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레터#55 | 서로의 다름을 들여다보는 7개의 단어 / 장재열

짧은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하필 장마 시작점이라 숙소에서 내내 비내리는 풍경만 바라보다 왔네요. 물론 마감을 했습니다... (아니요, 저는 마감이 좋아요! 좋아해요 마감! 이거 진짜 정말 진심이라구요!!!!) 

마침 짬이 난 지인을 초대해서 새벽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지인이라고 해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전주에 살고 있어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거든요. 막 삼십대에 진입한 나이에 공간과 콘텐츠 비즈니스를 열심히 성장시키고 있는 그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MZ세대'로 좁혀졌습니다. 

그렇게 2021년의 어느 지점에서 시작된 대화는 2017년과 2014년으로 점프하더니 급기야 1999년과 1994년, 1992년 어디쯤으로 광탈했다가 간신히 2021년으로 돌아왔는데요, 문득 요즘 시대에 과연 과거처럼 10년을 기준으로 나누는 세대 구분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재열 작가의 칼럼 제목처럼 여러모로 '다름'과 '차이'에 대해 생각했던 밤이었네요. 그나저나 구독자님은 휴가 언제, 어디로 가세요?

오늘 첫 곡은 비바두비(비아트리스 크리스티 라우스)의 신곡을 준비했습니다. 딱 90년대 스타일의 노이지한 로큰롤을 부르는 이 씩씩한 젊은이는 필리피노 브리티시 싱어송라이터인데요, 2000년 생으로 이제 막 21살이 되었습니다. (2000년에 저는... 복학생이었네요? ㅋ) 뮤직비디오는 쿠엔틴 타란티노 혹은 가이 리치의 초기 범죄영화 같은 인상인데 귀엽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들여다보는 7개의 단어 / 장재열

적성 / 안정성 / 워라밸 / 조직문화 / 소득 / 네임밸류 / 성장성

여러분은 이 단어들에 우선 순위를 매긴다면 어떨 것 같나요? 직업 가치관의 측면에서요. 저는 1순위는 워라밸, 2순위는 소득, 3순위는 조직문화, 4순위는 적성, 5순위는 네임밸류, 6순위는 성장성, 7순위는 안정성입니다.

다짜고짜 이게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다고요? 일단 이게 다 뭔가 싶으시다고요? ^^;

2019년 즈음 서울시, 퇴사학교와 함께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2030 직장인들의 퇴사율 증가와 그 심리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였는데요. 제가 속한 NGO인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에 퇴사고민으로 상담을 받으러온 6,000여명, 그리고 당시 핫했던 스타트업인 ‘퇴사학교’의 참여자 5,000여명을 합쳐 11,000여명 직장인들의 이야기들을 분석했어요.

앞서 언급한 7개의 항목들은 바로 그 연구에서 도출된 키워드들이에요. 직장인이 퇴사하는 가장 큰 이유 7가지. 즉, ‘나는 현재 내 직장(직업)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침해 받고 있으므로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얘기죠.

그런데 이 항목들이 꼭 퇴사할 때에만 적용되는 지표는 아닐 거에요. 일에 초점을 맞춰보면 이직, 취업, 창업 등에도 적용할 수 있고, 또 현재 직장과 나의 궁합이 얼마나 잘 맞는지를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바로미터도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일단 제 얘길 한 번 해볼까요?

저는 항상 아침 11시 반쯤에 일어나요. 12시 이전에는 눈을 못뜹니다. 그래서 저와 오래 합을 맞춰본 파트너들은 “오전에 업무 전화를 걸어봐야 장재열은 어차피 못받는다”라고 얘기하세요. 저의 라이프 사이클을 이미 알고 계시니까요. 대신 저는 주말에 일하는 건 괜찮습니다. (늦잠만 잘 수 있다면요.) 그리고 누구라도 알고 있는 직장에 다니거나 그러한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는 그냥, 돈 자체를 많이 벌 수 있으면 그걸로도 좋습니다.

네. 제게 일이란 돈을 버는 수단이에요. 이런 생각이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일을 통해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거나, 자아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거의 없어요. 다만 일을 ‘잘’ 해야 일이 더 생기고, 그래야 돈도 잘 버니까 오히려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공황장애를 심하게 겪었던 까닭으로, 누군가 제게 지시나 명령을 하는 상황이 되면 공황장애 증상이 올라옵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생각해요. ‘그때도 이런 걸 알았더라면 내 자신을 자책하지 않았을까...’

언제냐고요? 첫 직장에 다닐 때요. 입사할 때와 달리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퇴사했던 곳이지요. ‘다들 잘 다니는데 나만 이렇게 유난스러워서 정신질환이 오고 퇴사도 하나봐...’라면서 끝없이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첫 직장은 삼성 그룹 내에서 패션사업을 맡은 계열사였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회사였지만 패션은 마침 어려움을 겪던 분야라 바깥의 생각과 달리 급여는 250만원이 채 안되었습니다. 인센티브도 없었죠. 그런데 출근은 7시, 퇴근은 21시 정도였어요. 무엇보다 나이와 상관없이 무조건 선배는 반말, 후배는 존댓말을 써야 하는 조직이었어요. 그때 제가 지금처럼 직업 가치관이 분명했다면 금방 ‘나와 조직이 안 맞는구나’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그때는 그저 ‘내가 이상하니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저는 조그마한 NGO의 대표로 살면서 활동하고, 수익은 프리랜서 활동으로 벌고 있습니다. 덕분에 늦잠을 잘 수 있지만, 내년이나 내후년에 내가 뭘 얼마나 어떻게 벌 수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는 불안함은 항상 곁에 있어요. 게다가 '상담'이라는 일의 특성상, 개인의 성장보다는 소진되는 게 더 잦은 날들이지만요, 그래도 마음이 편안해요. 앞서 말했듯, 저에게 직업이란 일단 ‘돈’을 버는 수단, 그리고 제게 '돈'이란 ‘내가 잘 쉴 수 있게 해주는 자원’이거든요.

구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 7가지 가치관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면 총 5,040가지의 결과가 나온다고 해요. 그저 7개의 가치관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의 직업 가치관은 다양하고 다면적인 것이란 뜻이겠죠.

지난 시간에 저는 같은 조직과 그룹에 속해도 생애주기에 따라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길 했어요. 하지만 더 세부적으로 보면, 그 안에도 무수히 많은 '결'이 있을 거에요. 개개인의 각기 다른 삶과 경험이 형성한 결과겠죠. 

만약 구독자님이 어떤 팀원의 사고 방식이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슬며시 팀원들과 7가지 가치관에 우선 순위를 매기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왜 그토록 달랐는지, 지금은 같은 곳에 모여 있지만, 이 곳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은 또 어떻게 다른지...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그러한 다름'들'을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오늘의 끝 곡은 모트의 "논 알콜"입니다. 요즘 모트의 노래를 자주 들었어요. 들을수록 점점 귀에 꽂히는 목소리라고 생각했어요. 이 뮤직비디오도 여러모로 귀엽습니다. 아, 저는 귀여운 걸 좋아하나봐요?! 그리고 젊은이들답게 엄청 시끄럽네요.ㅋ 

저는 어떤 대상에 대해 쉽게 판단하거나 단정해버리는 걸 매우 경계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았다,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그러나 젊을 때(!)엔 몰랐습니다. 그게 쿨하고 멋지고 시니컬한 매력이라고 생각했나봐요. 꽤 독설을 날린 적도 많고요.

사십대 후반의 저는 그런 업보를 되새기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다만 구독자님이 이십대든 삼십대든 사십대 오십대든 뭐 상관없이 그저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존재들과 지지고볶고 잘 부대끼며 살아가길 바라게 되요.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걱정되는 밤, 말 많고 고독한 디제이였습니다. 오늘도 자신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밤을 보내세요.  

📻밤레터의 미드나잇 선곡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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