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과 전략 몰아보기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이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면서 기자회견에서 언급된 내용들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랜덤 포토 카드, 음반 밀어내기, 팬 사인회 등에 대한 지적은 팬 커뮤니티에서 큰 공감을 얻었는데요. 팬들 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안은 쉽지 않죠. 저는 지금 음반의 판매 방식이야말로 케이팝의 잠재적인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 한 명의 케이팝 팬은 앨범을 몇 장이나 구매할까?
앨범 판매량은 케이팝 산업의 대표적인 지표로 쓰인다. 초동 판매량부터 누적 판매량 등등. 물론 케이팝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20세기의 음악적 성과는 곧 앨범 판매량과 같은 뜻이었다. 위키피디아에서 아티스트를 검색하면 여러 커리어 중에서도 앨범 판매량이 우선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21세기의 아티스트는? 매우 다르다. 기본적으로 앨범이 팔리지 않는 시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이팝은 앨범 판매량이 매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2023년 케이팝 앨범 판매량은 1억1600만 장에 육박할 만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4년 1월의 앨범 판매량은 약 560만 장으로 작년에 비해 낮아졌지만 여기에 대해 써클차트 김진우 수석연구위원은 부분적인 이슈라고 분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팝 음반의 판매량은 팬들의 반복 구입으로 달성되는 경우가 많다. 2023년 3월, 한국소비자원은 팬덤 마케팅 소비자 실태조사를 통해 팬들이 어떤 맥락으로 음반을 구매하는지 조사했다.
2021~2022년 사이에 발매된 주요 케이팝 음반 50종과 관련해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500명 중 52.7%가 포토카드 등 굿즈 수집을 위해 음반을 구매한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랜덤 굿즈를 얻기 위한 구매 경험은 194명으로, 같은 앨범을 구매한 수량은 평균 4.1개였다. 팬 사인회 등 이벤트 응모를 목적으로 음반을 구입한 경우는 102명이었고, 평균 6.7개를 구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실물CD를 통한 음악 감상은 5.7%에 불과했고, 83.3%가 음원 및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답했다. 팬들은 팬덤 마케팅과 관련해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15.2%가 ‘굿즈의 랜덤 지급 방식’을 꼽았고, 67.8%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앨범 판매량에 의존하는 산업의 성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모건 스탠리: 케이팝의 잠재성 (2024.03)
한편 2024년 3월, 모건 스탠리에서는 “K-Pop: Time to Turn on the Music Again”이라는 분석 리포트를 공개했다. 핵심은 케이팝의 잠재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요약본은 지난 달 모건 스탠리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 골드만 삭스: 음반 판매량은 오염되었다 (2024.04)
골드만 삭스도 케이팝의 성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음반 판매량을 지표로 삼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골드만 삭스의 애널리스트들은 "우리는 앨범 중심의 사고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 대신 오프라인 콘서트 관객이야말로 케이팝의 성장세를 측정할 수 있는 더 나은 지표라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이들은 케이팝 팬덤 내에서는 흔히 한 명의 팬이 여러 장의 앨범을 구매하기 때문에 앨범 판매량이 오염될 수 있으며, 팬데믹 기간 동안 오프라인 상호 작용의 부족으로 인해 앨범 판매량이 급증해 지표가 왜곡되었다고 말했다.
콘서트 관객을 기준으로 평가할 때 케이팝은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특히 단기적으로 "일본에서의 관객 증가가 주요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골드만은 일본 콘서트 관객이 2023년부터 2026년까지 연평균 24%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HYBE, JYP, SM의 합산 점유율은 7%에서 14%로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 파이낸셜 타임즈 "Are we at peak K-pop? Goldman doesn’t think so."
👉 CNBC "K-pop stocks have sold off this year, but Goldman sees a turnaround"
⏮️ 케이팝 음반이 더 많이 팔리는 이유
한국은 2002년 이후 음반 판매량이 급속하게 감소했다.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와 소리바다, 냅스터 같은 P2P 서비스의 유행이 영향을 줬다. 하지만 2004년 당시 서태지와 동방신기의 음반 판매량을 기점으로 '팬덤이 음반 판매량을 받쳐준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그래서 2010년 무렵까지 음반에 포토카드가 삽입되거나 포토북의 형태로 발매되는 실험들이 다양하게 벌어졌다. 문제는 이런 실험이 점점 관습화되며 팬덤의 구매력을 상승시키는, 다시 말해 팬덤의 지갑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는 데 있다. 음반 구매 영수증으로 팬 사인회 및 이벤트의 추첨을 진행하는 게 대표적이다.
한편 미국의 음반 시장은 2008년 아이튠즈가 음원 유통을 지배하면서 하락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아티스트는 디지털 음원으로 발매하지 않는 독점 음원을 제공하거나, 바이닐이나 카세트테이프 등으로 음반의 포맷을 바꾸는 식으로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다. 그러나 큰 성과는 없었다. 오히려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음반에 포토카드를 넣거나 커버 사진을 다양한 버전으로 발매하는 방식이 성공적이었다. 한국에서 2004년에 벌어진 실험이 미국에서는 2010년 이후에나 벌어진 셈이다. 미국의 음악 산업이 케이팝의 음반 판매량을 놀랍게 바라보는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음반의 판매량이 아니라 음반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2024년 현재, 음반을 구매한다는 것은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가 아니라 굿즈를 소장하고, 아티스트를 후원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행위는 팬의 마음과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이벤트 참여를 위한 대량 구매는 이 마음을 악용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다수의 관계자들조차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심각한 문제였지만, 내부자들로서는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웠던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케이팝 산업에서 팬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 문제는 음반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음반 밀어내기'는 기획사가 음반 판매처에 미리 정해진 물량을 공급하면, 판매처에서는 그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팬 사인회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어떤 케이팝 그룹의 팬사인회 비용이 최소 5억 원이라면, 음반 판매처는 이 그룹의 음반을 5억 원 어치 매입한 뒤 팬싸인회 추첨으로 소진할 수밖에 없다.
밀어내기는 인기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어떤 그룹은 데뷔하고 몇 년 동안 팬 사인회만 돌고, 팬들은 같은 앨범을 반복 구매하면서 팬 사인회에 간다. 신곡도 없고 콘서트도 없이, 계속 팬 사인회 같은 이벤트만 진행하면서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다. 팬의 입장에서는 '살아 있는 ATM'이란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밀어내기는 발매 첫 주의 판매량, 즉 초동 판매량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렇게 집계된 초동 판매량은 기사화되어 영향력을 과시하는 지표가 된다. 이런 구조에서 팬덤은 본의 아니게 음반 판매량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입장이 된다.
민희진 대표는 '애들 기죽을까봐 또 사고, 또 가고...'란 표현을 썼는데, 이 발언은 팬덤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사람이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왜 기가 죽을까? 음반 판매량이 기사화되면 아티스트 간 경쟁 지표처럼 쓰이기 때문이다. 초동 판매량은 아티스트의 영향력과 팬덤의 화력을 증명하는데 가장 직접적이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데이터다.
하지만 팬덤은 기본적으로 경쟁을 즐기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팬덤 밖에서는 경쟁을 부추긴다. 경쟁이 치열해질 수록 자신들의 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 공급자가 변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벗어날 대안이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초동판매량 집계를 멈추는 일이다. 기획사가 초동판매량의 보도자료를 중단하면 언론사가 그걸 재생산하는 구조도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누적판매량과 콘서트 지표가 더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건 이전엔 없던 사례도 아니다. 오히려 음악 시장의 원래 가치를 측정하는 지표로서 누적 데이터의 가치가 회복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아티스트의 영향력을 측정하는데 새 앨범의 반짝 판매량이 아니라 과거 출시한 음원과 음반의 판매 지표가 중요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음악에서도 롱테일의 법칙이 적용된다.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행태를 옹호할 수는 없다. 골드만 삭스의 분석은 케이팝의 관행이 자본 시장에서도 부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케이팝의 성과는 단지 음반 판매량으로 수렴되지 않고 좀 더 문화적인 것을 지향해야 한다. 유행을 만들고 영감을 주며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이다. 골드만 삭스 뿐 아니라 한국소비자원의 설문과 팬덤의 의견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한다. 음악은 언제나 크리에이티브를 자원으로 작동하는 산업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수용자가 아니라 공급자의 문제다. 특히 음반 밀어내기 같은 문제는 공급자가 시장을 교란하는 수준을 넘어 팬들의 피로감을 높이고 시장에서 이탈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케이팝의 잠재적인 위협은 밖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특히 케이팝의 시장이 북미와 유럽으로 확장되는 단계에서 우리는 케이팝의 성장성에 대한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케이팝의 문제는 대체로 어떻게 안정적인 시장성을 확보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환원된다. 그러나 이제는 케이팝은 어떻게 자신의 창의성을 증명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큰 맥락에서 이 둘은 사실상 같은 질문이지만,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문제 정의의 우선순위와 의사 결정 방식은 매우 달라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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