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민님과 만난 건 23년 10월쯤으로, 그의 회사인 클래푸에서 출시한 '댕부해'의 마케팅 협업 건으로 자주 소통했다. 그때의 창민님은 한마디로, '창업의 길만 걸을 것 같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날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선택의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오늘은 또래 이창민님을 만나 '발명을 좋아했던 청년의 창업과정과 그 넥스트 스텝'을 담았다.
세마디 요약
- 창업 생태계를 겪어 본 또래 청년의 고민과 인사이트를 들을 수 있어요.
- 제가 생각했을 때 발명과 창업은 본질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거든요. 둘 다 ‘이게 불편하니까 이렇게 한번 풀어보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 그래픽스와 비전은 모델 성능을 높이는 AI 연구보다는 좀 더 빨리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거든요. 추후 다시 창업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술 방향이라고 봤어요.
소년 발명가,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Q. ‘발명’을 그렇게 좋아하신다고요?
네 맞아요, 어릴 적부터 발명에 관심이 많았어요. 초등학교 시절에 교내 발명 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낀 부분들을 개선하려는 게 재미있었거든요. 이후 고등학교에서도 발명 동아리에 참여하면서 꾸준히 발명 활동을 이어갔어요. 안전벨트를 활용한 높낮이 조절 손잡이나, 편광필름을 활용한 색약환자용 VR 기기도 개발했었죠. 발명으로 장관상도 받고, 세계대회에서도 우승하는 등, 발명에 진심인 학생이었어요(웃음).
Q. 대학에 와서는 발명이 아닌 ‘창업’을 택했어요. 이유가 있을까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발명에서 창업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발명과 창업은 본질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거든요. 발명은 ‘이게 불편하니까 이렇게 한번 풀어보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창업도 마찬가지예요.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 자체가 저한테는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물론 두 가지의 차이도 있죠. 발명은 실패해도 큰 타격이 없지만, 창업은 실패하면 그 책임이 훨씬 무거워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팀원들과 기업 자체의 존속 문제로 이어지니까요. 이런 점에서 창업은 발명보다 더 현실적인 책임감과 창작의 깊이를 요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결국 창업과 발명 모두 제가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며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는 즐거움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3년간의 창업, 이런 걸 느꼈어요
Q. 그렇게 첫번째 프로덕트를 출시했는데, 문제가 있었다고요?
초기멤버들과 함께 ‘만질케어’라는 프로덕트를 출시했어요. 만질케어는 당뇨 환자들을 위한 당뇨 관리 기록 앱으로 시작했어요. 단순한 기록 앱으로 출발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스마트워치를 활용해 심전도 신호를 측정하고, 부정맥을 분류하는 기술까지 개발하려는 목표가 있었죠. 이를 통해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 같은 만성 질환 관리에 도움을 주는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구상했던 주요 기능을 축약한 형태의 앱이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출시된 걸 알게 되었어요. 비슷한 서비스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죠. 결국, 만질케어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어요.
Q. 두번째로 출시한 프로덕트는 무엇이었나요?
두번째로 출시한 프로덕트는 ‘댕부해’라는 서비스였어요. 댕부해는 반려동물 화장품의 전성분분석을 해주는 어플이에요. 제품의 어떤 성분이 유해하고 무해한지 알려주는 서비스였죠. ‘반려동물판 화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것 같아요. 반려동물 시장이 커져가는 상황이었고, 그 과정에서 기획을 하게 되었죠. 현재는 서비스 종료를 했지만, 개인적으로 댕부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이 되게 많아요.
Q. 어떤 것을 느끼셨나요?
첫번째로 ‘보람’이에요. 하루는 댕부해 SNS로 어떤 분이 메시지를 보내셨더라고요. ‘댕부해 정말 잘 쓰고 있다’면서요. 사실 유저수가 그렇게 많은 서비스가 아니라 유저의 반응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잘 쓰고 있다’며 우리 서비스에 호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다른 하나는 ‘창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창업을 해보며 창업 전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창업가 중에는 7전8기 끝에 성공한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여러번 창업을 하면서 요령도, 인사이트도 생기며 결국 성공하는 사람들이죠. ‘그 7전8기의 과정을 지금 나의 깜냥으로 감당가능할까?’ 생각해보니, 아니더라고요. 또 창업을 실제로 해보니, 제가 창업가로서 길러야 할 역량도 많이 보였어요. 전체적으로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내린 결론이 무작정 7전8기를 외치며 들이박기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창업을 준비하자’ 였어요.
창업의 다음 스텝은 대학원? 이유가 있어요
Q. 창민님의 ’다른 무언가’는 대학원 진학이었어요. 선택의 배경은 뭔가요?
맞아요, 내년부터 카이스트에서 AI 그래픽스 분야에 대해 공부하려고 합니다. 대학원 진학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기회가 AI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AI가 시장을 주도할 것이 자명했고, 그렇다면 ‘AI와 친숙해야 추후에 어떤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것이 창업이든, 혹은 그 어느 방향이든간에 말이죠.
Q. 특별히 AI 그래픽스 분야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래픽스나 비전이 AI 중에서도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가장 좋은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구멍을 발견하고, 그 틈을 채우는 데 강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AI 모델 연구나 기술 경쟁에서는 스타트업이 자원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죠. 그렇기 때문에, 창업을 고려하는 제 입장에서는 AI를 활용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했어요. 애플리케이션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기술을 활용해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내는가’ 일테고, 저는 그래픽스나 비전이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가장 유망한 기술이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대표적인 AI그래픽스인 얼굴 애니메이션, 딥페이크 기술은 같은 것들은 현재도 스노우(Snow)같은 어플에서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활발히 활용되고 있잖아요. 그래픽스와 비전은 모델 성능을 높이는 AI 연구보다는 좀 더 빨리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거든요. 추후 다시 창업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술 방향이라고 봤어요.
Q. 앞으로의 커리어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석사과정 2년간은 그냥 정말 ‘연구자’의 마인드로 살아보려고요. 지난 몇 년간 창업에 매진했으니, 이번에는 연구와 실험에 집중하며 좋은 논문을 쓰는 데 목표를 두고 2년을 보내려고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문제 해결 능력을 더 키우고 싶어요. 그 후에는 취업을 통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대기업이 놓치고 있는 점이나 우리나라가 도전할 수 있는 기회들을 탐구해 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창업 경험에서 얻은 통찰을 계속 살리면서 현장을 지켜보며 준비하겠죠. 안정적인 상황에서 테스트를 해보고, 반응이 나오는 순간 다시 창업에 도전하지 않을까 싶어요.
Q. 마지막으로 또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도 제가 대학원에 갈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필요가 생겨서 이렇게 또 진학하는 걸 보면 삶은 참 한 치 앞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 모두 ‘내가 가는 길이 맞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다 보면, 또 미래가 기다려질테고요. 저도 제 미래가 기다려집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햄찌
멋져여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