. 제품이 없을 때부터 데모 영상을 만들어서 콜드 메시지로 세일즈를 했는데, 그걸로 600만 원까지 매출을 내기도 했죠. 그런데 저희 제품을 구매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PM 직군이었어요. 저도 PM 직군이었으니까 당시 제품에 제 페르소나가 많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해요. PM은 이해관계자가 많잖아요. 써야 할 툴은 많고, 기록은 해야 하고, 그런데도 자꾸 뭔가를 잊어버리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PM을 위한 협업툴로 서비스의 방향이 좁혀졌어요.

그렇게 처음 만든 제품 형태는 캘린더를 대시보드처럼 쓰는 형태였어요. 인박스에 할 일을 모아두고, 캘린더 위에서 정리하고 계획하고 실행까지 한 번에 하자는 거였죠. 그때 저희 무기는 연동이었어요. 노션(Notion), 지라(Jira), 슬랙(Slack), 지메일(Gmail)처럼 PM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툴에서 생긴 일들을, 캘린더 인박스 하나로 모아주는 거예요. 여러 툴을 왔다 갔다 하느라 버리는 시간이 한 달에 스무 시간이 넘는다고 봤거든요. 그걸 캘린더 한곳에서 풀어주는 게 핵심이었어요. 협업툴은 범위가 너무 넓어서 한 번에 전부 못 만드니까, 버티컬로 하나씩 서비스를 붙여 나가려고 생각한 거죠.

 

Q.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아 회사를 빠르게 키우는데 집중하는데, 대표님은 런웨이만 먼저 쌓아두고 출발하셨어요.

이게 사실 제 성향이랑도 연결돼 있어요. 저는 사법시험을 5년이나 준비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빨리 뭔가 결판내는 데는 영 소질이 없어요. 장기 레이스에서 빛나는 타입이라고 제 자신에 대해 늘 생각해왔고, 태헌님도 그런 결이 있었거든요. SaaS(Software as a Service) 제품이 원래 그렇게 오래 걸리는 싸움이기도 하고요. 초기에 저희가 벤치마크한 노션이나 아사나(Asana), 투두이스트(Todoist)도 다 10년 가까이 해서 빛을 본 서비스들이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판이 날 거라고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회사가 오래 버틸 수 있는 구조부터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자본금부터 깔았죠. 투자금은 초기에 스파크랩에서 받은 소규모 시드 투자가 전부예요. 대신 예비창업 대출, 팁스(TIPS), 신용보증기금,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받은 지원금을 더해서 자본금을 모아뒀어요. 전체적으로 3년 정도의 런웨이는 확보하고 시작한거죠.

 

Q. 그 선택이 605일이라는 긴 클로즈드 베타로 이어졌고요.

정식 출시를 1년 반이나 준비할 줄은 몰랐어요. 하다 보니 계속 느려진 거죠. 우리가 원하는 수준까지 제품 품질이 안 올라오니까요. 그래도 조급하진 않았어요. 어차피 오래 갈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 대신 클로즈드 베타에서도 계속 유료로 서비스를 운영했어요. 돈을 내는 분들의 성향을 보고 싶었거든요. 슈퍼휴먼(Superhuman)*의 그로스 방식을 많이 참고했어요. 창업자가 1:1로 고객을 만나고, 거창한 런칭 없이 가는 거요. 캔바(Canva) 창업자가 말한 것처럼 정식 런칭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고, 그냥 지나가는 하루처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슈퍼휴먼(Superhuman): 라훌 보라가 만든 유료 이메일 앱. 창업자가 신규 사용자를 직접 1:1로 온보딩하고, 대기자 명단으로 가입을 천천히 열며, 빠른 성장보다 제품-시장 적합성(PMF)부터 끌어올린 그로스 방식으로 유명하다.

 

Q. 보통 캘린더는 공짜로 쓰는데, 베타 때부터 돈을 받으셨어요.

캘린더는 돈 내고 쓴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서비스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처음부터 돈을 내고 쓰는 캘린더를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무료로 많이 모아놓고 나중에 유료화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결제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가격은 진짜 많이 바꿨어요. 자신이 없을 때는 커피값 정도인 월 4천 원부터 시작했다가, 이 정도면 더 받아도 되겠다 싶어서 월 1만 5천 원까지 올렸는데 그 가격대에선 결제가 잘 안 이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6개월에 5만 원으로도 해봤다가, 나중에 6개월 7만 원으로 픽스했어요. 그렇게 계속 실험을 반복하다 보니 결제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딱 갈리는 지점이 보이더라고요. 그 지점이 여기구나 싶어서, 정식 출시 이후에는 글로벌 고객 대상으로 월 8달러로 운영하고 있어요.

 

💡 Insight Note

오래 걸릴 싸움이라고 받아들인 사람은 자원을 쓰는 법부터 다르다. 김병훈 대표는 최소한의 투자금과 외부 지원금으로 3년 정도의 런웨이를 확보했고, 605일에 걸친 유료 베타로 고객이 돈 낼 가치가 있는 제품인가를 천천히 확인했다.

→ 당신이 뛰는 건 단거리인가요, 장거리인가요? 그 답에 맞게 시간과 돈을 쌓고 있는지 돌아본 적 있나요?

 

3. 기능을 뺄수록 또렷해진 것

Q. 협업툴에서 지금의 개인용 캘린더로 방향을 튼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나요?

클로즈드 베타 때도 계속 유료로 받았으니까, 돈을 내는 분들이 누구인지를 유심히 봤어요. 그런데 회사가 공식 툴로 도입해서 단체로 쓰는 게 아니더라고요. 회사가 사주지 않으니, 개인들이 각자 자기 업무를 쳐내려고 직접 결제해서 쓰는 거였어요. 회사에는 어차피 구글 캘린더도 있고 무료 툴을 쓰는게 많으니까, 조직 차원의 수요보다 개인이 혼자 떠안은 문제가 훨씬 컸던 거죠.

처음으로 핵심 고객이라고 느낀 분이 정리에 지쳐 있던 한 PO였어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하시는데 그 말에 깜짝 놀랐어요. PO다 보니 팀 전체에 진행 상황을 정리해서 공유해야 하는데, 개발자는 지라에서, 디자이너는 피그마에서, 또 어떤 건 노션에서 보거든요. 그러니 같은 내용을 툴마다 옮겨 적고 맞추느라, 그 사이를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해야 했어요. 그 정리에만 야근하며 몇 시간씩 쓰고, 그러다 빠뜨리기도 하고요. 그렇게 여러 툴 사이에서 갈려 나가던 분이었죠.

그때 저희가 내세운 게, 캘린더는 메일처럼 매일 들여다보는 대시보드니까 그 위에서 일을 다 관리하자는 거였어요. 그분이 그 화면을 엄청 편하게 느끼셨고요. 그렇게 비슷한 분들을 20명, 30명 만나보니, 다들 다이어리처럼 개인 일정 관리 툴을 따로 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B2C로 더 파보기로 했어요. 사실 제품은 그대로인데 타깃이 바뀌고, 캘린더에 더 집중하고, B2B가 아니라 B2C로. 그렇게 세 가지가 좁혀진 거죠. B2B로 가려면 세일즈 조직부터 커져야 하는데 그건 저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어요. 많이 채용하지 않고 프로덕트 감각으로 승부 보기에는, 개인 사용자 쪽이 훨씬 결이 맞았고요.

아치 캘린더 메인 화면 (모바 제공)
아치 캘린더 메인 화면 (모바 제공)

Q. 그런데 지금 아치 캘린더는 연동 기능을 많이 덜어냈잖아요. 빼는 게 두렵지는 않았나요?

걱정이 엄청 많았어요. 처음에 태헌님이 빼자고 했을 때, 이걸 빼는 게 맞나 싶었거든요. 데이터상 사용량이 낮은 건 알고 있었는데, 저는 이게 우리가 개발을 끝까지 안 해서 그런 거라고 붙잡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용자들을 만날 때마다 결국 지라나 슬랙에서 다시 하게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건 저도 납득이 됐어요. 그래도 아쉬움이 있잖아요. 우리가 끝까지 개발을 안 했으니까.

그때 아키플로우(Akiflow)*라는 툴을 봤어요. 연동을 앞세운 툴인데, 연동이 완벽하게 돼 있는데도 막상 제가 써보니 저조차 그 연동을 잘 안 쓰는 거예요. 끝 지점까지 간 툴을 봐도 이쪽으로는 승부를 보기 어렵겠다 싶었죠. 사용자들은 계속 이것도 연동해 달라, 저것도 연동해 달라고 하는데, 그걸 다 해줘도 안 되겠다는 결론이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뺐어요. 막상 빼고 나니까 없어진 줄도 모르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우리가 더 걱정을 많이 했구나 싶었죠.

*아키플로우(Akiflow): 여러 협업툴의 일정과 할 일을 한곳에 모아주는 캘린더형 생산성 도구.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를 거쳐 누적 약 230만 달러(약 30억 원)를 투자받았다.

 

Q. 그렇게 남긴 게 인박스, 드래그앤드롭, 컬러링이었군요.

맞아요. 최소한의 기능으로 최대의 생산성을 주자는 건 창업 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에요. 제품을 미니멀하게 가자는 건 프로덕트를 리딩하는 태헌님이 먼저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 저는 사용자들을 만나면서 현재 상태로도 충분히 결제가 이루어진다는 걸 앞단에서 확인했어요. 물론 두려움은 있었죠. “이걸로 팔릴까?” 팀 안에서도 논의가 많았어요. 완성도를 더 끌어올리고 내보자는 얘기도 있었고요. 그런데 많은 수는 아니어도 이미 제품이 팔리고 있었고, 우리 제품을 좋아해주는 팬들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런칭하자고 뜻을 모았어요.

그 기조는 지금도 똑같아요. 기능을 하나 넣으려고 할 때마다, 이걸 꼭 추가해야 하나부터 따져봐요. 그렇게 덜어내는 게 팀의 원칙이자, 저희 제품 철학으로 남아 있어요.

 

Q. 그렇게 기능을 덜어내며 또렷해진 타깃이 ‘불안한 완벽주의자’, 바로 대표님 자신이었다고요?

아마 과거의 저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저도 군대 때 패배주의가 너무 심했거든요. 그때 ‘한능검’(한국사능력검정시험) 같은 시험이라도 보려 했어요. 합격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작은 시험이라도 하나 붙어서 나 이거 됐네, 그런 성공 경험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래서 작은 성공의 중요성을 너무 공감해요. 사용자분들이 피드백을 줄 때 진짜 행복한데, 효능감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직접 해주시거든요. “이직하고 불안했는데 내가 잘해냈다”, 그런 피드백이요.

그게 서비스를 운영하는 원동력이고, 그래서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타깃으로 하게 됐어요. 계획을 빽빽하게 세워놓았는데 그걸 다 못 하면 내가 패배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분들. 그런데 작은 성공 하나라도 있으면 다시 갈 수 있는 분들이요. 저는 그런 분들한테 그 감각을 어떻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요즘 많이 고민해요. 나를 응원해주는 캘린더 같은 느낌이죠.

 

💡 Insight Note

내가 오래 앓던 약점이, 내가 가장 깊이 이해하는 고객이 되기도 한다. 김병훈 대표는 합격을 해본 적이 없어 작은 성공에 목말랐고, 그래서 작은 성공을 응원하는 캘린더를 만들었다. 자기를 위해 만든 도구가, 자기를 닮은 사람들에게 가닿은 셈이다.

→ 당신이 가장 잘 아는 사용자는, 어쩌면 예전의 당신 아닐까요?

 

4. 고래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Q. 구글이 지배하는 캘린더 시장에 뛰어드는 건 두렵지 않았나요?

진짜 솔직히 그때는 너무 몰라서 두려움이 없었어요. 어차피 창업은 실패 확률이 높은데, 그럴 거면 거대한 거에 도전하다 실패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할 말이라도 있잖아요. 사실 그동안 제가 너무 안정적으로만 살려고 했잖아요. 사법시험도 결국 안정적인 삶을 바라면서 매달린 거였고요. 그러다 오히려 제 성향의 정반대 끝에 있는 걸 해보고 싶어진 거예요. 안정만 좇던 사람이, 제일 안 될 것 같은 시장에 뛰어든 거죠.

최근엔 알라미* 대표님 영상을 많이 봤는데, 저희 서비스랑 공통점이 많더라고요. 알람, 캘린더 둘 다 기본 앱인데 돈을 내고 사용하는 제품을 만든거잖아요. 알라미가 기본 앱인데도 매출을 내고 멋진 수익 모델을 만든 것처럼, 캘린더는 오히려 사용 빈도가 훨씬 높으니까 강점이 더 있다고 봐요. 이 카테고리에 집중해서 우리도 그런 사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커요.

*알라미(Alarmy): 딜라이트룸이 만든 알람 앱. 외부 투자 없이 누적 1억 다운로드와 2025년 매출 460억 원을 올린 글로벌 1위 알람 앱이다.

 

Q. AI가 발전하면 SaaS나 생산성 툴이 위협받는다는 이야기도 많잖아요. 캘린더는 괜찮다고 보세요?

저도 걱정을 엄청 많이 했어요. 그런데 사용자를 만나면서 그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요즘은 클로드(Claude) MCP*로 구글 캘린더까지 연동하고, GPT나 제미나이(Gemini)로 일을 다 통합하시는 분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모든 툴을 AI에 다 연동해 개인 비서처럼 쓰시는 분들도, 맥 독(Mac Dock)에 캘린더만은 꼭 깔아두고 계속 들여다보시더라고요. 사람이 시간축으로 살아가니까,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캘린더는 끝까지 찾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확신이 생겼어요. 앱이 다 정리돼도 끝까지 남는 5개 안에 캘린더는 들어가는구나. 캘린더 서비스를 고른 게 신의 한 수다 싶었죠.

그리고 저희 서비스는 프레임이 강해요. 자유도가 높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 프레임을 원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툴을 자유자재로 짜고 싶은 사람은 옵시디언(Obsidian)이나 클로드로 직접 조립하고, 반대로 가벼운 사람은 구글 캘린더면 충분하죠. 저희 타깃은 딱 그 중간이에요. 틀은 갖춰져 있으면 좋지만 직접 다 조립하긴 부담스러운 분들이요. 그 층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 가졌던 우려는 사용자들한테서 답을 얻으면서 많이 사라졌어요.

*MCP(Model Context Protocol): AI를 외부 앱이나 데이터와 연결해 주는 방식.

 

Q. 앞으로 아치 캘린더는 어떤 제품이 되길 바라세요?

최근에 밈으로 돌아다녔던 에픽하이 인터뷰 아시죠? “기억이나 됐으면 좋겠어요.”

딱 그 마음이라, 우선 아치 캘린더라는 이름이 오래 남았으면 좋겠어요(웃음). 스타트업이라는게 워낙 미래를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저희가 요즘 가장 중요하게 붙잡고 있는 건 ‘시간 주도권’이에요. AI가 발전할수록 결과물은 쉽게 나오는데, 정작 하루를 마무리할 때 “내가 오늘 뭐 했지” 하고 공허해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생산성은 올라간 것 같은데 손에 쥔 건 없는 느낌 있잖아요. 요즘 ‘클로드 블루’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그런 감정을 나누는 커뮤니티 2,000명이나 모일 정도예요. 결국, 아무리 AI가 도와줘도, 오늘 시간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마무리할지는 나한테 달려 있어요.

그래서 아치 캘린더는 사람들에게 그 시간 주도권을 쥐여주는 제품이 되었으면 해요.

해야할 일과 스케줄만이 아니라 휴식 시간까지 캘린더에 담아서, 언제 무엇을 할지, 어느 정도 했으면 됐다고 마무리할지, 하루를 온전히 관리하도록 돕는 거죠. 이러한 고민에서 나온 게 ‘투데이 제로(Today Zero)’예요. 계획한 일을 다 끝내면 오늘 얼마나 일했는지 한 장의 데이터로 보여주는 기능이죠. 또 한 해 동안 내가 쌓아온 시간을 한눈에 보여주는 ‘애널리틱스 서머리(Analytics Summary)’, 휴식 시간을 일정처럼 캘린더에 배치하는 ‘브레이크(Break)’ 기능도 그렇게 나왔고요. 앞으로도 사용자가 자기 시간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도록, 그 방향으로 계속 제품을 만들어갈 거예요.

나의 하루를 돌아보게 해주는 Today Zero 기능 화면 (모바 제공) 
나의 하루를 돌아보게 해주는 Today Zero 기능 화면 (모바 제공) 
내가 쌓아온 시간을 한 눈에 데이터로 보여주는 Analytics summary 기능 화면 (모바 제공)
내가 쌓아온 시간을 한 눈에 데이터로 보여주는 Analytics summary 기능 화면 (모바 제공)

Q. 팀도 작게 유지하려고 하신다고요.

지금 인원이 현재로선 딱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공동 대표 2명, 디자이너 한 분, 개발자 네 분으로 총 7명인데, 윈도우, 맥 데스크톱 앱에 모바일 iOS, AOS까지 커버해야 하다보니 개발자 비중이 높아요. 저희 제품은 특성상 UI, UX가 정말 중요한데, 커머스처럼 기능을 빠르게 붙이고 반응 없으면 죽이는 그런 주기가 아니거든요. 개발자 입장에선 재미없는 순간이 더 많을 수 있어요. UX를 다듬는 건 티도 잘 안 나니까요.

그래서 그런 재미없는 순간을 잘 이겨내는 분들을 좋아해요. 자기만의 루틴이 있고, 도파민을 빠르게 찾기보다 반복된 일상을 즐기는 분들이요. 반복된 일상이 쌓여서 어느새 보면 성장해 있는 사람들이요. 사실 저랑 태헌님이 그런 결이거든요. 지금 남아 있는 팀도 그래서 구성이 정말 좋아요. 채용은 평소에 많이 만나는 수밖에 없어요. 저희는 커피챗을 진짜 많이 하고, 링크드인으로도 정말 많이 연락해요. 채용 페르소나도 실제 인물처럼 정해놓고 팀이랑 공유하고요. 시간이 촉박하면 타협하게 되니까, 그러지 않으려고 평소에 미리 만나두는 거예요.

 

Q. 모바의 Day 0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첫째는, 공동창업자를 구할 때 진짜 결혼하듯이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무조건 같이 일해보고, 사적인 대화도 많이 나눠봐야 해요. 두 명만 있어도 사소한 것부터 생각이 갈리는데, 그걸 어떻게 맞춰가느냐가 우리가 꿈꾸는 삶에 따라 크게 갈려요. 그래서 가치관이, 특히 양심이나 도덕적인 판단이 잘 맞아야 해요. 돈이 없을 때도, 투자를 받았을 때도 흔들릴 일이 많은데, 그때 방향을 잡으려면 배우자 고르듯 신중해야 해요.

둘째는, 저 자신을 더 파악했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투자받는 걸 일종의 인증처럼 여겼어요. 그런데 투자를 받아 크게 키우는 길이 내게 맞는지, 아니면 투자 없이 원하는 걸 쭉 끌고 가는 게 맞는지를 더 따져봤어야 했어요. 남의 돈을 받으면 그만큼 책임이 따라오거든요. 아이템이랑 문제 해결에만 빠져서, 정작 어떤 방식으로 회사를 성장시켜야 할지는 잘 못 봤던 것 같아요.

마지막은 채용이에요. 초기 팀에는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지만, 그래도 타협하면 안 돼요. 소개팅처럼 100명, 500명을 만나야 그중 한두 명이 있거든요. 타협하는 순간 나중에 부채로 돌아와요. 그리고 초기에 꼭 경력이 많은 분들을 모시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어차피 창업자도 같이 성장하니까, 백지 상태에서 미친 듯이 성장할 사람을 찾는 편이 오히려 더 괜찮을 수 있어요.

모바 공동대표인 이태헌 대표(왼쪽)와 김병훈 대표(오른쪽) (출처: 롱블랙)
모바 공동대표인 이태헌 대표(왼쪽)와 김병훈 대표(오른쪽) (출처: 롱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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